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3화(113/184)
113화 바베큐 파티(2)
한스요하임 바츠케 회장은 원래 도르트문트에서 회계를 담당하던 스태프 중 한 명이었다.
2000년도 초반 도르트문트가 두 번의 파산을 겪으며 무너져 버렸을 때, 그는 스스로 자원해서 도르트문트의 회장직에 선출이 되었고, 그 당시 <좀 잘하는데?> 라는 정도의 평가를 듣던 위르겐 클롭 감독에게 접촉했다.
마인츠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팀을 강등시킨 뒤 스스로 사직 후에 쉬고 있던 위르겐 클롭의 가능성을 크게 평가한 것이다.
결국 위르겐 클롭을 도르트문트로 불러오는 것에 성공하였고, 이후 도르트문트는 10년이 넘도록 성공 신화를 쓰는 중이었다.
당시 위르겐 클롭과 그의 헤드 스카우터였던 스벤 미슬린타트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카가와 신지, 네벤 수보티치, 우카쉬 피슈체크를 아주 저렴하게 영입하여 황금기를 이끌었다.
이로 인해 두 번의 파산으로 엉망이 되었던 도르트문트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만들었고, 이미 성공한 선수를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들을 저렴한 가격에 데려와 키우는 정책에 힘을 받게 되었다.
크리스천 풀리시치, 우스만 뎀벨레는 영입한 가격의 20배가 넘는 수익을 남기며 팔았고, 카가와 신지 역시 도르트문트의 부활에 보탬을 준 뒤 영입한 가격보다 5배나 비싼 가격에 팔았다.
그렇게 남긴 돈으로 많은 유망주들을 데리고 왔는데, 당연하지만 바츠케 회장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엘링과 최준호였다.
엘링은 도르트문트 스카우터 팀들이 이미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서 바츠케 회장이 마르코 로제를 감독으로 선임했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날 정도였다.
그리고 한국과의 이벤트성 축구 교실을 열었다가 덜컥 걸린 최준호는 그야말로 가치가 수직 상승하는 중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 17세의 선수 기준에서는 가장 많은 연봉과 옵션을 허락하며 계약을 맺고 1억 5천만 파운드라는 거금의 바이아웃을 설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빅클럽에서 겨울 이적 시즌 계약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특히···
파리생제르맹에서는 공공연하게 겨울 이적 시장에 최준호를 영입할 것이라며 언론에 노출하고 있었는데, 그 쪽 감독이 토마스 투헬이었다.
삐쩍마른 어린 소년의 기술이 좋긴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 포텐션이 작을 것 같다는 대부분의 스태프들과는 달리 그의 가능성을 크게 보고 최준호에게 성장할 기회를 준 사람이 토마스 투헬이었으니까.
“당분간은 그를 써야 해.”
마르코 로제는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를 반납하고 바츠케 회장과의 불편한 저녁 식사를 해야했다.
이렇게 도르트문트를 성공시킨 바츠케 회장이었지만 팬들의 비판을 받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회계사 출신 답게 축구를 숫자로 생각한다는 거였다.
크리스천 풀리시치 같은 재능은 좀 더 도르트문트에서 키웠다면 좋을 뻔 했지만, 바츠케 회장은 첼시가 제시한 이적 금액을 보고는 바로 승낙해 버렸다.
우스만 뎀벨레 역시 토마스 투헬 밑에서 정신적으로 지치긴 했지만, 마르코 로제에게 시간이 주어졌다면 다시 좋은 선수로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이적 금액을 확인하고는 바로 FC 바르셀로나로 팔아버렸다.
최준호는···
바이아웃에 판다면 그 금액을 그대로 이익으로 챙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1억 5천만 파운드.
2250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라면 도르트문트의 스쿼드를 전반적으로 충원할 수 있지 않는가냐는 바츠케 회장의 이야기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나?”
“일단 그는 아시아의 슈퍼 스타가 될 자질이 있어. 이번 달 초이의 저지 판매량이 단숨에 3위로 올랐다는 건 알거야. 더군다나 그를 좋아하는 여성팬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기 시작했어. 최준호가 선발로 나오고 도르트문트에 입장하는 여성의 비중이 15% 올라갔다는 건 알고 있겠지?”
“물론.”
“소비력으로 따진다면 여성이 남성보다 2배는 높아. 그와 관련된 많은 상품들이 팔린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분명 황금알을 낳는 거위야. 그렇게 쉽게 배를 갈라서는 곤란해.”
바츠케 회장은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숫자로 축구를 보는 사람이었고, 투마스 투헬과는 달리 마르코 로제는 그 숫자로 축구를 말할 줄 아는 감독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가치는 고작 1억 5천만 파운드가 아니야. 그의 기량은 매년 매년 확연하게 달라져 있어. 어쩌면 우리가 역대 최고의 레전드라고 생각하는 리오넬 메시 이상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친구거든.”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지?”
“재계약을 맺어서 바이아웃 조항을 없애야 해.”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알고 있지? 주급 체계 전체가 바뀌어야 할 수 있어.”
