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2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24화(124/184)
124화 데어 클라시코(1)
“송? 이 친구는 뭐지?”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가 있는 당일 사무국으로부터 뮌헨의 선발 출전 명단을 받은 마르코 로제는 조금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4-3-3 전술로 보이는 포메이션이었는데, 송우영이 나왔다.
분데스리가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선수였고, 얼마전에 바이에른 뮌헨 II에서 올라온 선수라 데이타도 별로 없었다.
“한국인인데? 뮌헨II에서도 눈에 띄는 활약은 없었어. 저번 월드컵에도 나오지 않는 걸 봐서는 폼이 그렇게 좋은 선수느 아닐 거 같아.”
“근데 왜 이런 친구가 나오는 거지? 무슨 의도지?”
축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스타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에 너무나 특이한 선수가 끼어 있었기에 마르코는 상대 감독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아르엔 로번이 저번 경기에서 당한 부상이 심한 거 같긴 한데. 세르쥬 나브리가 나와야 할 자로인데.”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 대부분이 멀티 포지션이 가능했기에 전술상 어떤 움직임을 보여줄 지는 직접 경기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오늘 있을 경기에 대비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르네 마리치가 몸을 푸는 선수들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오늘 초이의 몸이 조금 무거워 보이는데?”
반응도 살짝 느리고, 움직임도 약간 굼뜨는 것 같도 거의 접착제를 바른 듯 발에 붙던 공도 조금씩은 멀어지고 있었다.
마르코 로제 역시 최준호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모든 경기에서 컨디션이 좋을 수는 없지. 지금까지 매번 베스트에 가까운 폼을 보여준 것도 기적 같은 일이야. 다음 시즌 괜찮은 녀석들을 영입하기 전까지는 컨디션이 어떻던 저 녀석을 계속 출전시킬 수밖에 없어.”
“하필이면 리그 우승이 걸린 경기라 걱정이 되네.”
“우승은 노력만으로는 할 수가 없지. 신의 도움과 행운이 겹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어.”
보드진과는 담을 쌓고 산 전임 감독 토마스 투헬과는 다르게 마르코 로제는 아주 영리하게 보드진과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시즌 보드진에서 준 목표도 챔피언스 리그 8강 진출, 리그 2위, 포칼컵 우승 정도였긴 하지만, 그 역시 야심많은 감독이라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다만 그걸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오늘 아침 간단한 브리핑 때에도 선수들에게 <오늘 경기를 즐기고 오도록!> 이라고 말하며 부담을 주지 않았다.
‘부담은 나 혼자 안고 가면 될 일.’
**
“···사진이 왜···왜 이렇지···?”
그림 파일들은 전부 꺼멓기만 했다.
“···렌즈 커버 안 열었네.”
“진짜 선배는 사진도 못찍어요?”
민선아가 살쾡이처럼 노려보자 양창명은 하늘을 보며 딴청을 하였다.
사실 일부러 그런 것이긴 했다.
견물생심이라고 사진이 있으면 그녀를 설득하기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술에 취했지만 제법 영리하게 행동했다.
“빨리 해명을 해봐요!”
술 먹고 놀다가 특종을 얻는 기회는 그야말로 로또 당첨과 같은 확률이었다.
“아니지! 해명이 아니지. 표정을 보니 일부러 한 거네?”
민선아가 날카롭게 째려보자 양창명은 먼 산 보던 얼굴을 그녀에게 돌렸다.
그리고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이름은 레아 바우어. 2018 미스 유니버시티 독일. 내 기억이 맞다면 최준호가 메펜에서 뛰던 시절에 아마 만났을 거야. 여자친구라고 하기에는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아는 사이.”
양창명이 순순하게 이야기하자, 딱딱하게 굳은 민선아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그런 거 알면서 숨긴 거였어?”
“아니. 나도 실물을 보고 나서야 안거야.”
“그래서 렌즈 커버 씌우고 사진을 찍었고?”
“그녀의 아버지는 마테우스 바우어. 메펜 팀에서 지금 골키퍼 코치를 하고 있고, 뒤스부르크에서는 레전드가 된 선수지. 최준호는 그의 집에서 임대 기간 계속 머물렀고.”
기분이 많이 상했던 민선아는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양창명을 쳐다보았다.
“···왜 순순히 알려주는 거야?”
“파파라치처럼 하지 말라는 뜻이야. 어차피 너나 나나 특종 없어도 짤릴 일은 없잖아? 특종 잡아봤자, 보너스 몇 푼 받는 거 밖에 더 있어? 그런 것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해질 선수와 척 질 필요는 없잖아? 특종 하나 터트리고 최준호 선수 은퇴할 까지 인터뷰 한 번 못하면 그게 더 손해 아닐까?”
양창명은 최준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에게 득이 될 것고 실이 될 것을 분명히 구분할 줄 알았고, 자신을 건드리는 사람에게는 어떻게든 보복을 한다는 것도.
아마 그런 기사가 뽑히는 순간 그 기사를 쓴 기자와는 영원히 대면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흐음. 일리 있네요.”
