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69)
남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많은 돈을 들여 고작 흑철방 하나 먹었다고? 거기 투입한 강시들은?”
“모두 잃었습니다.”
“병신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며 물었다.
“꼬리는?”
“확실히 끊었습니다. 절대 추적하지 못합니다.”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그리고 두 번째 계획은 시작 단계부터 다시 점검하고. 실패는 한 번으로 족해.”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그 대답과 함께 문밖의 기척이 사라졌다.
옷을 다 차려입은 남자는 바닥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촤아아아!
바닥에서 꿈틀거리던 세 여인이 순식간에 핏물로 녹아내렸다.
그 핏물이 남자의 발바닥으로 끊임없이 스며들었다.
피를 빨아들이는 남자의 눈에 붉은 광채가 일렁였다.
끝
호무련이 또 한 차례 발칵 뒤집혔다.
이번에는 흑철방이 무너졌을 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했다.
호북지역 전체에서 온 후기지수들을 건드렸으니까.
일단 각 가문에 연락해 호위 인원을 최소 세 배 이상 증원해서 보내라고 통보를 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이번 사태로 인해 호무련이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호무련주는 과장 좀 보태서 천장에 닿을 정도로 쌓인 서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 언제 다 처리하지?”
그냥 대충 넘길 수는 없었다. 이번에 벌어진 사건 자체가 굉장히 민감한 부분이 많았기에 하나하나 신중하게 처리해야만 한다.
그리고 아마 총관이 이 모든 걸 다시 한 번 꼼꼼하게 확인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대충 처리한 것들은 반드시 걸고 넘어갈 테니, 잔소리를 줄이려면 애초에 잘 해야 한다.
호무련주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서류를 한 장 한 장 꼼꼼하게 살피고 있을 때, 총관이 다급히 들어왔다.
그는 서탁 위에 쌓인 서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직 그거밖에 못 하셨습니까?”
호무련주가 어이없는 눈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내 복장 뒤집어 놓을 생각이라면, 아주 잘 했네. 성공이야.”
총관은 서탁 옆으로 다가가 호무련주가 이미 처리한 서류들을 들고 슥슥 살폈다.
그리고 그 중 두 장을 따로 뺐다.
“이건 다시 확인해 보셔야 합니다.”
호무련주가 멍하니 총관을 바라봤다.
“그런 눈으로 보셔도 소용없습니다. 저도 할 일 많습니다. 제발 그만 쉬시고 속도를 좀 내십시오.”
호무련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뭔가가 울컥 올라왔다.
쉬긴 대체 누가 쉬었단 말인가.
총관은 그런 호무련주의 눈빛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확인한 서류를 한쪽에 잘 정리해서 놓았다.
“이건 그냥 온 김에 겸사겸사 처리한 거고······ 벽태산으로부터 돌아가겠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뭐? 이 와중에 돌아간다고? 제정신인가?”
총관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문제는 벽태산이 돌아가면 천추신의와 일침괴도 함께 간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겐 아직 그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당연하지. 아직 반강시를 상대하는 방법도 못 찾았지 않은가.”
엄밀히 따지면 아예 못 찾은 건 아니었다. 몇 가지 특징을 이용해 적절히 싸우는 방법은 찾아냈으니까.
게다가 그걸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한 차례 더 보완해서 좀 더 효율적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호무련주가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방법이었다.
벽태산처럼 말이다.
“벽태산이 반강시들을 어떻게 쓰러뜨렸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못 알아냈고?”
“예. 본인도 모른다는데 어쩌겠습니까.”
오직 천추신의와 일침괴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두 사람도 알아내지 못한 걸 다른 의원들이 알아낼 수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의선이라도 모시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얘기로군.”
“솔직히 의선을 모시더라도 가능할지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지요.”
의선이나 일침괴나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똑같이 대단한 의원들이다.
거기에 여기는 천추신의까지 있다.
실제로 만나 겪어본 천추신의는 결코 의선이나 일침괴에게 뒤지는 의원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잡아야지.”
총관이 쓴웃음을 지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호무련주가 꼬투리를 잡았다는 눈으로 총관을 바라봤다.
“예전에 벽태산을 영입한다던 호기는 어디 가고 그런 약한 소리를 하나?”
총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이 안 통합니다. 제가 살다 살다 그런 고집불통은 처음 봤습니다.”
