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5)
거한은 반쯤 멀쩡해진 상태로 앉아 있었다.
잠력이 폭발해 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원래의 쌩쌩한 몸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아니, 완벽하게 고쳐줄 수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벽태산이 다가오자, 금옥루주가 황급히 비켜서며 자리를 내줬다.
사실 그녀는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벽태산의 턱짓 한 방에 모든 걸 포기하고 시키는 대로 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만은 없었다. 벽태산의 지시는 언제나 자신의 정체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니까.
어차피 금옥루주를 대체할 사람은 많았다. 정체가 드러나면 다른 일을 맡으면 그만이었다.
“뭐 좀 알아낸 건 있고?”
벽태산의 물음에 금옥루주가 공손히 대답했다.
“이름과 소속 정도가 일단은 전부입니다.”
이름과 소속을 알아냈다는 말에 거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이름은 마석광, 전 청류채의 채주입니다.”
“청류채?”
“의창 주변에서 활동하던 수적입니다. 지금은 활동하지 않습니다. 채주도 사라진 지 몇 년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망해서 사라진 수적 두목이 반강시를 이끌고 다시 나타난 거로군?”
“그렇습니다.”
거한, 마석광은 황당하면서도 당황한 눈으로 금옥루주를 바라봤다.
그녀가 자신에게 물은 건 정말 별 거 아닌 것들이었다.
한데 저런 건 대체 어떻게 알아냈단 말인가.
벽태산이 마석광을 보며 물었다.
“너, 아무것도 모르지? 하긴, 알 리가 없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개새끼 주제에 뭔가를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지.”
마석광이 벽태산을 노려봤다. 하지만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너 잠력은 왜 터트린 거야? 자살할 생각은 아니었잖아. 그렇지?”
“반만 터트릴 생각이었다. 그럼 고칠 수 있으니까.”
“잠력을 반만 터트려? 그게 가능하긴 해?”
“난 가능하다. 비상시에 한 번 쓸 수 있는 수법이다.”
벽태산이 이번엔 고개를 돌려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찾았다. 이제부터는 그 둘이 알아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나저나 이것들 진짜 사람 몸 가지고 너무 장난질이 심한데?”
벽태산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 * *
연하린은 노인과 마주 앉아 대화 중이었다.
사실 그녀가 먼저 노인을 찾아간 게 아니라, 노인이 연하린을 찾아와 먼저 말을 걸었다.
“고맙구나. 네가 아니었다면 아마 피해가 굉장히 컸을 게다.”
“별 말씀을. 제가 한 건 사실 별로 없습니다.”
연하린은 그렇게 말하고 저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벽태산을 힐끗 쳐다봤다.
“저분이 하셨지요.”
노인은 그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다. 벽태산이 아니었다면 다들 여기서 뼈를 묻어야 했을 테니까.
그 정도로 반강시의 공세는 무서운 구석이 있었다.
또한 적에게 있던 그 대단한 고수를 막는 것도 쉽지 않았다.
벽태산의 등장과 동시에 그 대단한 고수가 뒤로 빠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왔던 특이한 반강시들도 우르르 빠져나갔다.
다른 반강시들에 비해 월등히 강한 놈들이었는데, 그놈들 때문에 이쪽의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었다.
다른 평범한 반강시는 그럭저럭 상대할 만했다. 어쨌든 여기 있는 자들은 각 가문에서 촉망받는 후기지수들이었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온 고수들이었으니까.
한데 강한 반강시들은 그런 고수들로도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훨씬 힘도 세고 빨랐다. 게다가 무공을 제법 수련했는지 공격이 날카롭고 교묘했다.
노인이 제대로 싸울 수만 있었어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지만, 노인은 그놈들의 수장과 싸워야만 했다.
그놈은 노인이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로 대단한 고수였다.
“그래도 네가 아니었다면 네 정혼자도 오지 않았을 테니, 어쨌든 네 공이 맞다.”
연하린은 그 말까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살며시 웃었다. 그건 그녀의 바람이자 믿음이기도 했다.
노인은 연하린을 아쉬운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가문의 아이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참으로 아쉽구나. 조금만 빨랐어도 좋았으련만······.”
노인의 이름은 백리장천, 백리세가의 장로였다.
또한 현 호무련주인 백리엽의 형이기도 했다.
당연히 그가 염두에 둔 가문의 아이는 백리세가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인 백리문량이었고.
연하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린 아주 어릴 때부터 정혼했는지라, 아마 일찍 만났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거예요.”
