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79)
그냥 눈이 시원해졌다.
두 의원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대체 어떤 복을 타고나야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뭔 눈알을 그렇게 굴려? 거기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지 말고 얼른얼른 들어가.”
천추신의가 의원들에게 바짝 붙어 그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뭔가가 떠올랐는지 다시 의원들을 쳐다봤다.
“응? 근데, 너희 원래 여기서 지내기로 한 거 아니었잖아?”
“예?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호무련 사람들이랑 지내기로 했잖아. 어디서 은근슬쩍 따라와?”
천추신의의 말에 두 의원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들은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도 여기 붙어 있어야 훨씬 편하다.
아름다운 시비들과 함께 지내는 건 덤이고.
“그래도 저희 천약방과 제대로 교류를 하려면 저희가 함께 있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응, 아니니까 그냥 가. 호무련 사람들 와 있다고 하니까, 그건 알아서 찾고.”
두 의원은 애처로운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이 상황을 타결해줄 사람은 벽태산뿐이었다.
“귀찮다.”
벽태산은 그 말만 남긴 채, 두 의원과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안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천추신의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리고 천경완과 유서연이 두 의원 앞을 막아섰다.
두 사람의 실력과 독심을 아주 잘 알기에 두 의원은 힘없이 금벽장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벽태산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돌아서서 자신을 따라온 사람들을 둘러봤다.
어느새 나란히 붙어 있는 열 명의 시비가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있었고, 천경완과 유서연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흑도에서 데려와 하인으로 쓰고 있는 흑일, 흑이, 흑삼이 보였다.
그들을 보고 있으니 비로소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벽태산의 입가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가서 할 일 해라.”
벽태산은 다시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살가운 인사를 한 건 아니었지만, 다들 왠지 마음 한구석이 푸근해지는 것 같아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끝
벽태산이 다시 자신의 방을 나선 것은 뜨거운 물에 몸을 씻은 다음이었다.
벽태산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자들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시비들이 알아서 준비한 것이었다.
개운한 기분으로 방을 나선 벽태산의 눈에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는 자들이 보였다.
벽태산이 머무는 전각을 중심으로 제법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정원을 담장이 빙 둘렀는데, 그 담장에 난 문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까 벽태산이 두고 온 총관과 상단 사람들이었다.
벽태산이 전각을 나서는 모습을 발견한 총관이 화들짝 놀라더니 득달같이 달려왔다.
“공자님, 이제 나오시는 겁니까?”
“공자님, 나오셨습니까.”
상단 사람들도 분분히 인사를 했다.
벽태산은 그들을 슥 둘러봤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는 대충 짐작을 했다. 아마 의창에서 배를 타기 전에 호무련 총관이 해준 얘기 때문이리라.
사실 그가 해준 얘기는 그저 금벽상단과 거래 몇 가지를 추진 중이라는 것밖에 없었다.
원한다면 벽태산을 책임자로 요구하겠다는 얘기도 했고.
하지만 벽태산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니 모든 건 금벽상단과 호무련이 알아서 하면 될 일이다.
한데 이들이 이렇게 저 자세로 나온다는 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거기 엮여 있다는 뜻이리라.
벽태산은 총관을 보며 말했다.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예?”
벽태산은 나머지 사람들도 슥 둘러봤다.
“없어?”
벽태산의 어조가 워낙 건조해서였을까? 이들의 뇌리에, 지금이 아니면 다시 말을 꺼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득 스쳤다.
“공자님, 호무련 무한지부를 짓는 일을 부디 제게 맡겨 주십시오. 능력을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자가 얼른 나섰다.
“제가 더 적격자입니다. 전 이미 다수의 장원을 짓고 운영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공자님, 제게 호무련의 종이 납품을 맡겨 주십시오. 그쪽으로는 저 이상 가는 사람을 구하기 정말 어려우실 겁니다.”
다들 말을 우르르 쏟아냈다.
정리해 보면 호무련에서 금벽상단에 맡기고자 하는 일은 총 세 가지였다.
