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2)
“그래. 이 근처에 흔적이 많다고 하더라고.”
“무슨 흔적 말입니까?”
“영야······ 그러니까 수적들 말이야.”
천추신의의 눈이 커다래졌다.
“벌써 수적들 흔적을 찾은 겁니까? 이상하다고 한 지 얼마나 됐다고. 확실히 하오문이 빠릿빠릿하긴 하군요.”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하오문을 아래에 둔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리고 백화루주를 좀 더 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기 하오문주가 되어 제대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말이다.
끝
“저희는 저희 스스로 지키겠습니다. 절대 방해 안 할 테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두 의원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못미더운 눈으로 그 두 사람을 쳐다봤다.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솔직히 너희들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호무련 총관한테 받은 부탁도 있는데.”
“저희 천약방에서는 무공이 일정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외부 활동이 허락됩니다. 수적들 정도야 눈 감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천추신의가 피식 웃었다.
“저러다가 눈물, 콧물, 오줌 가리지 않고 질질 흘려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래도 벽태산이 함께 가니, 반강시와 싸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된 셈이었다.
하지만 후기지수를 습격했던 놈들의 잔당을 처리하러 갈 때처럼 벽태산이 따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뭐, 알아서 해라.”
천추신의의 잔소리는 거기까지였다. 이제부터는 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일행을 안내하는 사람은 근처에서 활동하는 하오문도였다.
“용케 수적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앞장서서 안내하던 하오문도는 머리를 한 번 긁적이고는 말을 이었다.
“제가 수적 출신입니다. 거기 아는 녀석들이 많은데, 이번에 그 중 몇 놈이 도망쳐왔습니다.”
벽태산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놈들도 운이 좋았지요. 보아하니 이동 중에 도망친 것 같은데, 목적지에 도착했다면 아마 절대 도망치지 못했을 겁니다.”
하오문도의 말에 근처에 있던 천추신의가 말했다.
“좀 허술한 모양입니다. 아무래도 큰 기대는 안 하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벽태산의 생각도 그랬다. 고작 몇 명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쉽게 도망쳐서 행적을 유출한 걸 보면 치밀한 놈들은 아닐 테니까.
그러자 하오문도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아닙니다. 그놈들 진짜 무서운 놈들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운이 좋았다고. 눈치 빠른 놈들이라서 간신히 빠져 나온 거지, 아니었다면 어림도 없었을 겁니다.”
벽태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나머지 일행도 의아한 표정으로 멈추고는 벽태산을 바라봤다.
표정이 달라진 건 천추신의와 화옥 둘뿐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하오문도의 물음에 벽태산이 화옥을 쳐다봤다.
화옥이 굉장히 민망하면서도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벽태산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더 확실히 했어야 하는데.”
“네가 하오문도 아니고 나한테 사과할 필요 없다.”
그건 그렇다. 이제 화옥은 더 이상 하오문이 아니라 벽태산의 시비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하오문과의 끈을 이어두고 있으며, 그들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으니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화옥이 하오문도에게 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꽈득!
화옥의 손이 하오문도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커억!”
하오문도가 두 손으로 화옥의 손을 잡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이러십니까. 커어억!”
화옥은 무감정하게 말했다.
“너야말로 왜 배신했지?”
“배, 배신이라니요! 전 절대 그런 적 없습니다!”
하오문도의 눈빛과 어조, 표정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적어도 지금 하는 저 말은 진심이었다.
그걸 보고 있던 천추신의가 말했다.
“그럼 처음부터 하오문 편이 아니었다는 말이로구나. 애초에 저쪽 사람이었어.”
“무, 무슨······!”
하오문도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목을 쥔 화옥의 손에 더 큰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는 고통스러운 얼굴로 눈을 까뒤집었다.
“끄어어어!”
그제야 화옥이 손을 털었다.
털썩 쓰러진 하오문도에게 모두의 시선이 쏟아졌다.
화옥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적들이 함정을 준비한 것 같습니다.”
“함정?”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화옥이 복잡한 시선으로 하오문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놈들이 우리 하오문에도 이렇게 세작을 심어뒀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 녀석, 하오문도가 된 지 벌써 오 년이 넘는 놈인데······.”
