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7화(117/184)
117화 낭만에 대하여(4)
어디서든 축구만 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어릴 적 우영이의 생각은 최준호가 월드컵에서 활약하는 걸 보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훈련시간에 배우는 것들을 최대한 습득하려고 하고, 코치들이 이야기해주는 나쁜 버릇들을 없애려고 했다.
디에고 코스타라는 월드클래스의 스트라이커와 맞붙어서 2실점이나 했다는 생각에 벗어나지 못할 때 최준호가 조언을 해주었고.
지나간 일을 후회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건 아는데, 앞만 보며 생각을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이렇게 손을 썼던가?’
물론 어설프게 손을 쓰면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릴 수도 있었다.
다만.
무언가를 안다는 건, 인식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우영의 눈에 디에고 코스타의 나쁜 손이 슬그머니 올라오는 게 보였다.
디에고가 자신의 거대한 등판으로 심판의 시야를 가린 채 점프를 제대로 못 하도록 유니폼을 강하게 잡아 끌 것이 분명했다.
순간 김우영은 날아오는 공을 향해 수직으로 점프를 뛰는 것이 아니라 왼쪽 방향으로 점프를 뛰었다.
그와 동시에 디에고의 손이 김우영의 유니폼을 잡아당겼고, 김우영은 목이 죄어 오는 느낌과 함께 몸의 균형이 뒤로 넘어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김우영은 저항하지 않고, 몸에 힘을 탁 놓았고, 김우영의 거대한 몸은 뒤로 떨어졌다.
디에고의 방해로 그의 머리에 맞지 않은 공은 얀 오블락이 가볍게 잡아냈다.
다들 그렇게 끝이라고 생각하던 순간.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 삑!!!
몇 명은 경기 종료 휘슬이라고 생각했지만, 심판은 바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대를 찍었다.
그리고 또 꺼내는 노란 카드.
디에고 코스타에게 향했고, 디에고는 억울한 표정으로 <내가 왜?> 라고 따졌다.
“난 장님이 아니야.”
김우영이 왼쪽으로 점프를 뛰면서 디에고 코스타는 자신의 반칙 장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우영의 유니폼이 누군가에 의해 당겨져서 균형까지 잃을 정도가 되었다는 걸 주심이 정확하게 본 것이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모두 달려와 주심에게 항의할 때, 최준호는 얼른 김우영에게 달려가서 손을 내밀었다.
“제법인데?”
똑같은 걸 봐도 그걸 적용하는 것은 사람이 모두 같을 수는 없었다.
최준호라면 손을 슬그머니 내밀어서 앞섶을 잡고 점프를 뛰지 못하게 했겠지만, 김우영은 그런 방법 대신에 디에고가 파울을 하는 장면을 모두 볼 수 있게 엉뚱한 방향으로 점프를 한 것이었다.
“얘기했잖아? 4년 후에 나도 월드컵 간다.”
김우영이 최준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럴 때는 엄살 좀 부려도 돼.”
“아까의 누군가처럼 안아 들려서 터치라인에 버림을 당하는 일은 당하고 싶지 않거든.”
“크크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홈에서 치루는 경기는 솔직히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원정팀의 무덤인 곳이었고.
그래서 홈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했다.
그런 건 축구 광팬들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방금 얻은 페널티킥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페널티킥을 생산한 선수들을 하나의 단어로 외치기 시작했다.
– 꼬레아! 꼬레아! 꼬레아!
열광의 도가니가 된 스타디움.
페널티킥 제1 키커로 지정된 마르코 로이스는 오늘 미친 선방을 하는 얀 오블락을 슬쩍 보았다.
물론 이런 치명적인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킨다면 영웅이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마르코 로이스는 자신이 킥을 차면 얀 오블락에게 막힐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혹시나 이 킥이 실패하고 훗날 도르트문트가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에서 탈락한다면 그 비난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있었다.
마르코 로이스로서는 원치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평소 훈련할 때 눈여겨 보았던 선수에게 다가갔다.
“초이.”
“네. 주장.”
“페널티킥 네가 찰래?”
홈팬들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최준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심이 이미 확신을 가지고 봤기 때문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선수들이 단체로 항의해도 번복은 되지 않았다.
“다들 그만!”
경고가 여러 장 나올 상황이 생기자 시메오네 감독이 선수들을 모두 다 물리고 직접 자신이 고함을 지르며 항의를 했다.
당연하지만 감독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 무시무시한 얼굴로 겁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심은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서다가 황급하게 레드카드를 꺼내 들었다.
“젠장! 똑바로 심판 보라고!”
시메오네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지르다가 몸을 돌렸다.
하지만 아까처럼 잔뜩 상기된 표정은 아니었다.
