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58)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사람이 정신없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절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거기까지.”
대체 무슨 조화를 부린 건지 온몸을 옥죄던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리고 화들짝 놀랐다.
벽태산이 호무련 무사의 목을 갑자기 콱 움켜쥐었기 때문이다.
“컥! 왜, 왜 이러십니까.”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내가 믿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저, 정말입니다. 커억.”
벽태산은 사내를 뒤로 휙 던졌다.
쿠당탕탕!
사내가 천경완과 유서연 사이에 떨어졌다.
“제압해.”
벽태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경완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사내의 혈도를 제압했다.
그러자 유서연이 얼른 어디론가 달려가 굵은 끈을 가져와 사내를 꽁꽁 묶었다.
“공자님, 무슨 일입니까? 이 사람은 호무련 무사인데 이래도 괜찮을까요?”
“천추신의랑 일침괴가 나보고 오라고 했다더라.”
천경완과 유서연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군요. 의심스럽습니다.”
“가서 호무련주나 아니면 힘 좀 쓰는 사람한테 전해. 선착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객잔에 수상한 놈들이 있을 거라고. 이놈도 건네주고.”
“함정입니까?”
“글쎄. 그건 나도 모르지. 하지만 뭔가 준비한 게 있을 테니 그건 호무련에 맡기자고.”
천경완과 유서연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막상 할 일이 많지 않은 듯해서였다.
할 일이 없으면 또 그 지옥같은 보법수련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리고 오늘 천추신의랑 일침괴가 어디로 갔는지 일정 확인해 와.”
“예?”
“서둘러!”
벽태산의 호통에 두 사람이 후다닥 움직였다.
천경완이 꽁꽁 묶인 사내를 번쩍 들고 냅다 달렸다. 그러자 유서연이 그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이 어찌나 서둘렀는지 달려 나간 지 반 각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 * *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스무 명의 호무련 무사들은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둘러싸고서 흑의복면인들과 치열하게 싸웠다.
일침괴는 빈틈만 발견하면 바로 침을 날려 흑의복면인들의 약점을 찔렀다.
그렇게 쓰러진 흑의복면인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상황을 해결할 만하면 새로운 흑의복면인들이 담장을 훌쩍훌쩍 넘어왔다.
그러는 동안 호무련 무사들의 몸에 상처가 꾸준히 쌓였다.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지고, 내력이 가끔 끊기기 시작했다.
너무 과하게 내공을 쓴 여파가 밀려오는 것이다.
내공을 과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흑의복면인들은 자신들의 안위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동귀어진에 가까운 공격을 수시로 날렸다.
무리하지 않고서는 그걸 막아낼 수 없었다.
“저놈들이 덤벼든 지 제법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지원이 안 오는군.”
천추신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저놈들과 싸우기 시작한 뒤로 제법 시간이 지났다. 이쯤이면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대로라면 결국 호무련 무사들이 다 쓰러질 것이다.
일침괴의 무공이 상당하긴 하지만, 저들을 상대로 버티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혼자 도망친다면 길이 열릴지도 모른다.
“형님, 기회 봐서 몸을 빼는 게 좋겠소.”
“몸을 빼라고? 그게 가능할 것 같으냐?”
“내가 숨겨둔 한 수가 있소. 그걸 쓸 테니 그 틈에 빠져나가면 되오.”
일침괴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는 침 두 개를 날려 흑의복면인 둘을 쓰러뜨렸다.
“나 혼자 도망치란 말이냐?”
“가능성이 높은 쪽에 걸어봅시다. 나가서 공자님을 찾으시오. 공자님께서 오시면 어떻게든 될 것 같지 않소?”
“아무리 공자님이라도 이 많은 놈들을 어찌 상대한단 말이냐. 차라리 호무련을 기다리는 게 낫다.”
“아직까지도 안 오는 걸 보면 호무련 쪽에도 뭔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오. 저놈들이 이렇게 당당히 왔다는 건 필요한 조치를 다 해뒀다는 뜻이오.”
“젠장. 아무튼 난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내가 침은 좀 날리지만 경공이 모자라서 안 되겠다.”
“하, 이 와중에 고집을 부리는 거요? 살 사람은 살아야 할 거 아뇨. 그리고 저놈들 척 보기에도 우릴 죽이려는 게 아니라 잡아 가려는 거요. 그러니 얼른 가서 공자님이나 모시고 오시오.”
