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2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23화(123/184)
123화 10월의 축제(2)
2년 전에 보았던 레아는 넷플릭스에 공개된 빨강머리 앤의 실사판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광대뼈도 약간 나오고 주근깨도 조금 있었다.
혈기를 주체 못 하는 망아지마냥 정신없는 아이였는데, 오늘의 레아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대학교에 들어간 많은 여성들이 완전히 달라지듯이.
TV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 나와 있었다.
더군다나 그때는 레아의 키가 너무 커서 올려봐야 했는데, 지금은 정확히 같이 높이의 시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금발에 파란색 눈동자, 작은 얼굴에 이목구비는 굉장히 뚜렷했다.
최준호는 자신의 심장박동이 조금 빨라졌다는 걸 느꼈다.
‘아직은 때가 아닌데···’
라고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까지 만나 본 여성 중에 가장 아름답고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레아에게서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 오랜만이야.”
최준호가 먼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놀라 커질대로 커진 레아의 눈이 점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머리를 긁적이며 최준호와 시선을 맞추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랜만이야.”
두 사람의 묘한 기운에 다른 네 명의 시선도 둘에게 향했다.
“···뭐야 아는 사이야?”
“그런 거 같은데?”
카를라인은 셀린을 안고 있는 남성을 보았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어서 이젠 정확히 알아볼 수가 있었다.
“혹시 도르트문트···그···”
“응. 엘링 홀란드야. 내 남자친구.”
카를라인은 이내 고개를 돌려서 최준호를 보았다.
“너구나! 초이! 월드컵 골든볼!? 어, 혹시 메펜을 강등에서 구했다는 그 영웅?”
“응. 그 사람이 맞긴 해.”
요새 독일 축구계와 스포츠 언론 쪽에서 가장 많은 빈도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으며, 그야말로 엄청나게 핫한 선수.
“맙소사!!”
그녀의 과장된 행동은 꽤 여러가지 의미가 있었다.
김우영의 터프함에 매료되어 버린 카를라인으로서는 경쟁자를 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가만히 보니 이미 짝이 결정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완전 운명이잖아? 레아는 초이가 나오는 것도 몰랐다고!”
하지만 6명의 만남은 그들을 둘러싼 바이에른 뮌헨 팬들에 의해서 방해를 받았다.
하필이면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입은 양아치들이 쓰러져 있었고, 축구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은 최준호 일행을 금방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뭐야? 적군이잖아?”
“이 망할 녀석들이 왜 우리 도시에 와서 활개를 치는 거지?”
김우영이 어릴 때부터 유도를 배웠다고는 하지만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드는 상황까지 해결할 능력은 없었다.
– 삑!! 삐이익!!
축제 현장을 단속하기 위해 파견된 무장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바이에른 팬들은 당황한 눈빛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김우영은 카를라인이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그녀를 덥썩 안아 들었다.
“꺄아!”
카를라인이 요상한 소리를 내었지만 싫지는 않은 표정이었다.
김우영은 한쪽에 도망갈 틈을 발견하고는 얼른 소리쳤다.
“야, 튀자!”
김우영이 잽싸게 비어 있는 공간으로 달려들었고, 엘링도 셀린을 업어 들고는 그 뒤를 따랐다.
최준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두 손을 내미는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고, 레아가 ‘킥’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난 하이힐 안 신었어. 그리고 달리기는 자신 있거든?”
대신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 최준호는 그녀의 손을 꾹 잡았다.
“가자!”
“응.”
그리고는 함께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
그 시각 한국.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로드맵 관련 기자 회견.>
김범근은 6개월 동안 축구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여 한국 축구의 100년 대계를 위한 로드맵을 만들었다.
얼마 전 협회장인 김상식 회장의 최종 재가를 얻었고, 공개적으로 언론에 발표하기 이르렀다.
월드컵 4강 신화와 맞물려 한국의 프로 리그의 관중 수는 갑자기 2배 이상으로 늘었는데, 축구 협회는 이 분위기를 이어나가기 위해서 발표 시점을 정하였다.
“···통상 축구의 발전은 지도자 육성을 시작으로 학연 지연을 완전히 배제한 유소년 양성과 발굴, 이들의 성장을 통한 대표팀 강화로 이어집니다. 좋은 지도자 밑에서 성장한 실력이 좋은 유소년들이 프로 리그로 유입이 되고 이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팬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그거는 다 알고 있는데, 결국 K-리그에서 성장한 선수들은 유럽으로 가지 않겠습니까?”
스타성이 있는 선수들이 계속 빠져나가니 K-리그가 활성화되지 않는가라는 기자들이 반문이었다.
“실력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K-리그에 관중들이 찾지 않는 이유는 본질 적으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죠.”
축구는 관중들이 돈을 들여 시간을 소비하는 취미에 가깝다.
