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2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22화(122/184)
122화 10월의 축제(1)
“송을 좀 불러줘.”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 니코 코바치는 크로아티아 축구계의 레전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를 다시 재건한 능력을 인정받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최근 도르트문트와 더불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뮌헨이 현재 선수단 리빌딩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좋은 성적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이 우승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될 도르트문트를 치워버려야하는 상황이었는데, 그의 눈에 가장 걸리는 선수는 최준호였다.
그가 날뛰기 시작하면 도르트문트 팀의 공격력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고, 그가 없거나 강력한 수비수에 의해 활약을 제대로 못하면 팀 공격력이 놀랍도록 엉망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너무 많은 선수들이 빠져나갔기 때문에 도르트문트의 실력이 작년만 못할 거다라고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완전히 달랐다.
송.
그러니까 송우영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성장한 선수였다.
전임 감독들은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지만, 활동량과 스피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니코 코바치는 송우영을 바로 1군으로 올렸다.
아직까지 그에게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어쩌면 가장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은퇴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세리아A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던 데로시를 그라운드에서 지워버린데다가 분데스리가에서 꽤 잘한다는 미드필더를 상대로도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AS 로마와의 경기를 보던 그는 기막힌 생각을 하나 떠올렸다.
“저 부르셨습니까?”
딱딱한 표정을 한 송우영이 들어아조, 니코는 의자를 가리켰다.
“그래. 이리 앉아봐.”
송우영은 쭈뼛한 자세로 의자에 앉았고, 니코는 고개를 내려서 책상 위에 널려 있는 송우영의 리포트를 보았다.
양발 사용자.
굉장한 단거리 스프린트 능력.
준수한 패싱 능력.
킥력 우수.
크로스 정확도가 일관적이며 궤적도 좋음.
여기에 팀 내 최고의 체력.
볼 터치가 불안함, 압박 시에 실수가 잦음.
공격수로는 왜소한 피지컬로 분데스리가 수준의 수비수를 뚫기 힘듬.
향후 성장 시 윙어로서 쓸만한 자원이나, 3옵션 정도로 고려됨.
스카우트 팀에서는 그를 윙어로 분류하고 있지만 니코 감독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자네는 90분 동안 뛸 체력을 45분 동안 쏟아넣을 수 있는가?”
“네···?”
“가능하다면 자네를 시험해보고 싶거든.”
사실 송우영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제대로 적응을 못하는 중이었다.
동양인이라는 점도 그렇고, 키는 큰데 몸이 너무 왜소해서 여자같다는 놀림도 받고.
바이에른LT 시절부터 제대로 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었는데, 니코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자신을 1군으로 올려버렸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가득한 곳에서 어린 송우영은 더욱 주눅이 들어갔고.
1군에 올랐지만 교체로도 한 번도 경기에 출전을 하지 못했다.
다만 나름의 욕심이 있어서 팀 훈련만큼은 정말로 열심히 했고, 지금 RB 라이프치히로 이적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양희찬의 조언에 따라 개인 훈련도 굉장히 착실하게 하고 있었다.
‘···시험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는 교체 출전을 시켜주겠다는 이야긴가?’
경직되었던 송우영의 표정이 살짝 상기되었다.
“시험이라고 하시면···”
“자네의 각오에 따라 다음 경기 선발 출전을 시키고 싶어.”
선발 출전이라는 말에 송우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군다나 다음 상대는 도르트문트였다.
한국을 4강으로 올린 골든볼 수상자 최준호가 핵심 선수로 뛰는 곳이었다.
지금 바이에른 뮌헨과 우승 경쟁을 하는 팀이었고.
그런 중요한 시합에 경험없는 자신을 내보내겠다는 건 무슨 미친 짓이지?
“저에게 요구하고 싶으신 일이 무엇입니까?”
니코는 자신의 화이트보드에 걸려 있는 최준호의 사진을 가리켰다.
“전반전에 저 녀석의 체력을 최대한 빼놓는 거야.”
최준호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후배였다.
언젠가는 A 매치에서 그와 함께 뛰어보고 싶기도 했고.
다만 너무 쟁쟁한 선수들이 많아서 그럴 기회가 있을 지 몰랐는데···
‘그를 상대하라고? 그게 될까?’
니코 감독이 다시 물었다.
“할 수 있나? 할 수 없나?”
송우영은 예상도 못하게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두 손을 꽉 쥐고, 눈동자를 니코 감독에게 고정하였다.
그리고는 악 문 입을 열었다.
“하겠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의 체력을 빼놓겠습니다.”
**
미스 유니버시티 독일 대회에서 처음 만나 최종 승부까지 간 셀린과 카를라인 그리고 레아는 대회가 끝나고 여러 이벤트에 같이 참여하면서 굉장히 친해졌다.
“도대체 애인이 누군데?”
카를라인의 질문에 셀린은 고개를 저었다.
“알면 재미없다니까. 보면 알거야.”
셀린은 자신의 애인이 누군지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누가 나올 지 카를라인과 레아는 전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치사하네. 근데 레아는 별로 가고 싶어하는 눈치가 아닌 거 같아? 계속 휴대폰만 붙잡고 딴생각하는 것 같아.”
