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5화(115/184)
115화 낭만에 대하여(2)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점유율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는 팀이 아니었다.
그의 비해서 도르트문트는 강력한 전방 압박을 하며 점유율을 높이는 팀이었다.
초반 도르트문트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65%가 넘어가는 점유율을 가져가며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 진영에서 도는 공은 쉽사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2줄 수비를 뚫지 못하고 있었다.
촘촘하게 만든 수비 그물에 얽힌 도르트문트의 공격수들은 쉽사리 공을 받을 수도 없었고, 침투도 쉽지가 않았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력 앞에서 슈팅조차 뽑아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다.
도르트문트의 게겐 프레싱 때문에 공을 뺏어도 역공이 힘들었고, 결국 지공으로 가야만 했다.
문제는 공을 받아줘야 할 미드필더 토마스 파티가 최준호에게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움직임을 계속 방해하는 최준호의 수비 때문에 동료가 주는 패스를 자주 놓치자, 그는 결국 성질이 폭발하였다.
“이거 파울이잖아!”
심판이 입조심하라고 토마스 파티에게 눈으로 경고를 주는 사이 루즈 볼을 두고 마르코 로이스와 사울 니게스가 다투다가 결국 마르코 로이스가 볼을 차지하였다.
토마스 파티가 경기에 집중을 못하고 심판을 노려보는 사이에 최준호는 그를 피해 공간으로 뛰어들었고, 마르코 로이스는 최준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굉장한 스루패스를 연결했다.
토마스 파티가 식겁한 표정으로 뒤쫓았지만, 최준호는 조금의 주저 없이 골대를 스캔하고는 슈팅을 날렸다.
– 뻥!
그러나 얀 오블락은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으로 골대 왼쪽 구석으로 예리하게 휘어들어가는 슈팅을 걷어내 버렸다.
최준호는 머리를 두 손을 잡고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골키퍼를 쳐다보았다.
‘···저걸 막네?’
선방능력과 안정성 공중볼 처리를 으뜸으로 삼는 클래식 골키퍼 중에서 얀 오블락은 단연 세계 최고의 선수였다.
지금까지의 그의 페널티킥 선방율이 34.6% 되었는데, 일단 선방을 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았다.
그래서 얀 오블락이의 이름을 가져와 난공블락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였다.
대부분의 프로선수들은 몇 번 부딪혀 보면 내가 저 선수를 막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를 보통 가늠하는데, 토마스 파티는 15분 정도 몸을 섞고서는 최준호가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선수라는 걸 알아차렸다.
주심의 눈을 피해서 야비하게 구는 건 기본이었고, 몸싸움에서도 자신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공을 다루는 발기술이나 오프더볼 움직임은 월등해서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방금처럼 위험한 상황을 주어야 했다.
이번 시즌 영입된 로드리 때문에 한동안 벤치 신세였다가 오늘 기회를 잡나 싶었는데, 이게 썪은 동앗줄임이 분명했다.
“토마스 정신 안차려!”
얀 오블락이 소리를 질러대자 토마스는 이빨을 질끈 물었다.
시메오네 감독은 로테이션을 그렇게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이번 경기 뭔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한 동안은 선발 명단에 드는 게 어려울 것이다.
도르트문트의 코너킥이 무산되어 공격권이 아틀레티크 마드리드에게 오자 토마스 파티는 최준호에게 붙었다.
“너네 어머니 뭐하시니?”
가나 출신에 유소년 때부터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살았지만, 토마스 파티의 궁극적인 목표는 EPL이었다.
라리가는 일단 발기술이 좋아야 살아남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발기술이 올라오진 않았고, 차라리 피지컬을 중요시하는 EPL이 자신의 성향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어도 열심히 공부해두었다.
최준호는 건들거리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토마스 파티를 빤하게 노려보았다.
“뭔데 경기장에서 호구 조사하냐?”
“니 어머니도 미인이냐?”
물론 베테랑 최준호는 토마스 파티가 무슨 생각으로 트래쉬 토크를 시작했는지 대충 눈치 채고 있었다.
“물론이지. 네 어머니는 잘 지내시고?”
“난 미인 좋아하는데. 내가 따먹어도 되겠냐?”
최준호는 그 말에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입술을 삐죽 올렸다.
‘어? 선 넘었네?’
에버튼 시절 최준호는 아스날과의 경기에 출전하면 토마스 파티에 수시로 부딪히곤 했다.
물론 그 때는 지금과 같은 피지컬이 아니었던 터라 매번 놈에게 압도당해서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끌려나가곤 했다.
“내 여친 이름이 뭔지 알아?”
트래쉬 토크는 보통 서로의 질문에 답하지 않는 일방적인 형태였다.
“동생도 있어?”
“사라 벨라거든.”
최준호의 답변에 토마스 파티가 움찔하는 찰나, 최준호는 토마스 파티에게 향하던 패스를 잘라내었다.
‘감히 누구한테 트래쉬 토크를 하고 지랄이야.’
과거에 부족한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사용한 방법 중 하나가 트래쉬 토크였다.
