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3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34화(134/184)
134화 코리안 더비(1)
사실 최준호의 도르트문트 재계약에 가장 실망한 사람은 토트넘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이었다.
여전히 토트넘은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알리와 에릭센이 월드컵 후유증으로 폼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특히 에릭센이 잔 부상으로 빠지면 토트넘의 공격은 고구마 100개를 한 번에 먹은 것처럼 답답할 정도였다.
엄청난 활동량과 피지컬, 고강도 압박 수비, 중거리포로 득점을 가져올 줄 알고, 뛰어난 전방 공격수를 향해 창의성이 있는 패스를 줄 수 있으며 탈압박도 가능한 다재다능한 선수가 필요하였는데, 세계 축구계를 통틀어도 이런 다재다능한 선수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혹여나 존재하더라도 토트넘이 감당할 수 있는 몸값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구단이 공개적으로 최준호에게 관심을 주고, 영입에 뛰어들기를 원했다.
구단이 자신의 고충을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하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당장 에릭센은 토트넘에서의 클럽 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조만간 떠날 수 있는 그를 대신할 선수를 구해야만 했다.
구단에서는 알리를 쓰라고 하지만, 포체티노의 생각에 알리는 절대로 에릭센을 대체할 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명장이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트로피를 하나 정도는 들고 있어야 하지만, 토트넘은 이제 때를 놓쳐가는 것 같았고, 포체티노는 기회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최준호가 바이아웃이 없는 재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토트넘은 절대로 데려올 수 없는 선수라고 확신한 포체티노도 조금씩 구단으로부터 마음이 멀어져갔다.
“홈 경기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EPL에서는 포체티노만큼이나 다양한 전술을 쓰는 감독이 없었다.
항상 상대해야 하는 팀의 맞춤식 전술을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선수비 후역습을 기반으로 하는 3-5-2 전술이었다.
요새 엄청난 폼을 보여주고 있는 박홍민과 해리 케인을 중심으로 발이 느린 상대의 센터백을 공략할 예정이었다.
미드필더 진에는 숫자를 많이 두어서 도르트문트의 핵심 선수인 최준호를 묶을 생각이었다.
알리에게 그 역할을 부여했는데 못 마땅해하는 눈치였다.
마치 난 공격수야! 근데 왜 수비를 하라는 거지?
라고 입술을 쭉 내밀었지만, 토트넘의 라커룸에서 폭군으로 통하고 있는 포체티노 앞에서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포체티노의 생각에 델레 알리의 재능은 최준호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최준호는 마치 엄청나게 많은 훈련을 한 선수처럼 노련하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플레이를 하지만, 슈팅력 하나를 빼면 눈에 띄는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알리는 타고난 유연한 무브먼트와 부드러운 볼 터치, 마라토너에 가까운 활동량과 지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타고난 지능과 축구 센스를 기반으로 한 영리한 플레이, 스트라이커 포지션까지 소화할 수 있는 미들라이커였는데, 최근 그가 훈련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성질이 폭발해 머리 뚜껑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저기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한다면 세계가 주목하는 월드클래스 수준의 선수가 분명 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축구에 집중하고 있지 못했다.
‘아마 녀석에게는 최준호라는 존재가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어.’
후방에서 볼 배급하는 윙크스에게 최준호를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이긴 했지만, 포체티노는 델리 알리가 이번 경기로 충격을 받고 좀 더 훈련에 매진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델리 알리에게서 눈을 뗀 포체티노는 박홍민을 보고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자기 관리에 있어서는 정말 완벽한 선수였고, 2018 월드컵 이후로 폼이 한층 더 좋아졌다.
이제는 해리 케인과 맞먹을 정도로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가 되었고, 최근 토트넘의 득점 절반은 그가 하고 있었다.
빠른 발과 놀라운 결정력과 양발 슈팅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재능이었다.
이번 도르트문트 공략에 가장 핵심이 될 선수.
‘알리가 친하게 지내는 박을 좀 보고 배우면 좋겠는데.’
