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0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09화(109/184)
109화 복귀(2)
이른 새벽 5시.
최준호는 챔피언스 주제곡을 들으며 몸을 일으켰다.
“후아암.”
13평형 남짓한 클럽 기숙사에 둥지를 튼 최준호는 아직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동자로 정리되지 못한 짐가방을 보다가 고개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쭉 펴고는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 입었다.
1970년대에 썼을만한 낡은 세숫대 앞에서 끽끽’ 소리를 내며 수도를 틀어 가볍게 세수를 하고는 잠을 깨었다.
“또 다시 느끼는 거지만, 독일 감성 오지네.”
도르트문트의 스타디움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1974년에 완공 이후 내부 인테리어 대신 증축을 하면서 덩치를 키웠다.
그래서 굉장히 화려한 겉모양과는 다르게 내부는 1974년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많은 팬들을 수용할 수 있지만, 가장 작은 라커룸과 후진 시설을 가지고 있기로 유명했다.
굉장히 오래된 시설이지만, 녹물이 나온다던가 배수구가 막혔다던가, 수압이 낮다던가 하는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 내일 아침 5시에 나와. 복귀했으니 같이 해야지?
– 그거 아직까지 하는 거야?
– 당연하지. 이 훈련 모임 명칭도 정해졌어?
– 뭔데?
– Ausbildung zur Choi.
– 대 초이 훈련?
– 토마스랑 아모스랑 이야기를 나눴는데, 언젠가는 우리가 다른 팀에서 싸울 지도 모르잖아?
토마스 시아카, 아모스 피에퍼.
2년 전에 본 녀석들 이름이 우영이 입에서 나오자 최준호는 잠시 그들을 떠올렸다.
‘시간 빨리 가네.’
밖으로 나가서 훈련장으로 향하자 세 명이 이미 와 있었다.
“초이!!!”
누군가 부리나케 달려오고 있었는데 까맣고 키가 큰 걸 보니 토마스가 분명했다.
세월의 탓인지 제법 독일어 발음이 입에 붙어 있었다.
더군다나 키는 우영이 만큼이나 컸는데, 빼빼 마른 몸이 아니라 적당히 근육도 붙어 있는 게 매우 보기 좋은 몸이었다.
최준호가 거의 대등한 눈 높이에서 악수를 건네자 토마스가 눈을 커다랗게 뜨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근데 초이 맞냐? 왜 이렇게 컷냐?”
가지고 있는 피지컬은 엄청났지만, 어릴 적부터 축구를 계속해 온 선수들과는 다르게 기본기 자체가 없어서 도르트문트 내에서도 방출할 지 데리고 있을 지를 계속 고민했던 토마스였다.
하지만 최준호, 김우영과 같이 새벽같이 일어나 기본기를 닦고, 최준호가 임대로 이팀 저팀을 다닐 때는 10살 때부터 도르트문트에서 성장한 아모스가 와서 최준호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여기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토마스의 절실함까지 겹쳐서 실력이 일취월장했고, 지금은 도르트문트 II에서 14살의 유스파 무코코와 함께 핵심 공격 자원이 되어 있었다.
월드컵을 거치고 병원을 다니며 회복을 하는 4개월 사이에 2cm가 더 커진 최준호였다.
185cm에 81kg.
하체 회복 훈련을 하면서, 따로 고용한 축구 전문 피지컬 개인 코치와 함께 3개월 동안 프리시즌에 가까운 강도로 벌크업을 하며 몸을 만들었기에 스피드에 민첩성이 둔화되지는 않았다.
“잘 지냈냐?”
“···초이 같지가 않다.”
“월드 스타잖아?”
“크크크.”
둘이 반갑게 포옹을 하는 사이에 김우영과 아모스가 다가왔다.
“진짜···커졌네. 믿을 수가 없네.”
자신과 똑같은 크기의 최준호를 보며 아모스가 고개를 저었다.
