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onma Wants to Live Quietly RAW novel - Chapter (93)
서도군은 차가운 눈으로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그러면서 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검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 단전의 내력을 부드럽게 풀어 온몸으로 보냈다.
특히 다리와 검에 신경을 써서 내력을 불어넣었다.
“보아하니 내가 여기서 살아 돌아가기 만만치 않을 것 같구나.”
서도군의 중얼거림에 천추신의가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넌 안 죽어. 아는 게 많은 놈은 원래 빨리 안 죽어. 너도 알잖아?”
서도군은 주위를 슥 둘러봤다.
아까 한창 싸우던 놈들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새로 나타난 자들도 하나같이 강자였다.
물론 한 놈씩 덤비면 전부 골로 보낼 자신이 있지만, 이들이 그럴 리 없지 않은가.
서도군의 눈에 혈광이 번득였다. 그는 천추신의를 노려봤다.
“어차피 그렇게 될 거, 한 놈만 데리고 가야겠다.”
천추신의가 흠칫 했다.
“그 한 놈이 설마 나냐?”
“네놈 주둥이를 원망해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도군이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어찌나 빠른지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한 사람이 몇 되지 않았다.
천추신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도착한 서도군의 모습에 지금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머릿속으로 쫙 펼쳐졌다.
쩌억!
쿠당탕탕!
천추신의는 멍한 표정으로 바닥을 나뒹구는 서도군을 바라봤다.
어느새 앞에 벽태산이 서 있었다.
그리고 서도군의 뺨 한 쪽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벽태산이 슬쩍 고개를 돌려 천추신의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서도군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벽태산의 발끝이 서도군의 단전을 툭 건드렸다.
“쿠웨에엑!”
서도군이 마치 내장이라도 쏟아내는 것처럼 피를 폭포수처럼 게워냈다.
“치워라.”
벽태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마충삼을 비롯한 비천단원들이 후다닥 달려가 서도군의 혈도를 제압하고 몸을 꽁꽁 묶어서 데려갔다.
벽태산은 그들의 몸에 난 상처를 무심한 눈으로 보다가 툭 말했다.
“다쳤구나.”
동호표국주를 비롯한 비천단원들이 그 순간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고작 이런 놈한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끝
객잔 주변을 정리하는 건, 흑도 사내들이 맡았다.
그들은 동호표국주가 지시하자마자 정말 열심히 시체를 치우고 싸운 흔적을 지웠다.
그리고 일이 모두 끝나자 객잔으로 들어가 가장자리를 빙 둘러싸듯 벽에 붙어 서서 공손히 두 손을 아래로 모았다.
그들의 시선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앉아 있는 벽태산에게 꽂혀 있었다.
눈빛에는 선망과 존경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지켜봤다.
그들이 가장 처음 겪은 사람은 마충삼이었는데, 마충삼만 해도 감히 쳐다볼 수조차 없는 고수였다.
그리고 그 뒤로 나타난 자들 역시 마충삼과 비슷한 수준의 고수들이었다.
아무리 흑도인데다가 간신히 무공에 발만 들여 놓았다고 하지만, 오랫동안 바닥에서 구르다보면 보는 눈이 생기는 법이다.
그들이 보기에 마충삼은 웬만한 무가의 정예무사들보다 훨씬 강했다.
대충 느낌만으로 따지면 그런 정예무사들로 이루어진 무사대의 대주쯤 되는 듯했다.
한데 최근 그런 마충삼 일당의 수장이 나타났다. 바로 동호표국주였다.
그들의 눈에 동호표국주는 아예 가늠이 안 될 정도의 고수였다.
한데 그런 동호표국주에 마충삼 일당이 전부 덤벼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한 진짜중의 진짜 고수가 바로 서도군이었다.
벽태산이 그 서도군을 싸대기 한 방으로 박살 내는 모습을 봤으니 이런 태도가 나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벽태산 앞에는 혈도가 제압당한 채 꽁꽁 묶여 있는 서도군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육태구가 서도군과 똑같은 모습이 된 등자엽을 덜렁덜렁 들고 나타났다.
그는 등자엽을 서도군 옆에 휙 던져 놓고는 벽태산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의 명, 완수했습니다.”
벽태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의 사람들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잘 했다.”
모두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고작 말 한 마디에 기뻐하는 걸 보니 벽태산도 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예전에 이랬던 적이 있었나?’
천마이던 시절에는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했던 기억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벽태산은 상념을 털어내고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두 놈을 내려다봤다.