하나는 호무련 무한지부 건립이었다.
땅을 구입하는 것에서부터 장원을 짓는 것, 그리고 초기 운영까지 모두 맡기는 정말 큰 사업이었다.
두 번째는 호무련에 종이를 납품하는 일이었다.
호무련은 호북 전체의 무가들이 모여서 만든 조직이었다. 당연히 각 무가와 주고받는 서찰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또한 호무련 내부에서 소화해야 하는 종이의 양도 엄청났다.
그 모든 종이의 독점 납품권을 금벽상단에 맡기겠다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호무련에 술을 납품하는 일이었다.
무인들이 모인 집단인 만큼 매일 소비하는 술의 양이 정말 많았다.
그 모든 술을 독점으로 납품할 수 있게 해준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는가.
총관을 따라온 일곱 사람은 이 중 하나를 얻기 위해 벽태산에게 아부 섞인 말을 열심히 쏟아냈다.
지금까지 한 마디도 안 한 사람은 오직 한 명 총관 가무진뿐이었다.
벽태산은 손을 들어 이들의 말을 끊어 버렸다.
일곱 명이 중구난방으로 떠들던 것이 일순간 끊어졌다. 너무나도 절묘한 호흡이었다.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벽태산을 바라볼 때, 벽태산은 총관을 쳐다보고 있었다.
“총관은 할 말 없나?”
가무진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부디 장주님을 먼저 뵙기를 바랍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지.”
그 말을 끝으로 벽태산이 성큼성큼 걸어가자, 나머지 일곱 사람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총관이 얼른 벽태산을 따라갔다.
그리고 어느새 나타났는지 천경완과 유서연이 벽태산의 뒤쪽 양편에 붙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날카롭고 무서운지 감히 따라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 * *
“공자님, 잘 하셨습니다.”
총관이 벽태산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벽태산이 별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총관은 자기가 할 말을 열심히 했다.
“저들은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번에 호무련에서 추진하는 사업이 워낙 크니, 그걸 통해 자기 목소리를 키울 요량으로 저러는 겁니다.”
총관은 여전히 벽태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공자님께서 따로 염두에 두신 방안이 있는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런 거 없다.”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총관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무슨 일인지 들은 적도 없으니까.”
총관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예? 정말입니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총관은 최대한 빠르고 간단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아주 간단했다.
호무련에서 세 가지 사업을 금벽상단과 함께 추진하기로 했는데, 거기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바로 벽태산이었다.
벽태산이 이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벽태산이 그걸 원치 않으면, 벽태산이 지명하는 사람이 일을 맡아야만 한다.
그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벽태산이 책임자를 임명하는 것을 호무련 측에서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 얘기를 모두 들은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다 잘라버려야 할 것들이로군.”
총관이 흠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저들은 현재 금벽상단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지금이야 그렇겠지. 뭐, 내 알 바 아니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더 할 얘기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보니, 어느새 금벽상단의 주인인 벽태수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벽태산의 몸을 차지한 이후 형인 벽태수를 처음 보는 셈이었다.
총관은 집무실 앞에서 벽태산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전 여기서 물러가겠습니다. 부디, 장주님과 좋은 시간을 보내시길.”
총관이 물러가자, 벽태산이 그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봤다. 그리고는 천경완에게 말했다.
“백화루에 다녀와라.”
“예. 뭐라고 전할까요?”
백화루는 하오문의 무한지부다. 백화루주는 아직 안 왔겠지만, 벽태산의 지시를 얼마든지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조사 좀 하라고 해.”
천경완이 흠칫 놀라 벽태산을 바라봤다.
“총관님을 말입니까?”
“총관뿐 아니라 아까 그 일곱 놈, 그리고 다른 사람들까지 싹. 아예 금벽상단을 탈탈 털어 보라고 해.”
벽태산은 벽태수의 집무실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예외는 없다.”
천경완이 고개를 숙였다.
“예.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벽태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 * *
벽태산은 벽태수의 집무실 옆에 붙은 접객실에 앉아 있었다.
