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5)
“이걸로 한 방만 맞으면 안목이 아주 그냥 뻥 뚫릴 거다.”
“또 살벌한 농담 하신다. 그러니까 수적 출신이라고 의심 받는 거 아뇨.”
일침괴가 주먹을 부르르 떨자, 천추신의가 얼른 벽태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자님, 슬슬 가실까요? 이번에도 정면으로 들어가시고 저희가 뒤를 칩니까?”
벽태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작 저 정도에 뒤는 무슨. 가자.”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며 수채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수채로부터 흘러나오는 기의 흐름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감각이 훨씬 날카로워졌다.
지난 싸움을 통해 예전의 감각이 약간 올라왔다.
하지만 완벽히 예전의 감각을 되찾기에는 싸움이 너무 싱거웠다.
좀 더 치열한 싸움이 필요하다.
쭉정이 같은 적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도 피를 보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강력한 적을 마주하고 싶었다.
그 강력한 적이 저 수채에는 없다.
하지만 벽태산의 목마름을 약간이나마 적셔줄 수 있는 놈이 하나 있었다.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피가 끓어올랐다.
끝
벽태산은 쭉쭉 걸어가 곧장 수채로 진입했다.
수채에는 수적들이 잔뜩 모여 있었는데, 설마 누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지 다들 여기저기 흩어져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최소한 수채 입구에라도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벽태산 일행을 맞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벽태산의 뒤를 이어 나머지 일행이 우르르 수채로 들어갔다.
그제야 수적들 중 몇몇이 벽태산 일행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놈들은 뭐야?”
몇몇 수적들이 벽태산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다른 수적들도 술을 마시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무기를 찾았다.
벽태산은 그걸 보며 대수롭지 않게 일행에게 말했다.
“수적들은 너희가 맡아라. 난 처리할 놈이 하나 있으니까.”
“예. 맡겨 주십시오. 보아하니 별 것도 아닌 놈들 같으니.”
수적들의 수준은 많이 떨어졌다.
특히 아까 상대하던 자들에 비하면 정말 별 거 아니었다.
아까 그놈들은 잠력을 터트려 평소보다 몇 배나 힘도 세고 빨랐으니까.
벽태산 일행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수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천경완과 유서연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연하린 역시 눈에 독기를 품고 수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셋이 가장 큰 활약을 했다.
천추신의는 두 명의 의원들을 돌보느라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일침괴는 벽태산의 시비들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었다.
당연히 벽태산에게 달려드는 수적들도 있었다. 수적의 수가 워낙 많았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일행이 워낙 열심히 수적들과 싸우고 있었기에 벽태산에게 달려든 수적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 몇 안 되는 수적들은 벽태산이 가볍게 휘두른 손에 다들 나가 떨어졌고.
벽태산은 수채 안쪽으로 쭉쭉 들어갔다.
안쪽 건물에서 수적들이 우르르 달려 나왔다.
밖에 있는 놈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안에 이렇게 많은 수적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다.
벽태산은 그 수적들과 일일이 싸울 생각이 없었다.
잔챙이는 나머지 일행에게 맡겨두면 된다. 아마 제법 괜찮은 실전 훈련이 될 것이다.
물론 천경완이나 유서연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벽태산은 우르르 몰려오는 수적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순식간에 수적들 앞에 도착한 벽태산은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빠져나가듯 수적들 틈을 파고들었다.
수적들 앞에 도착한다 싶은 순간 어느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렸을 정도로 빨랐다.
벽태산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수적들은 크게 당황했다.
원래라면 다시 돌아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수적들은 벽태산의 일행들이 날뛰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함성을 지르며.
“여자들만 남기고 싹 죽여라!”
“어르신께서 원하신다!”
어르신이라는 외침이 울린 순간부터 수적들의 공세가 훨씬 과격해졌다.
그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싸움이 더욱 치열하고 위험해졌다.
* * *
건물 안으로 들어간 벽태산은 더 이상 서두르지 않았다.
수적들이 한 놈도 안 남았으니 이제 느긋하게 원하는 걸 하면 된다.