총관은 차마 왠지 무서워서 오랫동안 얘기를 할 수 없었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사실 벽태산을 영입하기 위한 시도를 몇 번이나 했다.
오늘 아침에도 시도했었다.
그리고 오늘이 절정이었다. 무서워서 말을 하다가 말고 그냥 돌아왔으니까.
“아무튼 단순한 방법으로는 벽태산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럼 연하린을 만나보는 건 어떤가? 그 아이는 설득할 수 있지 않겠나?”
총관이 또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시도해 봤습니다.”
“그래? 그런데도 안 되던가? 둘이 제법 사이가 좋은 걸로 아는데 말이야.”
“연하린, 그 아이도 보통이 아닙니다. 아예 씨알도 안 먹히더군요.”
호무련주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 연하린조차 설득하지 못했단 말인가?”
“예. 그래서 말인데, 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듯합니다.”
“다른 방법?”
“우리가 따라가는 거지요.”
“따라가? 호위 명목으로 사람을 붙이잔 말인가?”
총관이 고개를 저었다.
“어설픈 수는 안 통합니다. 솔직히 말하고 협조를 부탁하는 거지요. 아주 정중하게 말입니다.”
호무련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게. 생각해보니 우리 형님을 보내면 되겠군. 어차피 가문으로 돌아가 봐야 딱히 할 일도 없으신데 벽태산이랑 친분이나 쌓으라고 하면 되겠어.”
그 말에 총관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 련주님. 그분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뭐?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안 된다니?”
* * *
호무련주는 안쓰러운 눈으로 침상에 누운 백리장천을 내려다봤다.
“형님,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백리장천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냥 누워 계십시오. 몸도 불편하신데······.”
“아닐세. 내 어찌 련주 앞에서 그럴 수 있겠나. 그리고 몸이 많이 불편한 것도 아닐세. 그저······.”
백리장천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 늙은이가 안 그래도 바쁜 련주의 시간을 빼앗았군. 미안하게 되었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걱정은 마시고 얼른 일어나셔야지요.”
백리장천은 호무련주의 어조에서 느껴지는 진심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한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들은 건 그저 정황들뿐인지라,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그저 술을 좀 과하게 마셨을 뿐이네.”
“과음을 하신 거라고요?”
호무련주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백리장천은 고수다. 백리세가에서도 열 손가락에는 못 들어도 스물 안쪽에 들어갈 정도의 고수였다.
한데 그런 고수가 과음 때문에 정신을 잃었다니, 그걸 누가 믿겠는가.
호무련주는 백리장천이 더 말을 하기 꺼려하는 것 같아 일단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형님께서 적의 기습을 막아내신 다음 따로 움직이셨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아······ 그거.”
백리장천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마치 머릿속에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그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자, 호무련주가 질문을 덧붙였다.
“당시 신의와 괴의께서도 함께 하셨고, 벽태산 일행에 연하린, 그 아이까지 동행했다는 얘기까지는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아! 그렇지. 잔당. 잔당을 찾으러 갔네.”
“잔당이요? 그 얘기는 저도 처음 듣는군요.”
호무련주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잔당이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당시 기습을 막아냈을 때, 도망친 자들이 있었다는 보고를 들었으니까.
한데 그들을 백리장천이 벽태산과 함께 뒤쫓았다는 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벽태산이 일부러 얘기를 안 한 건가?’
이 얘기는 벽태산 일행이나 연하린으로부터 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일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호무련주가 약간 찝찝한 눈으로 백리장천을 바라봤다.
벽태산이야 그렇다 치고, 그런 중요한 일이 있었으면 백리장천이라도 자신에게 먼저 와서 얘기를 해줬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고 술이나 마시다니, 그게 말이 되냔 말이다.
“그래서 어찌 되었습니까? 잔당은 다 처리하셨습니까?”
“어······ 글쎄?”
“예?”
“쫓아간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아! 거기 굉장한 고수가 하나 있었는데, 내가 그놈과 싸웠지.”
“그러셨군요. 그래서 그 고수는 어찌 되었습니까?”
“어찌되긴 어찌되었겠나. 당연히 내가 이겼지.”
호무련주가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억지로 삼키고 물었다.
“거기 위치가 어디쯤입니까?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서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위치, 그러니까······ 기억이 나질 않는군.”
호무련주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형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무슨 충격에 의해 기억이 손상된 것 같습니다. 혹시 그 고수와 싸우다 이리 되신 겁니까?”