벽태수는 급히 처리하던 일이 있어 그것만 마무리 하고 오기로 했다.
이 각 정도만 기다려 달라고 해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여기로 온 것이다.
벽태산은 앉은 채 주위는 물론이고 천장과 바닥까지 천천히 둘러봤다.
아주 묘한 느낌이 드는 장소였다.
분위기나 장식이 그런 느낌을 들게 하는 게 아니었다.
이 방에 흐르는 기운이 다른 곳과 달랐다.
어쩌면 벽태수의 집무실 전체가 그런지도 모른다.
벽태산은 차분히 기의 흐름을 파악해봤다.
‘묘하군.’
기의 흐름 자체는 평범했다. 한데 그 기운 자체가 미묘하게 달랐다.
벽태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소했다.
그러니 묘했다.
그렇게 기운에 집중하고 있을 때, 벽태수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구나.”
벽태수는 그렇게 말하며 벽태산 앞에 앉았다.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벽태수가 벽태산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다.
“몸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구나.”
벽태산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이기만 했다. 사실 별로 할 말도 없었다.
아마 예전의 벽태산이라면 뭔가 할 말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벽태산은 그렇지 않았다.
“호무련에서 활약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별거 아닙니다.”
벽태산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에 또 신기했다.
친밀감과 염려가 마음 깊은 곳에서 슬금슬금 일어났다.
아마 벽태산은 죽기 전까지 형님인 벽태수를 걱정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예전의 벽태산이 원하던 일을 덥석 해줄 생각은 없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원할 때,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호무련에서 찾아왔을 때 정말 깜짝 놀랐다. 지금 그래서 우리 상단이 좀 시끌시끌하니 네가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구나.”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사실······ 네가 호무련에 가 있는 동안 내부적으로 몇 가지 논의가 있었다.”
벽태산은 그제야 약간의 호기심이 생겨나 벽태수를 쳐다봤다.
지금 저 말을 한다는 건 논의의 대상이 벽태산이라는 뜻일 테니까.
“그래서 네게 본격적으로 상단의 일을 맡겨봐야 한다는 의견이 모였다.”
벽태산은 말을 듣자마자 귀찮다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솔직히 굳이 금벽상단에 목을 매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벽태산의 몫으로 주어졌다는 작은 장원과 기루와 주루 몇 개만 받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아니, 그런 것도 필요 없었다.
어차피 재물이야 넘치게 있었다. 이번에 수채를 털면서 얻은 재물이 상당했으니까.
여차하면 하오문을 이용해도 된다.
화옥에게 재정을 맡겨놓고 알아서 돈을 벌라고 하면 정말 잘 할 것이다.
그러니 굳이 귀찮게 금벽상단의 일을 떠맡을 생각은 없었다.
“난 됐습니다.”
벽태수가 말을 하다 말고 동그래진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설마 저렇게 단호히 거절할 줄은 몰랐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하냐? 우리 금벽상단에서의 입지가 달라질 것이다. 난 이번에 호무련과 추진하는 사업들 중 둘 정도를 네가 맡았으면 좋겠다.”
벽태산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동작은 가벼웠지만, 그 순간 풍기는 분위기가 어찌나 단호한지 벽태수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벽태산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 사업, 형님이 대충 알아서 결정하시죠.”
벽태수가 번득이는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느냐?”
“됩니다.”
벽태수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넌 욕심이 너무 없어서 탈이다. 어찌······.”
이런 좋은 기회를 이렇게 간단히 날려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염려가 되었다.
벽태수는 잠시 뜸을 들이며 머릿속으로 몇 가지 계산을 했다. 그리고는 벽태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호무련과 진행하는 세 가지 사업에서 나오는 순수익의 일 할을 네게 주마.”
벽태산은 그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러시든지요.”
벽태수는 동생의 반응에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놀랄 줄 알았는데, 저렇게 담백하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그 세 사업에서 나오는 순수익의 일 할이 어떤 의미인지 동생이 모를 리 없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기 그지없던 녀석이니까.
한동안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다가 벽태수가 문득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