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3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32화(132/184)
132화 그의 클래스(3)
1981년에 설립된 한국의 스포츠 용품 제작 업체인 키코는 축구화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에 비교하면 개인사업자 취급을 당할 정도로 작은 회사였다.
과거 2002년에 한국이 4강 신화를 거둘 때 1년 매출 160억을 찍고 나서는 계속 내리막길이었고, 1990년대 후반에 한국에서 점유율 50%를 넘겼던 이 회사는 지금은 인터넷 마켓에서나 겨우 물건들을 파는 회사로 전락했다.
세계적인 대형 스포츠 회사에게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이 회사는 이런 겉모양과는 다르게 숙련된 기술자를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초창기 창립 멤버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국으로 유학 후 나이키에 입사 그곳에서 15년 동안 일한 후 한국에 돌아온 양희영은 아버지가 운영했던 회사 키코의 전문 경영인으로 일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유능한 기술자들을 영입하고 유수의 회사에서 사용하는 최첨단 공법을 도입하는 일이었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투자를 하였고, 품질과 성능을 세계적인 스포츠 회사 수준으로 끌어올렸지만, 4~5만원에 팔던 축구화 가격을 12만원까지 올리는 바람에 팔리지가 않아 재고가 점점 쌓여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서 엄청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해. 엉뚱한 것을 하려니까 이 상황까지 온 것이지.”
오랫동안 회사에 몸을 담았던 멤버들이 양희영을 힐난하였다.
“어차피 이대로 가면 살아남지 못해요. 꼭 필요한 변화였어요.”
국내 유일의 스포츠 제작사였고, 그 향수를 가진 40대 이상이 구매를 한 것이지 젊은 축구 동호인들은 더 이상 키코를 찾지 않았다.
“대책은 있습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양희영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책은 없었다.
하지만 얼마 전 받은 이메일 한 통 덕분에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다름 아닌 최준호 선수의 축구화를 커스텀 메이드 해달라는 요구였다.
물론 수신을 보니 세계의 거의 모든 축구 제작사에게 다 뿌리긴 했지만, 양희영의 생각에 돌파구는 딱 이것 하나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요. 인지도가 높은 선수가 우리 신발을 신을 수 있다면 다시 부활 할 수 있습니다.”
“인지도 높은 선수요? 누가 우리 신발을 신어준답니까? 이미 나이키나 아디다스와 같은 회사들이 많은 돈을 퍼 주고 계약을 하겠죠.”
“최준호 선수는 아직 신발 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았어요.”
최준호란 말에 다들 코웃음을 터트렸다.
“···그 친구의 위상을 생각할 때 절대로 우리 회사와 계약을 맺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 부정적이죠?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양희영은 최준호의 에이전트로부터 받은 메일을 공개했다.
“그는 자신의 발에 가장 맞는 신발을 만들어 주는 회사를 원하고 있어요.”
“계약도 없이 만들어 달라는 건 갑질 아닙니까?”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느끼겠지만, 저는 이걸 기회라고 보고 있어요. 우리가 갖춘 설비와 품질 좋은 재료, 그리고 여러분의 노하우가 합쳐진다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런 걸 할 만한 자금적 여유가 없습니다. 회사채 발행해도 팔리지가 않아요. 설마 사채 시장에 손을 벌릴 생각이신가요?”
“모든 걸 다 끌어모아서 최고의 신발을 만들어 보죠. 그러면 분명 길이 보일 겁니다.”
양희영은 결국 경영진을 설득하였고, 그녀는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기술자와 함께 독일로 넘어왔다.
그리고 슈투트가르트와 도르트문트의 경기를 보게 되었다.
후반
전반전과는 달리 완전히 라인을 내려 실점을 최소화하려는 슈투트가르트.
도르트문트는 그런 슈투트가르트를 쉴새없이 두드렸다.
도대체 누구의 홈 경기인지 모를 정도로 도르트문트의 압도적인 경기.
누가 봐도 이 경기를 조율하는 핵심 선수는 중원의 최준호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후반 19분경.
3줄 수비를 펼치는 슈투트가르트 4명의 선수 사이를 뚫고 들어간 최준호의 스루패스가 오른쪽에서 쇄도하는 산초에게 연결이 되었고, 그의 발에서 골이 또다시 터지고 말았다.
갈수록 조용해져만 가는 메르세데스 벤츠 아레나.
사람들의 시선이 축구 플레이에 가 있을 때 양희영의 눈은 최준호가 신은 신발에 가 있었다.
분명 나이키의 머큐리 시리즈였다.
‘머큐리얼 베이퍼 9’
커스텀 메이드가 아니라면 시중에 나와 있는 신발일 것이고, 경기중에 신는 것이라면 그나마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모델일 것이었다.
