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
“루주님.”
“왜 그러느냐?”
향화루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단영을 바라봤다. 단영의 표정이 왠지 결연했다.
“저 루에서 나가고 싶어요.”
향화루주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소리냐? 여기가 애들 놀이터인 줄 알아? 나가겠다고 하면 그냥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기녀들은 전부 빚이 있다.
자고로 기녀를 묶어둘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빚을 지우는 것이다.
향화루도 그 방법을 아주 충실히 따랐다.
“빚은 무슨 수를 써서든 꾸준히 갚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허락해 주세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이제 미모에 물이 올라서 좀 제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난데없이 저러니 속이 바짝바짝 탔다.
“벽 공자님을 모시고 싶어요.”
향화루주가 코웃음을 쳤다.
“하! 그러니까 결국 벽태산이 널 충동질했구나? 그래서, 그놈이 빚을 갚아줄 테니 오라고 하든? 정신 똑바로 차려, 이것아. 그런 놈들이 우리 같은 사람을 끝까지 아껴줄 것 같아? 어차피 우린 노리개야. 가봐야 좋은 꼴 못 본다고!”
단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분은 아무 말씀 안 하셨어요. 그저 제가 그러고 싶어서 이러는 것뿐이에요.”
향화루주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그냥 너 혼자 이러는 거라고? 그건 더 말이 안 되는데?”
하지만 단영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고 깊었다.
향화루주는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눠보고는 답이 안 나온다고 판단했다.
“후우. 아무튼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자. 너도 다시 생각해 보고. 뭐가 널 위한 일인지 잘 생각해. 그리고 네가 간다고 해서 과연 벽태산한테도 좋은 일인지도 생각하고. 그 사람 정혼자가 누군지 알지?”
“예. 알고 있어요.”
벽태산의 정혼자는 연가장의 여식이다.
무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기도 하고.
“알았으면 잘 생각해.”
단영이 공손히 인사하고 물러가자, 향화루주가 입술을 짓씹었다.
“병든 닭 하나가 우리 향화루를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었네.”
어젯밤 있었던 일이 떠오른 향화루주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향화루주의 가장 유능한 부하 하나가 잡혀갔다.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돌아온다고 해도 관계를 부정해야 한다.
향화루주는 이미 그놈이 향화루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기루가 망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과연 금벽상단이 그 말을 믿을까?
“그럴 리 없지.”
그러니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일단 납작 엎드리는 수밖에.”
그래서 더 짜증이 났다.
만일 벽태산이 이 일을 빌미로 단영을 요구하면 향화루주로서는 그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빼앗길 거라면······.”
향화루주의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 * *
벽태산은 뇌옥으로 들어섰다.
습기와 곰팡이가 뒤섞인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금벽장에 뇌옥이 존재하긴 하지만, 사실상 거의 쓸 일이 없어서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관리 상태가 정말 안 좋았다.
아마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혈도를 봉쇄해 놓은 것일 테지만.
잡아온 놈은 중간쯤 위치한 뇌옥에 들어가 있었다.
벽태산 뒤로 천경완이 평소보다 훨씬 공손한 태도로 서 있었다.
그는 어딘가 후련한 표정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쌓아뒀던 얘기를 모조리 쏟아냈으니 얼마나 속이 시원하겠는가.
벽태산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천경완은 그런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전부 토해냈다.
내용은 정말 별 거 아니었다.
힘을 키워서 복수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벽태산은 그 모든 얘기를 끝까지 들어준 다음, 딱 한 마디를 던졌다.
“관심 없다.”
천경완이 그 대답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그때부터 벽태산을 아주 극진하게 대했다.
벽태산은 천경완이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았고.
“아주 팔자 늘어졌네.”
잡아온 놈이 뇌옥 바닥에 늘어져 잠을 자고 있었다.
물론 몸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혈도를 자극해서 제법 심한 고통을 줬는데도 꿈쩍하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놈입니다.”
“그래? 그거 잘 됐네.”
“공자님의 손을 더럽힐 필요 없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됐다. 귀찮으니까 나가있어.”