매우 차분한 얼굴이었다.
‘망할 디에고 새끼. 내가 그 짓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
순간 시메오네의 눈에 공과 상관없이 뛴 김우영의 모습이 걸렸다.
디에고의 영리한 움직임으로 후반 실점을 먹지 않았다면, 아주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수비수였다.
몸싸움 피하지 않고, 파이팅 넘치고, 제공권 아주 훌륭하고.
신장에 비해 스피드도 좋은 편.
거기에 18살.
‘반칙하는 상황을 일부러 보여주려고 뛴 거야. 아주 영리한 친구네.’
이 경기를 잡으면 아주 손쉽게 16강을 결정짓고, 리그에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었지만, 설사 여기서 진다고 해도 16강 진출을 놓치진 않을 것 같았다.
‘마침 제공권 좋은 센터백이 필요했으니까. 관찰할 필요가 있겠어.’
시메오네의 퇴장으로 흥분한 선수들의 저항은 금방 가라앉았다.
여러 명 경고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을 막고 퇴장한 시메오네의 뒷모습을 보던 마르코 로제는 긴장한 표정으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골대를 보았다.
그는 시메오네 같은 여유가 없었다.
‘이 경기 무조건 잡아야 해.’
마르코 로제의 마음 같아서는 당장 페널티 키커를 마르코 로이스가 아니라 최준호로 지정하고 싶지만, 팀웍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또 그럴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마르코 로이스가 스스로 페널티킥을 양보하자 마르코 로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최준호는 모든 것을 수준급으로 하였지만, 킥 만큼은 비교 불가능한 세계 넘버 원이었으니까.
공을 들고 페널티킥 지점에 놓은 최준호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페널티킥을 차기 전의 시그니처 처럼 된 행동이었지만,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이었다.
– 어머니는 뭐 하시니?
오늘 토마스 파티가 꺼낸 화두가 머리에 걸렸다.
기억나지 않는 존재였고, 최준호는 그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천사를 머릿속에 그렸다.
‘그렇게 생기셨겠지?’
그 역시 이 킥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긴장된 표정은 이내 평온하게 바뀌었고, 최준호는 고개를 내려서 얀 오블락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저 자식이 갑자기 돌았나?’
최준호의 미소를 본 얀 오블락은 긴장을 더 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도르트문트의 공격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다음 원정에서 만나도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오늘 최준호의 슈팅을 네 번이나 선방을 하지 않았다면 4점 차 이상으로 점수가 벌어져 끌려갔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난 얀 오블락이다. 막는다.’
세계 최고의 선방 능력과는 별개로 별 인기가 없는 골키퍼 얀 오블락은 오늘 이 킥을 막아내고 세간의 관심을 얻어낼 생각이었다.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무게 중심을 낮춘 안 오블락.
이어지는 주심의 휘슬 소리.
최준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양발에 엄청난 킥을 장착한 최준호를 막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가 실축하는 것일 뿐.
최준호는 심플하게 오른발을 디뎠고, 얀 오블락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느리게 왼발로 스윙을 하였다.
얀 오블락이 그 스윙을 보고 날아올 공의 경로를 예측해서 몸을 날렸지만, 최준호는 스윙을 하려던 발을 다시 디뎌 버렸다.
‘아차! 양발!’
그리고는 오른발을 가볍게 휘둘러 얀 오블락이 몸을 날린 반대 방향으로 가볍게 공을 툭 밀어버렸다.
– 철렁!
어처구니없이···
농락당해 버린 얀 오블락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잔디밭에 얼굴을 묻어 버렸다.
“우아아아아!!!”
“초이!!!초이!!!초이!!!”
순간 모든 도르문트 팬들이 일어나 환호성을 터트렸고, 쥐트리뷔제에서는 <21. Choi> 라는 카드 섹션과 함께 새로운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8만 명이 넘는 인원이 거의 동시에 펄쩍 뛰면서 소리를 지르자 어마어마한 진동과 소음이 그라운드를 뒤덮었다.
김우영은 최준호에게 달려들어 그를 목마(?)를 태우는 괴력을 보여주었고, 최준호는 양팔을 허공에 뿌리면서 기쁨을 함께했다.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주어졌던 20초를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경기가 끝이 났다.
3-2
도르트문트의 값진 승리.
경기 MOM은 1골 1도움에 소파스코어 8.6점을 얻은 최준호였다.
후반 로드리에게 먹혔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건 눈에 띌만한 공격을 못 했을 뿐이지, 미드필더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제대로 해냈다.
**
소속 언론사에게 경기 관련 기사를 보낸 양창명은 <새벽의축구도사> 채널을 켰다.
이제는 구독자 40만 명이 넘는 대형 채널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함께 하고 싶다는 이메일이 가득했다.
