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1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19화(119/184)
119화 로마 원정전(2)
AS 로마는 최근 디프란체스코 감독을 경질하였다.
챔피언스 리그 예선에서는 2승 1패의 결과와 달리 리그에서 리그에서는 3승 5무 3패라는 끔찍한 결과를 내었고, 직전 리그 경기인 세리아B에서 올라온 Spal2013과의 경기에서 0-2로 깨지면서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AS 로마 보드진은 발빠르게 쉬고 있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을 선임하였다.
라니에리 감독은 어느 팀을 가던 적정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소방수 같은 이미지의 감독으로 그가 유명해진 것은 레스터 시티에서 오랜 기간 감독직을 하며 선수를 발굴하고 영입해서 15/16시즌 EPL 우승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세운 이후였다.
“홈 경기야.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주장인 데 로시는 라니에리 감독에게 불만을 터트렸다.
“주장의 생각은 충분히 이해해. 우리는 분명 타협점을 만들어갈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도르트문트는 너희들 생각과 다르게 아주 강한 팀이야. 특히 최근 도르트문트의 상승세를 주도하는 초이는 대단한 선수지.”
초이라는 말에 데 로시의 얼굴을 훨씬 굳어졌다.
작년 챔피언스 준결승 전에서 그와 붙어서 체면을 완전히 구겼기 때문이었다.
“다음 경기에서 난 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어.”
반도 국가 이탈리아인 답게 성질이 불같은 데 로시가 거의 고함을 질렀지만, 라니에리 감독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올해 36살인 주장은 해가 가면 갈수록 노쇠화로 자연스럽게 폼이 떨어져. 하지만 초이는 이제 18살이지. 앞으로 올라갈 일만 남은 젊은 선수야. 작년에 그렇게 당했는데, 올해 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은 비합리적이야.”
웃는 얼굴로 촌철살인을 하는 라니에리 앞에서 데 로시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4-4-2를 즐겨 쓰는 라니에리지만 AS 로마가 유지해 온 팀 컬로를 바로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4-1-2-3의 전술을 채택하였고, 폼이 떨어지긴 했지만 수비수와 공격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데 로시는 여전히 팀의 핵심선수였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원정전이라는 큰 부담을 떠안고 가야 하기 때문에 도르트문트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이기려고 공격적으로 나올거야. 자네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해. 우리가 어떤 스타일로 경기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 승리를 하고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홈에서 수비적인 경기를 한다는 라니에리 구상에 불만이 많았던 선수단은 결국 라니에리에게 설득을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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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수비적으로 임하겠지?”
마르코 로제는 라니에리 감독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워낙 많은 구단을 옮겨다닌 라니에리 감독이었고, 마르코 로제는 스태프로서 그의 밑에서 두어번 일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의 그는 어느 팀을 가던지 압박과 역습에 기반한 수비축구를 하였다.
성적은 좋을 지 모르지만 재미없는 축구를 하였다.
“아마도. 반드시 수비적으로 나올거야.”
마르코 로제의 말에 르네 마리치가 확신에 찬 음성으로 대답했다.
이동민이 합류한 이후 전술분석실에서 나오는 리포트의 질이 완전히 달라졌고, 르네 마리치는 그 리포트르 통해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졌다.
“그들은 분명 4-1-2-3 포메이션으로 나올거야. 공격의 핵심은 데 로시의 정교한 롱패스와 에딘 제코의 제공권이겠지.”
“크로스를 다 막을 수 없다면 에딘 제코를 봉쇄해야해.”
“이번에 부상 복귀한 마누엘 아칸지를 쓴다면 강력한 제공권을 가진 백업 수비수가 필요해. 아칸지가 공은 잘 다루지만 제공권은 너무 역부족이니까.”
“킴을 쓰는 것이 좋겠어.”
선수를 기용하는 것은 감독의 역량이지만, 그 과정은 굉장히 복잡한 편이었다.
“역습 상황에서 후방에서 롱 패스가 나올 가능성이 커. 에딘 제코의 머리에 맞은 공이 윙포워드에게 갈 경우에 실점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빠른 공수 전환이 필요해.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걸 염두해 둬야해.”
도르트문트 역시 굉장히 부담스러운 아틀레티코와의 원정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AS 로마를 어떻게든 큰 점수차로 이겨야만 했다.
그러기에 공격 전술을 임해야만 했다.
“아칸지는?”
마르코 로제의 물음에 르네 마리치는 창밖을 가리켰다.
“요새 초이랑 킴이랑 어울리던데?”
**
FC 바젤에서 놀라운 활약을 펼치며 도르트문트로 이적해 온 마누엘 아칸지.
하지만 러시아 월드컵 경기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고 거의 4개월 동안 출전을 못했다가 이제야 복귀를 하였다.
