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0)
“옛날 얘기라니까요? 요즘은 제일 부지런할 겁니다. 맡은 의뢰도 겁나 빡세게 해결하고요.”
“냄새가 나네.”
“냄새요?”
“돈 냄새. 야, 육구 애들 뒤 좀 캐봐라. 분명히 뭔가 있어. 아주 큰 건수가.”
“예?”
“내 촉이 그렇게 말해. 나 촉 좋은 거 몰라?”
대꾸하던 사내가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뭐, 알아보겠습니다.”
차마 빈말로라도 촉이 좋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시를 받았으니 움직여야 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소리 죽여 육 구역 쪽으로 걸어갔다.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래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 * *
육 구역 안으로 들어간 벽태산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다른 구역과 달리 육 구역에는 건물 밖에 있는 낭인의 수가 굉장히 적었다.
그들은 벽태산이 들어서자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렸다.
이곳에 있는 낭인들은 전부 저런다.
어차피 자신들이 나서서 의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구역장이 의뢰를 받아 알아서 나눠주는 식이었으니까.
멋모르고 나서서 의뢰를 받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낭인들과 똑같은 행동을 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방금 벽태산을 가늠했다. 제대로 결과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벽태산은 고개를 돌려 허겁지겁 뒤따라 들어온 마충삼을 쳐다봤다.
낭인들의 시선이 이번엔 마충삼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마충삼은 벽태산이 갑자기 자신을 바라보자, 또 뭐라도 시킬 일이 있는지 궁금해 물었다.
벽태산은 그걸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마충삼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고 자연스러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벽태산은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갈 길이 아주 멀구나.”
절대 저 수준에 머물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마충삼은 조만간 벽을 넘게 될 것이다. 강제로.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물론 그 대가로 죽음을 몇 번 경험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벽을 넘을 수 있다면 마충삼도 기뻐하지 않겠는가.
새삼 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벽태산은 내심 흐뭇한 표정으로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건물에 들어서니, 제법 많은 수의 낭인들이 보였다.
다른 곳의 건물에 들어가 보지 않아서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이곳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일단 무공을 익히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절반이었다.
물론 벽태산이 보기에는 무공을 감추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적당한 기세를 흘리고 있었다.
딱 적절한 수준만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조절 능력이 참으로 절묘했다.
벽태산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구역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낭인답지 않은 굉장히 정제되고 절제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는 낭인이 아니라 비천단의 조장이었으니까.
벽태산은 내부에 있는 자들을 슥 훑어봤다. 저 중에서 과연 누가 비천단이고 누가 아닌지부터 파악해야 했다.
기본적으로 비천단의 한 개 조는 한 명의 조장과 스무 명의 조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건 말 그대로 처음 정해진 기본이었고, 상황에 따라 굉장히 유동적으로 구성이 바뀐다.
그러니 천추신의 같은 경우는 조장 한 명에 열두 명의 조원이 있는 것이고.
여기는 당장 눈에 띄는 사람만 해도 서른 명이 넘었다.
한데 분위기를 보니 더 있을 것 같았다. 현재 밖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 중인 자들도 제법 있는 것이 분명했다.
‘비천단이 아닌 놈은 여기서 고작 다섯 명이로군.’
어쩌면 비천단이 아닌 보통 낭인들 역시 임무를 수행하는 중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보통 낭인들을 영입하지 않았거나.
벽태산은 안으로 쭉 들어가 구역장 앞에 섰다.
구역장은 계단에 걸터앉은 채 고개와 눈동자만 슬쩍 위로 해 벽태산을 올려다봤다.
“의뢰를 하러 오신 거면 저쪽에 있는 녀석에게 가 보십시오.”
구역장이 저쪽에 떨어져 앉은 사내를 향해 턱짓을 했다.
지목받은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벽태산에게 다가갔다.
“의뢰는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여기는 좀 불편하니 저쪽으로 가실까요?”
