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화(11/184)
11화 유소년 캠프 VS U-16(3)
“헤이!”
무코코 유수파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도르트문트의 스카우트 아심이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4주 내내 스토커처럼 지겹게 쫓아다니더니 자신의 비행기 시간은 어떻게 알았는지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이야기가 다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무코코의 부친인 조셉이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올해 12살의 무코코는 18세 성인에 가까운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다.
불과 12살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U-15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차세대 독일 유망주로 발돋음 하고 있었다.
“아드님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 더 좋은 환경에서 축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심은 조셉의 짜증에도 불구하고, 웃는 얼굴로 계속 설득을 하였다.
“저 녀석은 같이 축구를 하는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고 했어요.”
“축구를 하다보면 아무리 친하더라도 자신의 전술에 맞는 구단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일찍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것 참.”
카메룬에서 독일로 이민을 온 조셉은 사실 도르트문트가 좋긴 했다.
일단 명문 구단이었고, 계약 조건도 장크트 파울리보다 훨씬 좋았다.
하지만 같이 축구를 하던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무코코가 거절을 하였다.
사실 무코코는 같이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다는 이유를 댔지만 그는 장크트 파울리에 있는 절친이자 자신에게 좋은 패스를 해주는 버락과 헤어지기 싫어서였다.
득점왕을 차지할 수 있는 이유도 버락과 궁합이 잘 맞아서였다.
버락은 자신이 어디로 뛰어가든 정확한 패스를 해주었다.
당연하지만 뛰어난 유소년 스카우트인 아심은 이미 그런 부분까지 캐치하고 있었다.
“싫다니까요.”
무코코가 대답했고, 아심은 무코코를 보며 말했다.
“좋아! 내일 나와 같이 도르트문트 U-16경기를 본 이후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포기할게.”
그 말에 무코코는 대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드디어 저 웃는 거머리를 떼어낼 수 있었으니까.
**
이른 새벽.
최준호는 늘 그렇듯 눈을 뜨고는 가져온 축구공을 들고 숙소를 나왔다.
가볍게 조깅을 하며 몸을 풀고는 근처 공원에서 볼 컨트롤을 하는 연습을 했다.
독일에 올 때부터 사실 고민을 하던 것이 있었다.
‘난 어떤 유형의 미드필더가 어울릴까?’
최준호는 함께 경기를 뛰거나 상대팀으로 뛰었던 수많은 선수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다들 잘 하긴 하지만,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한 선수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지금도 바르셀로나에서 엄청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메시는 자신과는 궤가 완전히 다른 선수였고, 호날두는 완벽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라 최준호에게는 무리였다.
공을 톡톡 다루면서 고민에 빠진 최준호는 문득 어릴 적 자신의 우상이었던 지네디 지단을 떠올렸다.
축구 역사를 통틀어서 미드필더 중에 지단 만한 선수가 없긴 했었다.
아트 사커의 최정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다운 축구를 하던 선수였다.
‘그러고보니 지단이 빠르지는 않았어.’
키도 분명 컸지만, 몸싸움을 기반으로 하는 축구는 하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발재간을 기반으로 상대를 무력화시키곤 했었다.
계속 자신의 능력을 객관화 하던 최준호는 지네디 지단 스타일이 자신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키가 지단만큼 클 지는 모르겠지만.
‘대신 수비 능력을 키우자.’
2~3년 후부터는 전방위 압박을 기반으로 하는 축구가 유행하게 된다.
공격수도 미드필더도 수비 능력이 있어야 유용하게 쓰이는 법.
하지만 피지컬이 약하면 윤강인 선수처럼 무리하게 수비하다가 파울을 많이 범할 수 있다.
퇴장이나 경고 누적으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다면 그건 선수에게도 피해 팀에게도 피해였다.
피지컬 괴물이 될 수 없으면, 수비 기술을 익혀서 약점을 보완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어린 몸은 무엇이든 쉽게 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성장이 멈춘 어른의 몸과는 전혀 달랐다.
툭…툭…타닥.
물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마르세유 턴.
새벽에 1시간 정도 씩 공을 계속 다루다보니, 회귀 이전에 썼던 여러 기술들이 자연스러워졌다.
오히려… 성인이었을 때보다 더 잘된다고 할까?
헛다리 짚기나 라 크로케타(팬텀 드리블)를 쳐도 뭔가 더 잘되는 느낌이었다.
‘코어 근육 때문이겠지?’
전반적으로 신체적인 능력이 살짝 올라간 것이 분명했다.