슈투트가르트와의 리그 경기 후반에 교체로 들어와 어시스트를 올리고 탈압박을 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마르코 로제의 눈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본인이었다.
나이지리아 출신이지만 스위스에서 유소년 생활을 하며 이중국적을 취득한 마누엘 아칸지는 188cm에 91kg이 나가는 거구답지 않게 상당히 얌전한 선수였다.
새로운 팀에 복귀 하다보니 친한 선수들도 없었고, 영어밖에 할 줄 몰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선수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약간의 향수병과 함께 소외되어 있었는데, 그에게 다가온 선수가 다름 아닌 최준호였다.
– 안녕.
– 응?
– 너 혹시 한국 음식 좋아해?
그 짧은 대화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
물론 마누엘 아칸지는 최준호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러시아 월드컵 16강에서 자신의 팀인 스위스를 떨구는데 1등 공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부상이 아니었다면 경기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어찌되었던 최준호의 플레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거기다가 영광스러운 월드컵 골든볼 수상자.
최준호의 접근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했다.
최준호에게 꽃등심 대접을 받았고, 여러 선수들과 친해졌다.
엘링 홀란드와 김우영, 그리고 토마스 시아카, 무코코 유수파, 아모스.
“아니! 아니! 그렇게 말고!”
최준호가 소리를 질렀고, 아칸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가리켰다.
“아칸지 말고, 우영이 너. 라인을 계속 신경쓰란 말이야! 함부로 내려가지마!”
세 명은 오전 잔디 적응 훈련이 끝난 후 따로 남아서 누가 이야기하지 않았는데도, 빌드업 과정을 연습하고 있었다.
“젠장! 어렵다고.”
김우영은 흘깃 아칸지를 보았다.
우영이는 머리가 제법 비상해서 공부를 잘 했고, 축구에서도 그런 머리와 엄청난 노력을 통해서 빠르게 실력을 갖춰나갔다.
하지만 옆에 있는 마누엘 아칸지라는 녀석은 우영이 생각에 정말 놀라운 선수이었다.
‘난 10번 듣고, 10번 훈련해야 제대로 전술을 수행하는데, 얘는 한 번 들으면 그대로 하는 거 같네. 내 느낌인가?’
“야야! 딴 생각하지 말고, 한 번 더 맞춰보자!”
내일 붙을 AS 로마의 역습을 막고 바로 역습으로 나가는 나름의 훈련이었는데, 여기에는 순간적으로 침투를 할 에딘 제코를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리게 하는 움직임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아칸지나 김우영이나 이번 시즌 새로 합류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간이긴 했다.
그들이 연습하는 걸 한참 보고 있던 마르코 로제가 입을 열었다.
“초이가 주도하고?”
“응. 얼마전까지는 개인 연습 시간을 많이 가지더니 요새는 여러 선수들과 어울려서 호흡을 맞추는 시간이 월등하게 늘었어. 최근 경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나봐. 나에게도 조언을 구하더라고.”
최준호의 최근 경기 스탯은 분명히 잘츠부르크에 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물론 이곳이 유럽 5대 리그 중 하나인 분데스리가 라는 점을 착안하면 우려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렇게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저 녀석은 만족할 줄을 모르네.”
“만족을 하는 순간이 그 선수의 한계가 되는 법이니까.”
“저 녀석은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
“글쎄.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이 아닐까?”
르네 마리치의 대답에 한참동안 답변이 없던 마르코 로제가 입을 열었다.
“역습에 역습이라.”
“엘링과 최준호의 호흡은 너무 좋아. 요새 회자되고 있는 토트넘의 박케 조합과 맞먹을 수준이지. 내일 경기는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아.”
긍정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르네 마리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고, 마르코 로제는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좋군.”
**
7공주.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축구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의 7개 팀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유벤투스, AC 밀란, SS 라치오, FC 인테르, 파르마 칼초, 피오렌티나, AS 로마.
누가 우승할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7개 팀의 실력은 비등비등했고, 매 게임마다 엄청난 순위 변동이 있던 시절이었다.
완벽한 기회에서 골을 넣지 못하는 공격수들은 경기장 밖에서 테러를 당할 정도로 아주 잔인한 리그이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의 세리아A는 EPL과 라리가에 밀려서 약간 주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라리가가 리오넬 메시의 바르셀로나, 갈라티코 군단 레알 마드리드, 꼬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삼파전으로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축구를 하는 리그였다.
그들 중 하나인 AS 로마의 챔피언스 리그 4차전이 벌어지는 스타디오 올림피코 구장.
7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구장은 1928년 기공하여 2008년 대대적인 리뉴얼을 끝으로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유명한 축구 게임 피온3에 접속하자마자 나오는 로비는 바로 이곳을 가져온 것이다.