“야 이놈아. 내가 바보 멍충이로 보이냐? 안 간다. 그리고 숨겨둔 한 수는 네놈만 있는 줄 아느냐? 나도 있다. 두 눈 크게 뜨고 똑바로 봐라.”
일침괴가 품에서 침을 하나 꺼냈다. 한데 그것이 지금까지 던진 침들과 달리 굉장히 길고 두꺼웠다.
“그거······ 침이라기보다는 꼭 말뚝 같은데······.”
“침이다.”
일침괴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 서서 번득이는 눈으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흑의복면인을 노려봤다.
처음 나섰던 바로 그놈이었다.
“내가 딴 놈은 몰라도 저놈 하나만큼은 같이 데리고 가야겠다.”
“가긴 어딜 간단 말이오.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니 그딴 소리 하지 말고 던질 거면 얼른 던지기나 하쇼. 나도 슬슬 준비한 거 써먹을 테니까.”
일침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침공을 끌어올렸다.
쉬이이이!
주변에 강력한 기의 회오리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이 일침괴의 손에 든 말뚝, 아니, 침으로 모여들었다.
기운이 터질 듯 모여든 침을 일침괴가 냅다 던졌다.
콰우우우우!
주변 공기를 모조리 빨아들이며 거대한 침이 날아갔다.
흑의복면인은 자신을 향해 정확하고 빠르게 날아오는 침을 보고는 깜짝 놀라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아앙!
침이 검과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폭발과 함께 말뚝 속에 들어 있던 무수한 세침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퍼버버버버버버벅!
적아를 가리지 않는 공격이었기에 적들이 모인 곳에서 터트려야만 하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위력적이었다.
말뚝을 막아낸 흑의복면인의 온몸에 세침이 박혔다. 그는 피거품을 게워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있던 자들은 모두 실 끊어진 인형처럼 풀썩풀썩 쓰러졌다.
“어떠냐? 내 솜씨가.”
일침괴의 어깨가 한껏 치솟았다. 천추신의는 자신도 모르게 엄지를 치켜세웠다가 얼른 다시 내렸다.
“솔직하지 못하긴.”
일침괴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하지만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이번 공격에 쏟은 공력이 너무 컸다. 아마 이제부터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했음에도 아직 적의 수가 너무 많이 남았다.
“너도 숨긴 거 있다면서 왜 안 써? 지금이 딱 써야 할 때다. 그래야 시간이라도 좀 더 끌지.”
“안 그래도 하려고 했소. 거 애처럼 보채지 좀 마쇼.”
“뭐? 애? 이놈이 진짜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일침괴는 그렇게 천추신의에게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침을 휙휙 날려 흑의복면인 둘을 쓰러뜨렸다.
그렇게 죽였는데 아직도 잔뜩 남아 있었다.
그리고 또 수십의 흑의복면인이 담장을 넘어왔다.
“시발 갈수록 태산이네.”
일침괴가 암담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천추신의가 막 넘어온 흑의복면인들을 향해 주먹만 한 검은 구슬을 던졌다.
펑!
검은 구슬이 터지면서 주변에 시커먼 연기가 쫙 퍼졌다.
연기를 마신 흑의복면인들이 갑자기 멈칫 하더니 온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안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되네.”
천추신의의 중얼거림을 들은 일침괴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순간 부풀어 오르던 흑의복면인들이 하나씩 터지기 시작했다.
뻐엉! 뻐엉! 뻐엉!
터지면서 살점과 뼈가 주변을 휩쓸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여전히 흑의복면인들은 많았고, 호무련 무사들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천추신의는 쓰러진 무사를 안쪽으로 끌어당겨 치료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라도 버텨야만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더 이상 저들을 버텨낼 수 없을 듯했다.
“하, 천경완이랑 유서연만 있어도 어찌어찌 해볼 만했을 텐데.”
천추신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일침괴의 눈이 커다래졌다.
“허어. 저놈 저거 대체 뭐냐?”
일침괴의 말뚝에 당해 피거품을 쏟아내던 흑의복면인이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한데 그놈의 몸에서 강렬하고 난폭한 기운이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거 아무래도 잠력을 폭발시킨 것 같지 않소?”
“그런 것 같구나. 제 목숨 귀한 줄 모르는 놈이니 당연히 남 목숨 귀한 줄도 모르지. 쯧쯧.”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긴 했지만,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안 그래도 힘든데, 저놈이 잠력까지 폭발시켜서 몸 안 사리고 덤벼들면 상황이 훨씬 안 좋아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제 끝인지도 모른다.
