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0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00화(100/184)
100화 전차 군단과 붉은 악마(4)
한국의 스쿼드 중에서 가장 약하다고 평가되는 부분이 풀백이었다.
도르트문트에서 1군에 있던 박주호 선수가 부상으로 빠지면서 강철과 최용 이외에는 이렇다 할 눈에 띄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
이민우와 김요한이 지친 두 선수 대신 들어갔는데, 둘 다 A 매치 경험은 있어도, 월드컵 무대는 처음이었다.
김요한은 공을 예쁘게 잘 차기로 유명하였는데, 170cm밖에 되지 않는 피지컬 때문에 실력이 굉장히 평가절하되어 있었다.
그리고 독일의 조직력이 붕괴한 것도 이들 때문이었다.
정태용 감독은 공을 사이드로 보내서 지친 상대의 풀백들을 공략하는 작전을 썼는데, 체력 저하가 굉장히 심한 마티아스 귄터는 자신보다 15cm나 작고 12kg이나 가벼운 김요한을 제대로 마크하지 못하면서 돌파를 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토마스 뮐러가 백업해주러 가야 했다.
마티아스 귄터 뿐만이 아니라 키미히 역시 저돌적으로 돌파하는 이민우를 상대로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독일의 수비 조직력이 점점 와해 되기 시작했다.
무리하지 않고 수비에 신경을 쓰면 분명 한국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지만, 독일은 이 경기에서 승리해야만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계속 공격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경기의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이 후반 44분경에 펼쳐졌다.
김요한의 압박을 받던 마티아스 귄터가 다급하게 토마스 뮐러에게 공을 보냈는데, 발에 제대로 맞질 않아서 패스의 속도가 너무 느렸다.
토마스 뮐러가 최준호를 등지고 공을 받으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공의 속도가 느리다는 걸 확인고는 즉시 토마스 뮐러의 스크린을 피해 돌아 뛰었고, 이를 본 토마스 뮐러와 루즈 볼을 놓고 경합을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최준호가 먼저 팔과 어깨를 집어넣어 토마스 뮐러의 움직임을 봉쇄하면서 루즈볼을 따내었고, 원터치로 독일의 수비 뒷공간 왼편으로 강한 스루패스를 넣어주었다.
김요한은 지친 마티아스 귄터를 이미 지나쳐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고 있었고, 귄터의 백업을 봐주던 뮐러는 최준호와 경합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김요한을 수비하는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최준호의 스루패스를 받은 김요한은 빠른 스피드로 페널티 에어리어를 향해 진입하였고, 최종 수비수가 뛰어나오려고 하자 반대편에서 진입하는 진신욱에게 크로스를 올렸다.
하지만 마츠 훔멜스가 같이 점프를 뛰며 방해를 하였는데, 진신욱은 헤더슛이 아니라 공을 옆으로 떨궈놓았다.
그 공을 받은 박홍민이 슈팅을 하려는 척 공을 접었지만, 그를 마크하던 뤼디거가 속지 않고 강하게 압박하였다.
그런 박홍민의 시야에 후방에서 달려오는 최준호가 보였다.
시종일관 최준호를 근접 마크하던 토마스 뮐러는 어디다 떨궜는지 보이질 않았다.
– 툭!
박홍민은 주저 없이 최준호에게 컷백 패스를 하였고, 최준호는 왼발을 딛고 그대로 슈팅을··· 때리는 척하다가 육탄 방어를 하러 나온 마츠 훔멜스를 피해 진신욱에게 빠르게 공을 연결했다.
골대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기회를 얻은 진신욱은 최준호의 슈팅 동작에 속아서 뒤뚱거리는 마누엘 노이어의 위치를 보고는 강력한 슈팅을 때렸다.
– 철렁.
노이어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공이 그물을 흔들었고, 진신욱은 짜릿하고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오랑우탄처럼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치며 괴성을 질러댔다.
“으아악! 빌어먹을! 썅!!”
마누엘 노이어가 독일어로 욕지거리를 하며 얼굴을 양손으로 붙들고 무릎을 꿇었다.
