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6)
아까 함정에서 싸웠던 수적들은 잠력을 터트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명이라는 조직에서 다른 수작을 부린 건지는 몰라도 끝까지 달려들었다.
정찰조가 싸우다 도망친 것도 다시 함정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 위함이었지 거기서 몸을 빼고자 함이 아니었다.
그래서 함정의 수적들은 전부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수적들은 그렇지 않았다.
상황이 불리해지니 도망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물론 이들은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함정이 있는 곳에 쓰러져 있는 수적들을 정리한 하오문이, 그곳의 일이 끝나면 이곳으로 올 테니까.
여기서 도망친 쭉정이 같은 수적들을 하오문이 하나라도 놓칠 일은 없었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지 생각보다 싸움이 일찍 끝났다.
일행은 상황이 마무리 되자마자 벽태산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벽태산은 일단 일행을 슥 둘러보며 다친 사람이 없는지부터 확인했다.
확인을 하면서도 벽태산은 속으로는 좀 어이가 없었다.
‘이 무슨. 내가 언제부터 이런 걸 확인했다고.’
천마이던 시절에, 그리고 천마가 되기 전에도 위험한 싸움을 무수히 했다.
혼자서 한 싸움도 제법 되지만, 부하들을 이끌고 싸운 경험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싸움에는 언제나 부상이나 죽음이 따라오는 법이다.
하지만 천마이던 시절에는 이렇게 싸움이 끝나자마자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예 관심이 없었다.
천마가 관심을 두는 건 천마신교로 복귀한 이후였다.
문제가 생긴 부하들을 돌봐주는 건 그때부터였고, 그조차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시만 가볍게 내릴 뿐이었다.
한데 지금은 일행이 돌아오자마자 그들의 안위부터 살피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음?”
벽태산은 천경완의 어깨에 난 상처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시선을 좀 돌리니 유서연도 똑같은 곳에 비슷한 크기의 상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은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대충 짐작이 가능했다. 아마 저 두 사람은 다른 동료가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굉장히 무리했을 것이다.
벽태산이 천추신의를 보며 말했다.
“치료부터 해.”
천추신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벽태산은 그런 천추신의 앞에 곡양두를 휙 던졌다.
“그놈도 살리고.”
벽태산이 몸을 휙 돌려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일행들이 우르르 따라붙으려 했다.
벽태산은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서 일행을 잠시 보더니 근처 바위에 걸터앉았다.
“좀 쉬었다가 가자. 반강시가 어디 도망갈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렇게 말한 벽태산이 턱짓을 하자, 천추신의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럼 푹 쉬고 계십쇼. 그 사이 제가 아주 성심성의껏 치료를 하겠습니다.”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천경완과 유서연을 바라봤다.
두 사람의 표정은 아주 창백했다.
오늘 이후 수련 강도가 훨씬 올라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두 사람과 눈이 마주친 벽태산이 고개를 다른 곳으로 휙 돌리며 말을 툭 던졌다.
“뭐, 잘했다.”
두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끝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작정하고 나서니, 어깨에 난 상처쯤이야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었다.
곡양두의 상태는 좀 더 심각했지만, 숨을 붙여놓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다만 무공을 되살리는 건 불가능했다.
워낙 벽태산에게 호되게 당했기에 내부의 기맥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단전에도 크게 금이 갔다.
지금도 끊임없이 기운이 새고 있었다.
치료는 했지만 수명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아마 아무리 정양을 잘 해도 몇 년이면 죽을 것이다.
더 오래 살리고 싶으면 천추신의나 일침괴 정도 되는 의원이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관리와 치료를 해주어야만 한다.
그 보고를 다 들은 벽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살리려는 이유는 곡양두가 알고 있을 만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함이지, 그를 고쳐서 뭔가에 써먹으려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치료도 하고 충분히 쉬기도 한 일행은 벽태산을 따라 반강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사실 반강시가 어디 있는지 아직 찾아보지 않았기에 이제부터 수색을 해야 한다.
아니, 수채를 샅샅이 뒤져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공자님, 흩어져서 찾아볼까요?”
