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2화(112/184)
112화 바베큐 파티(1)
“근데 있잖아.”
“응.”
“킬리안 음바페 그 자식 잘하냐?”
헤드폰을 끼고 함께 롤을 하던 엘링 홀란드가 뜬금없이 물었다.
“걔? 겁나 잘해.”
물론 기복이 좀 있고, 메시에 비해서 공을 다루는 게 좀 투박하고, 호날두의 피지컬에 비빌 수는 없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인 건 분명했다.
“나보다 잘해?”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엘링 홀란드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 건 갑자기 왜 물어?”
“사람들이 자꾸 비교해서 SNS에서 올리거든.”
하긴.
둘의 포지션이 공격수이고 20살도 안 된 차세대 스타들이었으니까.
그런 것에 은근히 신경을 안 쓰는 듯하면서도 엘링은 신경이 많이 가는 모양이었다.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너희 둘 다 나한테 안 돼.”
엘링 홀란드가 최준호와 시선을 맞추고 빤하게 쳐다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 그렇지. 네가 있었지. 되게 궁금해지네. 너랑 다른 팀에서 격돌하면 어떤 느낌일지?”
“나한테 지고서 질질 짜고 있겠지.”
“그러진 않을걸?”
잠시 둘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
– 헤이! 이 멍청이들 게임 안 하고 뭐 해!
– 야, 게임 터지잖아. 제대로 안 하냐! 멍청이들.
“나중에 서로 다른 팀으로 가면 그때 누가 더 잘하는지 승부를 내보자.”
최준호의 제안에 엘링 홀란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엘링은 최준호에게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일단 피지컬 적으로 최준호가 굉장히 밀렸으니까.
그러나 DFB-포칼 컵을 뛰면서 약간의 위기감이 들었다.
덩치가 큰 우니온의 플레이어와 상대하면서 오히려 압도하는 느낌을 주었으니까.
“좋아.”
“하지만, 도르트문트에 있을 때는 그 누구보다 호흡을 잘 맞춰야 해?”
“당연하지.”
엘링이 읭크를 했고, 최준호는 피식 웃었다.
최준호는 다시 노트북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구보고 멍청이라고 하는 거야?”
다시 한참 게임 삼매경에 빠진 엘링이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최준호를 불렀다.
“초이.”
“응.”
“다음 달에 여자친구가 지역 순회 일정으로 도르트문트에 온대. 그때 미팅을 잡을 예정이야.”
최준호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돌려 엘링을 쳐다보았다.
“제대로 된 옷 좀 구비 해둬. 매너 없이 나오면 가만 안 둘 거야. 킴에게도 이야기 해두고.”
“진짜냐?”
“그럼 난 헛소리 안 한다.”
최준호는 메펜에 있을 때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마테우스와 밀라 그리고 레아까지.
목욕탕에서의 해프닝과 메펜의 경기 때마다 자신을 좋아하는 티를 팍팍 냈던 그녀.
축구에 미쳐 있는 최준호에게는 그녀가 분명 들어올 틈이 없긴 했다.
하지만 그녀를 생각하면서 최준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감도는 건···
스스로도 잘 몰랐을 것이다.
엘링 역시 남자답게 그런 표정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남자의 인생은 여자를 만났을 때와 안 만났을 때와 갈린다.”
“그건 헛소리네.”
2시간 정도 엘링과 함께 게임을 하고 나온 최준호는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는 여러 번호들을 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잘 모르는 번호들이었다.
월드컵 전에 찍은 <보그 – 최준호> 편이 전 세계에 유통이 되면서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 지 전화를 주는 여성 팬들이 너무 많이 늘어나 버렸다.
mms로 자신의 나체 사진까지 보내는 이상한 팬들까지.
성공한 어린 선수들이 아주 문란한 사생활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도 최준호는 이때 처음 깨달았다.
‘하지만 내게 1순위는 축구지.’
