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0화(110/184)
110화 복귀(3)
“리모컨 좀 가져다줄래?”
다 큰 성견이 된 푸키가 이동민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몇 번 흔들었다.
푹신푹신해 보이는 하얀색 털이 귀엽게 온몸을 덮고, 새까맣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내던 푸키는 푸다닥거리며 뛰어가더니 리모컨을 물고서 이동민에게 왔다.
“고마워.”
이동민이 손을 뻗자 푸키는 뒤로 물러서서 조금은 경계하는 몸짓을 하였다.
잘츠부르크와는 달리 클럽 내에 애완동물 사육이 금지된 도르트문트였고, 최준호는 어쩔 수 없이 푸키를 이동민에게 맡겼다.
처음에는 헤어지기 싫다가 낑낑대더니 이틀 정도 지나자 이동민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였다.
“진짜 똑똑하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녀석 같다. 너.”
이동민이 탁자 위에 올려진 육포를 하나 들자, 푸키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는 혀를 날름날름했는데,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자.”
작은 육포 덩어리를 물자 푸키의 꼬리가 풍차처럼 돌리기 시작했다.
기분이 좋을 때 보여주는 모습.
푸키가 육포를 물고 구석에서 똬리를 틀자, 이동민은 TV를 틀었다.
“···요새 우니온 베를린의 상승세가 무섭지. 만만치 않은 경기가 될 거야.”
이름이 알려진 선수도 없고, 스타 선수도 없었지만, 그들은 마치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조직력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한 명이 막아내기 힘들면 두 명이 막아내고, 두 명이 막아내기 힘들면 세 명이 막아내고.
스탯으로 따지자면 우니온 베를린의 선수들 전원의 활동량이 상당한 편이었다.
한두 명의 슈퍼스타에게 의지하는 팀들은 그 스타들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력이 좌지우지되지만, 이런 팀들은 꾸준하게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다.
초반 도르트문트가 라인을 끌어올려 우니온 베를린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최전방에 있는 알렉산드로 아이작의 오프더볼 움직임은 상당히 좋아 보였지만, 역시나 뒷받침해 주는 창의적인 패스가 나오질 않았다.
탄탄한 피지컬을 갖춘 우니온의 수비에 도르트문트는 공격 작업에 상당한 애로사항을 겪었다.
‘너무 공격적이야. 균형을 잃었어.’
초반에는 양쪽에 있는 우니온의 미드필더들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계속 슈팅이 나오자 선수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진 게 이동민의 눈에 보였다.
결국 전반 27분 무렵.
도르트문트의 패스를 가로채기한 우니온이 역습으로 돌변.
페널티 킥 앞에서 얻어낸 프리킥을 성공시키며 선제골을 넣었다.
**
우뢰와 같이 터지는 커다란 환호 소리에 필립과 휴이는 실망한 눈빛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환호 소리가 작아지자 필립이 자신이 만든 피켓을 들어서 항의하듯 공중에 휘저었다.
<꺼져! 마르코 로제!>
“젠장! 왜 골을 못 넣는 건데? 12번이나 슈팅했으면 넣어야 하는 거 아니야?”
“다 예상할 수 있는 패스만 넣고 있어. 수비력 좋은 우니온이 모두 컷팅 한다고! 젠장!”
“저번 시즌 쩔던 우리 미드필더진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카가와 신지는 잡았어야 해! 크리스찬 풀리시치도.”
우니온의 환호 소리와 도르트문트 팬들의 야유소리에도 불구하고 마르코 로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주장인 마르코 로이스를 불러서 계속 전술을 지시했다.
여전히 일방적으로 도르트문트가 몰아치고는 있지만, 창의적인 패스가 나오질 않았다.
우니온 선수들보다 더 빨리 달리거나 더 많이 움직여야 공간이 나오고 찬스가 나올 테지만,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활동량은 오히려 우니온 선수들보다 떨어졌다.
공간도 나오질 않고, 지역에서 수적 우위도 나오질 않으니 결정적인 상황이 나오질 않았고, 어이없는 중거리 슈팅이나 막 때리는 슛이 나올 수밖에.
결국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우니온의 역습에 추가 실점하자, 우니온의 홈 스타디움은 축제의 현장이 되고 말았다.
도르트문트 유니폼을 입은 서포터들은 응원 대신 마르코 로제의 퇴진을 외치며 우니온 홈 팬들의 흥을 돋웠고.
수석 코치인 르네 마리치가 터치라인 앞에 서 있는 마르코 로제에게 걸어왔다.
“역시 힘든 팀이야.”
“응.”
“감독이 보통이 아니네. 저런 선수들도 이런 조직력을 만들다니.”
“음.”
“창의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녀석들이 필요해. 저 수비를 부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감독이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팀은 우니온 베를린처럼 수비 하다가 역습하는 팀이었다.
유명한 클럽들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클럽들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다.
문제는 도르트문트가 우니온 베를린의 희생양이 될 판!
“엘링이랑 초이에게 후반전 교체로 나갈 테니, 몸 풀라고 해둬.”