물론 많이 당했고, 많이 주면서 이제는 아무런 감정없이 중얼거릴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토마스 파티가 잘못 건드린 셈이었다.
‘이 새끼가 내 여자친구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지?’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토마스 파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번 휴가 시즌 가나에서 비밀리에 사귀었기 때문에 가족도 친한 팀 동료들도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한순간의 머뭇거림 덕분에 토마스 파티는 공을 빼앗겼고, 거의 본능적으로 최준호를 막기 위해 백태클을 하였다.
점프를 뛰어 피하려다가 파티의 스파이크에 걸린 최준호가 곧바로 나뒹그라졌고, 주심은 여지 없이 파티를 향해 노란 카드를 들어 올렸다.
자기가 먼저 들쑤셔 놓고서 제대로 당한 파티는 당혹스러움과 짜증이 일순간 밀려왔다.
“아니 저 새끼가 파울 할 때는 왜 안 꺼내고, 나한테만 카드를 꺼내는 건데? 눈이 삐었어? 장님이야?”
“뭐? 다시 말해봐?”
주심이 인상을 쓰며 토마스 파티를 노려보자 주장인 디에고 고딘이 얼른 달려와 토마스 파티를 확 밀치고는 주심을 보며 애써 웃었다.
토마스 파티는 팀내에서 가장 많은 카드를 수집하는 선수였다.
수비가 거칠기도 하고, 앞뒤 가리지 않고 충동적으로 사고를 치기도 하고.
“좀 봐줘. 저 친구 성격이 좀 그래.”
디에고 고딘이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겨우 무마하였고, 주심은 토마스 파티를 향해 구두 경고를 하고는 상황을 일단락지었다.
전반 22분.
도르트문트에겐 세 번째 프리킥 찬스였다.
거리는 38m로 상당히 멀었다.
이전의 2번의 찬스에서 최준호가 직접 슈팅을 때렸지만, 얀 오블락에 모두 막혔다.
물론 그의 슈팅력을 생각한다면 이 거리에서 직접 슈팅도 가능한 거리긴 했지만, 오늘 미친 선방쇼를 벌이는 얀 오블락을 생각한다면 멍청한 선택이긴 했다.
최준호는 팀 동료들에게 크로스를 올릴 거라고 신호를 주고는 김우영을 보았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도 김우영의 제공권을 알고 있다는 듯 세 명이 에워싸고 있었다.
‘저긴 힘들겠네.’
엘링 홀란드는 바깥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는데, 타이밍에 맞춰서 뛰어들 생각인 것 같았다.
엘링과 시선이 마주친 최준호는 주심 휘슬에 맞춰서 공을 낮고 강하게 올렸다.
‘역시!’
엘링이 뛰어드는 앞으로 예리하게 깎여 들어가오는 크로스.
하지만 상대편 주장인 디에고 고딘이 강력한 압박으로 자신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했다.
점프는 뛸 수 있겠지만, 제대로 골대를 향해 헤더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엘링 홀란드는 문득 최준호와 나눴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 넌 7골 1도움이야. 호날두 해. 내가 메시를 할테니까.
맡겨진 임무가 골을 넣는 임무였기 때문에 공만 보면 어떻게 골대에 넣을 지만 생각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헤더를 해도 골로 넣기 힘들다는 판단이 들었다.
대신 엘링은 반대편 골대에서 프리가 되어 있는 김우영을 보았다.
공이 날아온 방향을 보고 수비수가 이쪽으로 다 몰린 것이다.
‘내가 메시다!!’
– 툭!
디에고 고딘의 강력한 압박을 견디고 점프를 뛴 엘링은 가까스로 헤더를 하였다.
그리고 그 공은 골대가 아니라 반대편으로 흘러갔다.
헤더 슈팅인 줄 알고 팔을 번쩍 들었던 얀 오블락은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만 공으로 돌렸다.
– 퍽!
김우영이 자신에게 향한 공을 보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들이 밀었고, 엘링 때문에 균형을 잃은 얀 오블락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공은 총알처럼 튀어나가 그물을 흔들어 버렸다.
열리지 않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문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 철렁!
“으아아아아아아!!!”
김우영도 자신이 넣은 골랐는지 멍하게 골대를 보다가 이내 괴성을 지르며 그라운드를 뛰기 시작했다.
“좋았어!”
“맙소사!”
터치라인 근처에 나와 있는 마르코 로제는 넥타이를 펄럭이며 어퍼컷을 날렸고, 시메오네는 머리를 감싸고 무릎을 꿇었다.
얀 오블락은 황당한 표정으로 김우영을 따라가는 엘링 홀란드를 노려보았다.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
1-0.
광란에 찬 도르트문트의 팬들-꿀벌들이 선수들의 의사소통조차 힘들게 할 정도로 엄청난 함성으로 계속 응원을 하였고, 도르트문트는 득점을 발판 삼아 더 강력하게 게겐 프레싱을 하였다.
시메오네 감독은 더 이상 웅크리고 있다가 역습만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깨달았고, 좌우 미드필더들에게 공격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4-2-4 전술로 전환이 되었고, 코케와 앙헬 코레아가 본격적으로 공을 몰며 전방으로 뛰어갔다.