어제 만난 양창명 기자에게는 잘 지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사실 지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다만 투수 놀음하는 야구에서는 한 명의 선수가 경기를 바꿀 수는 있지만, 11명이 뛰어야 하는 축구에서는 한 두 명이 잘한다고 해서 이기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만약 한 명의 선수가 경기를 바꾸었다면 메시는 매번 국제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어야 하니까.
‘그래도 분명 기대할 부분은 있어.’
정규 게임이 아닌 U-16에게는 귀찮은 게임이 되겠지만, 구단의 눈에 들고 싶어하는 캠프 지원자들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뛸 테니까.
동기 부여의 차이였다.
한 편.
도르트문트의 고급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무코코 유수파는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다가 공터 한 곳에서 공을 가지고 노는 최준호를 보았다.
자신과 거의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데 공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다.
가볍게 툭툭 치는 것 같은데, 공이 거의 발에서 떨어지지도 않았고, 순간 순간 구사하는 개인기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민첩하게 했다.
‘누구지?’
U-15 리그에서 전혀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무코코는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궁금증을 내성적이라는 성격으로 억누른 채 시선을 돌려 다시 조깅을 하기 시작했다.
**
목요일 오후 1시 30분.
U-16 과 유소년 캠프의 첫번 째 매치.
도르트문트의 에이스 닐스는 공을 주고 받으며 반대편에서 몸을 풀고 있는 유소년 캠프 지망생들을 보았다.
한 눈에 봐도 트래핑이나 패스에 정교함이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이내 가장 눈에 확 띄는 토마스에게로 향했다.
“쟤는 15살 맞아? 무슨 키가 저렇게 커?”
“저건 좀 사긴데?”
“우리 센터백은 180cm 밖에 안되는데, 쟤는 머리 하나는 더 큰 거 같다.”
“발재간은 완전 꽝인데? 6살짜리 우리 동생이 더 잘하겠다.”
그 말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주장이자 에이스인 닐스는 동료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헤더는 조심해야해.”
“물론이지. 저런 녀석들에게 졌다가는 얼굴도 못 들고 다닐거야.”
“야야! 저기 봐라.”
누군가 손가락으로 관중석을 가리켰고, U-16 선수들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어? 저 녀석 걔 아니야? 2년 연속 U-15 득점왕?”
“무코코? 어, 맞네? 쟤가 왜 여기에….”
“옆에 앉아 있는 사람 아심이잖아? 쟤 스카웃 된 거 같은데?”
“어? 그럼, 우리 팀으로 들어오는 거야?”
“아…그러면?”
동료들의 의문에 찬 시선이 닐스에게 향했다.
4-2-3-1 전술에서 공격수를 하고 있는 닐스였다.
무코코가 여기에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닐스의 포지션이 애매해진다는 소리였다.
“내가 저 어린 녀석보다 못한다는 이야기냐? 이 자식들이?”
“그…그럴리가!”
물론 도르트문트 U-16 우승으로 이끈 닐스지만 그는 24경기에서 11골 뿐이었다.
2시즌 연속 24경기에서 38, 36골을 때려박고 득점왕을 차지한 무코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스탯이었다.
“자, 빨리 몸 풀자!!”
닐스는 고개를 힐끗 돌려 따분한 표정을 하고 있는 무코코를 보았다.
그리고는 주먹을 꼭 쥐고는 승부욕을 스스로 자극했다.
‘내가 질 줄 알아? 이번 경기에서 내 실력이 어떤 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한 편,
패싱 게임을 하며 몸을 풀던 최준호의 시선이 무코코 유수파에게 향했다.
‘…어랏?’
최준호는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엘링 홀란드와 음바페의 기록을 모두 다 갈아치우며 차세대 월드 축구 스타가 된 무코코 유수파가 저기에 앉아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출신이었지?’
음바페보다 빠르고, 엘링 홀란드보다 더 훌륭한 결정력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힘이 세고 움직임 자체가 직선적이라 수비수가 엄청난 부담을 느끼는 선수였다.
16세에 분데스리가 프로무대에 데뷔한 괴수였다.
‘…지금은 12살쯤이겠네?’
하지만 아무리 봐도 12살의 피지컬이 아니었다.
“후아.”
최준호는 고개를 돌리고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저 녀석이 도르트문트 U-16으로 나왔다면 이번 경기는 말 그대로 개박살이 났을 수 있었으니까.
‘신이 도왔네.’
관중석에 앉아 있던 무코코는 문득 아침에 보았던 동양인을 발견하고는 옆에 있는 아심에게 물었다.