벽태산은 사내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고 구역장에게 말했다.
“둘이서만 얘기를 하고 싶은데, 잠깐 들어가지?”
구역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건 또 뭔가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현월에 대해서 할 말이 좀 있어서 말이야.”
그 말이 떨어진 순간, 구역장의 눈빛이 확 달라졌다.
그는 벌떡 일어나 더없이 공손한 자세로 벽태산에게 말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인사는 안에서 다시 드리겠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역장을 따라 안쪽에 마련된 방으로 들어갔다.
* * *
벽태산이 상석에 앉자, 구역장이 공손히 그 앞에 서서 고개를 조아렸다.
“육태구가 공자님을 뵙습니다.”
“밑에 몇 명이 있지?”
“쉰 명입니다.”
벽태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많은 편이로군.”
“정보수집과 잠입, 정보조작을 주로 하는지라 인원이 좀 많습니다.”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았다. 이들이 힘을 숨기는 능력이 제법 뛰어났으니까.
“몇 가지 시킬 일이 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낭인시장을 접수해라.”
“예. 바로 가능합니다.”
안 그래도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몰라 모든 구역에 밑작업을 해뒀다.
각 구역장들은 모르겠지만, 그 아래에 있는 실력 있는 낭인들 상당수가 육태구에게 넘어온 지 오래였다.
벽태산은 그렇게 말하고는 아직 방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충삼을 불렀다.
“들어와라.”
마충삼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벽태산이 육태구에게 말했다.
“동호표국에서 온 녀석이다.”
“동호표국······ 역시 그곳이 우리 소속이었군요.”
“알고 있었나?”
“짐작만 했습니다.”
“어차피 알고 있다니 잘 됐군. 둘이 잘 연계해 봐라.”
육태구와 마충삼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존명.”
이들은 명령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저 시키면 행할 뿐이다.
육태구는 조심스럽게 벽태산을 바라보며 물었다.
“한데······ 저희를 어떻게 아셨는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는 다른 조와는 좀 달라서 아는 분이 거의 없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누구누구 알고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월영단주가 유일합니다.”
월영단은 천마신교에서 정보를 관리하는 조직이었다.
천하에 있는 그 어떤 정보조직보다 뛰어난 곳이었다.
비천단이 월영단 밑에 있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조가 월영단에 속해 있었다.
또한 비천단은 월영단의 협조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그 중에서도 육태구는 특별했다.
자그마치 월영단주의 직속 수하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계속 의문이었다. 대체 자신의 정체를 어떻게 알았는지 말이다.
육태구가 보기에 벽태산은 분명히 고위인사였다.
그저 현월을 언급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확인을 마쳤다.
간단한 질의응답이었지만, 비천단을 이용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육태구의 조를 이용하려면 다른 비천단과는 좀 다른 질문에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데 벽태산은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이 없었다.
이 정도면 거의 월영단주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벽태산은 결코 월영단주가 아니다. 육태구는 월영단주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직접 만났으니까.
벽태산은 그런 육태구를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 굳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해줄 필요는 없었다. 그냥 넘어가도 육태구는 벽태산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테니까.
그래도 벽태산은 간단한 답을 해주었다.
“그냥.”
“예?”
“그냥 알았다.”
육태구가 멍하니 벽태산을 바라봤다. 그냥 알았다니,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육태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예. 알겠습니다. 그럼 지시하신 일은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여기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방에서 막 나가려던 벽태산이 걸음을 멈추고 육태구를 돌아봤다.
“아, 그리고 동호표국 말고 너희가 찾아낸 다른 애들은 없나?”
육태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괜찮으니 저놈에게 정보 넘겨줘.”
벽태산이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마충삼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육태구가 마충삼을 힐끗 보더니 벽태산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육태구는 밖으로 나가는 벽태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냥 알았다고? 어떻게 그냥 알지? 보아하니 우리 조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애초에 몰랐던 것 같은데······.’