“그럴 수 없습니다. 아무리 혈도를 봉쇄했어도 기본적으로는 무공을 익힌 놈입니다. 혹여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벌어진다면 전 어쩌란 말입니까.”
“어쩌긴 뭘 어째. 그리고 불미스러운 일? 하! 지금 저놈이 날 어떻게 할 수 있다, 뭐, 그런 거냐?”
벽태산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몸 상태가 거지발싸개 같다지만, 감히 천마가 저런 찌끄레기 같은 놈한테 당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물론 이놈은 자기가 천마라는 걸 모르지만.
“아닙니다. 하지만······ 공자님처럼 고귀하신 분의 손에 더러운 걸 묻히는 걸 어찌 본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보지 말고 나가 있으라고.”
벽태산은 뇌옥 바깥쪽을 향해 손을 까딱이며 휙휙 내저었다.
결국 천경완이 머뭇머뭇하더니 괴로운 표정으로 뇌옥에서 나갔다.
벽태산은 다시 고개를 돌려 뇌옥 안에서 자는 척하고 있는 놈을 쳐다봤다.
“아주 그냥 더러운 게 덕지덕지 붙어 있네. 어이구, 많기도 하다. 너 아주 지저분하게 살았구나?”
놈의 혼백을 보고 있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만일 어제 단영을 통해 대맥 한 군데를 잇지 않았다면 이놈을 건드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대맥을 이은 덕분에 혼탁한 영기를 보관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하, 이놈 눈동자 굴리는 거 봐라.”
자는 척하고 있다는 건 뇌옥에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은신했을 때도 느꼈지만, 이놈 수준이 제법이다.
물론 대단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좀 쓸 만한 정도?
자는 척 하는 것도 수준급이었다. 천경완을 속였으니까.
벽태산은 뇌옥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누운 놈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야, 자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
그제야 그놈이 슬그머니 눈을 떴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겁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해.”
사실 뭘 묻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앞뒤 정황 따져보면 상황이야 명확하다.
향화루주는 발뺌할 게 뻔하고.
바닥에 누운 사내가 고집스럽게 입을 꽉 다물었다.
“혈도도 제대로 못 잡았네. 하여간 저렇게 어설퍼서야······ 쯧쯧.”
수준이 아주 높은 건 아니었지만, 이놈에게 혈도를 비트는 수법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렇게 어설프게 혈도를 제압한 것이다.
이놈은 자는 척하면서 어설프게 막힌 혈도를 뚫는 중이었고.
하지만 그 시도는 이제 끝났다.
벽태산이 괜히 다가와서 옆구리를 툭툭 건드린 게 아니었다.
그건 최소한의 충격으로 비틀린 혈도를 바로잡는 행위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혈도가 제대로 막혀 버렸다.
천경완이 주입한 기운이 제법 강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내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걸 본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왜? 이제 좀 당황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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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천경완은 벽태산의 명령으로 뇌옥에서 나와 입구를 지키고 섰다.
그러면서 뇌옥 안쪽에 대부분의 감각을 집중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단숨에 안으로 뛰어 들어갈 수 있도록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그걸 위해 다리와 어깨 쪽에 끊임없이 내공을 보냈다.
꾸준히 내공을 소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벽태산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나았다.
더구나 벽태산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몸 아닌가.
그는 절맥이다. 그것도 심각한 절맥이다.
지금까지 벽태산을 진맥한 명의가 수십 명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들의 진맥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단 하나 공통된 결과가 있으니, 바로 절맥이었다.
의원들이 진맥한 결과를 종합하면, 벽태산은 지금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심각한 절맥이었다.
그러니 어찌 걱정이 안 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천경완은 절맥을 가진 자들은 전부 천재라는 말을 지금까지 믿지 않았다.
그 산 증거가 바로 벽태산이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이 오만했다. 절맥은 천재가 맞다. 지나가는 말 한 마디로 단단하게 굳은 벽을 깨부술 수 있는 천재 말이다.