“일단······ 이놈들이 아는 걸 싹 털어내라.”
벽태산은 육태구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런 일의 전문가는 육태구일 것이다.
육태구는 벽태산의 시선을 받자마자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태어나던 순간의 기억까지 싹 뽑아내겠습니다.”
증혼마공으로 혼백을 좀 태워줄까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기억의 일부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 그냥 육태구에게 맡겨두기로 했다.
“죽이지는 마라. 나중에 따로 내가 할 일이 좀 있으니까.”
나중에 혹시 모르니 증혼마공으로 혼백을 태운 다음, 얘기를 좀 더 들어볼 생각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육태구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 손에 한 놈씩 덥석 들고는 객잔 밖으로 나갔다.
장내에 침묵이 맴돌았다.
벽태산은 동호표국주, 장각우를 쳐다봤다.
장각우는 긴장으로 몸이 살짝 굳었다. 사실 벽태산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가서 심장이 조여지는 기분이었다.
“많이 다쳤구나.”
“아닙니다! 그냥 생채기 조금 났을 뿐입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벽태산이 피식 웃었다.
저게 고작 생채기면, 뭘 진짜 상처라고 하겠는가. 팔다리 하나쯤 날아가야 다쳤다고 할 모양이었다.
“내가 보니, 아직 심기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벽태산의 말에 장각우는 물론이고 그의 조원이던 비천단원들이 전부 덜덜 떨며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저 말 다음에 이어질 말이 너무나 뻔했다.
“너희는 당분간 무량보만 수련해라. 내가 제법 괜찮은 수련법을 찾아냈으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벽태산의 말에 천경완과 유서연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안 그래도 여기 오기 직전까지 그걸 하고 있었다.
분명히 강해지는 건 확실하다. 몸 자체가 달라졌고, 내공의 흐름도 달라졌다.
한데 고통스러워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무량보에 대해 잘 아는 장각우와 비천단원들의 표정도 썩어 들어갔다.
벽태산이 그걸 보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불만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 말에 다들 화들짝 놀라서 맹렬히 손사래를 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량보를 수련 중에 제일 좋아합니다! 아니, 좋아하도록 하겠습니다!”
벽태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자세다. 그럼 이참에······ 다들 무량보로 몸을 다스리는 게 좋겠구나.”
벽태산의 시선이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있는 쪽에 머물렀다.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예? 저, 저 말씀입니까, 공자님?”
“저, 저희는 그런 수련을 하기에 너무 늙었습니다.”
벽태산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원래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에게 더 필요한 수련이다. 나이를 먹으면 심기체가 흐트러지거든.”
두 사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저, 저희는 아, 맞다. 천추신단! 천추신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암요. 천추신단을 잔뜩 만들어 둬야 저기 벽에 붙어서 눈치만 보고 있는 놈들에게도 하나씩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사람이 늘어날 텐데, 약을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꼭 천추신단만 필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번에 잠력 터트린 놈들에게 잘 써먹었던 구슬도 만들어야 하고.”
“앞으로 싸울 일도 많을 텐데 금창약이나 내상약도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한 사람이 계속 이어서 말하는 것처럼 둘이 번갈아 얘기했다.
“그래서 많이 바쁘다 이거구나?”
벽태산이 살짝 삐딱한 눈으로 묻자, 천추신의와 일침괴가 또 번갈아 얘기했다.
“아이고,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빼기가 만만치 않다······.”
“그거지요.”
벽태산은 피식 웃었다.
“됐다. 너희는 알아서 해라. 뭐, 자기들이 강해지기 싫다는데 강요할 수는 없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공자님.”
“이 은혜 몸이 부서져라 일해서 갚겠습니다, 공자님.”
벽태산은 과장되게 인사하는 두 사람에게 그만 하라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리고 분위기를 바꿔 다시 한 번 장내를 둘러봤다.
“당분간 하루에 한 사람씩 내가 수련을 봐주마.”
벽태산의 난데없는 말에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봤다.
실력은 이미 봤다. 또한 무공에 대한 지식이 대단함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런 벽태산이 직접 수련을 봐주면 과연 어떤 효과가 나올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벽태산은 사람들의 표정과 눈빛이 바뀐 것을 보며 씨익 웃었다.
“죽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생각될 것이다.”
모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련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다.”
벽태산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객잔 밖으로 나갔다.
