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
천마로 살아갈 때 가장 싫어하던 족속들이 바로 이런 놈들이었으니까.
즉, 위적심은 지금 벽태산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 것이다.
벽태산의 얼굴에서 표정이 싹 날아갔다.
그걸 본 천경완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벽태산을 보고 있으니 왠지 무서웠다.
벽태산은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저 멀리서 멧돼지처럼 씩씩대며 다가오는 위적심을 가만히 쳐다봤다.
표정과 눈빛은 담담하기 그지없었지만, 더없이 차가웠다.
천경완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위적심이 벽태산 앞에 서서 벽태산을 노려봤다.
“네놈이냐?”
벽태산은 밑도 끝도 없는 말에 이놈은 대체 뭐지? 하는 표정으로 위적심을 쳐다봤다.
“네놈이 단영이를 데려갔느냔 말이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이제야 이놈이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위적심은 벽태산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자신이 할 말만 계속 했다.
“네놈을 건드리지 않고 조용히 물러가주마. 그러니 나한테 넘겨라.”
벽태산이 씨익 웃었다.
“신선한데?”
이런 경험은 난생 처음이었다.
감히 천마에게 이따위 말을 하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으니까.
물론 신선하다고 해서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다.
당연히 이놈을 너그럽게 봐줄 생각도 없었다.
“내 말을 무시하는 거냐?”
위적심이 이를 드러내며 위협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움직여 벽태산과 천경완을 넓게 둘러쌌다.
위적심이 천경완을 향해 말했다.
“네놈이 대단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우리를 상대로 이 어린놈을 지키면서 싸우는 건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 얌전히 있어라.”
위적심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거칠게 일을 해결하고 싶지 않아. 어디까지나 대화로 풀고 싶어. 대화, 좋잖아?”
“난 싫은데?”
벽태산의 입가가 살짝 비틀렸다. 누구 마음대로 대화로 일을 마무리한단 말인가.
“이놈 빼고 나머지 맡아.”
벽태산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천경완이 몸을 날렸다.
위적심은 설마 벽태산이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라 당황했다.
하지만 그도 흑도 뒷골목에서 구를 만큼 구른 놈이었다.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얼른 벽태산을 향해 손을 뻗었다.
제 몸도 하나 못 가누는 병든 닭의 모가지를 휘어잡는 것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여긴 것이 위적심의 패착이었다.
최소한 뻗은 손에 내공은 담았어야 했다.
위적심의 손이 벽태산의 목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말 그대로 헛손질을 한 것이다.
그나마 힘을 많이 쓰지 않았기에 균형을 잃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물론 그 뒤의 상황은 결코 다행이라고 표현할 수 없었지만.
벽태산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위적심의 손을 피하고는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피함과 동시에 이루어진 절묘한 한 수였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위적심의 턱을 쓸어 올리듯 툭 쳤다.
너무 세게 치면 안 된다. 이 몸은 워낙 나약한 쓰레기라서 함부로 힘을 줬다간 손목뼈가 나갈 수도 있으니까.
아주 아주 살살 쳤지만, 그 결과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풀썩.
위적심이 손을 휘두른 자세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막 위적심의 부하들을 처리한 천경완이 그 광경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벽태산은 손을 탈탈 털었다. 고작 그 한 방에 손이 저릿저릿했으니까.
“진짜 답이 안 나오는 몸이로구나.”
이럴까봐 살살 때렸는데, 그조차 버티지 못하다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닌가.
“다 죽였어?”
벽태산의 물음에 천경완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죽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물러 터졌군.”
그 말을 남기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벽태산이 지나가듯 지시했다.
“정리하고 따라와.”
천경완은 멍하니 벽태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잠시 후, 낙화루의 무사들이 그곳으로 달려왔다.
천경완은 그들과 함께 그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적룡방주 위적심의 죽음을 확인한 순간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 * *
천경완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벽태산은 기녀와 함께 방에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향화루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유추하면, 아마 이곳 낙화루에 있는 모든 사람이 저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더 큰 자극이 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을 일으킬 것이다.