바닥에 쓰러져 한동안 기침을 하다가 간신히 진정한 하오문도가 당황한 눈으로 화옥을 올려다봤다.
“저, 전. 전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그런 하오문도에게 벽태산이 성큼 다가갔다.
하오문도가 화들짝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네가 세작이든 아니든 별로 관심 없다. 그리고 이 앞에 함정이 있든 없든 별로 상관도 없고.”
“예? 그, 그게 무슨······.”
순간, 벽태산의 몸에서 흘러나오던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하오문도는 온몸을 덜덜 떨었다. 그 혼자서만 그러는 게 아니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갑자기 오싹해져서 깜짝 놀랐다.
“중요한 건, 날 노리고 함정을 판 거라면, 거기에 반강시가 없다는 사실이지.”
벽태산의 차가운 시선이 하오문도에게 향했다.
“감히 내 영약을 빼돌려?”
“제, 제가 언제······.”
벽태산이 하오문도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하오문도는 왠지 숨이 콱 막혔다. 사람들이 흔히 하던, 숨 막힐 것 같은 공포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혼백을 갈아서 백치로 만들어 버리기 전에 아는 걸 싹 불어라.”
하오문도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자신이 아는 모든 걸 줄줄 읊기 시작했다.
벽태산은 그가 하는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천추신의와 화옥을 쳐다봤다.
두 사람이 얼른 하오문도가 읊는 내용을 들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벽태산은 하오문도가 안내하려던 방향을 가만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함정이라······ 오랜만이네.”
* * *
“그러니까 그 무서운 놈들이 일부러 놔준 것이 아니면 수적들이 도망칠 수 없었을 거란 말이죠?”
연하린의 물음에 화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아마 도망쳤다는 수적들이 있다는 것도 그놈의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았다.
“거기까지 파악했으면 이상하다는 걸 알고 그 부분을 강조해서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별 거 아닌 것처럼 우리를 그리로 데려가려고 했고요?”
“그 외에도 몇 가지 정황이 더 있습니다. 배신자들이 누구인지 대충 윤곽이 그려지는군요.”
화옥의 눈이 차갑게 번득였다.
아마 배신자들은 결코 편안하게 죽지 못하리라.
“제가 궁금한 건, 그걸 다 아는데 왜 굳이 그 함정으로 이렇게 들어가고 있느냐는 거예요.”
연하린의 물음에 화옥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건 그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가장 앞에서 느긋하게 걸어가는 벽태산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었다.
“직접 물어보시죠.”
화옥의 말에 연하린이 흠칫했다.
“그냥······ 기다리다보면 알겠죠, 뭐.”
솔직히 지금은 연하린도 벽태산에게 함부로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왠지 다가가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벽태산을 온통 휘감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아까 배신한 하오문도가 말했던 장소에 거의 도착했다.
그런데도 벽태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누군가 벽태산에게 물어야 한다.
모두의 시선이 천추신의에게 모였다.
천추신의는 그 시선을 받고는 화들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마치 정말 내가 하느냐고 모두에게 묻는 듯한 행동이었다.
다들 시선을 외면했다.
천추신의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더니 결국 체념한 표정으로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저······ 공자님.”
벽태산이 고개를 슥 돌려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천추신의는 하마터면 심장이 뚝 떨어질 뻔했다.
“아오, 깜짝이야. 공자님, 무섭게 왜 그런 눈으로 절 보십니까.”
“왜?”
벽태산의 간결한 질문에 천추신의가 얼른 고개를 돌려 일침괴를 바라봤다.
“형님이 공자님께 드릴 말씀이 있으시다는데요.”
예전에도 똑같이 당했던 일침괴가 입을 떡 벌리고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설마 또 이럴 줄은 몰랐다. 그것도 하필이면 지금.
그때야 벽태산이 왠지 기분이 좋아서 잘 넘어갔지만, 오늘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벽태산이 또 슥 고개를 돌려 일침괴를 쳐다봤다.