– 인국씨. 머큐리얼 베이퍼 9이네요. 최준호 선수를 만나기 전에 일단 그 신발부터 보고 있으세요.
– 알겠습니다. 사장님.
다른 회사들은 최준호 선수가 좋은 돈벌이가 될 수 있겠지만, 키코에게는 그가 유일한 구세주였다.
‘꼭!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만족할 만한 축구화를 만들겠어.’
후반 35분경.
하키미의 코너킥을 김우영이 헤더로 골을 넣으면서 스코어를 6-0까지 벌려놓았다.
‘···아, 김우영 선수도 있었구나! 김상식 회장의 손자라고 했지?’
부족한 자금은 그쪽에서 빌릴까도 생각했지만, 자칫했다간 경영권을 먹힐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양희영은 고개를 저어 훌훌 털어버렸다.
그리고 후반 42분경 최준호가 오프더볼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수비들 사이를 뚫고 최전방까지 침투했는데, 마르코 로이스가 이걸 놓치지 않고 최준호의 머리를 향해 크로스를 올렸다.
그들의 정신이 함께 침투한 엘링 홀란드에게 쏠려 있었기 때문에 최준호는 아주 편안하게 예리한 마르코 로이스의 크로스를 헤더 슈팅으로 연결할 수가 있었다.
– 철렁!
7-0.
슈투트가르트의 골키퍼 쾨벨이 무릎을 꿇고 골대 안의 공을 멍하게 보는 장면이 이 게임을 말해주는 척도였다.
관중석은 이미 절반이나 비어 있었고, 극소수의 도르트문트 팬들의 응원가가 들릴 뿐이었다.
이 골을 끝으로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 마르코 로이스는 모두 교체되어 나왔다.
**
경기 MOM은 단연 최준호였다.
4골 2도움.
평점은 10점 만점.
지지부진했던 경기력과 레드카드의 여파를 단숨에 떨쳐버린 경기였기에 기자들이 할 이야기가 많았다.
– 도르트문트 1군 데뷔 후에 가장 충격적인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유가 있는가?
– 슈투트가르트 팬들의 원숭이 흉내 소리가 나에게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동기가 되었다. 그래서 슈투트가르트 팬들에게 무척 감사한다. 나조차 믿어지지 못할 결과를 만들었다.
어쩌면 굉장히 기분 나빴을 상황을 조크로 대응하는 최준호에게 기자들이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 아마도 오늘 경기를 본 많은 분데스리가 팀 팬들은 더 이상 원숭이 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최근 파리 생제르맹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바이아웃을 모두 지불 하고 자신의 팀으로 이적시키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 혹시 이적할 생각인가?
– 이적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팀의 손을 잡을 생각이다.
–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겠다. 이번 경기로 당신은 최연소로 10-10 클럽에 가입했으며, 여러 가지 기록을 갱신하였다. 최단 시간에 20-20 클럽에 가입도 가능하다는 전망인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난 팀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지는 것을 싫어한다. 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였고, 아마도 그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록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 오늘 프랑스의 국가대표 뱅자맹 파바르가 당신을 완벽하게 놓치고 말았다.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나?
– 그는 스스로를 은골로 캉테와 비슷한 레벨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의 쓰임새는 센터백이지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 오늘 이 경기에서 친해진 어린 친구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기자들의 시선이 최준호에게 향했다.
– 헨리. 모든 선수들은 성별과 피부색과 상관없이 존중을 받아야 해. 나중에 슈투트가르트 팀이 도르트문트로 올 때 경기 초대권을 보내줄게. 부모님과 같이 와서 즐기도록 해. 물론 슈투트가르트에게는 매우 힘든 경기가 될 테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와야 해.
끝까지 응원하는 팀이 박살 나는 걸 지켜보며 울었던 헨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경기장에 헨리가 몇 명이나 있을 지 모르겠지만.
헨리는 자신의 손에 들린 원숭이 가면을 땅에 던졌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거 안 할 거야.’
**
그 다음 날 오후.
오전에 간단한 회복 훈련을 받은 뒤 2시간 정도 잠을 자면서 몸을 회복한 최준호는 오후에 예정된 만남을 가졌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박성실은 최준호와 가볍게 악수를 하였다.
축구를 할 때는 정말 카리스마 넘쳤는데, 웃음이 많고 인상이 좋은 어린 소년 같았다.
덕분에 부담이 많이 사라진 박성실이 간신히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긴장 안 해도 돼요. 여긴 염라대왕이 있는 지옥문이 아니니까요.”
“킥.”
최준호의 농에 박성실이 가볍게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고 나니 정말 편해진 모습이었다.
“너무 깔끔하게 살고 있네. 물건이 너무 없는 거 아냐?”
그 사이에 집안을 둘러본 김동현이 다가왔다.
“맨날 운동하는 선수가 뭐가 있겠어요? 토마토 주스 어때요?”