“이미 몸을 풀고 있어.”
르네 마리치가 벤치 앞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는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를 가리켰다.
‘오늘 컨디션 좋단 말이지?’
시즌 끝날 때쯤 가면 피로감이 가벼운 부상들이 겹쳐서 몸이 무겁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푹 쉬었기 때문에 날아갈 듯 가벼웠다.
‘다만 오랜만에 경기라··· 분위기에 빨리 적응하는 게 관건이겠어.’
최준호는 가볍게 몸을 풀면서 전반전 내내 자신이 관찰했던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우니온의 수비 움직임, 돌파당했을 때 대처 방법, 어떻게 협력 수비를 하는지.
감독이 라커룸에서 급하게 이야기해줘야 하는 것들을 최준호는 스스로 찾아보고 있었다.
많은 경기 경험에 지도자 과정을 밟으며 공부했던 것들··· 여기에 이동민과 함께 선수와 경기들을 분석하면서 그가 가진 여러 가지 노하우들을 알아가면서 가능해진 것들이었다.
그와 더불어 뛸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성향도 대부분 파악한 상태였다.
부상 회복 기간에 이동민과 함께 한 분데스리가 팀 분석을 하면서.
그래서 부상 복귀 후 첫 경기지만, 긴장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가 벤치에서 일어나 몸을 풀자, 우니온 팬들이 엄청난 야유를 보냈다.
그리고 최준호의 복귀를 응원하는 도르트문트의 일부 팬들이 피켓을 올리며 환호성을 보냈다.
휴이 역시 자신이 가져온 피켓을 들어 올리며 목청을 키웠다.
“이기자!!!”
**
야콥은 후반에 자신이 교체될 줄 알고 조마조마했지만, 토마스 델라이니가 교체로 빠지자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후반전 전술은 4-2-3-1로 간다. 야콥은 왼쪽 윙어로, 산초는 오른쪽 윙어로, 초이는 공미로 간다.”
전반전에 4-3-3 전술을 가지고 나왔던 마르코 로제는 후반에 공격적인 전술을 선택했다.
그 선택에서 중앙에서 뛰는 게 내심 불편했던 야콥은 뛸 듯이 기뻤다.
‘좋아! 난 공격수야! 미드필더가 아니라고!’
토마스 투헬이 야콥을 데려와 미드필더로 개조하려다가 실패한 후, 야콥의 포지션은 굉장히 애매모호 해졌다.
하지만 야콥이 마르코 로이스의 충분한 백업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르네 마리치의 조언을 따라 그를 이번에 왼쪽 공격수로 쓸 생각이었다.
단악셀 자가두와 악셀 비첼을 더블 볼란치로 세워서 역습을 대비한 마르코 로제는 최준호의 플레이메이킹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마르코 로제의 선택에 일부 선수들은 의문을 품었다.
‘프리시즌도 제대로 보내지 못한 부상 복귀 선수를 키 플레이어로 쓴다고? 감독이 역시 제정신이 아니군. 차라리 마리오 괴체를 보내는 게 옳은 선택일 텐데?’
우니온 베를린이 더욱 수비로 나올 게 분명한데, 과연 역전이 가능할까?
마르코 로제에게 불만이 많은 선수는 차라리 이 경기를 망쳐서 그를 쫓아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하였다.
그들과는 다르게.
오는 길에 최준호에 대해서 김우영과 이야기를 나눈 우카시 피슈체크는 슬그머니 최준호 옆에 앉았다.
“초이.”
우카시가 다른 동료들을 흘깃 보다가 눈을 찡긋했다.
“난 패스를 열심히 줄게.”
그 말에 최준호가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우카시는 이 상황을 기회로 생각했다.
마르코 로제 감독이 바뀌지 않는 이상 그가 가장 좋아하는 최준호를 중심으로 전술이 짜일 게 분명했다.
여기서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면 더 많은 출전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말하고는 슬그머니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 우카시.
좋은 활약을 보여줄 자신감은 있었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믿고 자신에게 패스를 해줄지는 의문이었다.
원래 같이 훈련하고 뛰면서 신뢰가 생겨야 마음 놓고 패스를 하는 법이니까.
그런데 이야기도 나누지 못한 낯선 선수가 자신을 지지해주는 건 무척 고마운 일이었다.
그의 포지션에 도르트문트의 핵심 선수 중 하나인 이슈라프 하키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 최준호는 얕은 미소를 지었다.
‘···제법 똑똑한데?’
**
– 삐익!
주심의 휘슬에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우니온 베를린의 감독 우르스 피셔는 후반에는 스리백으로 전환하였다.
공격수 한 명을 빼고 수비수를 넣은 5-4-1의 극단적인 수비 전술.
엘링 홀란드가 이번 시즌 7경기 동안 3득점밖에 하지 못했지만, 우르스 피셔는 그가 매우 위험한 공격수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링 홀란드에게 두 명의 수비를 붙였다.
‘저 21번이 문제인데.’