삼 층 건물이었는데, 대나무를 성글게 엮어서 대충 만든 건물이었기에 일 층 한가운데에서도 삼 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이 건물에는 딱 한 놈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한 놈이 삼 층에서 수적들과 벽태산 일행의 싸움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놈은 벽태산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무시하기라도 하듯이.
벽태산은 피식 웃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삼 층에 도착할 때까지도 그놈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바깥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의 긴장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벽태산을 굉장히 의식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바깥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바깥의 싸움은 벽태산 일행이 수적들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양상이었다.
마치 양떼 속에 뛰어든 늑대무리 같았다.
만일 이곳의 수적들도 잠력을 터트렸다면 절대 저러지 못했을 것이다.
싸움을 지켜보는 사내, 곡양두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잠력을 터트리면 수명이 극도로 짧아지기에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따로 인원을 뽑아서 써먹어야 했다.
그래서 이런 식의 습격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곡양두는 천천히 돌아서서 벽태산을 바라봤다.
“네가 벽태산이겠지?”
“넌?”
“난 곡양두라고 한다. 혹시 내 이름 들어본 적 있느냐?”
“들어봤어야 하는 건가?”
곡양두가 피식 웃었다.
“뭐, 꼭 그럴 필요는 없지. 내가 십대고수나 거대 문파의 주인쯤 되는 유명인도 아니고.”
벽태산은 눈에 이채를 띠며 곡양두를 쳐다봤다.
지금 하는 말투를 들어보면, 십대고수나 거대 문파의 주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철저히 갈무리하긴 했지만, 은은히 풍기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뭐······ 우습게 볼 만하네.”
저 정도면 십대고수나 거대 문파의 수장 정도에 겁먹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리고 저 정도라면 무림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을 것이다.
한데 이름이 너무 생소했다.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름 말고는 없나?”
“별호 같은 건 없다.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나이는 기껏해야 마흔이 좀 넘어 보였다.
“너 정도 되면 조용히 숨어 지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특이하군.”
곡양두는 대답하지 않았다.
벽태산도 굳이 그 답을 듣고자 한 말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너희들 정체나 좀 알자. 대체 뭐 하는 것들이냐?”
“무명.”
“무명? 이름이 없다는 뜻이냐? 네가 모르는 건 아니고?”
곡양두가 고개를 저었다.
“이름을 지을 필요가 없어서 무명이라고 부를 뿐이다.”
“필요가 없다고?”
벽태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은 그 조직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한데 이름이 필요 없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아무튼 넌 그나마 아무것도 모른 채 시키는 일만 하는 개들이랑은 다르다는 거구나?”
곡양두가 벽태산을 무심하게 바라봤다.
“아니, 난 개새끼가 맞다. 애초에 그렇게 키워졌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대신 아는 게 많은 개새끼겠지.”
“어차피 들을 수 없을 거다.”
곡양두는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을 담담히 바라봤다. 그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벽태산을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쭉 훑었다.
벽태산의 실력을 가늠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벽태산을 살펴보던 곡양두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군. 넌 이상한 놈이야.”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이상해.”
곡양두가 벽태산을 향해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서 강렬한 투기가 훅 뿜어져 나갔다.
마치 파도가 치듯 벽태산을 향해 밀려간 투기가 벽태산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곡양두의 표정이 굳었다.
“기운을 흘려보냈는데도 가늠을 할 수가 없군.”
이건 둘 중 하나다. 상대의 실력이 너무 높아서 자신이 감히 가늠할 수 없거나 감추는 데 특화된 능력을 가졌거나.
예를 들어 살수 조직에서 키우는 자객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곡양두가 보기에 벽태산은 좀 이상했다.
기척이나 실력을 감추는 능력이 뛰어난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여기까지 올 때, 대놓고 기세와 실력을 보여주면서 왔다.
그렇다면 실력이 너무 높아서 수준을 가늠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그게 그런 거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 곡양두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와 마주한 경험이 많았다.
한데 벽태산은 어딘가 그런 사람들과는 달랐다.
‘강한 듯하면서도 아닌 듯하니, 참으로 묘하구나.’
곡양두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벽태산이 손을 까딱였다.
“얼른 끝내자. 안 그래도 할 일 많다.”
영약도 먹어야 하고 말이다.
곡양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허리춤에 매단 검을 뽑았다.
