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
한데 이놈은 달랐다.
그 불순한 영력이 본래의 혼백과 너무 단단하게 달라붙은 나머지 동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증혼마공은 애초에 모든 혼백을 갈아버린 다음 그걸 태워 힘을 뽑아내던 마공이다.
당연히 불순한 영력이 혼백과 동화되었다면 혼백 자체를 뜯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불순한 영력을 떼어내며 혼백의 일부도 함께 뜯어내 버린 것이다.
애초에 그따위로 살아온 놈에게 일말의 동정 따위 가질 필요도 없다.
문제는 그렇게 딸려온 그놈의 순수한 혼백이었다.
벽태산은 그건 깔끔하게 버렸다.
증혼마공으로 태워 정화한 다음, 본래의 순수한 혼백은 그냥 날려 보냈다.
이미 전생에 겪어보지 않았던가. 그 순수한 혼백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더구나 이런 쓰레기 같은 몸에 그 힘을 받아들인다면 몇 시진 살지도 못하고 몸이 터져 버릴 것이다.
벽태산은 손을 들어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내면을 관조했다.
“위험해.”
그렇게 정화해서 날려 보냈음에도 극히 일부의 혼백이 섞여 들어왔다.
사실 섞였다고 하기에도 미안할 정도로 미량이었다.
아니, 그저 가벼운 흔적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받아들인 힘이 굉장히 난폭해졌다.
아마 이런 일이 반복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작용이 쌓이고 쌓여 터져 버릴 것이다.
벽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저장해 놓은 힘을 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끊임없이 정화하고 또 정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남은 흔적을 모조리 태워 버려야 한다.
벽태산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방심했어.”
단영의 혼백을 정화하면서 얻은 힘 때문에 방심했다.
설마 오염이 많이 진행되면 이렇게 혼백과 뒤섞일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그래도 이쯤에서 발견한 게 어디인가.
아마 마공을 익힌 마인을 잡아서 같은 일을 했다면, 그 힘을 저장한 것만으로도 부작용이 발현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방법이 없네.”
기루에 가는 수밖에.
아무래도 이번 생은 몸에서 피 냄새 대신 분 냄새를 풍길 운명인가보다.
* * *
“루, 루주님. 아무래도 좀 나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향화루주는 기척도 내지 않고 방으로 불쑥 들어온 사내를 잠시 노려봤다.
그 역시 향화루주가 보유한 유능한 부하였다. 잡혀간 놈 보다는 좀, 아니, 많이 떨어지지만.
“무슨 일이지?”
“혀, 형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뭐?”
그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향화루주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관계를 부정해도 시원찮을 판에 이렇게 찾아오면 어쩌잔 말인가.
그것도 이런 백주대낮에.
“그걸 누가 봤지?”
“누가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다들 지켜보고 있습니다.”
“뭐?”
향화루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제정신이야?”
“아무래도 그게 아닌 것 같아서 나와 보시라고 한 겁니다.”
향화루주는 사내의 어조에 깃든 불손함에 인상을 썼다.
‘이것들이······ 한 번 해보자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차가운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그놈이 있다는 향화루 입구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문 앞에 서 있는 그놈을 발견한 향화루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아까 그놈이 한 말을 모두 이해했다.
자신이 아끼던 사내가 거기 서 있었다. 한데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어수룩한 자세로 서서 이쪽을 멍하니 보고 있는데, 눈빛이 어찌나 혼탁한지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으어어어.”
입에서 내는 소리는 또 어떠한가. 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저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어찌할까요?”
향화루주 옆에 서 있던 부하가 물었다. 그의 눈빛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형님이자 상관으로 모시던 사람이 저 지경이 되어 돌아왔으니 평정심이 흔들리는 게 당연했다.
“어쩌긴 뭘 어째? 일단 안으로 들여야지.”
그 순간 그가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비틀었다. 뼈가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고개가 모로 꼬였다.
“뭐 하고 있어! 서둘러!”
향화루주의 외침에 부하가 사내를 부축해 안으로 데려갔다. 그를 데려간 곳은 향화루주의 방이었다.
방으로 사내를 데려오자, 향화루주는 그를 가만히 쳐다봤다. 일단 제정신을 조금만이라도 차리게 한 다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뭘 알아야 앞으로 대처를 할 것 아닌가.
“정신 차리게 혈도를 좀 자극해 봐.”
“예? 그러다가 잘못되면 아예 백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향화루주의 얼굴에 짜증이 깃들었다.
“내가 보기엔 지금도 충분히 그런 것 같은데? 시도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어?”
부하는 잠시 고민하다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형님으로 모시던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뇌호혈로 이어지는 혈도 몇 군데를 가볍게 자극했다.
한데 그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사내의 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으어어어어!”
피부가 줄줄 흘러내리고 뼈와 근육이 후두둑 무너졌다.
향화루주는 경악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뭐, 뭐야 이건! 대체 뭐냐고!”
무너져 가던 사내의 눈이 정확히 향화루주와 마주쳤다.
눈이 마주친 향화루주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사라졌다.
그가 자신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었다.
향화루주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벽태산!’
그제야 정신을 차린 향화루주가 손가락을 들어 그를 가리켰다. 그녀의 손가락은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뭐, 뭐 하고 있어! 어서 치우지 않고!”
발작하듯 외친 그녀의 목소리에 그제야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부하가 움직였다.
하지만 굳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향화루주 바로 앞까지 도착한 사내의 몸이 완전히 무너져서 바닥에 흩어졌으니까.
향화루주는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끊임없이 두려움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어떻게 할까요?”
