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4화(114/184)
114화 낭만에 대하여(1)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2011년에 부임한 후 지금까지 똑같은 팀을 맡고 있었다.
시메오네가 오기 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자동문>이라는 별명이 달릴 정도로 수비가 형편이 없었지만, 디에고 온 뒤로는 라리가에서 득점하기 가장 힘든 팀이 되었다.
“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해볼 만한 팀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3경기를 봤을 때 절대로 해볼 만한 팀이 아니다.”
자칫해서 2위로 밀렸다간 요새 세리라 A에서 놀라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유벤투스와 원치 않은 싸움을 할 것 같았다.
하필이면 아틀레티코를 상대로 가장 많은 골을 넣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굉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 다음 경기에는 영혼까지 담아야 한다.”
외모를 딱 보면 어디 조직 폭력배 두목 같은 이미지를 가졌지만, 경기장 내외로 많은 사고를 치고 다니기로 유명한 디에고 코스타와 원만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아서 덕장이라고 평가되곤 했다.
물론 시메오네의 기가 더 강했을 수도 있지만.
“모든 팀이 다 똑같이 생각하겠지만, 도르트문트의 21번의 발끝에서 좋은 패스가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하고, 9번의 득점력을 봉쇄해야 한다. 11번을 달고 있는 마르코 로이스와 7번을 달고 있는 제이든 산초 역시 우리의 숨통을 충분히 끊어 놓을 수 있다.”
마르코 로이스는 주장으로서 매 시즌 자신의 역할 이상을 해주고 있었고, 도르트문트의 신예 19살의 제이든 산초는 엘링 홀란드가 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할 때 맹활약하면서 국가대표에 차출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주눅 들을 필요는 없다. 너희들은 세계 최고의 클럽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이번 시즌 지지 않았으니까. 그들을 상대한다는 마음으로 이번 경기에 임해야 한다.”
원정이라는 불리함이 있지만, 시메오네는 경기하기도 전에 선수들이 주눅이 드는 걸 막고 싶었다.
“그들과 우리의 차이점이 뭔지 아나?”
선수들의 시선이 시메오네에게 향했다.
선수단 모두가 존경하는 감독이었기에, 그들의 귀는 활짝 열렸다.
“도르트문트가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 대형 클럽으로 가기를 원하는 선수들을 모아놨다면, 우리는 팀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진정한 축구 클럽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희생을 구단과 감독인 내가 알아준다는 것이다.”
갈라티코의 정책에 의하여 세계 최고의 선수만 모아놓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승리, 리오넬 메시의 FC 바르셀로나를 상대하여 무승부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내가 한 발이라도 더 뛴다> 라는 선수들의 각오 때문이긴 했다.
“이제 가서 적의 문을 부수고 승리를 가져오자!”
**
“···어쩌면 힘겨운 싸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예상외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팀입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경기 전날 최준호는 이동민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상외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면 이유가 있나요?”
“네. 그들은 도르트문트만큼이나 선수들의 뎁스가 좋지를 않습니다. 주전 선수들에 의존하는 팀이죠.”
“그렇긴 하죠.”
“최근 5경기는 3~4일 간격으로 치러졌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리그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팀들과 혈전을 벌였죠. 문제는 그 경기 모두 로테이션이 없었다는 겁니다.”
“주전들의 체력적인 문제가 생기겠군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고질적인 문제이긴 하죠. 하지만, 정신적인 무장이 뛰어난 팀이라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력을 120% 보여줄 겁니다.”
“결국 우리가 선취골을 넣게 된다면 그런 정신적 무장을 해제할 수 있다는 뜻이네요.”
최준호 정도의 나이대의 선수라면 경기장에서 내가 어떻게 돋보일지 신경을 쓸 텐데, 그의 시선은 전체 경기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과 흡사 유사했다.
“···마르코 로제 감독도 그런 말을 했어요. 선취골을 넣는다면 경기가 우리에게 아주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고요.”
이동민은 최준호를 보며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그렇군요. 세계 최고의 구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니 누구나 예측했을 겁니다.”
이동민은 최준호와 대화 중에 휠체어를 타고 올라온 개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많은 축구 경기를 보고 분석하다 보니 잠시 생각이 딴 길로 센 적이 있습니다.”
최준호는 궁금한 표정으로 이동민을 보았다.
“세상의 축구선수들을 세 부류 정도로 나눌 수 있더군요. 개미형 축구선수, 거미형 축구선수, 꿀벌 형 축구선수.”
