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3화(13/184)
13화 유소년 캠프 VS U-16(5)
“저 자식 뭔데?”
U-16 아이들은 바로 앞에서 몸을 풀고 있는 무코코.
닐스의 눈은 무코코 옆에 있는 토마스에게 향했다.
큰 키에 긴 다리를 가진 토마스가 굉장히 높은 서전트 점프를 하자, U-16 아이들은 위기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축구가 아니라 농구 선수가 적성에 맞는 거 아니야?’
전반전 막판에 21번이 후방으로 내려 앉아 대놓고 롱패스를 뿌리는데, 골을 먹었다고 생각할 만한 장면이 여러번 연출되면서, 살짝 위축이 되었다.
‘무코코라니?’
아무래도 21번과 조합이 되면 엄청난 파괴력을 보일 것 같았다.
더군다나 22번의 점프력과 키는 자신의 팀 센터백이 감당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본능적으로 아예 뒤로 눌러 앉아 수비를 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도르트문트는 나름의 축구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는 팀이었다.
이 철학은 위르겐 클롭에 의해 뿌리를 내렸는데, 전원 공격, 전원 수비, 전원 압박, 게겐프레싱, 공격 축구였다.
내려 앉아 수비나 하는 축구는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린 리그 우승팀이야. 저런 놈들에게 질리 없어.’
닐스는 동료들을 모으고는 소리쳤다.
“저 어중이떠중이들에게 비기거나 지기라도 한다면 엄청난 치욕일 거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왜 U-16 리그 우승팀인지 보여주자.”
한 편 최준호는 전방에서 토마스 시아카와 함께 센터 서클에 있는 무코코를 보았다.
그의 스피드에 대해서는 1860 뮌헨 시절 많이 경험했다.
포칼컵을 포함하여 3년 동안 도르트문트와 7번 경기를 하였는데 전패를 하였다.
빠른 스피드, 강한 슈팅, 엄청난 골 결정력,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드리블 돌파, 왼발 중거리 슛, 체구에 비해 놀라운 몸싸움 능력과 상대를 등 지고 버티는 능력, 신속한 180도 터닝 페인트, 엄청난 시야와 위치 선정 능력, 많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전방 압박 능력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물론 그건 전성기의 무코코의 이야기긴 했다.
‘시야, 위치 선정 능력과 스피드, 골 결정력.’
최준호에겐 그 네 가지 능력이면 충분했다.
어시스트 셔틀로서.
후반전이 시작되고, 최준호는 무코코와 2:1 패스를 주고 받으며 전반전에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여유를 찾을 수가 있었다.
– 툭
패스를 주고 두 수비수 사이 공간을 빠르게 치고 달리는 무코코에게 최준호는 로빙 패스처럼 살짝 공을 띄어 보냈다.
그것을 본 수비수 한 명이 펄쩍 점프를 뛰었지만, 닿지를 않았다.
한 번 바운된 뒤에 정확히 달리는 자신의 왼발 앞에 떨어지는 공을 보며 무코코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 툭, 툭…
공을 툭툭 치며 달려드는 수비수를 180도 턴으로 제낀 무코코는 거의 무인 지경으로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진입했다.
너무 빠른 가속과 스피드에 죽어라 뛰는 수비수들은 그가 슈팅을 때려 골망을 흔들고 나서야 접근할 수가 있었다.
“오프사이드!! 오프사이드!!”
하지만 폴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완벽한 타이밍에 기가 막힌 정확한 패스였다.
무코코의 폭발적인 스피드는 U-16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12살이라고? 진짜 괴물이네.’
폴은 골 인정 휘슬을 불고는 별 다른 표정 없는 모습으로 터벅터벅 센터 서클로 걸어가는 최준호를 보았다.
‘저 녀석도 괴물이네. 처음 호흡을 맞추는데, 그 타이밍에 정확하게 이런 패스를 넣어주네.’
어떤 메카니즘이 작동해야 이런 게 가능할 지 폴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미롭군.”
투헬은 신음을 흘리듯 중얼거렸다.