**
“뭐 하는 거야?”
엘링 홀란드가 혼자서 공을 이상하게 차는 최준호를 보다가 궁금한지 다가왔다.
“너에게 어시스트를 어떻게 줄지 고민 중.”
어시스트라는 말에 엘링의 얼굴이 환하게 빛이 났다.
한 달의 겨울 휴가가 끝이 나고, 이어진 4번의 리그 경기와 1번의 포칼 컵 경기를 모두 승리로 가져간 도르트문트였다.
22경기 중에 20경기를 출전해서 24골을 넣고 있는 엘링 홀란드는 이미 득점 랭킹 1위였다.
2위인 레반도프스키가 18골로 추격하고 있지만, 차이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였다.
“···신기하네. 그렇게 스윙을 하는데 마치 톡 찍어 차는 것처럼 툭 떨어지고.”
“그래서 연습을 하는 거야. 세상에는 그냥 되는 게 없어.”
“너의 그 이상한 아웃프런트 킥도?”
“당연하지. 킥만 하루에 2시간씩 연습한다고.”
“연습을 안 하면 되는 게 없어?”
사람들은 그걸 재능이라고 한다.
똑같이 연습하더라도 누군가는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그런 것들.
최준호는 그런 게 없었다.
순수하게 연습을 통해서 하나씩 하나씩 얻어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들을 적정한 시점에 적정한 때에 써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쉽게도 연습을 안 하면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최준호의 슈팅력은 누가 뭐래도 월드 클래스 급이었다.
문전 앞에서 그의 중거리 슈팅이 골로 연결될 확률은 15.4%로 굉장히 높은 편이었다.
수비수들은 당연히 슈팅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질 것이고.
최준호는 그때의 틈을 노리기 위해서 이런 이상한 슈팅을 하는 중이었다.
풀 스윙으로 때리지만 공은 마치 밑동을 찍어 찬 것처럼 가볍게 떠서 바로 앞에 떨어트리는 연습.
당연하지만 엘링은 가만히 서서 그 궤적을 계속 보기만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최준호가 슈팅 동작할 때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시뮬레이션이 돌아갔다. 저런 슈팅 움직임이라면 수비수들이 속을 확률이 굉장히 높았고, 그건 자신이 골대 앞에서 자유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근데 그 축구화 괜찮아?”
뜬금없는 질문에 최준호는 공을 멀리 날려 버렸다.
집중력이 깨지면 여지없이 뜨는 볼이 나왔다.
허리에 두 손을 짚고 멀리 날아가는 똥볼을 최준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봤다.
‘아직 멀었네. 경기장에서 이걸 해내려면···’
최준호 정도의 선수라면 대형 스포츠 회사에서 엄청난 돈을 싸 들고 달려올 게 분명했다.
호날두처럼 나이키와 종신 계약을 맺던가, 네이마르처럼 연봉에 3배에 달하는 계약금을 매년 받던가.
하지만 최준호가 신은 신발은 그야말로 처음 보는 브랜드였다.
“신어본 것 중에서는 가장 좋아. 왜 너도 신을래?”
“아냐 난 나이키밖에 못 신어.”
키코의 사장인 양희영은 꽤 많은 기계를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발을 분석할 수 있는 기계로 그 자리에서 최준호의 발을 분석해주었고, 석고로 자신의 발 모양을 떠갔다.
그리고 불과 3주 만에 이 축구화가 10켤레 정도 왔다.
자신이 예전에 신고 있는 신발 나이키 머큐리얼 베이퍼 13과 아주 흡사한 형태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었고 착용감도 거의 똑같았다.
다만 뛸 때 땅에 힘을 좀 더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오랫동안 뛰어도 피곤함이 확실히 덜 쌓였다.
급하게 방향 전환 드리블을 칠 때 묘하게 발을 잡아주는 힘이 있었고, 그 덕분에 훨씬 안정적으로 할 수가 있었다.