“어째 다 비슷해 보이는데요?”
“다 곤충이라는 건 분명하죠. 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개미는 길을 가다가 눈앞에 걸린 먹이를 먹습니다. 대다수 축구선수는 오는 공을 받고 눈앞에 보이는 선수들에게 공을 주죠.”
최준호가 흥미로운 눈빛을 하였다.
“거미는 거미줄이라는 시스템을 만들어서 거기에 걸린 먹이를 먹습니다. 팀의 에이스들은 선수들과 패스나 움직임에 대한 패턴으로 시스템을 만들어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죠. 최준호 선수도 그중에 속하는 것이고요.”
“오호? 그래요? 그러면 꿀벌 형 축구선수는 뭐죠?”
“꿀벌은 개미처럼 눈앞의 먹이를 찾기도 하고, 나름의 시스템으로 다른 꿀벌들을 불러와 먹이를 같이 수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동민은 아직 이런 유형의 선수를 보지는 못했다.
뛰어난 실력으로 한 팀에서 압도적으로 빛이 나는 선수들은 많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들.
하지만 한 선수로 인해서 팀의 여러 선수가 빛나는 경우는 거의 보질 못했다.
“꿀벌이 지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꽃이 창조된다는 겁니다. 한 선수로 인해서 또 다른 선수가 개화되는 법이죠. 그런 선수가 있다면 아마 모든 사람이 첫손가락에 꼽는 위대한 선수가 아닐까 싶군요.”
그 말에 잠시 멍하게 이동민을 바라보는 최준호.
“며칠 전 파티에서 대화를 나눠보니 많은 사람이 엘링 홀란드라는 선수에 대해 혼동하고 있더군요.”
“···그래요?”
“그는 매우 섬세한 터치를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얼굴과 체격 때문에 묻히는 것 같은데 말이죠.”
“그 이야기는···”
“그에게 침투와 골잡이 역할만 부여해서 그렇지, 플레이 메이킹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이동민은 최준호를 보며 말을 이었다.
“최준호 선수라면 그 능력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는 꽤 치명상이 되겠죠.”
우니온 베를린과의 경기에서 분명 엘링 홀란드는 상대 수비를 교란시키고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주긴 했었다.
“팀을 승리로 이끌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이용해야죠.”
경기만 들어가면 어떻게든 이기려는 투지가 매력적인 최준호였고, 승리에 대한 탐욕은 늘 끝이 없었다.
“맞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해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무언가요?”
이동민이 환하게 웃었다.
“오늘 아침에 도르트문트 구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절 전술 분석관으로 임명하고 싶다는군요.”
**
2018년 10월 24일.
챔피언스 리그 A조 조별 리그 3라운드
BVB 도르트문트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경기장 : 지그날 이두나 파크
좌석 : 56,000석
입석 : 25,000석
81,000명의 관중이 가득 찬 지그날 이두나 파크는 경기 시작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특히 쥐트리뷔네(Die Südtribüne)로 알려진 남쪽 스탠드는 25,000명이 입석으로 있는 좌석으로 도르트문트의 광팬들이 거즌 세 시간 가까이 서서 응원하는 곳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응원석이기도 했고, 여기서 나오는 기운 때문에 원정해 오는 팀들이 제대로 경기력을 펼치지 못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25,000명이 응원가에 맞춰서 동시에 펄쩍펄쩍 뛸 때마다, 쿵쾅거리는 울림소리가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심장으로 새어 들어갔다.
“어휴 미치겠네.”
맨시티의 유스 출신인 제이든 산초가 심장을 진동하는 격한 울림에 흥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홈 경기 때마다 이런 울림을 느낀 주장 마르코 로이스와 부주장 피슈체크는 마치 구도자의 모습으로 눈을 감고 가만히 받아들였다.
저번 경기에서 디알로가 가벼운 부상을 당해 대신 선발 출장하게 된 김우영은 굉장히 긴장한 모습으로 자신의 라커문에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하키미와 몇 명의 선수들은 귓속에 이어폰을 끼고 이 울림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고, 엘링 홀란드는 동공이 축소된 채로 요가 자세를 취하고는 멍하게 천장을 보고 있었다.
‘마치 전쟁을 나서기 전의 상황 같네.’
아마도 경기장을 증축했을 때 이런 분위기를 일부러 내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최준호는 길게 호흡하며 점점 빨라지려는 심장을 늦추고는 엘링 홀란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야.”