일침괴도 벽태산과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뚝 떨어지는 듯한 경험을 했다.
“그, 저. 그러니까 우리는 이제 어쩝니까?”
“뭐?”
벽태산이 걸음을 멈췄다.
일침괴는 사색이 된 얼굴로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시발 잘못 건드렸다.’
벽태산이 서늘한 시선으로 일행을 슥 훑어봤다.
다들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 보니 이것들은 그것들이 아니었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벽태산이 다시 한 번 일행을 슥 둘러봤다.
오랜만에 함정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흥이 올라 옛날 생각만 했다.
예전에는 자신이 홀로 함정에 들어가면 부하들은 따로 움직여 함정을 구성한 자들의 뒤를 쳤다.
함정에서 가장 오랫동안 잘 버틸 수 있고, 때로는 홀로 함정을 모조리 박살 낼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이었기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때는 벽태산이 함정으로 돌진하면 부하들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알아서 적의 뒤를 쳤다.
하지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그때 자신을 따르던 부하들이 아니다.
“난 정면으로 간다. 그러니 너희는 적의 뒤를 쳐라.”
그 말에 다들 깜짝 놀랐다.
“공자님!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가장 먼저 외친 사람은 천경완이었다. 천경완은 아직까지 자신이 벽태산의 호위무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는 벽태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만 한다.
벽태산이 천경완을 가만히 쳐다봤다.
“위험해? 누가?”
“그야 공자님이······.”
천경완은 말을 채 끝맺지 못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왠지 벽태산이 위험에 처하는 상황 자체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벽태산은 담담히, 하지만 얼음장처럼 차갑게 말했다.
“내가 위험할 거 같으면 너희가 더 열심히 적의 뒤를 치면 되잖아.”
다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적의 뒤를 제대로 칠 수만 있다면 큰 혼란을 줄 테고, 그건 결과적으로 벽태산의 안전으로 이어질 테니까.
벽태산은 일행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그의 시선이 소소와 단영, 채월에게 이르렀을 때 딱 멈췄다.
눈치를 챈 소소가 얼른 소리쳤다.
“저도 갈 거예요! 할 수 있어요!”
“저도 가겠습니다.”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단영과 채월도 결연하게 말했다.
벽태산은 하고자 하는 사람을 말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너희는 셋이 함께 다녀라. 절대 따로 떨어지지 말고.”
같은 무공을 익힌 세 사람인데다가 셋 사이의 궁합이 좋아서 아마 상당한 상승효과가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말한 벽태산이 다시 몸을 돌리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남은 사람들은 잠시 모여서 계획을 세웠다.
벽태산이 홀로 함정으로 들어가는 상황인데, 대충 어설프게 적의 뒤를 칠 수는 없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는 못해도 주먹구구식으로 싸워선 안 된다.
그들은 빠르게 의견을 나누고 역할을 분담한 다음, 서둘러 이동했다.
* * *
“벽태산이 오고 있습니다.”
정찰을 위해 사방에 흩어놨던 무사 중 한 명이 달려와 보고했다.
“다른 놈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혼자일 리가 있나. 딴 놈들은 분명히 우리 뒤를 치려고 수작을 부릴 거다.”
“하면 어떻게 할까요?”
“정찰조를 부르지 말고 그대로 두면 된다. 어디로 오든 우린 중심에서 병력 지원만 해주면 되니까.”
“예. 일단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무사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가자, 사내, 부두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쯧, 이럴 줄 알았으면 강시들을 데리고 오는 건데.”
벽태산이 저렇게 따로 떨어져서 온다면 다른 쪽으로 강시들을 보내면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
부두철은 근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사내를 바라봤다.
“어르신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세 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그래, 우리가 뭘 하면 된다고?”
“벽태산을 사로잡으시면 됩니다.”
“그놈 좀 한다고 했지?”
“아직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법 강하다고 합니다.”
아직 벽태산이 광동사괴와 싸워서 물리친 정보는 이쪽에서도 얻지 못했다.
반강시의 잔당을 소탕한 것은 백리장천을 중심으로 해서 이뤄진 걸로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이 얻은 정보도 그런 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