‘역시 장비빨인가?’
가장 놀랐던 점은 60미터를 7.15초 대로 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7.5초 정도였는데 축구화를 하나 바꿨다고 기록이 확 줄어버렸다.
물론 눈앞의 엘링은 60미터를 6.5초에 뛰는 괴물이긴 했다.
세계기록이 6.34초인 걸 감안하면.
“나이키만큼 계약금을 준다면 생각해볼게.”
“하하하. 미안.”
**
“···상당히 고무적이군.”
최준호의 최대 단점은 달릴 때 슬로우 스타터라는 점이었다.
어느 정도 스피드가 오를 때까지는 상당히 느리다는 것이었다.
축구는 육상처럼 일정 거리를 뛰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이 부분 때문에 역습 시에 전방의 선수에게 패스를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은골로 캉테처럼 영리하고 발 빠른 수비수를 만나면 꽤 고전하는 타입이었다.
하지만 휴가가 끝난 뒤에 최준호의 60미터 달리기 기록이 무려 0.35초나 단축이 되었다.
“무슨 마법을 부렸나?”
“축구화를 바꾸었더군.”
마르코 로제의 중얼거림에 르네 마리치가 슬쩍 끼어들었다.
“···그래?”
마르코 로제는 축구 전술을 짜고 선수들을 관찰하는 솜씨는 도가 텄지만, 이런 세세한 것들을 관찰하는 눈은 평범한 남성에 가까웠다.
“축구화를 바꾸는 것만으로 기록이 단축된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물론. 단순히 축구화만 바꾼 게 아니라 달릴 때 팔 스윙이 상당히 자연스러워졌어. 개인 훈련을 받는 거 같아.”
마르코 로제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입술을 질근 씹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우리 팀 코치로 데려오면 어쩔까? 센터백들도 초이 만큼이나 빨라지면 다음 경기 좀 더 수월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르코 로제는 전술판에서 7번이 달린 자석을 툭툭 쳤다.
토트넘의 7번 박홍민.
꽤 좋은 선수였던 그는 월드컵을 거치면서 뭔가 클래스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시즌 중반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벌서 토트넘에서 13골 8도움을 하며 우승 도전의 핵심이 되는 상황.
박홍민과 엘링 홀란드는 분명 비슷한 속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선수의 스피드 결은 완전히 다른 편이었다.
엘링은 스피드를 사용하여 주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부수고 침투하는 데 쓴다면···.
박홍민은 양발로 개인기를 써서 수비수를 허둥거리게 만든 다음, 순식간에 거리를 확 벌려 중거리 슈팅을 때린다.
여기에 해리 케인과의 연계 플레이는 정평이 나 있었고.
수비수들은 박홍민이 뭘 할지 알면서도 결국 슈팅 기회를 주곤 하였다.
알아도 쉽사리 막을 수 없는 스피드.
골키퍼가 조금이라도 집중력을 잃으면 골문으로 들어가는 감아차기.
“확실히 우리 팀 센터백들이 느리긴 하지. 하지만 그건 토트넘도 마찬가지야.”
“문제는 그들이 이번에 확실히 라인을 내릴 거라는 거지. 우리는 확실히 올릴 거고.”
“우리도 내릴까?”
르네 마리치의 대답에 마르코 로제는 고개를 저었다.
“1달간의 휴식으로 우리 선수들이 토트넘보다 컨디션이 확실히 좋아. 마치 무승부를 할 것처럼 라인을 내릴 필요까진 없어. 에릭센만 확실히 잠가버리면 돼.”
우습게도 토트넘과 도르트문트 2팀 모두 한 선수에게 많은 걸 기대는 팀이었다.
최준호와 에릭센.
이들은 부진하면 팀 전체가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한 공격력을 보여주었고, 그건 토트넘이 더 심한 편이었다.
폼이 많이 떨어지긴 했지만, 도르트문트에는 마리오 괴체가 있었고, 박홍민보다는 좀 더 패스 연결이 좋은 마르코 로이스가 있었으니까.