야구에서도 꼴찌하는 롯데에 왜 많은 팬들이 찾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단순하게 스타성이 있는 선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경기장에 있는 시간이 재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입장을 합니다. 구단은 그들을 위해서 1시간 동안 재미난 이벤트들을 열죠. 코미디언, 가수들이 출현하고 특이한 공연도 이루어집니다. 단순히 축구가 아니라 그 이벤트 때문에 축구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정도로 그 구성이 굉장히 탄탄합니다. 10만원에 상당하는 돈을 지불한 뒤 즐길 수 있는 것들을 2만원 수준에서 즐길 수가 있으니까요. K-리그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싼 돈을 주고 선수를 영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팬들을 위해서 재정을 사용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에 관련된 이야기는 차후에 따로 진행하겠습니다.”
지도자 육성을 하기 위한 여러 제도의 도입, 유소년 육성을 위한 가이드 라인 마련과 같은 이야기들이 20분 정도 흘러갔고, 김범근은 어쩌면 한국 축구계에 충격을 줄 만한 마지막 하이라이트를 꺼냈다.
“지금 K1팀은 12팀입니다. J1 리그는 18개 팀이죠. 축구 활성화가 되어 있는 유럽은 24개 팀이 1부 리그입니다. 내년부터 K1 리그에는 18팀이 뛰게 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우리도 유럽처럼 24개의 팀이 K1 리그에서 뛰게 될 것입니다.”
그 말에 기자들이 엄청나게 웅성거렸다.
“그게 말이 됩니까? 갑자기 6팀을 더 늘린다는 것이요?”
“월드컵 4강 신화에 발맞춰 구단을 운영하겠다는 기업들이 늘었고, 지방자지단체에서도 참여를 요청하는 곳이 많습니다.”
“인구가 적은 우리나라가 그런 팀을 운용한다는 건···”
“영국도 우리와 같은 5천만 명입니다.”
김범근의 대답에 입이 쏙 들어간 기자.
일을 할 때 된다 안 된다 말이 많지만, 결국 시작을 해야 끝이 있는 법이었다.
김상식 회장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여러 대기업 회장들에게 구단을 운영해보자고 꼬셨고, 제법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또한 승강제를 K3 리그까지 확대할 것이며, 단계적으로 하부 리그까지 확대할 생각입니다. 상위 리그에 살아남기 위해서 구단들은 앞으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축구는 매일 열리는 야구와 달리 4~5일에 한 번 간격으로 경기가 진행이 됩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생각도 멀어지고, 응원하는 팀에서도 멀어지는 법이죠. 그래서 각 구단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선수들과 함께 지역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도록 하는 시행령을 만들 예정입니다. 더 많이 만나야 더 애정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그야말로 파격에 파격이었다.
“아울러 우리도 일본처럼 스포츠를 일상생활화할 수 있도록 교육부와 의견조율에 있습니다. 생활 체육은 시대의 흐름이죠. 좋아하는 운동을 평생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아이들에게 주어야 합니다.”
엄청난 개혁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비판적인 시선을 가졌지만, 4강 신화의 뽕에 취한 축구팬들은 축협의 개혁 의지에 박수를 보내었다.
– 그렇게 해서 최준호 같은 선수가 더 나오면 오케이!
– 학연 지연은 확실히 제거해야 함. 축구 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
– 어쭙잖게 숟가락 올리는 것들부터 처단!
– 제대로 해봐라. 응원한다!
– 1만원 내고 재범 오빠 볼 수 있으면 무조건 간다. 화이팅!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최준호가 일으킨 나비효과일지도 몰랐다.
**
도르트문트 BVB 스타디움에서 차로 대략 10분 거리에 있는 엠셔 강이 흐르는 조용한 주택 단지.
3층 이상의 건물은 거의 없었고, 숲과 나무가 우거진 한적한 곳이었다.
근처에는 녹지와 운동장이 엄청나게 많았고, 경기가 열리는 당일이 아니면 매우 한적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공을 차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간간히 보였고.
동현은 최준호가 부탁한 집을 찾기 위해 독일로 넘어왔고, 꽤 괜찮은 가격대의 집을 찾았다.
부지는 360m2 정도였고, 2층짜리 건물이었다.
내부는 현대식으로 새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고, 방은 5개 욕실은 6개였다.
정원이 매우 넓고 현대식 그릴 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잘 정비된 2차선 도로와 주차장이 연결되어 있었고, 좀만 가면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비록 건물은 1904년도에 지어지긴 했지만, 워낙 관리를 잘해놔서 그런지 오래되었다는 느낌보다는 분위기 있는 집으로 보였다.
내부 수도관도 전부 교체가 되어서 녹물도 나오지 않았고, 난방도 냉방도 아주 잘 되는 집.
“···가격이?”
