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3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35화(135/184)
135화 코리안 더비(2)
– 0입! 레비 물러가라!
– EPL 최초 시즌 0입! 레비 물러가라!
– 토트넘이 늙어간다! 보드 진 뭐하냐!
– 늙은 싸움닭에게 패배를!
분명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토트넘 팬들이었다.
꽤 많은 인원이 경기장 앞에서 시위하고 있었고, 무탈하게 버스를 타고 경기장에 들어온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어리둥절 해졌다.
“분위기 묘하네.”
“팬들이 구단을 까는 분위기야.”
“당연하지, 이번 시즌 선수 영입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삭막한 프리미어 리그에서 어떻게 우승 경쟁을 하는 거야?”
“공격진이 굉장히 파괴적이야. 해리 케인, 박홍민.”
“걔네들은 젊잖아?”
“수비진이 나이가 많아. 후반 들어가면 기동력이 상당히 떨어질 거야.”
최준호의 말에 이야기를 나누던 엘링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에 비해 우리 수비진은 너무 젊어서 노련하지 않고.”
“어째 나한테 하는 이야기 같다?”
김우영이 최준호를 째려보았다.
박홍민은 몸싸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비수들이 붙기 전에 빠르게 공을 돌리든가 아니면 스피드로 돌파해 버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김우영이 영리하게 머리를 써야만 했다.
문제는 박홍민이 양발잡이에 왼쪽 오른쪽 가리지 않고 침투를 한다는 것과 순간적으로 드리블을 친 후에 감아 차는 슈팅은 수비수가 막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상대로 괜찮을까?’
마르코 로제 감독도 전술 회의 시간에 이야기를 꺼냈지만, 한두 점으로 결판이 날 경기가 아니었다.
두 팀 다 시퍼렇게 날 선 공격력을 가지고 있었고, 수비력에는 발이 느리다는 치명적인 약점들을 같이 가지고 있었으니까.
골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기는 게임이었다.
“진짜 신중해야 할 거야.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지는 선수니까.”
그렇게 말하고 보니 박홍민의 스피드가 부럽기만 한 최준호.
‘아, 창조주가 나에게 그런 스피드를 줬다면!’
아마 세상에 자신을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없었을 것이라는데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없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모두 활용할 수밖에.
“그 형을 잡으면 나도 대표팀에 가는 거지?”
“일단 U-20부터.”
김우영은 올해 열리는 U-20 월드컵에 출전할 예정이었다.
한국의 기대주인 윤강인, 박승호, 양승우, 박기수, 장윤수와 같은 선수들도 같이 출격할 예정이었고, 많은 전문가가 장밋빛 전망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우승할지도 모르지.’
김우영이나 박기수가 없던 U-20이 과거에 4강까지 올라간 걸 생각하면 지금 U-20은 굉장한 전력이긴 했다.
주먹을 꼭 쥐고 뭔가 다짐하는 김우영을 보며 최준호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2022년이 되면···’
아마도 한국의 전력은 아마도 굉장해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될지도.
**
“···토마스 투헬 감독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파리 생제르맹 감독이 여긴 왜 왔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랑 맞붙잖아?”
“거긴 맨체스터고 여기 런던이잖아?”
“나도 모르지. 누군가 지켜볼 선수가 있는 건가?”
“해리 케인이나 박홍민은 아니겠지?”
토마스 투헬은 팔짱을 끼고 관중석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전반전 30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양 팀은 2-2로 팽팽한 경기를 하고 있었다.
‘단점을 보완할 생각은 없고, 장점을 극대화했군.’
토마스 투헬의 눈에 경기는 그렇게 보였다.
명장 반열에 오르고 있는 마루리시오 포체티노와 떠오르는 샛별 마르코 로제와의 수 싸움.
포체티노는 시원시원한 역습 전술로 마르코 로제는 강력한 전방 압박과 점유율 축구로.
영국의 최고 재능이라고 불리던 델리 알리는 최준호를 엉성하게 수비 하였다.
결국 최준호의 발에서 시작되는 결정적 패스에 두 골이나 먹었다.
어시스트는 기록이 되지 못했지만, 마르코 로이스와 산초가 나란히 골을 넣었다.
덴마크의 신성 크리스티안 에릭센은 최준호의 악착같은 수비에도 불구하고 중앙 미드필더 숫자의 이점을 살려서 공격을 주도했다.
해리 케인이 코너킥을 헤더로, 박홍민이 중거리 포로 나란히 한 골씩 넣으면서 경기는 누가 이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흠.’