스아악!
검을 뽑음과 동시에 크게 휘둘렀는데, 날카로운 검기가 초승달 모양의 궤적을 그리며 촤악 펼쳐졌다.
벽태산은 검기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몸을 뒤로 한껏 젖혔다.
검기는 정확히 목이 있던 자리를 훑고 지나갔다.
곡양두는 검기를 날리자마자 벽태산이 저렇게 피할 거라 예상하고서는 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벽태산의 하체를 쓸듯이 검을 휘둘렀다.
저 자세에서 가장 피하기 어려운 곳을 공격한 것이다.
그 순간 벽태산의 발이 허공에 붕 떴다.
곡양두의 눈이 커다래졌고, 그의 검이 벽태산의 무릎이 있던 곳을 가르고 지나갔다.
상체를 뒤로 젖힌 상태에서 그냥 발을 들어버린 벽태산은 마치 허공에 누운 듯한 자세가 되었다.
보통은 거기서 떨어져 바닥을 구르겠지만, 벽태산은 몸을 비틀어 균형을 잡으며 가볍게 착지했다.
그와 동시에 몸을 비틀었던 힘을 이용해 발을 휘둘렀다.
후웅!
벽태산의 발이 곡양두의 관자놀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곡양두가 검을 휘둘렀던 불안정한 자세임에도 고개를 비틀어 벽태산의 발을 피한 것이다.
다만 완벽하게 피하지 못해 살짝 스친 것이고.
곡양두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퍽 터졌다.
하지만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몸을 빙글 돌리며 품에 숨겨두었던 비도를 날렸다.
슉!
비도는 정확히 벽태산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마치 계산이라도 한 것 같은 수법이었다.
강력하고 은밀한 기운이 비도에 담겨 있었다.
던진 순간 힘을 실은 것이 아니라 싸움을 시작한 순간부터 비도에 기운을 담기 시작했다.
싸우기 전에 기운을 움직이면 들킬까봐 일부러 싸울 때도 검기 같은 강한 기운을 줄기줄기 뿜어낸 것이다.
그리고 비도를 던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으로 강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곡양두는 비도를 던진 순간 확신했다. 성공했다고.
그동안 다져왔던 무수한 경험에 의한 감각이었다. 그리고 이 감각은 한 번도 그를 배신한 적이 없었다.
퍽!
비도가 벽에 꽂혔다.
곡양두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벽태산은 어느새 그의 코앞에 서 있었다.
비도는 벽태산의 잔상을 뚫고 지나가 벽에 꽂혔고 말이다.
‘이형환위?’
곡양두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수만 번의 고련을 통해 몸에 새긴 반응이었다.
쉬익!
곡양두의 검이 벽태산이 있던 공간을 뭉개고 지나갔다.
벽태산은 고작 한 걸음 다가가는 것만으로 곡양두의 공격을 무위로 만들었다.
곡양두에게 바짝 붙은 벽태산이 손바닥을 살짝 갖다 댔다.
꽝!
거친 폭음과 함께 곡양두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퍽! 쿠당탕탕!
벽에 부딪혔다가 꼴사납게 나동그라진 곡양두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곡양두가 일어나는 사이 벽태산이 성큼성큼 걸어가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쩌억!
뺨을 맞은 곡양두가 허공에서 반 바퀴 회전하더니 바닥에 머리를 콱 찍고 정신을 잃었다.
벽태산은 잠시 호흡을 골랐다.
그리고는 더 없이 상쾌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이제 몸이 좀 풀리는군.”
곡양두는 제법 강한 상대였다. 그래서 예전의 전투감각이 좀 더 살아났다.
사실 한창 때의 천마는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다.
증혼마공을 통해 어마어마한 힘을 쌓았으니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싸울 이유가 없었다.
그저 힘을 풀어놓기만 해도 주변이 초토화 되었다.
그러니 이런 식의 싸움을 한 것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오래 전이었다.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이거 정말 재미있네.”
벽태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이제 반강시들을 보러 갈 시간이 되었다.
* * *
벽태산은 쓰러진 곡양두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갔다.
수적들과의 싸움도 막바지였다.
이곳의 수적들은 함정을 팠던 수적들과는 좀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