올해 20살인 아모스는 올해 도르트문트II에서 주전 자리를 획득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완전히 전향한 그는 작년 김우영과 좋은 호흡을 보여주며 도르트문트II가 리그3 우승을 하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지금은 1군에 많은 미드필더들이 있는 관계로 콜업은 되지 못했지만, 마르코 로제의 관심을 듬뿍 받고 있었다.
“여전히 비빔밥 먹고 다니냐?”
“당연하지. 거기는 내 최애 식당이라고.”
“어머니는 건강하시고?”
“그럼. 어제부터 내 친구 데뷔전 보러 간다고 난리도 아니더라.”
“어머님 쿠키맛은 잊혀지지가 않네?”
“내가 말해서 한 접시 더 가져올게.”
“고마워.”
최준호가 아모스와 인사를 나누자 가볍게 몸을 풀던 김우영이 말했다.
“남자들끼리 뭔 말이 많냐? 자, 이제 뛰자.”
김우영은 몸을 돌리면서 주먹에 힘을 꽉 주었다.
최준호보다 도르트문트 1군에서 빠르게 데뷔하였고, 감독과 팬들로부터 점점 인정을 받고 있었다.
다 포기하고 선택한 축구 인생.
처음에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살아남자고 생각했는데, 이제 김우영의 시선은 월드컵에 가 있었다.
‘다음에는 나도 월드컵 간다!’
**
“hallo schön euch alle kennenzulernen – 안녕! 모두 반가워!”
도르트문트 1군 소속의 25명의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패기가 가득하고 자신감에 차 있는 새로운 목소리에는 매력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그 선수였다.
이제 막 17세를 넘긴 2018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
21번.
최준호.
“저 녀석이야?”
“얼굴은 어려보이는데, 몸은 그렇지 않는데?”
“키가···저렇게 컸어?”
최준호를 신기한 눈으로 보던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평소에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있던 엘링 홀란드가 격하게 소리를 지르며 반기는 것을 보고는 다들 신기해 했다.
“어서와! 친구.”
이틀 전에 복귀를 했지만, 메디컬 테스트를 받느라 실질적으로 클럽에 복귀한 것은 오늘이었다.
‘어제 만나서 놀아놓고서는.’
오후에 있을 DFB-포칼컵 경기를 앞두고 마르코 로제는 잠시 선수들을 임시 소집하였다.
새로 복귀하는 최준호를 소개할 겸, 전술 브리핑을 위해서였다.
1군 팀에서 후보 선수군이지만, 틈틈이 출장을 하고 있는 김우영이 벌떡 일어나 걸어오는 최준호와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 짝!
조용히 묻혀 있던 선수들이 활기넘치기 움직이자, 최근 성적 때문에 살짝 가라앉아 있던 라커룸 분위기가 조금은 더 시끄러워지고, 긴장이 흐르는 것 같았다.
“저 녀석 모르는 사람은 손 들어봐.”
단상에 있던 마르코 로제가 말하자, 선수들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손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행이군. 저 녀석 소개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테니까. 초이, 간단하게 자기 소개 좀 해라.”
최준호는 자리에 앉으려다가 마르코 로제의 명령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팀 동료들이 아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자 최준호는 새삼 자신의 위상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이번 시즌 목표는 트레블입니다. 리그 우승, DFB-포칼컵 우승,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우승. 물론 그건 나 혼자서는 안됩니다. 도르트문트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오랫동안 도르트문트에서 헌신한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르코 로이스는 눈에 힘이 저절로 팍 들어갔다.
‘···거인이라.’
다른 선수들 역시 휘파람을 부르며 박수를 쳤다.
어린 나이에 성공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거드름을 피우거나 거만하게 구는데, 최준호는 그런 느낌이 아예 없었다.
‘역시. 녀석 답네.’
잘츠부르크에서도 금방 선수단과 적응한 최준호였고, 여기서도 밉상 짓은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가 나타나자 엘링 홀란드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과격한 성격 때문에 외톨이처럼 홀로 떨어져 있었던 김우영이 최준호 옆에 있는 것을 보고는 마르코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적응력은 문제될 게 없어. 이제부터는 앞으로 나아가는 일 뿐인가?’