“우리끼리만 알고 때가 될 때까지는 입다물고 있는 게 어때?”
“선배가 선수 칠 지 어떻게 알아?”
“선수를 치려고 했다면, 너랑 같이 호텔에 있는 게 아니라 도망가서 어디선가 기사를 쓰고 있었겠지.”
양창명은 민선아가 짓고 있는 고뇌의 표정을 보고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아차렸다.
“어제 그 사건으로 기사가 난다면, 만약 그게 악의적인 기사라면, 우리가 잘 포장해서 아름답게 만들면 되는 거야. 최준호 선수의 호의를 더 살 수 있지.”
“···내가 알던 선배는 그렇지 않았는데?”
“경험이 쌓이고 이런 저런 일을 겪다보면 좀 더 현명해지는 법을 알게 되거든.”
“그럼 내가 현명하지 않다는 말?”
“···나보다는?”
“내가 렌즈 커버 안 빼고 사진 찍는 사람보다 멍청하다고?”
민선아가 손톱을 세우자, 양창명이 화장실로 도망가버렸다.
“선배, 그 화장실 잠글 수 없다는 거 알지?”
**
송우영은 세계적인 독일 공격수이자, 지금은 바이에른 뮌헨에서 코치직을 맡고 있는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조언을 구했다.
– 그 녀석은 나이에 맞지 않게 놀랍도록 뛰어난 역량을 갖춘 것이지, 세계 최고는 아니야. 하지만 많은 경기에서 뛰면서 가진 무기를 갈고 닦으면 언젠가는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겠지. 하지만 지금의 초이라면···전반전에 모든 것을 걸 생각이라면 그를 지치게 할 수도 있을 거야.
올해 20살의 송우영.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인천 유나이티드 FC에서 뛰다가 한국 최초로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선수였다.
최준호로 인하여 최연소 챔피언스 리그 출전 3등이 되어버렸지만, 그가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할 시에는 굉장한 선수가 될거라는 이야기들이 자자했었다.
– 그리고 이번 경기가 너에게는 전환점이 될거야.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선발에 들어간다는 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으니까.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네 능력을 한 차원 높일 수 있는 기회들이 주어질 거다.
송우영도 그 의미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했다.
어렸을 때는 수비 미드필더, 중학교에서는 미드필더,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빠른 발을 살리라는 감독의 제안에 윙어 포지션을 뛰었다.
그런 배경 때문에 그는 수비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다만 왜소한 체격의 동양인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기회를 부여받지 못해 성장이 정체된 상황이었다.
– 내가 그의 경기를 본 결과 은골로 캉테와 같이 정말 악착같이 달라붙어서 괴롭히는 선수를 만나면 실력이 제대로 안나오는 것 같더라. 네 단거리 스프린트 능력은 분데스리가에서도 최정상급이니까 그걸 잘 이용해서 상대를 마크하는 것이 어떨까?
– 알았어.
– 넌 굉장한 가능성을 가진 선수야. 난 네가 제대로 성장하기를 원해. 그러니까 언제든지 조언을 구할 것이 있으면 전화해.
– 고마워. 클로제.
송우영의 목표는 모든 축구 선수들이 그렇듯 태극 마크를 달고 국가를 대표에서 뛰는 것이었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오늘의 경기가 분명 분수령이 될 것이었다.
‘녀석을 잡자! 그 녀석을 잡으면 내게도 길이 생긴다.’
송우영은 비장한 각오로 마음속에 다짐을 하며, 숙소를 나섰다.
**
‘···희한하네.’
에당 아자르는 프랑스 릴에서 뛸 당시 밤을 새며 술을 먹고 와서는 30분만에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근데 고작 잠 좀 설쳤다고, 컨디션이 이렇게 안좋을 수가 있나?
최준호는 자신의 몸상태를 금방 알아차렸다.
‘설마 슬럼프 같은 건 아니겠지?’
자꾸 딴 생각이 드니 판단이 조금씩 느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씨, 어젯 일은 괜한 것일까?’
주장인 마르코 로이스가 귀신같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낸 듯 다가왔다.
“초이, 오늘 패스가 좀 그런데?”
“너무 길었죠?”
“전반적으로.”
“다시 해보죠.”
“그래.”
마르코 로이스와 짧게 이야기를 끝낸 최준호는 테스트를 해봤지만, 여전히 영점 잡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빠르게 땀이 턱 끝에 걸리는 것을 느끼고는 잠시 그라운드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지는 건 죽어도 싫은데.’
모든 경기에서 100%의 실력을 계속 발휘한다는 것은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누군가는 컨디션이 나쁠 것이고, 분명 누군가는 컨디션이 좋을 것이다.
‘누군가는 컨디션이 좋을 수도 있겠네···’
최준호는 잠시 관점을 바꾸고, 다시 선수들과 패스를 빠르게 주고 받았다.
오랜만에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하는 마리오 괴체의 컨디션이 제법 좋아 보였다.
받기 좋게 공을 주고, 롱 패스도 꽤 정확하고.