“저 23번은 누구지?”
“무코코 유수파. 지난 U-15 리그를 붕괴시켜버린 괴물이야. 12살이고.”
“12살?”
“응. 저 피지컬 때문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17~18살쯤으로 생각하겠지만.”
“아쉽군.”
도르트문트 1군은 16세 하고 6개월이 지난 선수만 등록을 할 수가 있었다.
투헬이 보기에 무코코 유수파의 순간적인 움직임만 보고도 그가 얼마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선수인지 느낄 수가 있었다.
“너무 어리지?”
“응. 저 21번은 몇 살이야?”
“15살.”
“12살? 15살? 요새 축구판이 미쳐가는 군. 저걸 누가 15살짜리 플레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메시가 등장했을 때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긴 했었다구.”
디아스는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 두 선수가 메시만한 플레이어가 될 지 안 될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도르트문트의 유소년 팀의 미래가 엄청나게 밝은 건 기정사실이었다.
“…메시라…”
**
후반 31분 경.
거의 완벽하게 골을 헌납한 U-16은 눈에 불을 켜고 달려 들었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무코코라는 존재 때문에 센터백들이 올라오질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미드필더 라인과 수비 라인의 공간이 커지면서 패스 연계가 흐트러졌고, 전반전 후방에서 롱 패스를 주던 최준호는 그 넓은 공간에서 상대를 헤집고 다녔다.
‘아, 미치겠네.’
공을 좀 끌기라도 한다면 몸통 박치기라도 하고 싶은데, 두 번 이상의 터치를 절대 하지 않는 최준호였다.
공도 없는데 몸싸움을 벌일 수도 없으니 애드윈은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걸어다니는 것처럼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공간으로 움직이는 최준호를 따라다니느라 체력도 많이 소진이 되었다.
후반전 이른 만회 골로 사기가 잔뜩 오른 캠프 아이들은 정말 무지막지하게 몸을 던지면서 상대 공격을 저지하였다.
더 이상 골을 먹지 않는다면 어쩌면 비기거나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U-16의 문전 앞 슈팅이 수비에 가담한 토마스에 막혔고, 튕겨 나온 골은 바로 최준호에게 연결이 되었다.
최준호는 공을 잡음과 동시에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또냐!’
애드윈은 최준호에게 바짝 붙는 게 아니라 공간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무코코로 향하는 패스길에 다리를 찔러넣었다.
그 순간.
패스를 할 것만 같던 최준호의 발이 민첩하게 바뀌면서 애드윈의 무게 중심 반대 방향으로 공을 툭 밀었다.
플립플랩.
“억!”
전혀 예상치 못한 플레이에 애드윈이 당황하며 스치듯 지나가는 최준호를 잡으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능숙하게 팔을 휘둘러 애드윈의 손을 떨쳐내 버렸다.
이내 균형을 잃고 그라운드에 처박히는 애드윈.
순간적으로 공격수 3명 수비수 2명이 되어버린 상황.
지금까지 드리블은 거의 없던 최준호가 빠르게 공을 몰고 올라가자 무코코를 맡고 있던 센터백 두 명 중 하나가 그를 마크하기 위해 접근했다.
‘기회!’
무코코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왼쪽 빈 공간으로 뛰어들어갔고, 남은 센터백은 그를 죽어라 쫓아갔다.
당연하지만 골키퍼의 시선도 무코코 쪽으로 향한 상황.
– 툭!
덩치 큰 센터백이 최준호에게 붙기 전 패스가 나갔는데, 그 방향은 무코코가 침투하던 공간이 아니었다.
완전히 반대 방향의 공간.
“뭣?”
오른쪽 사이드에서 정말 미친 속도로 달려오던 토마스가 무인지경으로 페널티 에어리어로 달려오고 있었고, 그 앞으로 공이 택배처럼 배달이 되었다.
토마스는 어제 하루 종일 훈련했던 감각을 떠올렸고, 골대 구석 오른쪽으로 향해서 정확하게 오른발 인사이드로 공을 찼다.