딱 한 명이 복귀했는데, 마르코 로제는 벌써 굉장한 든든함을 느꼈다.
선수들의 박수 세례를 받으며 최준호가 자리에 앉자, 마르코 로제가 전술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FC 우니온 베를린은 현재 2부 리그 1위의 팀이다. 그러기에 2부 리그라고 얕봐서는 안될 팀이다. 스위스 출신의 우르스 피셔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4-4-2 역습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한 팀이다. 수비진은 매우 두텁고, 좌우 미드필더의 역습 능력은 분데스리가에 준한다.
선수들의 부상, 분데스리가, 챔피언스 리그 까지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마르코 로제는 풀 전력이 아닌 7명을 로테이션으로 쓰면서 우니온과 맞붙을 생각이었다.
“이미 훈련한 대로 뛰어야겠지만, 좌우 미드필더들의 역습 전개는 좀 더 과감하게 끊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수들의 대답은 그리 시원치는 않았다.
최근 답답한 경기력 때문에 선수들 역시 마르코 로제의 리더쉽에 의문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마르코 로제는 당장 최준호를 선발로 기용하고 싶었다.
그와 엘링의 호흡이라면 몇 골이고 뽑아낼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최준호에게 도르트문트 선수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파악을 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차츰 출장시간을 늘려가보자고. 초이. 잘츠부르크에서 보여주었던 그 모습을 다시 한 번 내게 보여주거라.’
**
“그는 도르트문트에 어울리는 감독이 아니야.”
라커로 피켓에 라고 붉게 쓴 필립이 중얼거렸다.
도르트문트는 위대한 명장 위르겐 클롭의 지휘 하에서 팀 컬러를 확고하게 만들었다.
매우 조직적이며 체계적이고,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는 압박의 효율성을 살려 극대화된 공격 축구 즉 게겐프레싱을 하는 팀이었다.
여기에 토마스 투헬이 부임하면서 자신만의 특유한 색깔을 입혔는데, 세밀한 패싱력을 기반으로 하는 후방 빌드업, 여기에 점유율을 높이는 축구를 구사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마르코 로제가 보여주는 축구는 게겐프레싱이 가깝긴 했지만, 거의 수비 축구에 가까웠다.
매 경기 1-2점씩 실점하던 경기가 0-1점으로 줄었지만 반대로 3-4점씩 나던 골도 0-1골로 줄어버렸다.
골이 많이 터져야 매력적이고 재미난 경기인데 요새 도르트문트 축구는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그 녀석이 복귀하잖아? 저번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릴 물먹인 그 녀석. 마르코 로제가 틈만 나면 언론에다가 이야기하는 이름.”
그의 절친인 휴이는 자신이 가져갈 피켓에 다른 걸 쓰는 중이었다.
“그 때는 확실히 망할 녀석이었지.”
“이제는 우리 팀이라고. 심지어 월드컵에서 골든볼까지 수상했잖아? 분명 엄청난 일이 일어날거야?”
“이봐. 그 친구는 이제 부상에서 복귀한 거고, 교체되어 나올 지 안나올 지도 몰라. 그리고 우리가 상대해야할 우니온 베를린은 1라운드에서 풀 전력으로 나온 호펜하임을 격파했다고. 더군다나 이번에 우리 팀은 7명이나 로테이션을 돌렸는데, 질 지도 몰라.”
“뭐 그럴 지도 모르지만, 챔피언스 리그에서 득정왕을 한 엘링 홀란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서라는 건 다들 인정하잖아.”
“엘링 그 자식도 거품일 지 몰라. 수준 낮은 리그에서 괴물같은 스탯을 쌓고, 빅 리그로 오면 쭈그렁이가 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아? 그러고보면 초이 그 녀석도 마찬가지 일 수도 있어.”