르네 마리치는 전술판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에릭센의 마크맨으로 초이를 붙이려고?”
“탈압박 능력이 떨어지고, 주력은 초이와 비슷하니까. 피지컬도 초이가 우세해. 그리고 그 녀석을 붙여두면 뭔가 든든해. 내가 원하는 걸 해줄 거라는 기대감이 생기니까.”
“확실히 믿음이 가는 녀석이지. 아마 모든 감독이 사랑할 수밖에 없는 선수일 거야.”
마르코 로제는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자,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겠군. 망할 섬나라에 비행기 타고 가야 하니까.”
**
– 이야! 준호야!
– 홍민이 형 잘 지냈어요?
– 그럼! 서로 다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냐. 영국에 들어왔어?
– 네, 방금 호텔에 들어와서 짐 풀었어요.
– 오호! 옆에는 누구냐?
김우영은 화면에 있는 박홍민의 실물을 보고는 무척 감개무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박홍민의 플레이를 보고 축구에 입문한 그로서는 꽤 의미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박홍민처럼 공격수가 되지는 못했지만!
– 아, 우영이구나? 김우영이.
심지어 박홍민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김우영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반갑다.
– 반갑습니다.
– 진짜 덩치가 장난이 아니구나? 혹시 내일 출전하니?
김우영이 뭐라고 말하는 것을 최준호가 슬그머니 손을 올려 김우영의 입술을 가렸다.
– 그건 비밀입니다.
– 야, 우리 사이에 그 정도는 알려줘야 하지 않아?
– 나중에 시즌 종료 후에 회포 풀 때는 형 동생 사이지만, 지금은 챔스 8강을 앞둔 적이니까요.
– 하하하.
꽤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준호를 보며 박홍민이 좋아 죽겠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 아예 전화하지 말지 그랬어?
– 그래도 영국에 왔는데 전화는 해야죠. 근데 민재 형 정말 터키 리그로 간대요?
– 그래. 그 녀석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되게 신중하거든. 유럽에서 자신이 통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한다고 하더라.
– 그렇군요. 혹시 이 근처에 맛집 같은 거 있어요?
최준호의 물음에 박홍민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 비장한 모습으로 맛집 같은 거 있냐고 물으니 웃겨 죽겠다. Mama Masala 라는 곳에 가봐. 짠 건 먹지 말고. 내일 경기 뛸 때 영향을 주니까.
– 물론이죠. 우영아 할 말 있어?
쭈뼛거리고 있던 우영이가 입을 열었다.
– 만나서 영광입니다.
– 뭔 영광이야? 내일 경기장에서는 서로 죽일 놈들이 될 텐데.
박홍민의 말에 김우영도 긴장을 풀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 난 아직 할 일이 많으니까, 내일 좀 살살 봐줘.
– 좀 봐 드리겠습니다.
– 크크크크···
– 그럼 형 낼 뵐게요.
– 크크크크···그래. 낼 보자.
연락을 끊은 최준호는 노트북을 닫고는 김우영을 보았다.
“너 방금 유도 심문에 걸렸잖아.”
“…응?”
“봐준다고 말한 건 내일 경기에 출전한다는 뜻이니까.”
“아, 그렇게 되냐?”
“뭐, 낼 오전이면 다 알 건데. 자, 이제 북런던 탐방에 나서보자.”
원정 경기만 가면 꼭 밖으로 나가는 최준호였고, 이제는 김우영도 익숙해졌다.
“엘링도 끌고 나갈까?”
“피곤해할 텐데?”
“내가 들처 업고 나가지 뭐.”
“말 되네. 방구석에서 자주 빼내지 않으면 프로 축구 선수가 아니라 프로 게이머로 전향할 태세니까.”
“데리고 올게.”
김우영이 방문을 나섰고, 최준호는 기묘한 눈빛으로 북런던의 밤거리를 보았다.
‘···그때 이후로 영국은 처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