그의 정신세계는 혈기왕성한 10대 후반의 선수가 아닌 30대의 남성의 것이었으니까.
요상한 mms는 모두 삭제하면서 자신의 숙소에 도착한 최준호는 침대에 몸을 던지고는 천장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제는 그렇고 그런 선수에서 벗어난 것 같지?’
다시 목표를 재설정해야 하는 단계에 온 것 같았다.
최준호는 휴대폰을 들고 무언가를 검색했다.
2018년도 발롱도르 – 루카 모드리치.
2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위 앙투앙 그리즈만
4위 리오넬 메시
5위 킬리안 음바페
6위 네이마르
7위 반 다이크
8위 로베르토 레반도프스키
9위 케빈 데 브라위너
10위 에뎅 아자르.
···
22위 최준호.
···
30위 엘링 홀란드.
“···내가 이런 걸 검색하는 날이 오다니.”
발롱도르? 과거에는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아마 챔피언스 리그와 월드컵에서의 활약 때문에 30위 후보 안에 든 게 분명했다.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에서의 활약은 크게 고려되지 않은 모양이었고.
최준호의 눈은 2018년도 발롱도르를 탄 루카 모드리치의 이름에 한참 가 있었다.
잠시 과거의 추억에 젖어 있던 그는 발롱도르는 단어를 조용히 뇌까렸다.
축구를 하는 선수들에겐 최고의 명예와 같은 것이었다.
저 명단에 이름을 한 번 올린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되는 것이었고.
“···해볼까?”
**
“···전화를 안 받네.’
레아는 입술을 쭉 내밀고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유명 인사가 되어서 바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미스 유니버스 독일이 된 뒤로 진짜 그 전과는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전화와 메시지가 날아왔으니까.
그녀는 혹시 몰라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히잉.”
어영부영 연락이 끊긴 1년의 시간이 어쩌면 둘의 운명을 갈라놓았을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은 벽으로 향했다.
어릴 적 그녀의 마음을 홀딱 뺏은 연정환 선수의 사진 옆에는 최준호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왜 동양인을 좋아하는지 그녀의 주변인들은 이해를 못 하지만 레아는 왜 동양인이라고 해서 좋아하면 안 되는지 오히려 이해할 수가 없었다.
여자 축구 대표팀에 있으면 여러 인종들과 함께 뛰어서 포용의 폭이 넓어졌는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두어 시간 동안이나 휴대폰을 붙들고 있던 레아.
“아, 모르겠다.”
메시지를 한참 쓰던 레아···
– 난 당분간 내 인생 전부를 축구에 쏟아부을 거야. 난 결코···그렇고 그런 선수가 될 생각이 없거든.
메펜에서 함께 있으면서 최준호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떠올랐다.
단순하게 잘생겨서, 연정환이랑 비슷하게 생겨서가 아니었다.
축구에 미쳐 사는 그런 모습들에···마치 본능적으로 이끌렸다.
하지만.
아마도···거절 당할 것이 더 두려웠던 레아는 결국 메시지를 전부 삭제하고 말았다.
**
우니온 베를린과 DFB 포칼컵 2차전을 기점으로 도르트문트의 득점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전방에는 스트라이커 엘링 홀란드, 왼쪽에는 마르코 로이스, 오른쪽에는 제이든 산초, 공미에는 최준호.
미들에는 마리오 괴체와 최준호 그리고 악셀 비첼.
수비에는 하키미, 디알로, 김우영, 피슈체크.
기본적으로는 4-3-3의 전술을 가져갔다.
하지만 후반 마리오 괴체의 체력이 다하면 토마스 델라이니가 들어와 악셀 비첼과 더블 볼란치를 서고 최준호는 공미로 이동하는 가변 전술을 채택하였다.
기존 명단에서 바뀐 것은 하키미가 왼쪽으로 이동하고 포칼컵에서 매우 좋은 모습을 보여준 피슈체크가 오른쪽 풀백 자리를 꿰찼다는 것.