화옥의 물음에 벽태산이 고개를 저었다.
“됐다.”
“예? 수채가 제법 넓습니다. 이렇게 몰려다니는 것보다는 흩어지는 편이 나을 텐데요?”
“어디 있는지 아니까 그럴 필요 없다.”
“예? 아신다고요?”
화옥은 반사적으로 곡양두를 쳐다봤다.
곡양두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천경완의 어깨에 늘어져 있었다.
화옥은, 벽태산이 곡양두와 싸우면서 반강시의 위치를 들은 게 아닐까 짐작한 것이다.
물론 그건 아니었다.
벽태산은 수채에 들어온 순간부터 반강시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반강시가 가지는 그 특유의 느낌이 워낙 강했으니까.
다들 묵묵히 벽태산을 따라갔다.
벽태산은 수채에 있는 건물로 들어가더니 바닥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뜯어라.”
벽태산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천경완과 유서연이 달려들었다.
천경완은 곡양두를 근처에 내려놓고 얼른 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유서연도 그에 질 세라 열심히 바닥을 뜯어냈고.
바닥은 촘촘한 대나무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걸 뜯어내고 나니 아래쪽에 거대한 공간이 드러났다.
“호오. 지하가 있었군요? 그저 물 위에 세운 건물인 줄 알았더니 아닌 모양입니다.”
이곳 수채는 반은 뭍에, 나머지 반은 물에 걸쳐 있었다.
그 중 건물은 물 위에 있었는데, 당연히 그 아래에 물이 흐를 거라고 여긴 것이다.
한데 막상 바닥을 뜯어내고 나니 그 아래에 돌로 벽을 세운 거대한 공간이 있었으니 놀라웠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무수한 반강시가 꼿꼿이 서 있었다.
반강시는 미동도 않고 촘촘한 간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는데, 바닥이 뜯어져 나가 위로 시야가 열리니 일제히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봤다.
섬뜩했다.
“시발, 깜짝이야.”
일침괴가 화들짝 놀라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걸 본 천추신의가 낄낄 웃었다.
“하이고, 뭔 겁이 그렇게 많은 거요?”
“그럼 갑자기 동시에 날 보는데 안 놀라냐?”
천추신의가 가슴을 쫙 펴며 손바닥으로 탁탁 두드렸다.
“안 놀랐잖소. 큭큭큭.”
일침괴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천추신의를 툭 밀었다.
“으허헉!”
천추신의가 아래로 떨어지려는 순간, 반강시들의 시선이 일제히 천추신의에게로 모였다.
막 떨어지려던 천추신의의 뒷덜미를 일침괴가 꽉 잡았다.
발만 끝에 살짝 디딘 채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된 천추신의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막 뭐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반강시들이 일제히 몸을 약간 꿈틀거렸다.
“으아악!”
천추신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일침괴가 얼른 천추신의를 잡아당겼다.
반강시들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일침괴는 바닥에 멍하니 주저앉은 천추신의를 보며 낄낄댔다.
“뭔 겁이 그렇게 많으냐? 그리고 무서워도 그렇지 그 경박한 비명은 또 뭐냐? 체통도 없이.”
천추신의가 뿔 난 표정으로 고개를 휙 돌려 일침괴를 노려봤다.
“정말 이러기요?”
“내가 뭘?”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잖소!”
“떨어지긴 왜 떨어져? 내가 잘 잡았잖아.”
천추신의가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그 주먹은 뭐냐? 잘 하면 한 대 치겠다?”
“치긴 누가 친다는 거요? 그냥 힘내려고 쥐었을 뿐이오.”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가 히죽 웃었다.
“치고 싶으면 쳐라. 뒷감당 할 수 있으면 말이지.”
“어디 두고 봅시다.”
“허이구 무서워라.”
둘이 그러고 있을 때, 벽태산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움찔 하더니 얼른 뒤로 살짝 물러났다.
벽태산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천추신의나 일침괴가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와는 달리 반강시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도 다가와 아래를 내려다봤다.
“수가 정말 많군요. 저게 이들이 가진 반강시 전부일까요?”