“75만 유로.”
우리나라 돈으로 10억 정도 되는 금액이었는데, 그 돈으로 한국에서는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살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멋지고 분위기 있는 집으로 살 수 있다는 것에 동현은 독일에서 살까라는 생각도 하였다.
“근데 당신이 살 거야?”
“그건 왜 묻지?”
“독일 시민권자가 아니라면 서류 작업이 꽤 까다로워서, 더 많은 수수료가 나올 수 있어.”
“아냐, 내가 살 건 아니고 내 고객이 살 거야.”
“어떤 사람인지 물어봐도 될까?”
동현은 40대의 나이에 덩치가 큰 부동산 중개인 파울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축구 좋아해?”
“하하하! 당연하지. 난 영원한 도르트문트 팬이라고.”
“거기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누구야?”
“당연히 마르코 로이스지! 하지만, 최근에는 초이가 점점 좋아지려고 해. 마르코 로이스는 축구만 잘하지만, 초이는 재밌는 행동으로 우릴 유쾌하게 만들어주거든! 특히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팬들을 놀리는 세레머니가 아주 재밌었어. 물론 아쉽게도 난 거기에 가지는 못했지만!”
축구 이야기가 나오자 무뚝뚝한 파울의 입에 따발총이라도 단 듯 미친 듯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 사람이야.”
“하하하. 누구?”
“그 사람. 초이.”
“···”
파울은 충격이라도 받은 듯 잠시 멍하게 김동현을 보다가 고개를 짧게 휘저었다.
“정말 초이가 여기에 온다고?”
1군에 있으면서도 근처에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클럽 하우스에서 지내는 선수들.
팬들의 눈에는 기회가 나면 언제든지 더 많은 급여를 주는 곳으로 옮기려는 메뚜기로 보였다.
최근 도르트문트에서 최준호가 엄청난 활약을 하며 팀의 상승세를 견인하고 있지만 쉽사리 마음을 줄 수 없는 이유가 그가 여전히 클럽 하우스에서 사는 점 때문이었다.
“물론이지. 서류 작업이 까다로울까?”
파울이 동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친구. 걱정하지 말라고. 초이라면 무료 봉사할 생각도 있어. 하지만 초이 정도의 선수라면 좀 더 큰 호화 주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의외로 내 고객이 큰 건 싫어하더라고. 이 집이 딱 적당할 거 같아.”
“참 검소한 친구로군. 생각보다 더 맘에 드는데?”
“근데 소문은 내지 말라고. 선수가 귀찮아지면 에이전트인 나도 귀찮아지니까.”
“후후훗! 염려 말라고. 나도 이 근처에 살고 있는데 다들 내 친구들이야. 도르트문트의 핵심 선수에게 무례하게 굴 사람은 없어. 있다면 나와 내 친구들이 처리해주지.”
“너무 고마운데?”
“혹시 기회가 된다면 사인 좀 받을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거든.”
“초이라면 그런 부탁은 무조건 들어줄걸?”
김동현은 파울과 중개인과 고객의 사이로 들어왔다가 1시간 후에 친구가 되어 나갔다.
**
“···괜찮을까?”
새벽 5시가 되면 늘 눈이 떠지는 최준호였다.
그는 레아와 함께 찍은 사진을 가만히 보면서 중얼거렸다.
6명은 밤 11시가 될 때까지 꽤 신나게 놀았다.
다음날 있을 경기 때문에 술은 먹지 않았지만, 6명 다 성격이 무난하고 좋은 사람들이라 즐겁게 식사를 하면서 유대감을 키워갔다.
레아 일행은 내일 있을 이벤트 때문에, 준호 일행은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 때문에 서로 헤어질 때는 서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축구 이외에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것은 최준호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체적으로 한창 성장할 때에 그런 여유를 가지는 게 맞는지.
과거에 해서 좋지 않았던 일들은··· 모두 쳐내 가면서··· 이만큼 왔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이상하게 잠을 못 잤고, 그걸 생각한 최준호는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건 옳지 않은 것 같아. 난 역시 축구만 해야 해.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하지만 그건 최준호의 마음이었고.
얼마 후에 그의 손가락은 휴대폰으로 어떤 메시지를 치고 있었다.
– 잘 잤어?
얼마 있지 않아 메시지가 왔다.
– 한숨도 못 잤어.
– 왜?
– 그냥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넌?
– 나도 잘 못 잤어.
– 왜?
– 몰라.
– 나랑 같은 이유?
– 오늘 일 잘 마무리해. 난 운동 가야겠다.
메시지를 보내고 휴대폰을 닫은 최준호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나이 서른 넘어서 이게 무슨 주책이람?’
그렇게 생각하던 최준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어쩌면···자연스러운 일일지도.
“오늘 중요한 경기인데, 컨디션이 괜찮을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