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8)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8화(118/184)
118화 로마 원정전(1)
– 도르트문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접전 이후 리그 2연승 순항 중!
– 도르트문트 화려한 공격력의 부활! 최근 2경기 9득점!
– 마르코 로이스 <떠난 자들의 그림자가 그립지 않다>
– 베르더 브레멘과 슈투트가르트를 원정에서 부순 도르트문트 프랑크푸르트에게 일격을 당한 바이에른 뮌헨의 뒤를 바짝 쫓다!
– 원더보이 최준호 리그 4경기 3골 6도움! 노르웨이 특급 유망주 엘링 홀란드 리그 8경기 9골로 득점왕 레이스 시작.
– 최준호 10월의 유망주 선정! 엘링 홀란드 10월의 선수! 마르코 로제 10월의 감독!
– 한스 요하임 바츠케 회장 <초이에게서 메시의 그림자가 보여!>
최현식은 언론에서 쏟아지는 뉴스들을 스크랩해서 앨범으로 만들었다.
아내의 기일에 맞춰서 그것들을 무덤 옆에 정갈하게 배치했다.
“아쉽다. 우리 아들 녀석이 이렇게 잘 나가는 걸 직접 볼 수 없다니.”
그녀가 하늘로 가고 나서 5년간은 여기만 오면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지만, 언젠가부터는 담담해졌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 오빠. 우리 복덩이 태어나면 새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근데 아이뿐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새처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해.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면서, 새로부터 내 손을 보호하는 일이거든.
부모도 없이 고아원을 전전긍긍하며 운동하느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최현식은 젊었을 적에 좀 과격하고 무식한 편이었다.
– 육아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야. 그러니까 앞으로 우린 주문을 외어야 해.
– 무슨?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나는 너를 사랑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그것이 너와 나의 운명이다.”
최현식은 아내가 알려준 주문을 웅얼거렸다.
그가 준호를 키우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과 난감과 다급한 일들이 있었지만, 아내가 알려준 주문을 외우며 어떻게든 버텨 왔다.
“당신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 오빠 잘 들어. 나한테 다짐해. 절대 죽지 않겠다고. 우리 준호가 다 클 때까지 절대 죽지 않겠다고. 한 명의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절대로 죽지 않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숨이 넘어가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었다.
“아직 18살인데 너무 훌쩍 커버린 느낌이야. 자기의 소원을 하늘이 들었나 봐.”
최현식은 그녀가 평소에 좋아했던 오렌지 주스를 두어 번 따라주고는 가지고 온 것을 챙겨서 일어났다.
“그리고 말이야. 난 죽을 때까지 당신의 추억만 안고 살 것 같아.”
**
언론에서 엄청나게 떠드는 것과는 다르게 최준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베르더 브레멘 전에서 1골 2어시스트, 슈투트가르트 전에서 2어시스트를 했지만, 경기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그렇네요. 전체적인 지표가 떨어졌어요.”
이동민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최준호 선수의 최근 경기 지표들을 분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패스 성공률이 이전 경기들에 비교하여 3.6%가 떨어졌고, 돌파 성공률도 2.9%, 탈압박 성공률은 5.5%나 떨어졌네요. 중거리 슈팅 정확도는 4.2%나 떨어졌어요.”
신계에 있다는 리오넬 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선수가 정말 놀라운 것은 세계 최고의 활약을 10년이 넘도록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한 시즌 엄청난 활약을 하고서 그 다음 시즌부터 죽을 쓰다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사라지는 유망주는 엄청나게 많았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분석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높은 연봉을 받는 뛰어난 분석가들이 선수 하나를 낱낱이 해체하는데, 작은 습관 하나만 발견돼도 그 시즌은 엉망이 될 수가 있었다.
10살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10시간이 넘는 고강도 훈련을 하며 성장한 리오넬 메시는 성장 호르몬 결핍이라는 병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지만, 그 노력의 대가로 공을 다루는 기술이 신계에 있는 선수였다.
유연성과 스피드 순간 속도까지 곁들어진 그를 상대하는 수비수들은 하나같이 <마치 순간이동하는 느낌이었어요.> 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메시만의 독특한 리듬은 적응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세계 최고의 피지컬을 가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무얼 할지 알면서도 못 막는 그런 선수였다.
하지만 최준호에게는 메시 같은 리듬도 없었고, 호날두 같은 완벽한 피지컬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강력한 중거리 슈팅이 있었지만, 분데스리가 팀들의 감독들은 이미 해결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동민은 인상을 굳히고 고민스러워하는 최준호를 보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참 대단한 선수야. 지금 상황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도 할 텐데.’