화옥의 말에 옆에 나란히 있던 연하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게요. 삼백이 넘네요.”
벽태산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저 중에 일반인으로 만든 반강시는 이백오십이었고, 나머지는 무공을 익힌 반강시였다.
“진수성찬이로군.”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뛰어내렸다.
그러자 반강시들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후두둑 쓰러졌다.
벽태산은 여전히 서 있는 반강시들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러자 가까워진 반강시들이 또 후두둑 쓰러졌다.
주위가 양질의 영력으로 가득 찼다.
반강시들이 있는 곳은, 말하자면 아래로 깊이 파 놓은 구덩이와 같았다.
그래서 영력이 쉽게 흩어지지 않고 농도만 점점 짙어졌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전부 흩어지겠지만 예전 다른 곳에서 반강시를 쓰러뜨렸을 때보다 훨씬 오랫동안 이곳에 고일 것이다.
벽태산은 모든 반강시를 쓰러뜨린 다음 한가운데에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지난번에는 그저 흘러가는 영력 중 맞는 것만 몸으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벽태산은 영력을 몸으로 끌어들였다.
강하진 않지만 적당한 흡력이 발생하면서 영력이 회오리치듯 회전하며 벽태산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벽태산은 그것을 다 받아들이지 않고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뒀다.
그러자 몸에 딱 맞는 영력만 내부에 쌓이고 나머지는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수십 회 영력을 회전시키고 나니 내부에 더 이상 벽태산과 맞는 영력이 남지 않았다.
벽태산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
“압도적이군.”
오늘의 영약은 압도적이었다.
양도 양이었지만 질이 끝내줬다.
그동안 흡수했던 반강시의 영력을 다 합한 것보다 몇 배나 많은 영력을 방금 얻었다.
또한 질도 그때보다 훨씬 좋았다.
벽태산은 받아들인 영력을 끊어지거나 손상된 기맥에 쌓았다.
이제 이 질 좋은 영력이 알아서 기맥을 자연스럽게 치료할 것이다.
주위를 슥 둘러보니 사방에 쓰러진 반강시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끝부분에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사실 단숨에 뛰어오를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도, 또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계단을 오른 벽태산을 일행이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봤다.
특히 천약방에서 나온 두 의원의 눈빛은 지나칠 정도로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이었다.
두 의원이 홀린 듯이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저······.”
의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벽태산에게 말했다.
“공자님을 진맥해 보고 싶습니다.”
벽태산이 방금 말한 그 의원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진맥?”
의원은 신이 나서 얼른 말을 쏟아냈다.
“방금 보여주신 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분명히 공자님의 체질과 관계되어 있을 것 같은데, 그걸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맥이 필요합니다.”
“진맥을 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고?”
그렇게 묻는 벽태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가 있었다.
의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체질에 대해서라면 저희 천약방이 최고입니다. 제대로 된 약을 지으려면 체질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주 오랫동안 연구해 왔습니다.”
의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당연히 허락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말이다.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벽태산의 긍정적인 말에 의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그게 너희는 아니지.”
“예?”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바로 근처에 서 있는 천추신의와 일침괴를 쳐다봤다.
“저 둘보다 너희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자신하나?”
“아······!”
그제야 두 의원은 자신들이 너무 앞서갔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엄청난 광경을 봤는데 어찌 그냥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벽태산은 그런 생각을 하는 의원들에게 말했다.
“날 진맥하겠다고? 감히 너희가?”
의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약왕이라면 모를까.”
이어진 벽태산의 말에 의원들의 표정이 확 굳었다.
두 의원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 말씀은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두 의원은 그 말을 끝으로 슬그머니 물러갔다.
벽태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천추신의를 쳐다봤다.
“저것들 왜 저래?”
천추신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공자님께서 알고 하신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당대 약왕은 여자입니다.”
“음?”
“그것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한 여자이지요. 무림삼화 중 한 명이니까요.”
“몰랐던 사실이로군. 한데 그게 뭐.”
약왕이 여자인 것과 저 의원들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노리는 사람이 많을 거 아닙니까. 진맥을 핑계로 어떻게든 접촉해 보려는 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