천경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아까 벽태산이 한 말을 떠올렸다.
‘내가 죽인 걸로 하라고?’
그것이 상황을 정리한 다음 벽태산을 찾아가자마자 천경완이 들은 말이었다.
천경완은 그러겠다고 했다.
아마 벽태산이 위적심과 싸워 그를 죽였다는 말을 한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직접 그 광경을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은 자신이 유일했다.
위적심의 부하들은 전부 정신을 잃은 채였으니까.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벽태산이 나머지를 맡으라고 했을 때, 너무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사실 그래선 안 됐다. 최소한 위적심으로부터 벽태산의 안전을 확보한 다음 싸웠어야 한다.
아니면 벽태산을 데리고 그 자리를 피하거나.
한데 마치 홀린 듯이 벽태산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그리고 벽태산이 위적심을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말았다.
천경완은 벽태산의 마지막 동작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걸 따라해 봤다.
‘이렇게 했던가?’
앞으로 걸으면서 손을 올려치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아까 벽태산이 한 것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당연했다. 천마의 심득이 깃든 움직임을 똑같이 재현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천경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까 벽태산이 한 말이 떠올랐다.
천경완은 움직임에 집중했다. 진기고 근력이고 모조리 바닥날 때까지 한 번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방안에서는 신음이 울려 퍼지고, 밖에서는 천경완이 손을 휘두르며 나는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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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달라졌다.
벽태산은 식은땀을 흘리며 혼백에서 걷어낸 영력을 정제했다.
오늘 좀 무리했더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적룡인지 뱀인지 하여튼 짜증나는군.”
위적심을 죽일 때, 예전에 저장만 해놓고 쓰지 않았던 힘을 뽑아서 썼다.
향화루에서 잡아온 놈의 혼백에서 뽑아낸 힘이었다.
그저 방출만 했기에 몸에 크게 무리가 갈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쓰레기 같은 몸은 그조차 버텨내지 못했다.
증혼마공을 통해 꾸준히 정제를 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간신히 이어놓은 기맥들이 찢어졌을지도 모른다.
그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났다.
모았던 기운 중 절반이 날아갔다. 물론 아깝지는 않았다. 어차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모을 수 있는 기운이었으니까.
사실 향화루에서 잡아온 놈으로부터 그 힘을 뽑아냈을 때, 이런 식으로 써먹을 것을 염두에 두긴 했다.
이렇게 빨리 써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몸에 무리가 간다는 걸 알았으니 앞으로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었다.
“후우. 어쨌든 끝났네.”
벽태산은 옆에 알몸으로 잠든 기녀를 힐끗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저런 모습을 보고 음심이 동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꾹 참아야 한다.
저걸 보고 달려들었다간 몸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저 기녀를 통해 얻은 영력으로 세맥 하나를 또 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숨이 났다.
이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끊어진 맥을 전부 잇는단 말인가.
벽태산은 지그시 눈을 감고 이어붙인 맥을 강화했다.
지금은 영력으로 이은 상태인지라 이렇게 지속적으로 신경 써주지 않으면 안 된다.
계속 관심을 가져줘야 맥이 진짜로 이어진다.
벽태산은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같은 작업을 이어갔다.
* * *
“너 거기서 뭐 하냐?”
벽태산은 방에서 나가자마자 천경완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천경완이 허우적거리다가 벽태산을 보고는 자세를 바로했다.
“공자님, 나오셨습니까.”
“설마 밤새 그러고 있었던 거야?”
천경완은 대답하지 않았다. 밤새 이 짓을 통해 확인한 건, 자신의 무능함뿐이었으니까.
벽태산이 혀를 찼다.
“쯧쯧, 하던 거나 잘해.”
천경완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다고 어깨 늘어뜨리지 말고. 헛일은 아니니까.”