부상 복귀 후 첫 출전이라 월드컵 골든볼 수상에 빛나며 17세에 발롱도르 최종 10인 후보에 올라갈 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줄지 아니면, 컨디션 회복을 못 해서 경기를 엉망으로 만들지는 그 역시 예측 불가였다.
‘···단점이 딱히 없는 선수.’
결국 대인 방어하면서 플레이를 제대로 못 하도록 거칠게 몰아붙이는 방법이 유일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을 같이 볼 수 있는 라니 케디라에게 대인 방어를 지시했지만, 둘이 같이 서 있을 때 덩치 크기를 보고 우르스 피셔의 얼굴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왜···21번이 더 두꺼워 보이지?’
그도 그럴 것이 라니 케디라는 182cm에 78kg.
최준호는 185cm에 81kg.
그것도 4개월 동안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만든 몸.
벤치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로 구경하던 김우영이 피식 웃었다.
몸싸움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김우영은 최준호가 자신의 몸싸움을 견디고, 훨씬 섬세해진 발놀림으로 자신을 농락한 오늘 아침을 기억해내고 말았으니까.
‘저건 미스 매치인데?’
하지만 2-0으로 앞서고 있던 우니온 선수들은 사기가 충전해 있었다.
이런 객관적인 차이를 인지 못 한 라디 케디라는 우카시가 준 공을 최준호가 잡자 거칠게 몸싸움을 시도했다.
파울을 할 심산으로 어깨를 부딪친 라디는 생각지도 못한 반발력을 느꼈다.
‘???!!’
오히려 라디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면서 나가떨어져 버렸다.
강화된 코어 근육 덕분에 주력을 포함해 전반적인 피지컬이 좋아진 최준호는 거침없이 공을 툭툭 차며 드리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최준호를 떠올리는 모든 선수의 머릿속에 처음 드는 생각은 아마도 굉장한 슈팅력일 것이다.
그의 중거리 포는 상대한 모든 골키퍼가 칭찬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고, 그걸 떠올린 우니온의 수비수들은 자신의 역할을 잊은 채 성급하게 최준호를 마크하려고 튀어나왔다.
“제자리를 지켜!!!”
그 장면에 우르스 피셔 감독이 터치라인 밖에서 목이 터지라 외쳤지만, 최준호의 반응이 훨씬 더 빨랐다.
튀어나오는 수비수 다리 사이로 들어가는 스루패스가 잔디 위에서 휘어지더니 센터백 한 명을 달고 달리는 엘링 홀란드 앞으로 들어갔다.
‘그래! 이거지!!!’
오랜만에 받아보는 택배 스루패스.
엘링은 민첩하게 공을 한 번 접어서 몸으로 강하게 밀어대는 수비수를 벗겨 버렸다.
그리고는 슈팅을 때리려고 했지만, 우니온의 백업 선수가 이미 경로를 막고 있었다.
엘링은 거기서 한 번 더 치면서 공간을 확보하려고 했지만, 빠르게 백업 들어온 우니온의 수비수 세 명이 달라붙었다.
‘세 명이 나한테 왔으면 반대쪽은 완전히 비었겠네?’
그 생각으로 엘링이 힐킥으로 반대편 공간에 공을 밀어 넣었고, 그 공간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달려오던 최준호가 공을 쫓았다.
순간적으로 완전히 프리가 되어 버린 최준호는 주저 없이 골대를 무서운 눈빛으로 스캔하였다.
– 뻥!
논스톱으로 벼락같은 슈팅이 터졌고, 총알처럼 날아오는 공을 보며 우니온의 골키퍼 프레데리크는 식겁한 표정으로 몸을 던졌다.
‘어? 어어어어어?’
코스를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손이 닿기도 전에 공은 이미 그물을 출렁이고 있었다.
“미친···”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골망을 흔든 공을 멍하게 지켜본 프레데리크는 고개를 돌려 팀 동료들과 함께 뛰어가며 세레머니를 하는 최준호를 보았다.
– 그 자식 슈팅 조심해라. 장난 아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들어온다.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뛰는 옛 동료의 충고까지 얻고 동영상으로 수없이 봤는데, 직접 겪는 건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
그렇게 단단해 보였던 우니온 베를린의 수비가 두 선수의 연계 플레이에 무너져 버리자, 우니온의 팬들의 입에서는 걱정스러운 한숨이 그리고 원정까지 온 도르트문트 팬들의 입에서는 커다란 환호성이 쏟아져 나왔다.
“내가 그랬잖아! 저 녀석 장난 아니라고!!”
휴이가 필립을 보며 기뻐 소리쳤고, 필립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다.
“···우연일지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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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민은 최준호의 골 장면에 손뼉을 치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데뷔 경기 6분 만에 골로 신고를 해버리네. 슈팅력이 더 좋아진 느낌이야. 그렇지?”
어느새 이동민의 휠체어 옆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앞다리를 길게 뻗은 푸키가 혀를 내밀었다.
그의 꼬리가 가볍게 좌우로 흔들거리는 걸 보니 주인이 골을 넣은 걸 아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말이야. 네 주인은···”
이동민은 눈가에 주름이 자르르 생길 정도로 미소를 지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축구 선수가 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