잠력을 폭발시킨 놈이 막 몸을 날리려는 찰나, 허공에서 누군가가 뚝 떨어졌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나.
쩌저저저정!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사방으로 검을 휘두르는데, 그 기세가 흉험하기 그지없었다.
두 사람을 본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눈에 생기가 확 돌았다.
“드디어 왔구나!”
나타난 사람은 천경완과 유서연이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얼른 주위를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문 주변에 있던 흑의복면인들이 풀썩풀썩 쓰러지더니, 벽태산이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시발 너희들 이제 다 뒤졌다.”
일침괴가 히죽 웃으며 중얼거렸다.
끝
벽태산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인상부터 썼다.
“뭐 이렇게 죽다 만 놈들이 많아?”
벽태산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잠력을 폭발시킨 놈이었다.
척 보기에도 그놈이 제일 위험해 보였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흑의복면인들 중 유일하게 온전히 살아있었다.
벽태산은 그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흑의복면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벽태산에게 채 손을 대기도 전에 툭툭 쓰러졌다.
벽태산 근처에만 가도 힘을 잃고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본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들이 그렇게 힘들게 상대하던 놈들이 저렇게 쉽게 쓰러지는 걸 보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어느새 벽태산이 잠력을 폭발시킨 놈 바로 앞에 섰다.
“크아아아!”
그놈이 괴성을 지르며 벽태산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엄청나게 빠르고 강력한 검격이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슬쩍 허리를 뒤로 젖힌 것만으로 검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벽태산은 검 끝이 코앞을 지나가자마자 앞으로 튕겨나가 그놈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을 떨치듯 명치를 때렸다.
툭.
“쿠웨에엑!”
그놈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왈칵 쏟아졌다.
벽태산은 어느새 뒤로 쭉 물러났다. 쏟아지는 피를 굳이 서서 맞아줄 이유가 없었으니까.
피를 토한 놈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눈동자를 굴렸다.
자신이 벽태산의 상대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어떻게 몸을 뺄지 궁리했다.
하지만 그는 더 생각을 이어갈 틈이 없었다. 벽태산이 다시 다가왔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것도 못 봤는데 눈 한 번 깜짝하고 나니 벽태산이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는데, 벽태산이 손을 뻗어 검을 쥔 손을 지그시 눌렀다.
검을 휘두르려다가 덜컥 멈춘 사내의 턱에 벽태산의 손등이 스치듯 지나갔다.
털썩.
벽태산은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쓰러진 그놈의 등을 가볍게 밟았다.
꽈득.
이제 이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한다.
벽태산은 주위를 둘러봤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바짝 붙어서 호무련 무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흑의복면인들을 상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대로 둬도 별 문제가 생기지 않을 듯했다. 제법 잘 싸우고 있었으니까.
이번엔 천경완과 유서연 쪽을 확인했다.
두 사람은 무지막지한 공격을 마구 쏟아냈다.
마치 속에 단단히 응어리진 무언가를 토해내는 듯했다.
두 사람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흑의복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제법이네.”
처음 봤을 때와 비교하면 어린아이가 어른이 된 거나 다름없을 정도의 차이가 났다.
게다가 두 사람의 호흡이 어찌나 절묘하게 잘 맞는지, 마치 두 사람이 아니라 셋이나 네 사람이 같이 싸우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이쪽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벽태산은 일단 의원들 쪽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다.
그쪽을 공격하는 흑의복면인들에게 슥 다가갔다. 벽태산이 가까이 가기만 하면 그들은 어김없이 풀썩풀썩 쓰러졌다.
여유가 생기자, 호무련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흑의복면인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었다.
벽태산은 두 사람 앞에 서서 한쪽에 쓰러진 흑의복면인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잠력을 폭발시켰던 그놈이었다.
“살릴 수 있지?”
벽태산의 말에 일침괴와 천추신의의 입가가 비틀려 올라갔다.
“당연한 것을 물어보십니까. 그냥 살리라고 하시면 저놈은 사는 겁니다.”
두 사람은 얼른 바닥에 쓰러진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일단 복면부터 벗겼다.
“주름 자글자글한 거 봐라.”
굉장히 나이가 많아 보였다. 아까 목소리는 이 정도로 늙지 않았었다.
두 사람은 일단 치료부터 했다.
잠력을 폭발시켰으니 기혈이 찢어지는 걸 막아둬야 했다. 줄줄 새는 선천지기도 막아야 하고 말이다.
일침괴와 천추신의가 동시에 손을 쓰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치료가 끝났다.
“그나저나 이놈 보기보다 어린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