“커피는?”
“운동할 때는 카페인도 좋은 게 아니라서요. 토마토 쥬스 밖에 없어요.”
“아주 철저하네?”
“그럼요.”
“내가 그래서 준호가 정말 좋아.”
“신경 쓸 게 없으니까 그런 거겠죠.”
“정답!”
김동현이 웃음을 터트리는 사이에 최준호는 쥬스를 챙겨왔다.
셋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그런 걸 에이전트가 관리하는 게 아니라 회사를 차려서 한다는 거죠?”
“우리 대표님은 선수에게 집중하는 것을 원해. 이런저런 일을 벌이다가 관리하는 선수들과 얼굴 붉히는 것 싫어하고.”
축구와 별개로 명성을 얻는다는 건 2차적인 돈벌이가 생긴다.
브라질 같은 곳에서는 제대로 교육을 못 받은 선수들을 속여 에이전트가 이런 수익을 모두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서 PHK 에이전시는 정말로 선수 관리에만 모든 것을 쏟아붓는 듯했다.
‘신념이 확실한 회사네. 확실히 끝까지 갈만한 에이전트야. 이 사람이 동현이 형이 천거해주는 사람이라···.’
최준호의 시선이 박성실에게 향했고, 박성실은 시선이 좀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내렸다.
최준호는 박성실이 그간 자신의 SNS 계정을 관리해주었다는 사실밖에 아는 것이 없었다.
이력이 어떻다는데, 최준호 자체가 그런 이력보다는 실력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이동민의 경우가 그러했고.
‘···검증할 필요가 있는데.’
마침 키코라는 신발 회사의 대표가 떠올랐다.
어제 연락을 주고받았고, 만날 시간인 아직 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늘 좀 오래 있어도 되죠?”
최준호의 말에 김동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재워주게?”
“방 많으니까 아무데서나 엎어져 자면 돼요.”
최준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휴대폰을 들어서 양희영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
– 지금이요? 물론이죠. 당장 가도록 할게요.
연락이 끝나자 김동현이 물었다.
“누구?”
“키코 라는 회사 대표요.”
“키코? 아, 국내 축구화 브랜드. 근데 왜 날 안통하고 직접 접근한 거야? 괘씸하네.”
“그쪽이 워낙 작은 회사다 보니까, 에이전트에서 쳐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뭐, 그랬을 가능성이 있긴 하네.”
“가능성이라니요? 바로 쳐냈을 거면서.”
“근데 귀찮게 거길 만나겠다고?”
“좀 재미있는 제안을 해서요.”
“뭔데?”
“맞춰볼래요?”
최준호의 수수께끼에 김동현이 머리를 굴렸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아, 형 머리 터져 죽는 거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말해라!”
“잘 생각해봐요.”
김동현이 머리를 박박 긁으며 한참 생각을 하였고, 옆에 있던 박성실이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아보더니 조용하게 말했다.
“제가 추측해도 될까요?”
최준호와 김동현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럼요.”
박성실은 축구화에 대해 잘 몰랐기에, 방금 키코에 대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최근 매출 50억 정도 되는 작은 회사.
공식 매장은 한국에 고작 5개.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는 물건들.
최근 가격이 크게 올라 이마저도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여 회사 자체가 위험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키코가 최준호에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제안은 딱 하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박성실이 머릿속에서 내용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걸리자 최준호가 재촉했다.
“빨리요.”
박성실이 손으로 머리를 긁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에어 조던을 아세요?”
그 말에 최준호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묘한 미소와 함께.
김동현도 바로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설마?”
최준호가 입을 열었다.
“정확해요. 하지만 좀 다른 것은 제가 실질 대주주가 된다는 것이죠. 그쪽에서 그런 제안을 하더군요.”
“실질적인 대주주라고?”
“투자를 해주었으면 하더라고요. 저는 여기까지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잘 몰라요. 근데 성실씨가 정확하게 알고 있네요.”
최준호의 말이 끝나자 박성실이 입을 열었다.
“마이클 조던 선수의 연봉은 모든 스포츠 선수들을 합쳐서 최고의 수준이었죠. 하지만 그의 연봉이 에어 조던에서 나오는 수익금과 비교하면 고작 0.1% 수준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만약 성공할 수만 있다면 최준호 선수가 받게 될 연봉은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너무 큰 모험이 아닐까?”
김동현의 물음에 최준호는 대답 대신 박성실을 보았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최준호 선수는 자신의 발에 가장 잘 맞는 축구화를 찾았어요. 그러니까, 그런 축구화를 얻는 것만으로도 목적은 달성된 셈이죠. 돈을 버는 것은 그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아요. 마치 축구에 미친···”
박성실이 황급하게 입을 닫았지만, 최준호는 속으로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내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