마르코 로제는 그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물고 바츠케 회장을 보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럴 계획이 없다면 최준호를 지키는 것은 힘들지 몰라. 그는 아주 영리한 친구거든.”
**
– 여유?
– 여유는 통장 잔고에서 나오지.
도르트문트에서 불편함이 없냐는 동현의 연락에 최준호는 여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김동현은 주저없이 통장 잔고를 가리켰다.
하지만 최준호는 전생에 EPL에서 뛰면서 통장에서 넘쳐 흐를 정도로 많은 주급을 받으며 축구를 했지만, 지금과 같은 여유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질투와 승부욕에 모든 것이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너무나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축구 선수이기 전에 그냥 사람이라는 것이.
귀여운 아이들과 잔디밭에 구르면서 놀고 있는 마르코 로이스.
못 생겼다고 놀림받고는 자신이 한 때는 힙합전사였다고 말하며 흐느적 춤을 추며 사람들을 웃기는 엘링.
낮에 뭘 했는 지 침을 질질 흘리며 자고 있는 마리오 괴체.
아직 이런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지 멀뚱멀뚱 있는 김우영.
그리고 여기서 가장 뚱뚱한 남자 르네 마리치와 유일하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이동민이 한 켠에서 뭔가를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장면까지.
‘역시··· 인생은 두 번 살아봐야 제대로 알 것 같아.’
슬슬 저녁을 준비해야할 시간.
마리우스 볼프의 아이들이 21번이 찍힌 도르트문트의 유니폼을 들고 계속 머뭇거리고 있는 걸 보다 못한 최준호는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싸인해 줄게. 얼른 와.”
그러자 아이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달려왔다.
멋드러지게 사인을 해주자 아이들은 유니폼을 품에 안고 도망가듯 달려갔다.
하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아이가 몸을 돌려서 작게 말했다.
“사실은요. 아버지가 받아오라고 시킨 거에요. 그니까 비밀이에요.”
최준호는 황당한 표정으로 저 멀리에서 힐끔힐끔 보고 있는 마리우스 볼프를 슬쩍 보았다.
팀 동료에게 사인이라니.
가끔 알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최준호가 할당 받은 바베큐 화로에 고기를 꺼내놓자, 김우영을 슬그머니 다가왔다.
“고기 구울 줄도 알아?”
“그런 건 기본 아니야?”
“기본이 아닐 수도 있지···”
공부하고 학원가고 과외받는 시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말라는 아버지 밑에서 컸기도 했고, 음식을 해주는 아주머니, 청소를 해주는 아주머니, 옷 입혀주는 아주머니들이 다 따로 있었기 때문에 김우영 스스로 뭔가를 해본 거는 없었다.
여기와서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해내고 있었다.
“근데 굽는 건 재미나냐?”
“맛있게 먹으려고 굽는 건 재미있지.”
“나도 해볼까?”
“안 그래도 냄새 맡고 달려들 사람들 생각하면 손이 부족할 것 같았어.”
“좋아할까? 한국 식 바베큐를?”
“넌 유튜버도 안 보냐?”
“축구도 제대로 못하는 데 다른 데 눈 돌릴 시간은 없어.”
최준호는 그런 김우영을 보고 미소를 슬며시 지었다.
‘이 녀석은 마치 과거의 나같네.’
“알려줄게. 집게 집어봐.”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직수입된 최고 등급의 등심과 살치살.
거기에 50년 가까이 독일에서 살아남은 한국 식당의 특제 소스까지.
매운 맛을 싫어하는 독일인에 입맛에 딱 맞춘 감칠맛 나는 하얀 김치.
여기에 된장국까지.
된장 냄새를 싫어하는 외국인들도 많지만, 대체로 치즈를 좋아하는 나라의 사람들은 된장국을 환장하고 먹긴 한다.
물론 꽤 많은 돈이 들어갔지만, 주급의 코딱지 만큼이긴 했다.
불이 빨갛게 달아 오른 참숯에서 구워지는 냄새에 아이들부터 보여들기 시작했다.
“와 맛있는 냄새!”
“이건 무슨 고기야?”
“먹어 볼래?”
최준호의 물음에 아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핏물이 살짝 보일락말락 잘 익힌 고기를 꺼내 가위로 자르고는 준비된 포크로 하나씩 찝어서 손에 들려주었다.
“안 뜨거울거야.”
아이들은 동시에 입에 넣고는 몇 번 씹더니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아!”
“이게 뭐야?”
“으아아아아!”
“더 줘요!”
옆에서 최준호가 알려준대로 삼겹살을 굽고 있던 김우영은 그런 장면을 무덤덤하게 보고 있었는데, 함박 웃음을 짓는 최준호롤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저렇게 좋은가? 난 귀찮을 거 같은데.’
가끔은 최준호가 하는 짓이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김우영이었다.
그에겐 저런 아이들이 달라붙는 날파리 같이 귀찮은 존재들이었으니까.