– 철썩!
무코코에게 시선이 쏠려 왼쪽으로 움직인 골키퍼는 역동작에 걸려 그리 세지 않았던 슈팅임에도 골망을 흔드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와아아아!!!”
토마스가 고함을 지르며 신이 난 표정으로 포효를 하였고, 다른 아이들도 이제 팀에 완전히 녹아든 듯 소리를 지르며 토마스에게 달려들었다.
무코코는 자신에게 패스를 줬어도 골을 넣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방금 그 패스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완벽한 킬 패스였다.
자신조차 그 패스길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대단하다. 재밌다!’
토마스가 꽉 껴안은 바람에 숨이 턱 막힌 최준호는 숨을 몇 번이나 골라야 했다.
‘후아… 내가 공격수가 아니라 미드필더 재능이었구나!’
확실한 골 결정력이 있는 무코코에게 찔러주려고 했지만, 아주 순간적으로 토마스가 시선에 걸렸다.
그 앞 공간엔 수비수가 없었고, 마치 머릿속에 하얀 분필로 그린 것처럼 패스길이 보였다.
그리고 주저 없이 그 앞으로 스루 패스를 넣었다.
토마스는 같이 연습한 대로 침착하게 슈팅을 때려 골을 넣었고 동점이 되어 버렸다.
골을 넣었을 때의 그 느낌과는 전혀 다르지만, 가슴 속이 꽉 찬 것 같은 희열이 느껴졌다.
**
장기나 바둑은 원래 훈수 두는 사람이 더 잘 보는 법이었다.
게임을 하는 사람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이 게임을 지켜보던 양창명 기자조차 그 공이 22번에게 연결될 줄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한 번의 패스로 21번 최준호의 재능이 상상 이상임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게임을 관찰하던 투헬은 휴대폰을 들었다.
– 무슨 일이야 감독?
1군 수석 스카우트 레한드로였다.
– 선수 스카우트 보고서 하나 써야겠어.
– 누구?
– 음….
옆에서 듣고 있던 디아스가 대답했다.
“도르트문트 유소년 축구 캠프.”
– 지금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하고 있는 축구 캠프 지원자.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지금 세계 1군 클럽에서 뛰고 있는 쟁쟁한 선수들 스카우트 보고서 받기도 바쁜데, 유소년 축구 캠프 지원자라니?
– 그래서 누구?
– 21번, 22번 그리고 23번.
– 세 명씩이나?
– 일주일 안에 가능하지?
그렇게 묻고는 답변도 듣지 않고 휴대폰을 끊는 투헬.
그는 이내 몸을 일으켰다.
“안봐?”
“안봐도 결과는 뻔해. 1군 전술 미팅 간다.”
“에이 동점이야. 결과는 끝까지 가봐야 알 걸?”
디아스의 말에 투헬이 다시 한 번 그라운드를 보았다.
그 어떤 선수가 실제 경기에서 두 번 이상의 터치를 하지 않을까?
그걸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여유’였다.
“저 21번. 많은 걸 숨기고 있어. 내 생각에 경기는 3:2로 끝날 거야, 21번이 넣거나 세 개의 어시스트를 하거나.”
투헬은 그 말을 남기고는 관중석을 총총걸음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후반 43분경.
절대 질 수 없다는 오기에 가득한 표정으로 10여분 간 하프게임을 펼친 U-16.
세트피스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지만, 골문을 지키던 토마스가 골문으로 들어가던 공을 헤더로 멀리 보냈다.
그 공을 무코코가 받았고, 그는 힐 패스로 보지도 않고 최준호에게 보냈다.
최준호는 굴러오는 공을 논스톱으로 가속하는 무코코 앞, 그리고 상대 수비 뒷공간에 떨궜다.
갑작스러운 역습에 수비 대형이 갖춰지지 않았지만, 무코코의 스피드에 익숙한 센터백이 그의 슈팅을 태클로 걷어내면서 숨을 돌리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 공은 뛰어들어오는 최준호에게 향했다.