한국 선수들이 모두 모여 기쁨을 누릴 때 독일 선수들은 모두 심판에게 달려갔다.
“그건 파울이야! 잘 보라고!!”
악에 받친 표정으로 고함을 질렀는데, 최준호가 토마스 뮐러와의 경합 과정에서 파울을 했다는 것이었다.
심판이 흥분한 독일 선수를 진정시키는 사이 VAR 실에서 판독에 들어갔다.
루즈볼을 따낼 당시에 둘의 몸싸움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다만 패스가 나간 이후 두 선수가 서로의 유니폼을 붙들고 늘어지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는데, 토마스 뮐러가 먼저 최준호의 유니폼을 강하게 낚아채는 장면이 나왔다.
약간의 몸싸움 후에 토마스 뮐러가 얼굴을 붙잡고 쓰러졌는데, 유니폼을 잡고 늘어지는 토마스 뮐러의 팔을 떼어내기 위해 최준호가 팔을 휘두르다가 친 게 분명했다.
심판은 화가 난 독일 선수들에게 진정하라는 사인을 보내고는 바로 센터 서클을 찍어버렸다.
3-2
“우아아아아!!”
한국 선수들이 모두 모여서 환호성을 터트렸고, 정태용 감독도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스태프와 함께 부둥켜안고 번쩍번쩍 뛰었다.
독일의 감독 요하임 뢰브는 잠시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터벅터벅 걸어와서 벤치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남은 시간은 연장시간 포함해도 고작 5분.
2골을 넣어야 하는 기적이 있어야겠지만, 선수들은 너무 지친 상태였다.
‘···모든 게 내 문제였어. 한국을 너무 얕봤군.’
**
지친 데다가 다급하고, 거기다가 심판의 오심이라고 생각하며 흥분한 독일 선수들의 플레이가 정상적일 수가 없었다.
전후반 내내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한국을 옥죄었던 그들은 패스 대신 무리한 돌파를 하려고 시도했다.
짧고 유기적인 패스 대신, 후방에서 롱 패스가 나갔고.
후반 추가시간 1분경.
티모 베르너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한 강민재가 볼을 따내어 패스하는 대신 드리블을 치기 시작했다.
당황한 독일 선수들이 강민재의 드리블을 세우기 위해서 달려들었지만, 강민재의 스피드를 따라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3명의 선수를 달고 중앙까지 드리블을 치자 독일의 수비는 완전히 엉망으로 무너졌는데, 이 경기에서 가장 위협적이던 최준호의 스프린트에 대응하는 선수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저 녀석 오늘 진짜 무자비하게 뛰네.’
강민재는 스프린트 하는 최준호의 앞 공간으로 절묘한 스루패스를 넣어주었다.
평소와는 달리 최준호가 이 시간까지 이렇게 뛸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이유가 있었다.
전반전 메수트 외질이 이렇다 할 오프더볼 움직임을 가져가지 않아서 체력 상실이 없었다는 것.
토마스 뮐러가 들어온 이후로는 공격 전개를 하지 않아서 뛰는 양이 적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후반 연장에도 스프린트를 할 수 있는 체력이 최준호에게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박홍민과 진신욱은 수비에 가담하다 보니 뒤늦게 뛰어가는 상황이었고, 최준호의 앞에는 최종 수비수인 뤼디거만 있는 상황이었다.
최준호가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드리블 방향을 바꾸자 뤼디거는 다급하게 쫓아가며 생각했다.
‘위험한데. 끊는 게 좋겠어.’
자칫하면 레드카드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뤼디거는 진로 방해하는 수준으로 몸을 집어넣으려고 했고, 멈칫하는 뤼디거의 행동을 보고 그 움직임을 읽은 최준호는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 툭··· 툭···
드리블하던 공을 발뒤꿈치로 올리고 다른 발뒤꿈치로 공을 차서 뤼디거의 뒷공간에 보내는 최준호의 개인기.
변형 사포.
“뭣!!”
심지어 최준호는 뤼디거의 진로 방해하려는 움직임마저 피해서 그를 지나쳤다.
그동안 상대했던 박홍민이나 진신욱에게는 없었던 움직임.