그리고 최준호가 선발로 출장한다는 것이었다.
최준호가 나오기 이전부터 도르트문트는 게겐프레싱을 기반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축구를 하였다.
다만 폼이 떨어진 마리오 괴체에게 많은 임무가 가중되다 보니 창의적인 움직임이 없었을 뿐이었고.
선발 출장을 한 최준호가 마리오 괴체에게 가중된 임무 절반을 부여받고 그걸 제대로 수행하면서, 마리오 괴체의 움직임도 한결 가벼워졌다.
2승 2무 1패로 리그 4위였던 도르트문트는 아우크스부르크를 4-0으로 격파하고,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3-1로 때려눕히면서 4승 2무 1패로 단숨에 2위로 올라갔다.
바이에른 뮌헨은 마치 전성기라도 보내는 듯 리그에서만 7연승을 거두며 압도적으로 1위를 수성하였고.
거품 아니냐는 엘링 홀란드는 최준호와 호흡을 맞추면서 2경기 4골을 몰아치며 자신이 거품이 아니다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최준호는 포칼컵에서 3골 1도움.
리그 2경기에서 2골 2도움을 하며 점점 팀 내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워낙 붙임성이 좋고 적응력이 뛰어난 최준호는 팀 내에서 뚜렷한 적을 만들지 않고 잘 지내고 있었다.
– 주장. 한 번 단합 좀 해보는 건 어때? 중요한 경기도 있고 하니까.
감독 마르코 로제는 발동이 걸린 팀 분위기를 좀 더 활활 지피기 위해서 마르코 로이스를 불러서 슬며시 제안했다.
도르트문트는 챔피언스 리그 A조에서 1승 1패로 3위에 머물렀다.
1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2승
2위 AS 모나코 1승 1패(골득실 우세)
3위 도르트문트 1승 1패
4위 클럽 브뤼헤 2패.
다음 경기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가 본선 진출의 중요한 분수령이 될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은 요새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꿀릴 게 없었다.
다만 선수층이 전반적으로 젊어서 경험이 없는 게 문제지.
이럴 때는 마르코 로이스나 하키미, 괴체와 같은 베테랑들이 젊은 친구들에게 조언을 해주면 효과가 매우 좋은 법이었다.
– 그럴까?
마르코 로이스는 팀 훈련이 끝나고서 선수들을 모았다.
– 내일 우리 집에서 바베큐 파티를 열 예정이야. 모두 참석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좋아하는 음식들을 좀 준비해서 오면 좋겠어. 여자친구나 가족을 데리고 와도 상관없어. 우리 정원은 엄청나게 넓거든. 술은 가져오지 마. 이틀 후 중요한 경기니까. 대신 무알콜 소다는 내가 준비해두지.
**
“···갈 거냐?”
“당연히 가야지.”
“좀 귀찮은데.”
김우영은 늘상 마음 내키는 데로 해왔고, 최준호가 떠난 이후에는 자기 할 일만 하며 살았다.
“이럴 때 친해지는 거야. 친해지면 질수록 그라운드에서 더 많은 패스를 받을 수 있지.”
“넌 뭐든지 축구랑 연결시키는 구나?”
“그 정도로 미치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선수가 되거든.”
늘상 느끼는 거지만, 최준호는 확실히 뭔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확실히 배울 점이긴 했다.
“근데 뭘 들고 가냐? 비빔밥?”
“바베큐 파티니까 당연히 고기를 들고 가야지.”
“어떤 거?”
“삼겹살과 꽃등심이 좋겠다.”
“그런 거 구할 수 있어?”
“물론이지.”
“주변에서는 그런 거 구할 수 없던데?
물론 파는 곳은 있지만, 한국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 아니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넌 돈이나 내.”
그렇게 말하고는 휴대폰을 들고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최준호.
최준호에게는 당연하지만 독일이 아주 익숙한 곳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외화벌이를 하겠다고 광부로, 간호사로 독일로 온 교포들이 운영하는 진짜 한식집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진짜 고기 맛이 무언지 알려줘야지.’
