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8)
* * *
수채를 정리하고 다시 배에 탈 때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다.
확실히 감춰둔 무언가를 찾아내는 건 하오문이 최고였다.
하오문은 굉장히 교묘하게 감춰진 보물들까지 모조리 찾아냈다.
그 와중에 따로 보관한 단약을 추가로 찾아냈다.
아무튼 그렇게 찾아낸 모든 재화는 일단 하오문이 보관하고 나중에 따로 벽태산에게 전달해 주기로 했다.
벽태산 일행이 탄 배에는 약만 실었다.
천추신의와 일침괴는 배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선실에 틀어박혀서 약을 연구했다.
벽태산은 가끔 두 사람이 있는 곳에 찾아가 들여다봤는데, 그때마다 감탄했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의견을 쏟아내고 반박하는데, 어찌나 말이 빠르고 기세가 대단한지, 마치 절대고수 두 명이 생사결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 결과, 무한에 도착하기 직전, 두 사람이 결국 해결책 하나를 건져냈다.
“그러니까 결국 잠력을 터트리는 건 이 단약에 포함된 혈루초 때문입니다. 꽃이 핏방울을 닮았다고 해서 혈루초라고 불리죠. 아주 귀한 약재입니다.”
천추신의는 벽태산을 앞에 두고 자랑하듯 설명했다.
“다른 약재들은 대부분 진행속도를 늦추기 위한 목적으로 섞었을 겁니다.”
천추신의는 뜸들이듯 말을 멈추고 씨익 웃었다.
“그러니 이 혈루초의 반응을 획기적으로 가속시킬 수 있다면 그놈들이 잠력을 터트리건 말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잠력을 더 빨리 폭발시키면 훨씬 강해질 텐데?”
“멀리서 작업을 하면 됩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강제로 잠력을 폭발시키면 반 각에서 이 각 정도면 모든 힘을 소진합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확실히······.”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비용이 아주 쌉니다. 굉장히 흔한 약초 몇 가지만 적절히 배합하면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일침괴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게 왜 네놈이 생각한 방법이야? 내가 생각한 거지.”
“에이, 형님. 이러시면 곤란하오. 제가 팔 할, 형님이 이 할 아니오.”
“그 반대겠지.”
벽태산은 둘이 투닥거리기 시작하자 손을 들어 말을 막아버렸다.
“일단 도착하자마자 이 약부터 준비해. 더 개량할 수 있으면 하고.”
천추신의가 히죽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벽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으로 나갔다. 그리고 선수에 서서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도시를 쳐다봤다.
드디어 무한에 돌아왔다.
점점 다가오는 도시를 보며 벽태산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직은······ 낯설구나.”
끝
배에서 내리자마자 하오문 무한지부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알아서 하역 작업을 했다.
배에 실린 물건 중에서 귀한 것은 따로 잘 담아서 내오고, 평범한 것들은 커다란 수레에 차곡차곡 쌓았다.
그리고 수채에서 가져온 단약은 또 따로 짐수레를 준비해 실었다.
벽태산 일행은 하역을 시작하기 전에 배에서 내렸다.
다들 조용히 있었는데, 이유는 연하린 때문이었다.
이제 무한에 도착했으니 연하린은 연가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벽태산과 함께 다니는 것에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 다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찌르르했다.
“유 무사는 어떻게 할 거야?”
연하린은 벽태산과의 헤어짐을 애써 견디며 유서연에게 물었다.
철저히 유서연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이었다.
아니, 이쯤 되면 유서연을 위해 그녀를 놓아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조만간 같이 살게 될 테니까.’
연하린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유서연과 벽태산을 번갈아 바라봤다.
유서연은 그런 연하린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이지 연하린을 따라가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연하린과 함께 하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그 지옥 같은 수련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이유가 훨씬 컸다.
무한으로 오는 배에서 유서연은 그야 말로 지옥에 발을 잠깐 들여놓았다가 돌아왔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무량보를 수련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뼛속 깊이, 아주 처절하게 느꼈다.
그리고 그걸 본 벽태산이, 집으로 돌아가면 이걸 응용한 수련을 해야겠다고 중얼거리는 걸 분명히 들었다.
아마 지금까지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지면 펼쳐졌지, 결코 모자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천경완에게 뒤쳐지고 말고는 중요치 않았다.
아마 그건 천경완도 마찬가지이리라.
어차피 자신은 다시 금벽장으로 끌려오게 되어 있다. 아마 벽태산이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단 며칠만이라도 자유와 편안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유서연은 차분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하려 했다.