그래서 뤼디거는 더욱 읽을 수 없었던 움직임이었다.
세계 최강 군단 독일을 상대로 정말 쉽게 볼 수 없는 최준호의 개인기가 나오자 카잔 스타디움에는 축구 팬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이 흘러나왔다.
능욕을 당한 뤼디거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저 망할 새끼!’
몸을 돌려 최준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뛰어나온 마누엘 노이어와 1:1을 벌이고 있었다.
그대로 슈팅을 갈겨도 되지만, 최준호는 자세를 낮추고 양손을 뻗은 채 집중하고 있는 마누엘 노이어를 상대로 헛다리 짚기를 시도했다.
마누엘 노이어는 최준호가 슈팅한다고 생각해서 몸을 날렸고.
최준호는 마누엘 노이어가 몸을 날리는 장면을 보고는 반대로 공을 툭 차며 제쳐버렸다.
‘될 줄 알았어!’
그리고는 골대를 향해 가볍게 공을 밀어 넣고는 사이드로 달리면서 번쩍 뛰어올라 주먹을 휘둘렀다.
“이얍!”
그리고는 한국을 응원하러 온 팬들이 있는 곳을 보면서 두 팔을 번쩍 올렸다.
관중석에 있는 팬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일어나 서로 얼싸 안고 춤을 추듯 번쩍번쩍 뛰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미나는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기분이 너무 좋은데, 왜 눈물이 흘러?”
응원하던 독일의 패색이 짙자 옆에 있던 토마스가 중얼거렸다.
“네가 바보라서 그래.”
월드컵을 중계하는 캐스터들과 해설위원들도 소리를 질렀고, 이를 시청하는 5천만 국민이 딛고 있는 대한민국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진동했다.
– 골!!!!! 아!!!!!!! 한국에도 이런 선수가 있었습니다!!!!!
– 으에···.으어!!! 끼횻!!! 미쳤어요! 진짜 미쳤어요!!!
– 제쳤어요··· 독윌은 이제 끝났어요!! 드러가쒀요!!!
– 허허허허··· 잠시 물 한 잔 좀 마시고···
마누엘 노이어는 그라운드에 얼굴을 묻고 일어날 생각이 없었고, 독일 선수들은 낙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요하임 뢰브는 그 골을 보고는 풀었던 단추를 다시 채우고, 넥타이를 다시 매었다.
‘우리가 영웅 탄생의 제물이 되어버리다니. 기분이 무척 나쁘군.’
최준호가 독일의 추격 의지마저 부러트려 버린 것이다.
남은 3분이면 충분히 세 골을 퍼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토마스 뮐러 혼자뿐이었다.
그들은 낙담한 팀 동료들을 보고는 깊게 한숨을 쉬다가 관중석을 향해서 엎드리는 최준호를 보고는 생각했다.
‘완전 미친놈이네.’
그건 토마스 뮐러만의 최고의 찬사였다.
**
한국과 독일의 경기는 이렇게 4-2로 마무리가 되었다.
같은 시간에 열렸던 스웨덴과 멕시코의 경기는 3-1로 마무리가 되었고.
한국과 멕시코는 승점이 같았지만 골 득실에서 우위에 있는 한국이 1위가 되었고, 멕시코가 2위가 되었다.
이 경기 2골 1도움으로 경기 MOM이 된 최준호.
평소와는 달리 유럽의 수많은 언론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프레스 룸에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소감은?
–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짜릿하다.
– 정말 그렇게 보인다. 마지막의 그 놀라운 개인기는 벌써 월드컵 최고의 골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나?
– 경기는 많이 남았고, 아직 보여줄 것이 많이 남았다.
자신감 넘치는 최준호의 말에 기자들은 휘파람을 불며 가볍게 손뼉까지 쳐주었다.
–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E조에서 올라온 스위스와의 경기는 어떻게 전망하는가?
– 16강에 진출한 팀치고 약팀은 없다. 오늘 승리의 기분은 이제 서랍에 집어넣고 다음 경기를 위해서 준비할 생각이다.
– 도르트문트와 재계약을 할 생각인가?