* * *
금벽장으로 돌아가는 내내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벽태산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오늘 자신이 한 말과 행동에 대해 하나하나 되짚어 나가는 중이었다.
‘뭔가 변하고 있긴 한데······.’
육체가 달라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죽었다가 다시 사는 거라서 그런 건지는 모른다.
분명한 건 자신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 사람씩 수련을 따로 봐준다는 건, 천마이던 시절에는 아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때도 물론 수하들의 수련을 봐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지나가다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인 감정으로 끼어드는 정도였다.
아니면 호천대의 단체수련을 도와주거나.
하지만 달라져서 기분이 나쁜 건 절대 아니었다.
아까 한 사람씩 돌아가며 무공을 봐주겠다고 한 건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생각을 여러 갈래로 나눠 각각의 무공을 어떻게 봐줘야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무튼 재미있어.’
이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생각이 거기서 더 이어지니 오늘 사로잡은 놈들이 떠올랐다.
‘이놈들 느낌이 불쾌하단 말이지.’
지난번 광동사괴나 광혈삼마, 그리고 부두철, 곡양두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불쾌함이 깔려 있었다.
한데 그 불쾌함이 진짜 껄끄러운 이유는 아직 왜 불쾌한지 명확하지가 않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싹 밟아버려야겠어.”
벽태산의 중얼거림에 뒤따르던 사람들이 움찔했다.
다들 벽태산의 눈치를 살피느라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묵묵히 따라가기만 했다.
한데 벽태산의 분위기가 점점 더 무겁고 무서워지니 이젠 잠깐 방심하면 몸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벽태산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다들 흠칫 놀라 멈춰 섰다.
벽태산이 천천히 몸을 돌려 뒤따르는 일행을 쳐다봤다.
천추신의와 일침괴, 천경완과 유서연이 보였다.
다시 태어난 자신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 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래 봐야 아직 채 일 년도 안 되지만.
“왜, 왜 그러십니까, 공자님?”
넷 중 가장 용기 있는 사람, 아니, 가장 앞뒤 안 가리는 천추신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너희가 강해질지 생각 중이다.”
다들 안색이 창백해졌다.
지금도 죽을 것 같은데, 여기서 더 뭘 한단 말인가.
“뭐······ 일단 무량보나 마무리 하고 다시 얘기하자.”
벽태산은 무량보를 끝낸 천경완과 유서연에게 무슨 수련을 시킬지 고민하며 돌아섰다.
그 뒤로 금벽장에 도착할 때까지 다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 * *
벽태산은 화옥과 마주앉아 있었다.
화옥은 긴장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으로 벽태산을 바라보다가 살짝 시선을 내려 서탁 위에 놓인 얇은 책자를 확인했다.
표지에 아무 글자도 쓰여 있지 않은 책자였다.
하지만 이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열심히 한 모양이구나. 심기체가 제법 자리를 잡았어. 뭐······ 아직 좀 더 해야겠지만.”
화옥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공자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화옥은 무량보를 수련하기 시작한 뒤로 몸이 확실히 달라진 걸 느꼈다. 덕분에 암영보의 수준이 급격히 높아졌다.
그녀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서탁 위 책자에 닿았다.
“월영마공이다.”
화옥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그마치 마공이다. 예전 벽태산이 마공을 익혀보겠느냐고 했을 때도 놀랐지만, 설마 진짜 마공을 보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월영마공······.”
“암영보와 궁합이 제법 잘 맞을 거다.”
암영보와 궁합이 맞으면서도 위력적인 마공이라는 뜻이다.
“마공이긴 한데, 사실 마공이라고 보기에는 좀 모자라지. 피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시체더미에 파묻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화옥의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피를 마시고 시체더미에 파묻힌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마공이라는 것이 실감난 것이다.
벽태산이 화옥의 표정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수련을 하는 마공은 사실 몇 없다. 그리고 그런 건 웬만큼 미친놈이 아니고서는 익힐 생각도 하지 않고.”
“아······!”
화옥은 살짝 놀란 눈으로 벽태산을 바라봤다. 지금 벽태산이 자신에게 자그마치 농담을 섞은 것이다.
“월영마공은 달빛 아래에서 수련을 해야 한다는 점이 좀 까다롭지.”
화옥은 이어진 벽태산의 말에 얼른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기나 양기를 받아들이기 위해 하루 중 정확한 시각을 정해두고 수련을 하는 건 흔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감각도 아주 중요하다. 뭐, 그동안 이걸 익힌 놈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