“넌 너무 비관적이야. 필립.”
“네가 너무 긍정적인 거야.”
도르트문트 팬들은 대체로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었다.
이번에 주축이 되던 선수들이 너무 많이 빠져나가 전력 누수가 발생했기 때문에 이 정도 성적도 만족스럽다는 쪽.
이름도 없는 마르코 로제를 비판하는 쪽은 엘링과 최준호가 거품이라며 그들에게 너무 많은 돈을 썼다고 비판하였다.
독일 팀에서 최준호와 격돌한 마르코 로이스와 마리오 괴체는 최준호의 실력에 대해서 한 줌의 의심도 없었다.
하지만 최준호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선수들은 그런 팬심에 휘말리기도 했다.
“헤이. 킴.”
이번 경기 라파엘 게헤이루 대신 선발로 뛸 예정인 우카시 피슈체크가 김우영을 불렀다.
“왜?”
“저 녀석 진짜 잘해?”
우카시가 가리키는 쪽을 본 김우영은 피식 웃었다.
아침 운동 멤버가 딱 4명이라 2:2 게임을 해보았고, 김우영은 거기서 다시 한 번 거대한 벽을경험하고 말았다.
자신이 성장한 것 이상으로 최준호가 더 성장했다는 걸 몸으로 경험했으니까.
‘진짜 괴물.’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야. 더 표현할 말이 있겠어?”
“아침에 같이 뛰던데 부상 입은 쪽은?”
“완벽하게 회복했어. 오히려 주력은 더 좋아진 거 같더라.”
“···신기한 일이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야콥 브룬 라르센은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는 마리오 괴체와 호흡을 맞추고 있었지만, 최준호의 등장으로 자리가 위협받는 상황이었으니까.
**
– 준호 형. 나 승현이. 표적 치료제 효과가 매우 좋대. 더 오랫동안 살 수 있을 것 같아.
– 진짜? 다행이다. 절대 치료 거르지 말고 꼬박꼬박 받아야 해.
– 응! 나 형 데뷔 경기 텔레비전으로 볼거야.
– 그래? 그럼 잘 해야겠네?
독일의 명문의대인 필립스 의대 연구소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승현이를 생각하니 최준호는 웃음꽃이 입에 폈다.
요새는 매일 같이 좋은 소식들 뿐이었으니까.
1920년에 개장한 베를린에서 가장 큰 축구 전용 경기장.
슈타디온 안 데어 알텐 푀르스테라이 스타디움.
22,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점수 스코어는 여전히 사람이 수동으로 바꾸는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구장이었다.
1부 리그에서 현재 중상위권 성적을 거두고 있는 호펜하임을 격파하면서 2라운드로 올라온 FC 우니온 베를린 팬들의 사기는 상당히 올라간 상태였다.
– 도르트문트 별 거 없어!
– 득점 못하는 도르트문트 따위 부숴버리자!
– 3라운드 진출의 제물! 꿀벌놈들!
– 1군 놈들 별거 없어! 부수자! 올라가자!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버스에서 내려 스타디움으로 입장하자, 경기장 좌석의 3/4를 차지한 우니온 베를린의 팬들이 과격하게 소리를 질렀다.
도르트문트의 극성 팬들 일부가 와서 그들에게 대항을 해보긴 했지만, 목소리가 파묻혀 버렸다.
분데스리가 개막과 동시에 바빠진 독일 전문 기자 양창명은 눈길을 돌려서 최준호와 김우영을 보았다.
‘두 명의 코리안 리거가 한 팀으로 같이 뛰는 건 이번이 처음이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엄청나게 야유를 퍼붓는 우니온 팬들을 향해서 최준호가 뜬금없이 웃는 얼굴로 양 손을 들어 흔들었다.
꽤 묘한 장면이었는데, 최준호의 손가락이 세 개가 펼치진 걸 보고는 양창명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하여튼··· 저 녀석. 변하지가 않네. 저렇게 도발하면 뒷 수습은 어떻게 하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