– 미안하지만 그 질문에 대해 답변은 하지 않겠다.
거의 마지막에 가서 최준호는 양창명을 지목했다.
– 한국은 16강 진출로 축제의 분위기입니다. 한국 축구 팬들을 위해서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양창명의 질문에 최준호는 잠시 허공을 보다가 시선을 기자들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이후 한국은 상트 페테르부르크 아레나에서 스위스를 맞이하였다.
스위스는 독일을 4-2로 부수고 올라온 한국을 상대로 수비 게임을 하였는데, 그들이 최준호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었다.
최준호의 탈압박 능력과 무시무시한 패스 능력은 속공 상황에서도 빛을 발휘하지만, 지공 상황에서 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잘츠부르크가 왜 괴물 같은 성적을 거두었는지를 좀 더 분석했어야 했다.
스위스는 내려앉은 상태로 경기 끝날 때까지 라인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들이 가지고 나온 역습은 월드컵을 통해서 엄청나게 성장한 강민재에게 죄다 끊기면서 무기력한 경기를 펼쳐야만 했다.
최준호의 프리킥에 한 방.
코너킥을 강민재가 헤더로 꽂아 넣으면서 한국은 스위스를 2-0으로 꺾고 8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펼쳤다.
이날 MOM은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강민재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의 8강 상대는 놀랍게도 일본이었다.
벨기에와 붙은 일본은 특유의 조직력과 센스 넘치는 플레이로 벨기에와 비등한 경기를 하였고, 결국 2-1 점수로 이겼다.
월드컵 8강에서 아시아의 나라끼리 붙는 대진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이었다.
2010년 이후에 사라졌던 레드 데블스 유니폼이 시중에 넘쳐났고, 러시아를 찾을 수 없던 사람들은 도심 광장에 집회 신청을 하고 대규모 응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치킨집과 생맥줏집 그리고 주점들의 매출들은 미친 듯이 올라갔고, 잠시 침체하여 있던 한국 경제도 되살아날 것처럼 들썩거렸다.
남자들은 모이면 담배를 꼬나들고 월드컵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에이전트 김동현이 만든 최준호 팬클럽 카페에는 연예인도 아닌데 벌써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입하였다.
8강에 진출한 나라는 프랑스, 러시아, 브라질, 크로아티아, 영국, 우루과이, 일본, 한국이었고, 그중에서 한국 다음으로 최약팀이라고 평가받은 일본과 붙었으니 4강 신화에 대한 열망에도 불이 붙을법했다.
– 준호야.
– 네, 동현이 형.
– 일본과 경기가 끝나고 나서 네 유니폼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은데 가능할까?
– 누구요?
– 팬클럽에 가입한 11살의 소년인데··· 시한부야. 정성스럽게 편지를 써서 보내주었네. 네 유니폼을 품에 안고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고.
-······ 그럼, 그래야죠.
– 고마워.
– 아니요. 제가 고맙죠. 그런 거 있으면 묻지 말고 통보해주면 돼요.
– 그래. 그리고, 도르트문트에서 제시한 최종 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월드컵에서 제대로 활약하는 바람에 이쪽이 많이 유리했어. 팀 내에서 주급으로만 5번째니까 만족할 만한 계약이라고 생각해.
– 알았어요. 형.
최준호는 전화를 끊고 멍하게 러시아의 밤하늘을 호텔 창으로 올려다보았다.
한참 후에 그는 노트북을 켜고 이메일을 확인했다.
1군 주전 선수 계약.
주급 : 9만 유로(세후 주급 4.7만 유로)
로열티 보너스 : 330만 유로
출장 수당 : 1만 3천 유로
득점 보너스 : 1만 유로
교체 미출전 수당 : 5천 유로.
부대조항.
매년 급여 인상 : 10%
···
초상권과 관련된 모든 수익 : 20%
···
바이 아웃 : 1억 5천만 유로
계약서를 확인한 최준호는 의자에 기대어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엄청나게 세게 불렀네. 짠돌이 도르트문트가 이 정도 불렀으면 도대체 얼마나 몰아붙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