마리오 괴체는 천재형 플레이메이커라는 별칭이 따라다닐 정도로 어렸을 때는 날라다닌 선수였지만, 선천적인 질환과 부상 여파 때문에 포텐셜을 제대로 터트리지 못한 선수였다.
또 생긴 이미지가 얌생이 짓 할 것 같아서 많은 사람들이 게으른 천재라고 생각하지만, 도르트문트에서 같이 지내다보니 얼마나 성실한 선수인 지 알 수 있었다.
부상 여파로 폼이 좋질 않아서 몇 경기 교체 명단으로 뛰다가 이번에 선발로 다시 돌아온 괴체.
최준호는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야?”
마리오 괴체가 최준호를 보는 눈빛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걸려 있었다.
어렸을 때 마리오 괴체도 최준호만큼이나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선수였다.
2010년대 초반의 마리오 괴체는 독일의 원더보이였고.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의 전설적인 공격수 클로제와 교체를 했을 때 클로제는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말했었다.
– 이제부터 네가 주인공이다. 무대를 장악하고 돌아와.
그랬던 자신이 4년이 지난 시점에는 빅클럽에서는 찾지 않는 그렇고 그런 선수가 되어 있었다.
“나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 말에 마리오 괴체는 살짝 놀랐다.
클럽에서는 항상 팀웍을 강조하지만, 스타성이 강한 선수들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는 성향이 매우 강했다.
하지만 최준호같은 슈퍼 스타가 대놓고 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근래에 들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어?”
“공격 작업을 좀 맡기고 싶은데 괜찮겠어?”
마리오 괴체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눈을 크게 떴다.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도르트문트 공격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최준호였다.
그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런 녀석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고?
“내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오늘 컨디션 좋아 보여.”
“진짜?”
“농담 아닌데, 진짜야.”
최준호가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고개를 강하게 끄덕이자, 마리오 괴체는 없던 자신감도 생길 지경이었다.
“···맡겨줘.”
“고마워.”
최준호가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갔고, 마리오 괴체는 웬지 모르게 기합을 질러야 할 것만 같았다.
“이얍!”
선수들과 코치가 고개를 돌려 혼자서 계속 기합을 지르고 있는 마리오 괴체를 보았다.
몇몇의 독일 선수들은 그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저 녀석 설마···”
“토니 크로스랑 마누엘 노이어 같은 똘아이가 되는 거 아니겠지?”
“대표팀에서 녀석들이랑 같이 어울려 다니는 거 같은데?”
“······”
**
알리안츠 아레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첫 손가락에 꼽히눈 구장.
7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구장은 벌써 세 면을 붉은 색으로 완연하게 물들어 있었다.
한쪽 면에는 도르트문트의 광팬들 15,000명이 자리를 잡았고, 하늘색 유니폼을 입은 1860 뮌헨 팀의 팬들도 보였다.
– 1860 뮌헨에게서 뺏은 스타디움을 돌려달라!
– 바이에른 도둑놈의 새끼들. 오늘 처절하게 져 버려!
– 이 구장은 1860 뮌헨의 것이다!
1860 뮌헨과의 경기장 임대 계약이 끝나면서 더 이상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1860 뮌헨의 경기를 볼 수는 없었다.
이에 항의하는 일부 팬들이 와서 거의 시위를 하였고.
슈퍼 스타들을 대거 가지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은 최근 도르트문트의 약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 송이 누구야?
– 난 처음 듣는 이름인데?
– 바이에른II에서 뛰다가 이번 시즌 올라왔어.
– 근데 어떻게 선발이지?
– 혹시 알아 초이 같은 폼을 보여줄지.
–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송우영의 선발 출전에 의아함을 표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기다 여기.”
강렬한 바이에른 뮌헨의 응원가에 악을 지르며 대항하던 도르트문트 팬들은 갑자기 나타난 세 명의 미인에게 눈이 돌아갔고, 그들의 응원가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지지마!”
“기세를 올려!”
“엉뚱한 곳에 시선 주지마!”
쥐트리뷔제에서 2시간 내내 서서 응원하는 도르트문트의 광팬들 답게 간신히 시선을 그라운드에 돌리고는 바이에른 뮌헨의 응원곡 <남쪽의 별>에 대항하여 를 외쳤다.
“우리의 그라운드를 돌려줘!”
“빌어먹을 욕심쟁이 새끼들!”
여기에 1860 뮌헨 팬들의 시위까지.
“···정신 없네.”
라커룸에서 미팅을 끝낸 최준호는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나오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최준호의 눈은 이내 송우영에게 향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출장을 한 적이 없는 형인데···’
송우영은 최준호를 보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고, 최준호는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과거 최준호의 등장으로 양희찬과 더불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송우영이었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붙임성 좋은 최준호가 송우영의 표정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오늘 잘 부탁해. 나도 최선을 다해 막을테니까.”
“······”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송우영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한 지도 기억을 못했지만, 최준호의 표정은 묘하게 바뀌었다.
‘···공격수로 나올 텐데, 골을 넣는 게 아니라··· 막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