유튜버로 벌어들이는 소득은 스포츠 기자를 하는 것보다 몇 배나 높아졌지만, 스포츠 기자를 놓을 수는 없었다.
기자라는 타이틀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이점을 포기할 수 없었으니까.
채널을 열자마자 7천 명의 가까운 실시간 구독자가 들어왔다.
“최근에 레알 마드리드를 잡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입니다. 이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심심찮게 우승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지요. 그런 팀을 상대로 최준호 선수는 1골 1도움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패스 성공률도 90%를 유지했습니다. 많은 선수들이 이적하면서 문제로 지적된 도르트문트의 창의성을 완벽하게 메꾸었습니다. 도르트문트 현지 팬들의 댓글을 보면, 최준호 선수를 핵심 선수로 분류하고 있더군요. 그만큼 오늘 아주 좋은 경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준호와 똑같은 점수를 받은 얀 오블락이 아니었다면, 최준호는 오늘 더 많은 골을 넣었을 것이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오늘 MVP는 최준호 선수보다는 얀 오블락 선수를 꼽고 싶습니다. 그 선수가 아니었다면 오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4점 차 이상으로 대패를 했었을 테니까요.
– 개인적으로 쥔장말에 동감. 얀 오블락 오늘 정말 미쳤음. 마지막에 농락당한 거 빼면.
– 웬만한 상황에서는 골로 연결되는 슈팅을 다 쳐내는데, 머리카락을 다 쥐어뜯어 버리고 싶었네요.
– 그런데 로드리에게 잡아먹힌 것 아닌가요? 후반전에 카메라에 거의 잡히지 않던데.
– 맞아.
– 너그동생 막을 천적이 생긴거야.
– 로드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는 아닐 텐데.
로드리와 최준호의 이야기가 나왔고, 양창명은 잠시 댓글을 지켜보았다.
···
FD_Idl : 처음에는 긴장을 탔는지 제대로 못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로드리의 강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패스 성공 확률을 높여가던데요? 그리고 오히려 최준호 선수가 로드리가 제대로 된 패스를 못 하도록 수비하지 않았나요?
···
양창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하게 찝어내는 댓글이 있었는데 아주 익숙한 아이디였다. 자신도 모르는 클럽 사정도 이야기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이상한 소문도 들고나오고.
‘누구지?’
한 번 얼굴을 보고 싶다는 뜬금없이 드는 생각을 일단 접어둔 양창명은 로드리와 최준호의 경기 상황을 전술판을 가지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로드리는 센터백으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수비에 능한 선수지만, 발밑이 굉장히 좋습니다. 좌우 전환 패스에 전방으로 한 방에 찔러주는 패스가 매우 좋죠. 하지만 로드리 선수 역시 최준호 선수의 압박과 수비에 막혀 자신의 장기를 전혀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물론 최준호 선수 역시 로드리 선수의 압박에 의해서 토마스 파티를 상대할 때 만큼의 클라스를 보여주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후반들어 로드리의 강력한 압박을 두어 차례 탈압박 하면서 좋은 기회로 만들기도 하였죠. 제 생각에는 최준호 선수가 로드리 선수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합니다.”
– 챔피언스 리그 A 조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제 혼돈이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AS 로마, 도르트문트가 모두 2승 1패이니까요. 다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1등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남은 경기가 모두 홈 경기니까요. 사흘에 한 번씩 경기를 치뤄야 하는 상황에서 비행기를 탔냐 안 탔냐는 선수의 컨디션에 엄청난 영향을 줍니다. 그렇게 볼 때 도르트문트가 16강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원정에서 AS 로마를 반드시 꺾어야만 합니다.”
– 김우영 선수는 어떤가요?
**
얼음찜질기에서 피로를 회복한 최준호는 졸음이 설설 밀려오고 기분이 나른나른할 때 노트북을 열고 유튜버를 켰다.
양창명의 채널에 접속해서 입방아를 찧고 있을 때, 숙소의 문이 덜컥 열렸다.
“뭐하냐?”
기분이 좋아 보이는 김우영이었다.
“···야 노크는 하고 들어와.”
“문을 잠가놓던지.”
“그거 망가졌다니까.”
“···유튜브 보는 거야? 어, 양 기자님이네?”
“야야···”
김우영은 최준호의 노트북을 가져와서 귀를 기울였다.
“내 이야기 하네? 되게 신기하다?”
“어어···그렇지 이제 네 휴대폰으로 볼래?”
“아니. 인사는 해야지.”
김우영은 노트북을 들고 일어나서 빠르게 타자를 치기 시작했고, 최준호는 다급한 표정으로 김우영의 몸에 매달렸다.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