“저 선수도 도르트문트 선수 인가요?”
“누구?”
“21번이요.”
“아하 막시밀리안? 저 금발 친구?”
“아니요. 반대편 21번이요.”
아심은 그 말에 유소년 캠프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은 머리?”
“네.”
“아니야. 8주자리 유소년 캠프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지원자야.”
“…아 그래요? 도르트문트 선수가 아니라고요?”
무코코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갑자기 저 친구가 궁금한데? 아는 선수야?”
“…아니에요.”
무코코는 눈을 가늘게 뜨고 맞은 편 도르트문트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을 한참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 21번 선수만큼 공을 다루는 선수는 보이지가 않았다.
‘흐음.’
**
“야.”
최준호는 싸가지 없게 들리는 한국말에 고개를 돌렸다.
최전방 공격수를 맡은 김우영이었다.
“왜?”
“너 저번에 보니까 패스 잘하던데.”
“그래서?”
“패스 잘 넣어달라고.”
뭐랄까.
좀 사글사글하게 웃으면서 부탁해도 들어줄까 말까인데.
싸가지 없는 표정을 가만히 노려보던 최준호가 씨익 웃었다.
“열심히 뛰어. 패스가 갈 지도 모르니까.”
“갈 지도 모른다니? 넣어 달라니까.”
“왜 저기 카메라 신경 쓰냐? 아니면 주목이라도 받고 싶은 거냐?”
최준호의 말에 김우영은 싸늘하게 말했다.
“둘 다.”
“그래?”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열심히 넣어줄테니까, 한 번 잘 받아서 골 넣어봐.”
최준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리고 뭔가를 생각하고는 피식 웃으며 치아를 드러냈다.
‘유명해질 것인가? 망신살을 당할 것인가?’
가벼운 준비운동이 끝나고 미하일은 지도하는 선수들을 모았다.
“전후반 45분을 뛰게 될 거다. 뛰다가 체력에 문제가 있으면 이야기해라. 그리고 공정성을 주기 위해서 후반에는 대규모 교체가 될 거다.”
“모두 다 교체하는 겁니까?”
“전반전을 보고 파악 할거다.”
“네.”
“4주 동안 너희들이 배운 것을 오늘 다 쏟아부어라.”
미하일은 그렇게 선수들에게 기운을 복돋우고는 관중석 한 켠을 가리켰다.
“저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 보이지?”
“네!”
“누군지 알어?”
그 말에 최준호는 눈을 돌렸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스태프들과 스카우트들이다. 바쁘지만 오늘 경기를 보러 왔다.”
다들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1군 팀 스태프들이 이런 경기에 나타나는 건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최준호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토마스 투헬?’
저 사람이 이런 매치에 왜?
12살짜리 무코코 유수파 때문인가?
‘요러면 곤란한데?’
아니나다를까, 상대편 팀인 U-16들의 얼굴에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걸 볼 수밖에 없었다.
1군 감독과 스태프들이 왔다는 것만큼 좋은 동기 부여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최준호의 표정은 실망스럽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고 이를 꽉 물고 있었다.
왜냐하면.
최준호에게도 동기부여가 되고 있었으니까.
‘죽어라 뛰어야겠네.’
한편 투헬은 눈을 돌려서 캠프 팀을 보았다.
구단에서 역대급 재능이라고 스태프들 사이에 소문이 돌고 있는 캠프 선수가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매는 토마스에게 향해 있다가 최준호에게 옮겨 갔다.
“21번 저 녀석?”
“맞아.”
“저 녀석이 그 역대급 유망주가 될 자질이라고?”
수석코치인 톨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투헬은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시계를 보았다.
한 눈에 봐도 가장 작고 여리여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볼 컨트롤이 얼마나 훌륭할 지는 봐야겠지만.
그의 전술 상 미드필더들은 활동량이 엄청나야 하며, 수시로 바뀌는 전술을 제대로 수행할만큼 똑똑해야 했고, 물흐른 듯한 연계를 해야하며 상대 미드필더들을 압박해서 공을 따낼 수준이 되어야 했다.
전임 감독인 위르겐 클롭과 달리 선수들과 친화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는 투헬은 라커룸에서 마르코 로이스, 누리 사힌, 마츠 훔멜츠와 이미 충돌한 상황이었다.
일부 선수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며 태업을 하였는데, 포칼컵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선수 로테이션이 엉망이 되었다.
물론 태업을 한 그들에게 화가 난 투헬은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선수들을 끌어모아 너희들 없어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너무 어린데?’
투헬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재능이 있다는 것과 실전에 투입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