천경완이 고개를 번쩍 들고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는 놀람이 어려 있었다.
“개미 눈물만큼은 도움이 되었을 거다. 어떤 식으로든. 그러니까 가자. 좀 쉬어야겠다.”
벽태산이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어가자, 천경완이 멍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후다닥 따라갔다.
천경완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어렸다가 사라졌다.
* * *
금벽상단에는 무수한 조직이 있고, 각 조직마다 정해진 임무가 있었다.
각 조직의 특성에 맞게 임무가 정해지고, 각각의 조직은 그 임무를 충실히 이행한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한 임무였다.
그 중에서 금벽상단의 수뇌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조직이 바로 정보를 관리하는 조서각이었다.
처음 상단이 세워질 때부터 정보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는지라, 역대 조서각주는 항상 가주와 가까운 가족이 맡았다.
현 조서각주는 전대 금벽상단주의 동생이자, 현 상단주의 숙부인 벽우행이었다.
벽우행은 어릴 때부터 목표가 조서각주였다. 그쪽으로 재능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보를 틀어쥐고 있는 이상,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못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믿음을 아들인 벽상일에게 오랫동안 세뇌하듯 주입했다.
벽상일은 유력한 차기 조서각주였다. 아니, 거의 확정되었다고 봐도 된다.
그를 위해 벽우행은 벽상일이 상단주인 벽태수와 친해지도록 갖은 애를 썼으니까.
벽우행은 아들인 벽상일과 마주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손에는 같은 내용이 기록된 문서가 들려 있었다.
문서를 모두 읽은 벽우행이 아들에게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이 일로 흑혈맹이 움직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근거는?”
“실익이 떨어집니다.”
벽우행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죽을 날만 받아 놓은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소 뒷발에 쥐를 잡지 않았습니까.”
벽우행이 피식 웃었다.
“그건 그렇지.”
향화루가 기루의 탈을 쓴 정보조직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끈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한데 이번에 벽태산이 벌인 일 때문에 향화루를 본격적으로 압박할 명분이 만들어졌다.
향화루는 상도의를 어기고 벽태산의 은밀한 모습을 엿보려고 했을 뿐더러, 휘하의 기녀를 이용해 적룡방주를 움직였다.
비록 여전히 발뺌 중이지만, 조만간 무릎을 꿇을 것이다. 벽우행과 벽상일이 그렇게 만들 테니까.
벽우행은 머지않아 향화루의 뒷배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이렇게 흔들다보면 분명히 빈틈이 나올 것이고, 그걸 파고드는 건 늘상 하던 일이었다.
“뒤가 없는 놈들이었으면 좋겠구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조서각에서 먹어치울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모든 일의 시작이 바로 벽태산이었다.
물론 본인은 아무 생각 없이 벌인 일이겠지만.
“흑혈맹은 그렇다 치고······ 적룡방은 어쩌고 있는지 아느냐?”
벽상일은 아버지가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매 순간이 시험이었다.
“권력의 중추가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조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놈들은 그 와중에도 권력다툼을 하더군요.”
벽우행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파악했구나.”
하지만 벽상일은 저 말이 칭찬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 말은 그게 전부냐 라는 물음이었다.
“흑사파와 대웅방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적룡방이 둘로 쪼개질 것 같습니다.”
그제야 벽우행의 얼굴에 드리운 미소가 짙어졌다.
“흑도의 속성이다.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잡아먹는 거지.”
“문제는 이번 일로 우리를 경계하는 자들이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그래, 거기까지 파악했구나.”
“어쩌면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문파들도 견제를 시작할지도 모릅니다.”
“할지도 모르는 게 아니라 분명히 시작할 게다.”
벽상일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미리 준비해 두겠습니다.”
벽우행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슬슬 이 자리를 물려주고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만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요즘 야왕이라 불린다던데, 들어봤느냐?”
벽상일은 어쩐지 아버지의 말에 부러움이 섞여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