다른 곳에서도 여러 바베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거의 모든 아이들이 최준호 앞에서 떠날 생각을 안하고 있자, 어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잠깐만 옆에 있는 삼겹살을 즐겨줘. 아이들부터 먹일테니까.”
익힌 고기가 나오기만 하면 경쟁적으로 포크질을 하는 아이들을 보며 최준호가 말했고, 그들은 별 수 없이 김우영이 내놓는 삼겹살을 보았다.
“부위가···베이컨 쪽인 거 같은데?”
살점과 지방덩어리가 섞여 있었는데, 살점이 좀 더 많은 것이 그렇게 보이긴 했다.
빵과 고기가 주식인 그들은 지방을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지방을 잘라내고 살점만 먹거나, 베이컨처럼 기름을 완전히 뺀 걸 먹기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다만 완전히 노릇하게 구워질 정도로 숯불 위에서 제대로 구워졌는지라 냄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후후후. 이거 진짜 맛있다고.”
잘츠부르크에 뛸 때, 최준호와 양희찬과 함께 한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끄집어 낸 엘링이 빠르게 포크질을 했다.
“···역시!”
엘링의 탄성에 끌린 선수들이 하나둘씩 포크질을 시작했다.
“으음. 응?”
“어?”
“오오?”
“베이컨에서 이런 맛이?”
숯불이 바싹 구워져 기름기는 쫙 빠지고, 식당에서 가져온 특제 소스를 살짝 발라서 고기향을 한껏 돋웠기 때문에 한 번 맛본 선수들은 반사적으로 포크질을 시작했다.
“···신기하네.”
“의외로 한국의 음식은 굉장히 우수한 편이야. 있잖아, 한국말로 가족을 식구라고 하잖아.”
“그러지.”
“왜 식구인지 알아?”
“글세.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한자어인데, 먹는 입이라는 뜻이거든. 같이 식사를 하기 때문에 친밀감이 유지되는 거야.”
“······”
“이렇게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잘 살려야 해. 그래야 팀에 적응이 더 빨라지거든. 적응이 빨라져야 네 실력을 보여줄 수 있고, 그래야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어.”
김우영은 최준호를 보며 감탄사를 살짝 흘렸다.
‘정말 나랑 동갑이 맞을까? 이 녀석?’
**
바츠케 회장과 팀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못한 마르코는 르네 마리치의 전화를 받았다.
– 내가 혹시 방해한 거 아니야?
– 방해는 이미 충분히 받았어. 무슨 일이야?
– 초이가 데려온 사람이 하나 있는데··· 리 라고. 자네가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아. 아, 말은 잘 안 통하긴 했지만··· 알잖아? 축구 자체가 세계 공용어라는 거. 축구에 대한 지식 수준이 장난이 아니야. 우리 팀에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르네 마리치는 웬만하면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띄워주는 법이 없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대단한(?) 사람이라고 볼 수밖에.
–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지.
– 아, 그리고··· 나중에 한우라는 거 먹어봐.
– 하안우?
– 내 뇌를 고기에 말아두었어.
– 어? 무슨 말이야?
– 미친 소리 같지만, 그걸 상상하면 그런 말 밖에 나오질 않아.
– 설마 술 먹은 거야?
– 고기에 취해버렸지.
– 이봐. 제정신이지?
– 그럼 나중에 우리 한국에 가서 프리시즌을 보내는 건 어떨까? 제주도라고 좋은 곳이 있대.
르네 마리치와 간단한 대화를 끝낸 마르코는 차량을 몰고 집으로 향하면서 다음 경기에 대해 생각했다.
18/19 챔피언스 리그 3라운드 경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양강 구도였던 라 리가에 침입한 새 도전자.
그들은 레알 마드리드를 제치고 2년 연속 라리가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4-4-2 시스템에 강력한 전방 압박을 무기로 삼는 알레띠.
15/16 시즌부터 라 리가에서 최소 실점을 기록하고 있는 짠물 수비의 팀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요새 엄청난 폼을 보여주고 있는 얀 오블락.’
골키퍼가 미쳐 날뛰는 날은 그 어떤 팀도 지는게 힘들었다.
일단 골을 먹지 않으니까.
빡빡한 짠물 수비를 하지만 그들의 약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득점이 아니라 실점을 하게 되면, 미드필더 진이 쉽게 흔들린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친 폼을 보여주는 얀 오블락을 상대로 또 득점을 하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
더군다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홈에서 10경기 8승 2무의 무시무시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안방에서 그들을 꺾지 못하면 자칫했다간 챔피언스 리그에서 조별 예선에서 떨어지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질 것 같진 않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공격은 분명 위협적이었다.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영웅 그리즈만과 스피드가 좋은 리베로 라인에서 나오는 여러 득점 루트 때문에.
하지만 확고한 포메이션이 없는 수비라인은 밀집 방어를 일관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최준호의 정확도 높은 플레이가 분명 먹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핵심은 공격하는 최준호와 그를 막아야 하는 아틀레티코의 중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