최준호를 졸졸 따라다니던 애드윈이 그가 어디로 패스할 지 고개를 돌리며 시야를 확보할 찰나.
최준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다이렉트로 발리슛을 때렸다.
– 뻥.
오른쪽 발등에 제대로 얹힌 공은 가운데서 오른쪽 상단 위로 휘어 들어갔다.
골키퍼가 코스를 읽고 몸을 날렸지만, 그의 손에 공이 닿기도 전에 공은 이미 그물을 출렁이고 있었다.
“…맙소사!”
에드윈을 비롯한 U-16 선수들은 모두 머리를 양 손으로 잡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정말 예상도 못한 타이밍의 슈팅이었고, 너무나 강력한 슈팅이었다.
‘EPL 뛰던 내가 이런 경기에서 골 넣었다고 좋아할 수도 없고.’
뭐랄까?
상대 선수가 뭘 할 지 대부분 예측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세계 최고 리그 수준의 경기를 뛰면서 쌓인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달려오는 동료들을 향해서는 방긋 웃음을 주었다.
**
경기는 그렇게 투헬이 예상한 대로 3:2로 끝나버렸고, 닐스를 비롯한 U-16 아이들은 충격적인 패배 때문인지 다들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정말 충격적인 승리였다. 오늘 경기로 인해서 도르트문트의 모든 눈과 귀가 너희에게 쏠릴 거야. 4주 후에 재시합이 있으니 남은 시간도 최선을 다해 임해주기 바란다. 경기 이후에 회복에 최대한 집중할 것.”
미하일의 간단한 미팅이 끝난 후 최준호는 슬며시 빠져나가려는 무코코에게 다가갔다.
“무코코 유수파?”
“…응?”
“난 최준호야.”
“…독일인?”
훌륭한 억양 덕분에 무코코가 물었다.
“아니. 한국인. 도르트문트에서 뛰는 거지?”
“…어?”
“혹시 같이 뛰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도르트문트에서 뛰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
“…어…”
말을 떠듬 떠듬 하는 무코코는 어색한 눈 인사만 남기고 락커룸을 떠났다.
캠프 쪽에 최준호를 빼고는 수준이 낮은 아이들이라 전반적인 경기는 U-16에게 밀렸지만, 순식간에 전개 되는 역습의 수준은 그 동안 무코코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최준호의 발 밑에서 나오는 패스는 정말이지…
“무코코.”
아심이었다.
“꽤 오랫동안 네 경기를 쫓아다니며 봤는데, 오늘이 가장 빛나더라. 네가 뛰면 상대가 어쩔 줄 몰라했거든.”
“…네…”
무코코도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21번 이랑 오랫동안 같이 뛰고 싶지 않아? 나라면 그러고 싶을 것 같다.”
무코코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아심도 그의 침묵에 방해를 하지 않고 아카데미를 벗어날 때까지 옆에서 같이 걷기만 했다.
“…생각해 볼게요.”
**
‘흐으. 역시 죽겠군.’
최준호는 경기 후 빠른 회복을 위해서 얼음찜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회복실 문이 덜컥 열렸다.
팬티 하나만 걸친 김우영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러더니 얼음찜질통에 다리를 하나 쑥 집어넣었다.
“허업!!”
비명을 꾹 삼킨 김우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다리도 집어넣고는 허리까지 털썩 앉았다.
얼굴이 시뻘겋게 될 정도로 변한 김우영이 최준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최준호.”
“왜?”
“어떻게 너 같은 선수가 아무런 정보가 없을 수 있지?”
최준호는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왜 이런 빌어먹을 얼음통에 들어가 있는 거지?”
“운동 후에 회복을 빠르게 해주거든.”
“다 이유가 있었네.”
“시시콜콜하게 그런 거 물어볼려고 무리한 짓을 하는 건 아니지?”
“그럼! 나 축구 좀 가르쳐줘라.”
“…뭐?”
김우영이 절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키는 대로 다 할테니까, 뭐든 지 좀 가르쳐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