그렇게 온 신경을 뇌옥 내부로 집중하고 있을 때, 안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끄아아아아아악!”
너무나 처절한 비명이었다.
천경완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쳤다. 이건 그저 평범한 비명이 아니었다.
영혼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짜 비명이었다.
“으어어억! 어어억! 끄우아아아아악!”
연이어 들려오는 비명이 전부 지독했다.
단말마가 아마 이러지 않을까?
천경완의 생각에는 그랬다. 자신이 죽는 순간 아마 저런 비명을 지를 것 같았다.
그걸 계속 듣고 있으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대체 공자님께서······ 뭘 하시는 거지?’
그저 단순한 고문으로 저런 비명을 지를까? 그 지독한 놈이?
그놈은 천경완의 고문에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천경완의 고문이 어설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을 정도로 가볍지는 않았다.
그런 놈의 입에서 저런 처절한 비명이 나오려면 과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끄아아아악!”
비명은 계속 이어졌다. 잠깐 비명을 지르다가 끊어지고, 그런 식이 아니었다.
정말 끊임이 없었다.
저러다가 목이 찢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한 시진, 두 시진······.
비명이 끝난 건 세 시진 반이 지나고 나서였다.
놀랍게도 그때까지 비명이 이어졌다.
사람이 계속 저렇게 소리를 지르면 결국 목이 쉬고 갈라져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저 안에 있는 놈은 무려 세 시진 반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비명을 지르면서 조금도 목이 쉬거나 갈라지지 않았다.
잠시 후, 안에서 벽태산이 나왔다.
“괜찮으십니까, 공자님.”
벽태산은 괜찮다는 대답 대신 뇌옥 쪽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가서 풀어줘.”
“예?”
벽태산은 더 말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같은 말을 두 번 하기 싫다는 듯이.
천경완은 헐레벌떡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가 뇌옥 바닥에 지쳐 쓰러져 있었다.
천경완은 일단 그를 흔들어 깨웠다.
“이, 이봐.”
분명히 뭔가 고문을 당했을 텐데 몸에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생채기 하나 없었다. 아니, 오히려 피부가 매끈매끈했다.
“끄으응.”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한데 눈빛이 어딘가 혼탁했다. 마치 미친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어?”
천경완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사내의 피부가 주르륵 흘러내린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멀쩡했다.
하지만 뭔가 일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괜히 자신이 그런 착각을 했을 리 없지 않은가.
“으어어!”
사내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천경완은 일단 혈도부터 풀었다. 그러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혈도가 풀린 놈이 과연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으니까.
하지만 사내는 혈도가 풀리자 그저 몸을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마치 어딘가 모자란 사람 같은 느낌이었다.
“이봐, 괜찮아?”
천경완의 물음에 사내는 대꾸도 하지 않고 주춤주춤 일어났다.
“으어어어.”
바보나 낼 법한 소리를 내며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했다.
천경완은 그가 움직일 수 있도록 지나갈 모든 길에 있는 문을 다 열어주었다.
사내는 뇌옥을 나섰다. 그리고 금벽장을 벗어나 계속 걸어갔다.
천경완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를 쫓아갔다.
최소한 어디로 가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다.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사내의 목적지는 향화루였다.
* * *
벽태산은 방으로 돌아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저렇게 타락한 혼백이라면 얻을 게 많을 테니까.
혼백을 뽑아내 거기 덕지덕지 달라붙은 것들을 뜯어내 태울 때만 해도 좋았다.
정말 막대한 힘이 쭉쭉 빨려 들어왔으니까.
그걸 바로 받아들이면 좋겠지만 지금의 몸으로 그랬다간 바로 쓰러질 테니, 어쩔 수 없이 몸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태운다는 건 정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벽태산의 몸에 남은 기운은 혼백을 태우고 정화한 다음 남은 굉장히 순수한 힘이었다.
한데 절반쯤 진행되었을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놈이 세상을 너무 지저분하게 살아왔다. 혼백이 너무 지독하게 오염된 것이다.
기녀들의 경우 혼탁한 영력을 떼어내면 순수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