모든 광경을 지켜본 부하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떻게 하긴. 자, 잘 정리해야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부하가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하고 향화루주를 바라봤다.
“다, 단영은 지금 어쩌고 있지?”
“오늘 적룡방주에게 넘기기로 하지 않으셨습니까. 몸단장 중입니다.”
물론 단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적룡방주는 무한에서 제법 위세가 등등한 흑도 방파 중 하나였다.
적룡방주 위적심은 향화루의 단골 중 하나였다.
한데 그가 오늘 아침에 우연히 단영을 본 것이다.
예전에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지만, 오늘 아침의 단영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위적심은 한 눈에 반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반했다기보다는 단영의 순수한 모습을 짓밟고 싶은 욕망이 마구 치솟았다.
그 욕망을 해소하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최근 향화루에 그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기녀가 몇몇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벽태산에 의해 순수함을 되찾은 기녀들이 위적심의 욕망을 계속 자극했고, 단영이 그걸 폭발시킨 것이다.
아마 단영은 위적심에게 가면 망가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향화루주는 그 일을 처리하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랬다.
한데 이제 얘기가 달라졌다.
“취소해.”
“예?”
“취소하라고.”
사내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향화루주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라도 같은 결정을 내렸으리라.
하지만 이렇게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지금 내린 결정을 도저히 지지할 수 없었다.
“적룡방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적룡방주 위적심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향화루를 철저히 무너뜨릴 것이다.
향화루주는 고개를 저었다.
“단영을 금벽장으로 보내. 지금 당장.”
그제야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적심이 가지는 분노의 방향을 향화루에서 금벽상단, 아니, 벽태산에게로 돌리고자 하는 수작이었다.
‘과연······ 위적심이 여기 넘어갈까?’
좀 회의적이긴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외에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결국 사내는 향화루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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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생각이 너무 많아
“공자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
“손님?”
벽태산은 자신에게 손님이 찾아왔다고 말하는 소소를 힐끗 쳐다봤다
소소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굉장히 예쁜 분이던데······.”
“예쁘다고? 너도 모르는 사람이고?”
소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 보는 분이었어요.”
소소의 표정이 어두운 이유는 연하린을 두고 딴 여자를 찾는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벽태산이 연하린과 이어지기를 바라는 아이니까.
벽태산은 소소도 모르는 여자가 자신을 찾아왔다면 자신도 모르는 여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아니면 향화루의 기녀거나. 아, 향화루주인가?’
향화루주라면 한 번쯤 찾아올 만했다. 아까 그놈을 풀어줬으니까.
시키진 않았지만 천경완이 그놈의 뒤를 쫓아가서 그놈이 향화루로 들어가는 걸 확인했다고 했다.
그리고 안쪽에서 한바탕 난리가 났다는 얘기도 했다.
‘바짝 얼어붙었겠군.’
어젯밤의 일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하는데, 아마 그 점이 계속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향화루주라면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반응할 거라 예상했다. 벽태산이 보기에 향화루는 그냥 평범한 기루가 절대 아니었으니까.
“데려와.”
“여, 여기로요?”
벽태산이 소소를 가만히 쳐다보자, 소소는 흠칫 하고는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바로 모셔오겠습니다.”
소소가 밖으로 나가자, 벽태산은 가만히 앉아 증혼마공을 연공했다.
증혼마공은 원래 이렇게 아무데서나 함부로 연공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기운의 성질이 굉장히 난폭하고 다루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 증혼마공의 끝에 도달한 사람이었다.
힘에 대한 조절능력은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데 죽음과 동시에 깨달음을 얻으면서 증혼마공의 불안정성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 결과 지금은 언제 어느 때건, 또 어떤 상황이건 증혼마공을 연공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연공을 하다가 마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기에 지금처럼 막간 시간을 이용해 수련을 하곤 했다.
벽태산이 지금 하는 것은 증혼마공을 통해 아까 얻은 힘을 정화하는 것이었다.
그걸 확실히 정화해서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끊어진 맥을 하나하나 이어붙일 계획이었다.
‘앞으로 몇 명이나 더 먹어야 하려나······.’
워낙 끊어진 맥이 많아서 얼마나 더 이 짓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렇게 열심히 연공을 하는 사이 밖으로 나갔던 소소가 돌아왔다.
손님이라는 사람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온 손님을 본 벽태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단영?”
손님은 단영이었다. 한데 놀라울 정도로 달라졌다.
어제와 달라진 거야 너무나 당연했고, 아까 헤어질 때와 비교해도 확연히 달라졌다.
그동안 향화루에서 벽태산과 밤을 보냈던 다른 기녀들 역시 달라졌지만, 단연코 단영이 최고였다.
단영은 벽태산 앞에 공손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앞으로 공자님을 모시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왜?”
“공자님께서 주신 삶, 공자님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조아린 단영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에 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소소를 쳐다봤다.
그걸 보고 있으니 괜히 웃음이 났다.
‘고작 며칠인데 내가 변하긴 변한 모양이네.’
벽태산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대한 결정을 내렸다.
“방 하나 준비해.”
“예?”
소소가 화들짝 놀라 커다래진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소소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었다.
“넌 어디서 지내지?”
“예? 저, 저요?”
“꼭 두 번 묻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시비들이 머무는 전각에서 지냅니다.”
“그래?”
벽태산이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자신의 전속 시비인지라 그래도 좀 그럴듯한 곳에서 지낼 줄 알았다.
“그럼 너도 옮겨.”
“예?”
“어차피 내 시중드는 거 말고 다른 일은 없지?”
“아, 아뇨. 있는데요? 저 일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