사울 니게스 역시 공격적으로 전진을 하였는데, 토마스 파티는 순간적으로 큰 중압감을 받았다.
이젠 사울의 도움 없이 자신 혼자서 후방 빌드업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전반 38분 경.
“너 몇 살이야?”
“40살?”
“네 얼굴에 25살이라니 말이 안되잖아?”
“그런 얼굴로 여자 친구 사귈 수 있니?”
토마스 파티는 최준호의 주둥이를 주먹으로 후려 패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도대체 몇 개의 언어를 하는지 다양한 랭귀지로 옆에 달라붙어서 귀에 대개 계속 종알종알거렸고, 그 중 몇 가지는 울컥거리게 했다.
“좀 그만 하지?”
“그런 실력으로 EPL 가겠어?”
순간 토마스 파티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유스로 시작해 지금까지 원 클럽 맨이었다.
물론 구단 사정으로 마요르카와 알메리아에 잠시 임대를 가긴 했지만, 팬들은 모두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다.
EPL에 가고 싶다는 건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은 자신 만의 비밀 같은 거였는데.
아무 말이나 씨부렁거리다가 걸렸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순간만은 이성을 잃을 만큼 정신이 살짝 나가버렸다.
“나 간다.”
– 툭.
‘···미친!’
순간 최준호에게 공을 뺐겼다는 걸 인식한 토마스 파티.
“..어딜!”
토마스 파티가 급하게 최준호의 유니폼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최준호가 그 손을 쳐내고는 급가속하기 시작했다.
역습 상황에서 공을 뺏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토마스 파티를 제외한 3명의 미드필더들이 공격적으로 포지션을 잡았기 때문에 최준호에 대한 수비 백업을 들어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센터백들이 공격수들에게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에 최준호의 앞 공간은 완전히 뚫려 있었다.
최준호를 상대하는 대부분의 팀들이 맞이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얀이 막아줄거야.’
‘분명 그럴거야.’
지금까지 최준호의 슈팅을 모두 블락해 낸 얀 오블락이었다.
센터백들이 그렇게 책임을 골키퍼에게 전가하는 사이 최준호는 골대 앞 23미터 앞까지 전진을 한 상황이었다.
엘링 홀란드, 산초, 마르코 로이스 누구 하나 놓치면 안될 위험한 선수들이었고, 이런 상황이 충분이 이해는 갔지만, 모르는 것이 있었다.
최준호의 슈팅 경로를 일부 수비수들이 좁혔기 때문이라는 걸.
지금은 왼발 오른발 인프런트, 아웃프런트 슈팅이 모두 가능할 정도로 완벽하게 열린 상황이었다.
얀 오블락도 다리를 벌리고 몸을 낮추어 공의 궤적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최준호의 선택은 슈팅이 아니라 드리블이었다.
최준호가 볼을 끌고 페널티 에어리어에 들어오자, 공격수들에게 붙어 있던 수비수들이 죄다 최준호에게 달라들었다.
최준호는 그들이 도착하기 전 슈팅을 때리듯 오른발로 스윙을 했다.
– 틱!
골대 왼쪽을 보고 스윙을 한 터라 얀 오블락은 몸을 왼쪽으로 날렸는데, 최준호의 발에 맞은 공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통통 튕겨 굴러갔다.
슈팅 페이크 노룩 패스.
최준호가 슈팅을 때릴 줄 알고 세컨드 기회를 노릴려는 산초가 깜짝 놀라 자신에게 온 공을 잡았다.
하지만 수비수 모두가 속아버린 터라 산초가 공을 터치하고 자세를 잡고 슈팅을 때릴 때까지 아무런 방해가 없었다.
– 철렁!
근거리에서 터진 슈팅이라 얀 오블락도 막을 수가 없었다.
산초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더니 요가 자세를 취했고, 세레머니를 도둑 맞은 엘링이 달려들다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어···뭔데?”
**
두 골 모두 토마스 파티가 최준호에게 공을 뺏기면서 단초를 제공했다는 걸 시메오네는 잘 알고 있었다.
‘저 멍청한 자식! 쓰레기 같은 자식!’
멘탈까지 털렸는지 멍하니 골대만 보고 있는 토마스 파티.
그를 노려보던 시메오네가 벤치로 움직였다.
그가 여기에 오는 건 딱 하나였다.
선수 교체.
“로드리. 준비해.”
토마스 파티가 신나게 털리는 걸 보며 즐기던 로드리는 몸을 일으켰다.
191cm 82kg의 단단한 체구를 자랑하는 그는 고개를 몇 번 좌우로 돌리고 외투를 벗었다.
‘분명 어딘가 있을 텐데.’
맨시티에서 비공식적으로 계속 러브콜을 보내오는 상황이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스카우터가 자신의 경기를 분석하고 있을 것이고.
더 좋은 계약을 끄집어 내기 위해서는 여기서 톡톡히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전 21번 확실히 잠가버려.”
“염려 말아. 앞으로 나랑 상대할 생각만 해도 그라운드에 똥을 질질 싸게 만들어 줄테니까.”
로드리는 경기를 지켜보면서 최준호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렇다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