백리장천이 허허 웃었다. 정말 아무런 여지도 주지 않는 대답 아닌가.
“정말 믿음이 확고하구나. 한데······ 네 정혼자도 너와 같은지는 잘 모르겠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
연하린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뭐가 중요한지요.”
백리장천은 연하린의 답이 너무나 의외였기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저분을 믿고 끝까지 따라가는 건, 그저 제 의지일 뿐입니다. 그리고······.”
연하린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말을 이었다.
“전 이미 받을 만큼 충분히 받았습니다.”
백리장천이 그런 연하린의 모습에 빙긋 웃었다.
“이러면 더 아쉬워지지 않느냐. 정말이지······ 저 녀석이 부럽구나.”
연하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정말 부러워해야 할 사람은 벽태산이 아니라 자신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얘기를 굳이 꺼낼 필요는 없었다.
해봐야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질 뿐이니까.
“아무튼 내가 이렇게 널 보자고 한 것은 연가장에 추천장을 써주고 싶어서다.”
“추천장이요?”
연하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이래봬도 호무련주의 친형이다. 내 추천장이면 호무련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지. 마침 자리 몇 개가 비어 있기도 하고.”
백리장천은 연하린의 표정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주 지위가 높은 자리는 아니지만 제법 중요한 자리라는 건 장담할 수 있다. 그 자리에 연가장 사람을 넣었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하냐?”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연가장은 사실 다른 명문세가에 비해 상당히 손색이 있었다.
호무련에 가입하긴 했지만, 제대로 된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호무련과 이어진 가문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으니까.
하지만 연하린은 그걸 덥석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신중하게 고민했다.
“죄송합니다만······ 그건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합니다. 아무래도 가문으로 돌아가 가문의 어르신들과 상의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백리장천은 빙긋 웃었다.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하느냐? 난 그저 추천장을 써줄 뿐이다. 그걸 쓰고 말고는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백리장천은 그렇게 말하고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때 써먹으려고 미리 준비해둔 추천장이었다.
연하린은 이것까지 망설이면 실례가 될 것 같아 공손히 그것을 받았다.
“감사합니다.”
백리장천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너 같은 제대로 된 후기지수를 정말 오랜만에 봐서 기분이 좋구나. 앞으로도 정진하기 바란다.”
“명심하겠습니다.”
백리장천과 연하린 사이의 대화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연하린은 얼른 벽태산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았다.
그녀의 눈은 벽태산을 찾을 때면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금세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는 벽태산을 발견했다.
* * *
벽태산이 있는 곳의 분위기는 제법 심각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마석광의 몸을 면밀히 진맥하는 중이었다.
처음 마석광을 치료할 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찾아내야 하는지라 둘 다 굉장히 신중하게 진맥을 이어갔다.
이내 진맥이 끝났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각자가 찾아낸 사실을 얘기하며 한동안 조용히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면서 또 진맥을 해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논의를 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것이 무려 반 시진이나 이어졌다.
벽태산은 평소와 달리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끈기 있게 기다려 주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
당사자인 마석광은 그 분위기에 짓눌리고 주눅이 들어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눈치만 살폈다.
논의가 끝나자, 천추신의가 벽태산에게 말했다.
“공자님, 이놈은 이미 강시입니다.”
“뭐?”
마석광이 놀라 그렇게 소리쳤다. 자신이 강시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나 멀쩡한데.
“보아하니 되돌리기에는 좀 늦었습니다. 멍청하게 잠력만 터트리지 않았어도 가능성이 있었을지 모르는데······.”
“웃기지 마! 내가 강시라니! 내가 강시라니!”
“조용히 해라.”
벽태산이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마석광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한껏 몸을 웅크리며 벽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었다.
“계속해.”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라 말을 멈췄던 천추신의가 설명을 이어갔다.
“잠력을 반으로 나눠서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시술이 바로 반강시로 만들기 위해 길을 내는 것입니다. 미리 시기가 통할 기맥을 뚫어놓는 것이지요.”
“그걸 굳이 막아놓은 이유는?”
“무공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공을 가진 자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기운에 대한 반발이 워낙 강하니 반강시로 만들기 어려우니까요.”
“잠력을 터트리면 내부에 있던 기운이 싹 빠져나가니 그 자리에 시기를 채운다 이거로군?”
“추측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건 직접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며 마석광을 쳐다봤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니 저놈을 이용해 반강시가 되는 과정을 확인해 보고자 함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시술, 결코 간단치 않다는 점입니다.”
“간단치 않다?”