백리장천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절대 아닐세. 그놈과 싸울 때 좀 버겁기는 했어도 다치거나 하진 않았네. 그건 확실해.”
백리장천으로서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정말로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말이다.
싸웠던 장면, 자신이 그놈의 어깨와 허벅지에 검을 찔러 넣었던 장면, 그리고 결국 심장에 검을 박아 승리했던 장면은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 다음 떠오르는 것이 두 노인네와 술을 마시면서 호형호제를 하던 장면이었다.
‘그리고 나서······.’
갑자기 벽태산의 얼굴이 번쩍 떠올랐다.
백리장천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형님? 형님, 왜 이러십니까?”
호무련주는 백리장천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공포와 분노가 뒤섞이면 이런 표정이 될까?
“벽태산! 벽태산 그놈이야!”
“예? 벽태산이 뭘 어쨌단 말입니까?”
“그놈이 날 두드려 팼다고!”
“예?”
“그것도 밤새도록!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아나? 그냥 때린 것도 아니고 온몸을 칼로 저미듯 고통을 주는데,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었네!”
“온몸을 칼로 저몄다고요?”
“그렇다니까! 안 그러고서 어찌 그런 고통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까······ 직접 보신 건 아니로군요.”
“아니, 그걸 꼭 봐야 아나? 당시 너무 아파서 눈이 떠지질 않았다니까? 하지만 내 몸에 난 흔적만 살피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나!”
호무련주가 정말 안쓰러운 눈으로 백리장천을 바라봤다.
대체 자신의 형님이 어쩌다 이리 되셨단 말인가.
어쩌면 벽태산 일행과 잔당을 처리하러 갔다는 것도 진실이 아닐지 모른다.
아니, 애초에 따로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같이 간 것은 아니라고 들었으니까.
“형님 몸은 아주 멀쩡합니다. 칼자국은 물론이고 흔한 멍 하나 없습니다. 의원들이 세심히 몸을 살폈는데, 외상이고 내상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기력이 좀 쇠하신 것뿐입니다.”
“그 의원들 말을 어찌 믿나! 어차피 벽태산이랑 한통속일 텐데!”
“형님 몸을 살핀 의원들은 우리 호무련 소속 의원들입니다. 신의와 괴의는 돌아갈 준비를 하시느라 형님 몸을 살필 겨를도 없었습니다.”
백리장천이 호무련주의 눈빛에 깃든 감정을 읽어냈다. 그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닐세! 련주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나 미치지 않았네! 나 진짜 정상이라고! 그저 기억이······ 기억이 좀 이상할 뿐이야!”
“물론 전 형님 말씀을 믿습니다. 당연히 그러시겠지요.”
호무련주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백리장천에게 정중히 말했다.
“그럼 보중하십시오. 전 공무가 바빠서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앞으로 시간 날 때마다 종종 뵈러 오겠습니다. 그러니 당분간은 몸 생각만 하십시오.”
“이보게! 련주! 아니라니까! 진짜 아니라고!”
백리장천이 애타게 불러봤지만, 호무련주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하! 이 무슨. 내가 말년에 정말 더러운 꼴을 당하는구나.”
백리장천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얼마나 멍하니 있었을까. 문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어르신, 손님이 오셨습니다.”
“손님?”
“예. 문병을 오셨다고······ 신의와 괴의께서 일행분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백리장천의 머릿속에 천추신의외 일침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 두 사람의 일행일 것이 분명한 벽태산의 모습도 떠올랐다.
화들짝 놀라서 안 된다고. 그냥 돌려보내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문이 활짝 열려 버렸다.
열린 문을 통해 천추신의와 일침괴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이쪽을 보고 있는 벽태산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인상을 찡그렸다.
“안 되겠다. 그냥 돌아가자.”
“예?”
“아니, 공자님 그래도 문병을 왔으면 응당 안에 들어가야······.”
말을 하던 천추신의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어색한 표정으로 백리장천을 보며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럼 보중하시오. 목욕도 좀 하시고.”
탁.
문이 닫혔다.
백리장천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괴성을 내질렀다.
“이건 아니야!”
한동안 호무련을 들썩이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벽태산은 금옥루로 들어섰다.
이제 여길 떠날 테니 남은 걸 정리할 차례였다.
금옥루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이 활짝 열리며 기녀들이 우르르 나와 벽태산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