그 순간, 천추신의가 나섰다.
“어쩌긴 뭘 어째? 바늘 가는 데 실이 따라가는 게 인지상정이지.”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유서연과 천경완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면서 한껏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그걸 본 연하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예? 서, 설마······!”
천추신의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뭐야, 설마 몰랐어? 우리 공자님만큼이나 눈치가 없네. 이제 마지막 순간만 남은 사람들인데 떨어뜨려 놓으면 쓰나.”
유서연은 나설 순간을 놓쳐 입만 헤 벌리고 멍하니 천추신의를 바라봤다.
그녀의 고개가 천천히 연하린에게로 돌아갔다. 눈에 더없는 간절함을 담고서.
“그런 눈으로 안 봐도 돼. 미안,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알았어. 앞으로 유 무사는 계속 우리 공자님과 함께 있어. 난······ 난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알았지?”
연하린의 말에 유서연은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 되었다.
그녀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뇨. 아가씨.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이, 몰랐다면 모를까, 이제 다 알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그럼, 그럼. 모른 척하는 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
천추신의가 나서서 그렇게 말하자, 유서연이 고개를 휙 돌려 그를 노려봤다.
눈에서 불똥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연하린을 따라가 봐야 고작 사흘이나 쉴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하루도 채 못 쉴지도 모른다. 한데 그걸 빼앗다니.
그걸 본 천추신의가 인자하게 웃었다.
“그렇게 고마운 눈으로 안 봐도 돼.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어? 여기 자기밖에 모르는 우리 형님이 챙기겠어, 아니면 눈치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우리 공자님이 챙기겠어?”
천추신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얼른 연하린에게 손짓을 했다.
“여기서 시간 끌어봐야 좋을 거 없으니까 소저는 얼른 가. 가서 인사도 드리고 호무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도 해야지. 그리고 그것 말고도 할 일 많지 않아?”
천추신의의 말에 연하린이 입을 앙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벽태산을 애틋한 눈으로 바라봤다.
“공자님. 금방 돌아올 거예요. 그러니······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뭐······ 그러든가.”
벽태산의 대답에 연하린이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주변이 환해지는 듯했다.
그걸 본 천추신의가 옆에 있는 일침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정말 예쁘지 않소? 어떻소? 그 약왕인지랑 비교하면, 아무리 무림삼화라고 해도 우리 쪽 소저보다 더 예쁜 사람은 없지 싶은데.”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그런 걸 어찌 알겠느냐.”
“에이, 뭘 또 고작 그런 걸로 삐치고 그러쇼? 확실히 우리 형님이 나이를 먹긴 먹었어.”
일침괴가 눈을 부릅뜨고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여기서 나이 얘기가 왜 나와?”
“원래 나이를 먹으면 애가 된다잖소. 그러니 애처럼 삐치는 거 아뇨.”
“하아아.”
일침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네놈 다리를 잘라서 애처럼 작게 만들어주마.”
“형님은 왜 항상 잘 나가다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시는 거요? 주변 좀 보쇼. 다들 경기를 하잖소.”
천추신의의 말에 일침괴가 주위를 휙휙 둘러봤다.
그러는 사이 천추신의가 얼른 자리를 피해 벽태산 뒤로 갔다.
그리고 일침괴를 보며 히죽 웃었다.
일침괴는 그걸 보며 주먹을 꽉 쥐고 부르르 떨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진짜 작정을 하고 한 대 꼭 때리고야 말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그렇게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투닥거리는 사이, 하역이 끝났고, 연하린도 연가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벽태산은 짐을 가득 실은 마차와 함께 금벽장으로 향했다.
* * *
정문 앞에 벽태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금벽상단에서는 벽태산을 맞이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선착장을 꾸준히 확인했다.
벽태산이 도착하면 바로 알리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준비해서 맞이하려고 말이다.
정문 앞에 나온 사람 중 가장 높은 사람은 총관, 가무진이었다.
가무진은 저 멀리 벽태산이 눈에 보인 순간 득달같이 달려갔다.
그러자 그의 뒤를 따라 금벽상단에서 제법 높은 자리에서 일하는 자들이 우르르 따라갔다.
그 수가 총 일곱 명이나 됐다.
그들은 헐레벌떡 뛰어가 벽태산 앞에 도착하자마자 허리를 직각으로 꾸벅 숙였다.
“공자님, 오셨습니까.”
벽태산은 이놈들이 대체 왜 이러나 싶어서 눈을 가늘게 뜨고 총관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총관은 벽태산의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최대한 친밀하게 보이고자 열심히 미소를 지었다.