대부분의 특급 유망주들은 10살 이전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여러 국제대회에서 자신의 실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수 많은 데이터들을 남기기 때문에 국제대회에서 그 데이터를 이용하여 상대 선수에 대한 대비책을 세울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최준호는···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케이스라 데이터가 많지가 않았고, 상대하는 팀들이 대비책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
그가 어린 나이에도 월드컵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며 골든볼을 타고 일약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리고 앞으로 고전할 이유기도 했고.
이렇게 키운 거품을 서서히 꺼트려 가며 선수 생활을 해도 되겠지만, 눈앞의 어린 욕심쟁이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해결책은 명확했다.
지금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도록 수단을 강구 하고, 상대의 강한 압박에 견디도록 몸을 더 단련하고, 판단 능력과 예측력을 높여서 상대의 대비책을 무력화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더 훌륭한 능력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뛰면서 견제를 분산시키는 것 정도?’
“더 좋은 팀으로 이적하는 것도 옵션이겠죠.”
최준호의 답변에 이동민은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한 모양이네.’
“하지만 모자람을 감추기 위해서 도망가는 건 생리에 맞지 않아요.”
이동민은 잠시 눈을 감고 머릿속에 떠다니는 엄청난 정보들을 나열했다.
‘최준호의 개인 능력은 이미 세계적인 클래스야. 저 상황에서는 능력들을 단숨에 올리긴 힘들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하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지.’
이동민이 눈을 뜨고 입을 열었다.
“축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1+1=2 가 되는 게 아니라 가끔 1+1 = 10이 되는 경우도 있죠.”
“시너지 효과군요?”
“네. 선수의 개인적인 역량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주 오래 걸리는 작업입니다. 검증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서 오랜 기간 시간과 노력과 자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같이 뛰는 동료들의 세밀한 움직임을 더 정확하게 알고 컴비네이션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다면, 그러니까 동료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개인적인 역량이 성장할 때까지 폼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말에 최준호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가 스트라이커가 아닌 미드필더를 선택한 이유기도 했다.
스트라이커는 뒤에서 떠먹여 주는 걸 받아서 처리해야 하는데, 이걸 제대로 못 하는 팀 동료를 만나면 정말 형편없이 나락으로 간다.
하지만 자신이 동료들에게 떠먹여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지니까.
“역시 저랑 견해가 같군요.”
팀에서 가장 주목받으며 핵심 선수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운 상황이기도 했다.
질투심은 보통 승부욕에 비례하는데, 일부 선수들은 강한 반감을 갖기도 했고, 일부는 자신의 모자람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입을 닫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높이 올라가면 갈수록 외로워지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최준호도 지금까지 경험을 통해서 나름의 해결책을 머릿속에 가지고 있었지만, 누군가의 검증이 필요했었다.
우영이와 엘링 다음으로 친하게 지내는 르네 마리치도 비슷한 조언을 해주었고, 에이전트인 김동현은 더 좋은 팀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
이동민에게 이런 대답을 얻고 나니 확신이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움직여야겠군요.”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을까요?”
“물론이죠. 코치들 사이에서 오가는 선수들에 관련된 이야기 좀 수집해주세요. 습관이나 불만이나 뭐 아무거나 상관없이요.”
최준호의 옆을 지키고 있던 푸키는 최준호의 음성이 밝아지자 혀를 살짝 내밀고는 볼을 최준호의 어깨에 비볐다.
기분이 좋을 때 하는 행동이었는데, 최준호는 그런 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기분 좋니? 나도 뭔가 해결된 거 같아서 좋다.”
**
“우리 동민이 형 잘 부탁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이동민을 위해서 새로 고용한 지아는 시리아 내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일로 떠밀려 온 난민이었다.
독일로 오는 과정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잃기도 하였고.
그렇지만 숙련된 간호사였고 영어와 독일어를 할 줄 알았으며,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에 최준호는 꽤 좋은 조건으로 그녀를 고용하였다.
원래는 히잡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히잡을 벗고 다녔다.
3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랍계 여성 특유의 미모를 가진 여성이었는데, 가끔 이동민이 그녀를 볼 때마다 넋을 놓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럼요. 아주 좋은 사람이네요.”
“우리 푸키도 잘 부탁해요.”
“아주 영리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동민이 집은 상당히 깨끗하고 쾌적해졌고, 머리 모양새는 단정했고, 수염도 수시로 깎았으며 빼빼 말랐던 몸에 어느 정도 살도 붙는 것이 점점 보기 좋아졌다.
‘잘 고용했네.’
집을 나선 최준호는 엘링에게서 뺏은 차를 타고 휴대폰을 들었다.
– 어! 준호야!
– 동현이 형.
– 그래 이 새벽에 무슨 일이냐?