“잠력을 터트려도 죽지 않도록 만드는 시술이 쉬울 리 없지 않습니까. 아마 돈과 노력이 제법 들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겠지.”
“그리고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아무래도 시기가 지나는 기맥이 정착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벽태산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다 도망친 건가?”
아까 벽태산이 등장해 배 위의 반강시들을 쓰러뜨리고 영력을 흡수할 때, 뭍에 있던 자들 중 일부가 도망쳤다.
벽태산도 그걸 봤지만, 그때는 굳이 쫓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나중에 쫓아가면 된다고 여겼으니까.
실제로 지금 하오문에서 그 흔적을 추적하고 있었다.
“좀 기대는 되네.”
무공을 익힌 반강시는 과연 어떨까?
물론 여기서 궁금한 건 반강시가 얼마나 강한지가 아니라 그놈들이 뿜어내는 영력이 어떤지였다.
분명히 내공의 영향을 받을 텐데, 그것이 어떻게 작용할지 아직 예측이 잘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그걸 처음 저놈 고칠 때는 왜 못 발견한 거야? 시술한 놈이 너희보다 위인가?”
그 말에 천추신의가 발끈했다.
“아니, 공자님. 그 무슨 서운한 말씀이십니까. 우리나 되니까 알아낸 거지, 원래 이건 알아내는 게 거의 불가능한 겁니다. 달리 우리가 반 시진이나 논의를 했겠습니까?”
그리고 그 말을 일침괴가 받았다.
“확실히 이 시술을 한 놈이 제법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우리와 비교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시술에 독이 쓰였다는 점입니다.”
“독? 독마의 흔적이 있나?”
“독마였으면 이런 흔적을 안 남겼겠지요.”
일침괴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흑철방에 썼던 독과는 다른 독입니다. 아예 결이 다릅니다. 그리고 독을 쓰는 방식도 다릅니다. 그때와 다른 놈입니다.”
“내가 알려줬던 독 중에 있나?”
“비슷한 것이 있습니다.”
예전에 독마로부터 얻은 독 제조법을 천추신의와 일침괴에게 몽땅 전해줬는데, 그 중 하나에 걸려든 모양이다.
그렇다면 독마의 또 다른 제자다.
“단순히 제자 한 놈이 도망쳐서 끼어든 건 아니라는 거네.”
조금 더 흥미가 생겼다.
그리고 그때, 도망친 놈들을 추적하라고 보냈던 하오문도 중 한 명이 돌아왔다.
끝
하오문도는 도망친 자들의 흔적을 추적해 그들의 은신처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했다.
거기서 더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했다고 한다. 더 들어가면 들킬 것 같아서 일단 추적을 멈추고 주변에 감시를 깔아두고 보고를 위해 돌아온 것이다.
보고를 들은 벽태산은 바로 결정을 내렸다.
“자, 그럼 나머지 영약을 가지러 가야지.”
벽태산이 슬슬 움직이려고 할 때, 연하린이 다가왔다.
그녀는 일단 감사 인사부터 했다.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 드려요. 전 언제나 도움만 받네요.”
‘응? 언제나? 설마 이런 일이 또 있었나?’
일단 자신이 한 일은 없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 벽태산이 과거에 무언가를 했다는 뜻이다.
벽태산은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을 툭 던졌다.
“여기 일 마무리 하고 나면 돌아갈 건데, 너도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게 어때?”
연하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정말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뭐······ 안 될 건 없지.”
연하린이 기쁘게 웃었다.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휙 몸을 돌려 하오문도가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방금 자신이 한 말을 곱씹어봤다.
왠지 자신답지 않은 말을 한 것 같으면서도 또 그게 아닌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나이에 무슨.’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데 그때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시선의 주인을 확인하니 아까 연하린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바로 그 노인이었다.
노인이 묘한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태산이 연하린에게 물었다.
“아까 얘기하던 노인, 누구지?”
“아, 백리세가의 장로님이세요.”
연하린은 백리장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자신에게 추천장을 준 것까지 얘기했다.
얘기를 모두 들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그 추천장을 누가 쓸 건데?”
“예? 그야······.”
연하린이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마땅히 쓸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추천장이 있다고 해도 아무나 보낼 수는 없었다.
어쨌든 백리장천이 중요한 자리라고 장담하는 자리에 앉게 될 테니, 웬만큼 역량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니면 경험이 많은 사람이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누가 봐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예를 들면 연가장주라거나.
하지만 연가장주가 연가장을 버리고 호무련으로 갈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