한편.
르네 마리치는 마르코 로제에게 물었다.
“바베큐 파티에 참석할 거야?”
“그런 자리에 감독이 가면 선수들이 부담스러워할 거야. 난 가족들과 함께 외식할 생각이야. 나 대신 자네가 그 자리에 가봐.”
“나?”
“솔로잖아. 선수들과도 잘 지내고 있고. 설마 혼자 밥 먹을 거야?”
마르코 로제가 더 풍성해진 르네 마리치의 뱃살에 시선을 주었다.
“가서 특별한 일이 있는지 눈과 귀가 되어줘야겠어.”
“특별 수당이라도 나오는 거야?”
“그건 초르크 단장에게 문의해봐.”
르네 마리치는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파티인데. 또 알아 총각 딱지 뗄지?”
“그래. 난 자네의 그 낙천적인 성격이 참 좋아. 일단 그 뱃살부터 어떻게 하는 게 좋긴 하겠지만.”
“이 뱃살조차 사랑해줄 수 있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야. 난 까칠한 여자들은 싫다고.”
“핑계 좋다.”
**
– 딩동.
이동민은 독일에 왔지만, 밥 먹고 자고 그리고 독일어와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 최준호와 팀과 선수 분석하는 시간 외에는 하루 종일 축구에 빠져 살았다.
축구가 아니었으면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것처럼.
도르트문트와 맞붙을 아틀레티코의 경기들을 빠짐없이 분석하던 이동민은 푸키가 풍차 돌리듯 꼬리를 돌리며 튀어 나가는 걸 보고는 누가 왔는지 직감했다.
푸키는 아주 영리해서 문을 여는 스위치를 누를 줄 알았고, 거동이 불편한 이동민 대신 그런 일을 해주었다.
– 띠리링.
문이 열리자마자 최준호는 점프를 하듯 달려드는 푸키를 안아 들었다.
그의 한 손에 들린 종이백이 흔들흔들거릴 정도로 푸키는 난리가 났다.
“헤헤. 잘 지냈어?”
푸키는 대답 대신 연신 최준호의 뺨을 혀로 핥았다.
“왈왈!!”
“가자.”
푸키는 최준호의 말에 다리 부리나케 거실 쪽으로 달려갔고, 휠체어를 끈 이동민의 옆에 섰다.
“형. 저 왔어요.”
“그래. 오늘은 예정도 없이 무슨 일이야?”
“드라이버 라이센스가 나온 겸 해서 엘링에게 뺏은 차를 몰고 놀러 왔어요.”
“아.”
이동민은 도르트문트 주차장 한 켠에 있던 검은색의 우람한 벤츠 SUV를 떠올렸다.
“벌써 나왔어?”
“그럼요. 제가 얼마나 베스트 드라이버인데요. 차가 커서 형이랑 푸키를 다 태우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네. 사실 오늘 저녁에 마르코 로이스 집에서 파티가 있어서요.”
“파티?”
“네. 형도 갈래요?”
최준호의 제안에 이동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 조금···”
“뭘 조금이에요? 갑시다. 형을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도 있고.”
“나···날 누구에게 소개해준다는 거야?”
삐쩍 마른데다가 머리도 절반은 벗겨지고, 하체는 사용할 수 없는 볼품 없는 40대 중반의 이동민이었다.
“여자는 아니고요. 하여튼 있어요.”
일본말로는 오타쿠.
한국말로는 덕후라고 하나?
이동민은 축구 덕후였다.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축구에 대한 지식이 조직화 되고 체계화되어 있었다.
최준호도 잘 모르는 유럽 변방의 팀도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그쪽의 선수들의 특징마저 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용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부분이 있었다.
최준호는 들고 있던 종이백을 내려놓았다.
“이건 옷이에요. 오늘 저녁 6시에 데리러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