“남자 친구는 사귀어 본적이 없다고 하잖아.”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했잖아?”
“짝사랑 아니야?”
두 친구가 킥킥거리며 웃었다.
레아와 달린 셀린과 카를라인은 자신이 가진 미모를 이용하여 수도 없는 연애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독일 최고의 명문대학생 그리고 독일 여자축구 국가대표, 여기에 미스 유니버시티 독일.
어떻게 보면 상위 0.0001%의 초 엘리트 여성인데 남자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은지···
그녀들의 눈에는 레아가 참 신기해 보이기만 했다.
“레아. 너무 부담갖지마. 그냥 가볍게 만나서 식사하고 마음에 안 들면 바이바이하는 거니까.”
“알고 있으니까, 멍청이 취급하지마.”
사실 축구 세계가 어찌보면 좁고 좁은 구석이라 괜한 이야기가 준호의 귓속으로 흘러갈 수 있어서 걱정한 것이지 남자를 만나는 게 긴장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좀 있으면 수많은 남자들이 만나자고 난리칠지도 몰라. 이상한 새끼들 만나지 않으려면 남자를 꽤 많이 만나서 파악할 줄 알아야 해.”
나이로 치면 셀린과 카를라인이 많기는 했으니까, 경험도 많을 것이다.
“···근데 너 도르트문트 팀 팬이야?”
셀린이 물었다.
가끔 쉬고 있을 때 옷이나 패션 아이템, 화장품 같은 것을 보는 자신과는 달리 레아는 거의 항상 축구 기사만 읽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그녀가 축구 선수라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도르트문트 기사만 보자 궁금하기도 했다.
“응···아니···”
“응이야 아니야?”
“그건 왜?”
“항상 도르트문트 기사만 보고 있잖아.”
카를라인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 레아는 항상 도르트문트 축구 기사를 보고 있었지.”
“그냥 좋아하는 팀이야. 예전에 내가 뛰고 있는 메펜 남자 팀이 99% 강등 위기에 있을 때 도르트문트에서 임대온 선수가 놀라운 활약을 해서 강등을 막았거든. 그 때부터 좋아했어.”
“아하 그렇구나!”
“혹시 좋아한다는 그 남자가 그 선수니?”
카를라인이 장난스럽게 물었고, 레아가 당황해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맞네! 맞네!”
셀린은 뭔가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즐겁게 외쳤다.
레아가 나이도 어렸고, 청순한 미모는 질투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다가 머리도 좋고 운동도 잘하고··· 미모를 가꾸느라 세월을 보낸 셀린의 입장에서는 연하의 남자친구가 혹시 그녀가 빠지면 어쩔까라는 걱정이 있었다.
만약 레아도 엘링을 좋아한다면··· 이 만남 파토를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도르트문트에서 임대 온 남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확실히 엘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축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셀린 입장에서는 도르트문트의 그 임대생이 누군지 알 지 못했고, 오랜만에 즐겁게 남자친구와 저녁을 보낼 생각에 기분이 너무나 좋아졌다.
“여기다.”
셀린이 차를 멈춰세웠고, 세 명은 뷰티샵 앞에서 내렸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곳이야. 실력은 검증되었고. 근데 비용은 각자 부담이다.”
**
뮌헨.
독일 남부 바이에른 주의 중심 도시.
10월의 이맘때 열리는 축제가 있었다.
Oktoberfest(10월 축제)
맥주와 소세지의 파티인 이 축제는 세게에서 가장 큰 맥주 축제였다.
축제가 열리는 곳은 테레지인비제 광장이었는데, 광화문 광장보다 훨씬 더 큰 크기의 이곳에는 롤러코스트, 자이로드랍 같은 놀이기구들도 들어서 있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한 인파에 세 남자는 잠시 입을 크게 벌렸다.
모자와 선그라스를 쓰고 자신의 모습을 최대한 가린 채 나타난 엘링 홀란드, 김우영, 최준호였다.
“이야 장난 아니네···”
사람들끼리 맥주를 마시고 음악에 맞춰 흥얼흥얼 춤을 추는 모습들에 우영은 벌써 신이 나는지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한잔 마실까?”
엘링이 입을 다시며 길거리에서 분수처럼 쏟아지는 맥주에 눈을 떼지 못했고, 최준호는 그들을 억지로 끌었다.
“저거 알콜 농도가 11도 짜리야. 마시는 순간 내일 경기에서 제대로 된 컨디션 내기 힘들어.”
“응? 그렇게 높아? 보통 맥주는 4.5도 정도지 않아?”
“축제용으로 쓰는 건 아주 진하거든. 냄새도 장난아니게 진하고.”
“마치 먹어본 것처럼 이야기한다?”
물론 최준호는 아주 많이 먹었다.
과거 잉글랜드 2부 리그를 거쳐 독일 분데스리가로 입성한 뒤 팀의 1860 뮌헨에서 핵심 공격수였던 최준호는 마치 성공한 사람처럼 굴었다.
술을 얼마나 마시고, 얼마나 즐기던 항상 잘할 것 같다는 그 느낌.