“공자님, 무사히 다녀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벽태산은 대답하지 않고 총관 뒤에 공손히 선 사람들을 슥 훑어봤다.
역시 이럴 때는 나서는 사람이 나서야 한다.
천추신의가 벽태산 앞으로 슥 나갔다.
“아, 신의와 괴의께도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그들은 천추신의와 일침괴에게도 꾸벅꾸벅 허리를 숙였다.
“반겨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긴 하나······ 왠지 우리가 떠날 때와는 태도가 달라진 것 같아 어리둥절하군요. 혹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하하하. 태도가 달라지다니요. 절대 그런 것 아닙니다. 그때는 워낙 바쁜 시기여서 미처 신경을 못 썼을 뿐입니다. 지금은 약간 여유가 생겨서 이렇게 마중을 나온 것이고요. 암요. 하하하하.”
말은 저렇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아마 말을 하는 총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자자,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공자님께서 여독을 잘 푸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 해뒀습니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사람이 얼른 그 말을 받았다.
“맞습니다. 물도 따끈하게 데워뒀고, 보양식도 잔뜩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을 위해 귀한 술도 준비했으니 부담 없이 즐기시고 쉬시면 됩니다.”
그가 그 모든 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그걸 알아달라고 굳이 나서서 얘기를 한 것이고.
벽태산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차피 이들이 굳이 준비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다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그저 생색을 내고 있을 뿐이었다.
총관은 벽태산 옆에 얼른 붙었다.
“저······ 공자님. 오늘은 장주님을 한 번 뵙는 게 어떻습니까?”
의외의 말에 벽태산이 고개를 돌려 총관을 쳐다봤다.
“형님을?”
벽태산은 말을 하고도 좀 신기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님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실 굉장히 어색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입에 착착 붙고 상당한 친밀감이 느껴졌다.
‘호오. 이건 몸에 새겨진 반응인 건가, 아니면 혼백의 잔향인가.’
어느 쪽이든 흥미로운 일이었다.
벽태산은 그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하느라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바람에 따라가는 총관은 전전긍긍했다.
“저······ 공자님?”
“알았다.”
총관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으허허허.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장주님께서 공자님을 얼마나······.”
총관은 말을 하다가 말고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사실 장주인 벽태수가 벽태산을 굉장히 아끼고 신경 쓴다는 것은 이렇게 아무데서나 함부로 할 말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금 상단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있지 않은가.
저들 중 몇은 분명히 벽태수의 아내인 채미령의 사람일 것이다.
벽태수가 벽태산을 특별하게 여긴다는 얘기가 채미령의 귀에 들어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더구나 지금 같은 시기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이내 벽태산이 금벽장 안으로 들어갔다.
벽태산은 일단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총관이 그걸 보고 당황했다.
“아니, 공자님. 장주님을 뵙기로······.”
“내 사람들을 만나는 게 먼저다.”
벽태산은 더없이 단호한 어조로 그렇게 말하고는 계속해서 걸어갔다.
총관이 허둥지둥 벽태산을 따라갔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한데 벽태산이 손을 들어 막았다.
“나도 길 안다.”
“예?”
벽태산이 총관과 그 뒤에 선 상단 사람들을 슥 둘러봤다.
“따라오지 말란 뜻이다.”
그저 담담히 한 말이었다. 한데 그 말이 상당한 압박감이 되어 그들의 심장을 짓눌렀다.
“크흠.”
누군가 참지 못하고 헛기침을 했다. 물론 그래도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벽태산은 휙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 벽태산의 일행이 벽태산을 우르르 따라갔다.
총관과 상단 사람들은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이내 벽태산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다들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이거······ 둘째 공자님이 왠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누군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병이 호전되니 본래 성정을 찾아가는 건지도 모르지요.”
그들은 벽태산의 어린 시절을 지켜본 자들이었다.
그때의 벽태산은 정말 굉장했다.
총관은 슬그머니 불안해졌다.
‘저걸 보면 채 부인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 * *
벽태산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거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와 쭉 늘어서서 벽태산을 맞이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남아 있던 여섯 명의 시비들이었다.
여기까지 함께 따라온 천약방의 두 의원은 멍하니 시비들을 바라봤다.
사실 아름다운 외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까지 오는 내내 연하린을 비롯해 소소나 단영, 채월, 화옥 같은 아름다운 여인들과 함께 하지 않았던가.
이건 더 아름답고 덜 아름답고의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