AS 로마 훌리건이 쏜 플레어 건에 맞아 죽은 SS 라치오 팬이 나온 이후로 AS 로마 홈경기가 있는 날에는 로마의 경찰들 절반이 이곳에 투입되었는데, 그 만큼 과격한 훌리건 축구 팬들이 많았다.
– 탁, 탁!
도르트문트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스타디움 주차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날계란이 창에 맞아 깨졌다.
“뭐야? 이 새끼들?”
휴대폰을 보다가 깜짝 놀란 김우영이 창문에 퍼져 있는 계란을 보고는 인상을 썼다.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잡아서 허리를 부숴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냅둬라. 작년에 우리는 폭탄 테러까지 당했으니까. 계란 정도면 아주 양호하지.”
“혹시 골 넣으면 세레머니 자중하고. 괜히 총 맞는다.”
“MOM으로 뽑히면 인터뷰 하러 오는 이탈리아 기자의 두 손을 잘 봐. 카메라 대신 권총이 들려 있을 지 몰라.”
고참 선수들의 농담이 줄지어 이어졌고, 세리아 A 팀과의 경기 경험이 없는 몇몇 신참 선수들은 정말인 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기도 했다.
하지만 김우영은 썼던 인상을 가볍게 풀고는 피식 웃었다.
“···준호야. 저거 너 같은데? 저렇게 눈이 쫙 찢어졌었냐?”
최준호의 면상이 그려진 거대한 피켓.
두 눈은 쫙 찢어졌고, 빨간색 스프레이로 X 를 해놓았다.
유럽 중에서도 동양인 비하가 가장 심하다는 이탈리아였다.
물론 유럽에서 어느 정도 뛰는 동양 선수라면 아무런 느낌이 없을 정도로 일상 다반사이긴 했다.
“그러게? 내 눈이 이렇게 찢어지면 좀 더 무서워 보일까?”
최준호가 자신의 눈을 쭉 찢자, 우영이 대답했다.
“그 그림이랑 똑같은데?”
“그래?”
“나 골 넣으면 눈 찢는 세례머니 할까?”
“응?”
하지만 가끔 진짜 말도 안되는 엉뚱한 짓을 하는 최준호였기 때문에, 김우영은 살짝 기대하는 눈치였다.
“너희들은 눈찢남에게 당했다 이런 식으로?”
우영의 대답에 최준호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 탁, 탁!
계속 날아오는 계란 세례에 최준호는 이내 웃음을 멈췄다.
이미 한 번 경험한 AS 로마였다.
그리고 여전히 이 팀의 핵심 선수는 늙은 여우 다니엘레 데 로시였고.
그 때는 피지컬에 밀려서 비등비등하게 싸웠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달랐다.
185cm에 81kg 나갔던 몸은 185cm에 79kg이었다.
많은 훈련으로 코어 근육을 압착하였고, 몸무게를 줄여 훨씬 더 가벼워진 상태였다.
물론 AS 로마 역시 자신에 대해 대비를 하고 나왔겠지만, 이런 대우를 당하고 나니 가슴에 살짝 불이 붙었다.
**
올해 37세를 향해 가는 다니엘레 데 로시의 얼굴은 세월이 그대로 담겼다.
풍성한 수염으로 가리려고 했지만, 자글자글한 주름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한 때는 최고의 미남 선수 중 하나였던 데 로시는 자신과 동등한 눈높이를 가진 최준호를 힐끗 보고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작년보다 훨씬 더 컸잖아···?’
“안녕! 잘 지냈어?”
어쭙잖은 이탈리어로 묻는 최준호를 보던 데 로시는 대답하지 않았다.
“덕분에 챔피언스 우승이 물 건너 갔었는데, 사과 한마디는 해야하지 않아?”
이번에는 영어로 중얼거렸고, 이해 못한 데 로시는 먼 산 보듯 시선을 옮겼다.
“···돼지 새끼.”
하지만 독일어로 슬쩍 욕설을 하자 데 로시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얏?”
“나이들어도 그 성질은 여전하네.”
이번에는 한국어로 중얼되는 최준호.
“이 자식이··· 뭐라고 하는 거야?”
다시 방긋 웃는 최준호.
“오늘은 내가 널 부숴 놓을 거야. 기대해도 좋아.”
한국어로 너무나 상냥하게 이야기하는 최준호.
이런 상황을 이해 못하는 데 로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자 김우영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완전 악동이네. 준호 저 녀석.’
두 선수단은 경기장으로 입장을 하였고, 스타디움은 완벽하게 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최준호는 자신의 자리에서 잔디의 상태를 보다가 가볍게 몸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오늘 여러분들의 아내에게 기쁨을 줄 생각이야. 빨리 집에 가게 해줄게. 경기 끝나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