축제가 아니어도 뮌헨에 있던 그는 도수 높은 알콜을 즐기며 소시지를 먹었고.
아마도 그런 것들이 쌓여서 20대 후반부터 폼이 미친듯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유튜브. 그거만 봐도 다 알 수 있어.”
유튜버라는 이야기에 김우영이 몰래 웃음을 지었다.
설마 최준호가 자기 아이디로 자화자찬을 하고 있는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까.
가끔 엉뚱한 구석이 있는 친구라는 건 알지만, 그럴 때보면 똘아이 같기도 했다.
일단 FD_Idl 이라는 아이디는 김우영 아이디라고 대충 둘러둔 상태.
“하긴 이 녀석이 유튜브를 많이 보긴 하지.”
“으음··· 뭔가 느낌이 다르다?”
최준호가 노려보자 김우영이 킥킥거리며 웃었다.
두 사람이 왜 웃는 지 모르는 엘링은 코를 킁킁거리며 광장 전체 퍼진 냄새를 즐겼다.
“냄새 만으로 취하네. 근데 우리처럼 얼굴 숨기고 맥주를 즐기로 온 뮌헨 녀석들이 있지 않을까?”
없을 수가 없었다.
과거의 최준호도 그랬으니까.
“아마 있을 걸?”
사람들에게 숨기는 게 아니라 구단에 알려질 게 무서워서 숨기는 거이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파속에서는 찾기 힘들거야.”
물론 그건 최준호의 생각이었고, 키가 190cm 넘고 일반인들과 전혀 다른 몸을 가진 세 남자가 같이 있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었다.
“어···저기 저 사람들···”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경기를 취재하러 온 양창명은 민선아와 함께 맥주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1잔이 12유로 이었지만, 1L 짜리였고 알콜 농도는 상당히 높았다.
둘이서 2잔씩 마셨는데, 이미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눈썰미가 좋은 민선아가 어딘가를 가리켰고, 반쯤 취해서 헤벌레하는 양창명이 눈을 돌렸다.
“선배! 최준호 선수랑 김우영 선수 아니야?”
“어···어···어디?”
양창명은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며 민선아의 손가락이 있는 곳을 보았다.
하지만 취해서 초점이 제대로 맞지를 않았다.
세 사람이 인파 사이로 빠르게 사라져 버린지라 몸을 일으킨 민선아도 금방 놓쳐 버렸다.
“분명 있었는데···.”
“에이, 그럴 리 없어. 최준호 선수는 술을 입에 대지도 않거든. 잘못 본 거 겠지.”
“···그럴까?”
“그럼. 오늘 같은 날은 일 신경 쓰지 말고 좀 더 마시자고.”
자리에 앉은 민선아는 맥주잔을 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양창명의 팔을 잡아 당겼다.
“선배 얼른 일어나봐요.”
“왜···?”
“특종! 특종!”
**
술은 적당히 먹으면 기분을 좋게 하고 모난 성격을 둥글둥글하게 만들고 역사가 써지기도 하는데, 도를 넘으면 취해서 이성을 잃을 때가 있었다.
특히 잘 꾸민 여신같이 아름다운 여성 세 명이 길을 걸어가는데 술에 취한 남성들이 가만히 둘 리가 없었다.
“헤이! 어디 가. 같이 놀자.”
“남자가 필요해? 여기 있다고.”
그렇게 농을 거는 정도라면 다행이지만, 대놓고 길을 막는 경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은 껄렁껄렁한 양아치 같은 세 녀석이 레아 일행의 길을 막았다.
“어딜 가시나? 같이 놀지?”
조금만 더 가면 약속 장소이었기 때문에 리더격인 셀린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미안한대. 약속이 있어서. 축제 즐겁게 즐겨.”
그렇게 하고 가려는데 그들이 또 막아섰다.
“미안하다며? 미안하면 우리 부탁 들어줘야지.”
한 남성이 손을 내밀어 셀린의 어깨를 만졌고, 그 순간 레아의 발길질이 남성의 가랑이 사이에 정확하게 박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성이긴 하지만 레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취미 삼아 축구를 했었기 때문에 발길질의 위력은 굳이 상상할 필요가 없었다.
셀린을 막았던 남성이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지자, 나머지 동료들이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쥐었다.
“이 년들이 미쳤나!”
“너도 구슬 터지기 싫으면 꺼져.”
셀린과 카를라인이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지만 레아가 으르렁거렸고, 혼자서 네 명의 남자와 맞붙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체격의 동양인 남성이 레아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남성의 팔을 잡고 업어치기로 땅에 내동댕이 쳐버렸다.
그리곤 덤벼드는 양아치를 주먹 한 방에 쓰러트리자 남은 두 명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도망가버렸다.
세 여성의 시선이 자신들을 위기에서 도와준 남성에게 향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본 듯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괜찮아?”
그의 뒤에 있던 엘링이 다가왔고, 셀린은 다행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엘링에게 안겼다.
카를라인은 양아치들을 한 번에 치워버린 김우영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눈빛이었고, 레아는 그들 뒤에 조용히 있던 최준호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아주 커졌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