아마도 자다가 잠을 깬 모양이었다.
그 불만은 새벽이라는 단어 하나에 모두 집어넣고는 곧 기운을 내서 이야기했다.
– 혹시 급하게 처리할 일이라도 있니?
– 아니에요. 한국에 몇 시인지 깜빡했네요. 다시 전화할게요.
– 아냐. 어제 술 먹고 일찍 자서 마침 잠도 깼다.
– 그렇다면. 저 도르트문트 근처에 집 하나를 좀 장만하고 싶어요.
– 집? 클럽 숙소가 좋다고 한 걸 얼마 전에 들은 거 같은데?
– 뭐 그땐 그랬지만요. 사람 많이 초대해서 바베큐 하기 넓은 장소가 있는 집이면 좋겠어요.
동현은 잠시동안 말이 없었다.
– 여자친구라도 생겼냐?
– 예?
– 준호야 형에게 숨기면 곤란하다? 있으면 말해 인테리어도 생각해봐야 하니까. 언론도 신경 써야 하고.
– 하하하!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팀 동료들이랑 좀 친해져 보려고요.
– 그래? 진짜지?
– 그럼요.
– 근데 거기에 집을 구하면 나중에 빅클럽으로 옮길 때 애로사항이 생길 수 있으니까, 임대로 하는 건 어떨까? 세금 처리도 하고.
– 그러면 팬들이 안좋아할거에요.
– 정말 도르트문트에서 3년을 보낼 거야?
– 웬만하면요.
최준호의 나이는 이제 18살.
아직 성장기의 나이였다.
EPL이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돈을 주기는 하지만, 그만큼 매우 거친 리그였다.
그나마 덜 거친 독일에서 다치지 않고 피지컬을 제대로 만든 후에 도전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최준호였다.
– 알겠다. 그럼 내가 알아보마.
– 고마워요. 형.
– 고생비는 두둑하게 챙겨줘야 해?
– 물론이죠.
– 아, 근데 FD_Idl 이라는 아이디 정말 김우영 선수 거 맞냐?
– 네?
– 아니. 나도 그 방송 보거든.
– 으음··· 그럴 거예요.
– 그러면 그렇다지 그럴 거는 또 뭐니? 혹시 준호 네 거 아니야? 너 롤 할 때··· 비슷한 거 쓰는 거 같았는데?
**
양창명은 과거에 찍어놓은 영상에서 FD_Idl이라는 아이디를 전부 찾아내었다.
‘확실히 도르트문트 캠프에 들어간 뒤부터 활동했네. 그런 것 치고는 축구에 대해서 너무나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그 당시 방송국의 요청으로 김우영 선수에 대해 자세하게 인터뷰를 했던 터라 양창명은 조금 의심스럽긴 했다.
김우영은 피지컬이 매우 좋긴 하지만 축구 자체에 대한 이해력은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도르트문트 경기를 봐도 빌드업 과정에서도 배제되어있는 걸 보면, 마르코 로제 감독은 김우영에게 대인 마크와 수비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의심스럽단 말이야?’
양창명이 하루 종일 영상을 보느라 먹먹한 눈을 비비는 사이에 휴대폰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들어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 네. 양창명 기자입니다.
– 선배. 잘 있었어요?
민선아 기자였다.
– 월드컵도 끝났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 에이. 월드컵 끝났다고 그렇게 퉁명스럽게 구는 거예요?
– 용건이나 말해.
– 나 최준호 선수 여자친구가 누군지 찾아낸 거 같아.
– ······
양창명은 황당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내었다.
‘포기했다며, 계속 쫓아다닌 거야? 근데 없는 걸 찾아내다니?’
– 누군데?
– 비밀이지. 지금 한국 축구판에서 최고 이슈는 박홍민 선수랑 최준호 선수잖아? 나, 이거 일단 검증해야 해서 독일로 왔어.
– 방금?
– 응 도르트문트 공항이야.
– 근데?
– 아니 뭐··· 그냥 선배가 있다고 하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밥도 좀 같이 먹고 싶고. 취재도 같이할 수도 있고···
– 하고 싶은 말이 뭐야?
– 사람이 진짜 눈치 없네.
꽤 앙칼진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쏟아낸 민선아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응?”
양창명은 잠시 민선아와의 통화를 되돌렸고, 다급하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 민 기자.
– 버스 지나갔어. 끊어.
**
2018년도 11월 7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클럽 브뤼헤를 홈으로 불러들여 5-0으로 부숴버린 가운데, 16강 진출을 위해서 도르트문트와 AS 로마가 맞붙게 되었다.
로마 원정 경기이고,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에게는 작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 진출을 좌절시킨 팀과의 재회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