육태구는 방금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이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어······ 이거 그거 아닌가?’
천마신교 내에서 오래전 전설처럼 떠돌던 천마에 대한 일화 몇 가지가 있다.
오늘 겪은 일이 왠지 그 중 하나와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태구는 멀어져가는 벽태산의 등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좀 혼란스러웠다.
* * *
서도군은 무한에서 가장 큰 객잔에 머물고 있었다.
그 객잔에서 가장 크고 비싼 후원을 통째로 쓰고 있었는데, 그가 머무는 방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무사들이 사방에 흩어져 경계를 섰다.
하나같이 뛰어난 고수들이었는데, 전부 서도군의 부하가 아니라 고준광의 부하들이었다.
서도군의 부하들은 지금 무한으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 봐야 수십 명에 불과하고, 그들만으로 뭔가를 하기는 만만치 않다.
특히 현재 무한의 상황이 무림맹에 흑련, 남궁세가와 제갈세가까지 어우러진 복잡한 판이라서 자칫하다간 고준광의 부하와 서도군의 부하들이 싹 쓸려갈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서도군은 자신들의 부하를 굳이 무한에 들어오게 할 생각이 없었다.
딱 필요할 때 투입해서 핵심적인 일만 싹 해결하고 빠지는 식으로 써먹을 계획이었다.
그러니 평소의 일은 고준광의 부하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고준광의 부하와 서도군의 부하는 확실히 달랐다.
일단 고준광 쪽이 훨씬 수가 많았다. 하지만 개개인의 강함은 서도군 쪽이 압도적이었다.
서도군은 간단한 요리 몇 가지가 차려진 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서도군의 앞에는 이곳 무한의 일을 총괄해오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서도군의 시선은 여전히 탐욕스러웠다.
아직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도 없지만, 기회가 오면 낚아채려고 항상 노리고 있었다.
그만큼 탐나는 사내였다.
사내는 술잔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천금련주가 무림맹과 흑련,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에 접촉했습니다.”
서도군이 피식 웃었다.
“그래? 확실히 능력이 좋아.”
서도군이 탐나는 시선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천금련주가 그 일을 해냈을 리가 없다. 저 네 곳과 모두 접촉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이 사내의 역량이었다.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지. 시선을 살짝 돌려놨으니 원래 우리 걸 찾아오자고. 겸사겸사 덤도 얻어오고.”
서도군의 말에 사내의 눈이 번득였다.
“흑도 무리를 통합한 놈들의 뒤를 치시는 겁니까?”
“그것도 있고. 사람은 많을수록 좋잖아?”
사내가 서도군을 똑바로 바라봤다. 서도군은 그 시선을 즐기며 말을 이었다.
“무한에 낭인시장이 제법 크더라고? 그리고 열 놈만 잡으면 간단히 먹을 수 있고?”
“맞습니다.”
“거기까지 동시에 먹어치우지. 흑도 쪽은 내가 갈 테니, 넌 흑월검 데리고 낭인시장으로 가. 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사내가 고개를 숙이자, 서도군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서도군의 눈에서 은은한 핏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끝
벽태산은 앞에 엎드려 있는 사람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표행 중에 벽태산의 부름을 받아, 곧장 이리로 달려온 동호표국주였다.
그는 지금 식은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벽태산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엎드렸고, 그 뒤로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이렇게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잘못한 걸 알긴 아는 모양이로군.”
“죽여주십시오!”
동호표국주는 그렇게 외쳤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너, 바깥 생활이 길긴 길었구나. 그런 말을 함부로 하는 걸 보면.”
천마신교 사람들은 절대 저 말을 하지 않는다. 천마가 정말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으니까.
죽을 짓을 했으면 알아서 죽인다. 그리고 죽을 만큼 잘못하지 않았으면 알아서 살려준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천마의 권리이자 권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저리도 쉽게 입에 담아선 안 된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비는 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