최준호가 귀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지르자, 엘링 홀란드의 동공이 천천히 확장되었다.
“왜?”
“너 있잖아. 메시가 되고 싶어 호날두가 되고 싶어?”
엘링 홀란드는 뜬금없는 질문에 최준호를 멍하게 쳐다보았다.
“그게 지금 나올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축구장에서 축구 이야기하는 거잖아. 대답해봐.”
“당연히 메시가 되고 싶지.”
“왜?”
“잘하잖아.”
“호날두는?”
“걔도 잘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메시를 으뜸으로 생각하지.”
“둘 다 장난이 아닌데 왜 메시를 더 쳐줄까?”
엘링 홀란드는 머리를 긁적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르겠는데?”
“메시가 골도 잘 넣지만, 어시스트도 잘해서 그래.”
“엉? 어시스트?”
“그래. 골을 넣을 수 있게 해주니까 더 좋아하는 거야. 그의 어시스트를 받은 선수들이 표를 더 주니까.”
엘링 홀란드가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흐음. 말 되는데?”
“근데 넌 어시스트 왜 안 해?”
“뭐?”
“너 이번 시즌 7골 1어시스트잖아.”
“으음.”
“메시가 되고 싶지만, 사실은 호날두에 가깝잖아?”
“······”
“메시는 내가 할게, 넌 호날두 해.”
순간 엘링 홀란드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내가 피지컬이 좋고, 골 결정력이 좋아서 감독들이 자꾸 골게터 역할을 줘서 그렇지. 나 너만큼 할 수 있거든?”
“그래? 그럼 오늘 경기에서 보여줄래?”
“물론이지. 나도 너만큼 할 수 있다는 걸 제대로 보여주지.”
**
17/18 시즌 종료 후 비야레알에서 2천만 유로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한 로드리는 놀라운 활약을 벌이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핵심 주전 선수가 되었다.
191cm에 82kg의 거구.
수비면 수비, 패스면 패스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그는 오늘 경기 선발 명단에 빠진 것에 대해서 불만이 없을 수가 없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는 관계로 수많은 빅클럽에서 언론을 통해 연일 러브콜을 하는 상황이었다.
– 다음 시즌에 우리 팀에 남아 있을 거라는 약속한다면 출전 시간을 보장해 주지.
하지만 로드리는 그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토마스 파티가 선발 출전을 하게 되었다.
<선수 개인보다는 팀을 위해서> 라는 명확한 슬로건을 건 팀이었으니까.
토마스 파티는 수비 실력이 뛰어나지만, 흥분을 참지 못해 카드를 매우 많이 받는 선수였다.
패스 능력에 대해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드리블 돌파나 창의적인 패스는 거의 시도하지 않는 선수였다.
나이에 비해 엄청나게 영리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최준호와 붙는다면 아주 곤란한 상황을 겪을 게 분명해 보였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지금이라도 할 수 있어.”
시그니처인 검은색 정장 바지, 검은색 와이셔츠, 검은색 넥타이를 맨 시메오네의 질문에 로드리는 팔짱을 끼고는 그의 시선을 회피하였다.
‘난 프로고, 내 실력에 맞는 더 좋은 계약을 맺을 자격이 있어.’
시메오네는 로드리가 답변이 없자 시선을 거두었다.
이번 시즌 5년짜리 계약을 맺은 선수가 다음 시즌에 떠나려고 하는 일들··· 축구판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낭만이 사라진 그라운드야···’
선발 선수들이 엄청나게 시끄러운 경기장 위에서 늘어서는 모습을 보고는 천천히 터치라인 근처로 향했다.
그는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의자에 앉아 있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계속 경기를 뛰는 선수들과 소통하고, 지시하고, 응원하였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소개될 때마다 쥐트리뷔네에선 대형 카드 섹션이 일어났다.
선수들의 번호가 바뀌었고, 정말 눈앞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소음이 쏟아졌다.
하지만 시메오네는 손뼉을 치며 더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기죽지 마! 고개 숙이지 마! 당당하게 서 있어!”
얼마 후 최준호가 소개되자, 더 커다란 함성이 쏟아졌다.
시메오네의 눈도 그에게 향했고.
17살에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
심상치 않은 상황이었고, 어쩌면 새로운 전설이 될 수 있는 선수였다.
당연하지만 그에게도 수많은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을 것이다.
시메오네는 최준호를 보며 생각했다.
‘로드리에게 없는 낭만이 네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