첫인상은 작은 말라깽이였던··· 최준호.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플레이를 하던 선수.
여기에 강력한 슈팅을 무기 삼아 상대를 뒤흔드는 영리함까지.
지금은 그라운드에서 그 누구에게도 쉽게 꿀리지 않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체격뿐만이 아니었다.
플레이는 훨씬 더 완성도가 높아졌고, 거칠기로 유명한 델리 알리를 상대로 상당히 여유 있는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계속 성장하는 것도 상당히 고무적인 상황이야. 그것이 진짜 재능인 거지.’
박홍민과 같은 스피드, 해리 케인의 피지컬, 델리 알리의 유연함 같은 타고나는 것도 재능이지만, 토마스 투헬은 계속 발전하려는 최준호의 의지와 자세에 더 큰 점수를 주었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녀석. 저 게으른 델리 알리 같은 썩어 빠진 놈과는 결이 달라.’
거기까지 생각이 드니 욕심이 더 들기 시작했다.
– 자네가 직접 만나보는 건 어떤가?
최준호의 영입을 위해서 보드 진이 토마스 투헬에게 직접 만나볼 것을 강요한 적이 있었지만, 토마스 투헬은 깔끔하게 거절했다.
– 내가 왜? 당신들이 알아서 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최준호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환경에 계속 노출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거인의 도전을 계속 받아야 하는 도르트문트는 성장하기에 제격인 팀이었다.
마르코의 무한한 신뢰도 받고 있었고.
그에 비해 PSG는 프랑스 리그의 정점에 있는 팀으로 그들을 상대할 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토마스 투헬의 눈에 PSG 선수들은 너무나 편하게 놀고먹고 있었고,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매우 심하게 대하곤 했다.
무패로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은 정말로 게을러터졌어> 라던가.
덕분에 PSG에서도 보드 진, 선수들과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네이마르가 공공연히 자신의 트윗에 토마스 투헬을 까는 멘트를 올리곤 한 걸 보면.
그런 토마스 투헬의 눈이 공을 받은 최준호에게 향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였고, 그가 슈팅 동작을 취하자 토트넘 수비수들의 시선이 모조리 최준호에게 향했다.
‘슈팅이군.’
토마스 투헬은 확신했지만, 이내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토트넘의 베테랑 수비수인 베르퉁언은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엘링에게 스루패스가 올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뛰쳐나가지 않았지만, 최준호의 스윙이 멈춰 설 기색이 없자 발을 들며 슈팅을 방해하기 위해서 재빠르게 뛰어나갔다.
– 틱!
최준호의 강력한 오른발 스윙이 공에 걸렸지만, 호쾌한 소리가 아니라 뭔가 빗맞은 듯한 소리가 들렸고, 공은 힘차게 날아가는 게 아니라 뛰어나온 베르퉁언을 살짝 넘기는 수준으로 솟았다고 뚝 떨어졌다.
“뭐야!”
빗맞아서 우연히 된 거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에는···
그 공이 엘링 홀란드에게 연결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썅!”
토트넘의 골키퍼 위고 요리스의 쇳소리가 들린 후에 그물이 철렁이는 소리가 들렸고, 베르퉁언은 황당한 표정으로 세레머니를 펼치기 위해 달려가는 엘링을 보다가 그에게 뛰어가는 최준호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뭐지? 뭔 짓을 한 거야?’
베르퉁언이 그러고 있을 때 토마스 투헬은 슬며시 시계를 보았다.
‘시간이 다 됐군.’
토마스 투헬은 저 슈팅인지 패스인지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의구심이 가득했지만, 팽팽한 상황에서 팀이 소중한 어시스트를 한 최준호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년 후면 EPL로 오겠지? 초이?’
토트넘의 일부 선수들이 델리 알리의 소극적인 수비에 열이 받아 말다툼하는 상황을 보던 토마스 투헬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PSG는 재미가 없어. 강팀이 많은 곳에서 승부를 보는 것이 진정한 재미지.’
**
‘···엉망이군.’
에릭센은 같은 팀끼리 싸우다가 노란 카드를 받은 델리 알리를 보곤 고개를 저었다.
불과 작년만 해도 토트넘에서 리그 우승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았다.
꾸준하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박홍민, 해리 케인과 달리 델리 알리는 제 맘대로 살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트위치에서 게임을 하며 생방송을 하였고, 훈련은 엉망으로 받았고.
하루 이틀도 아니었는데.
그를 매우 신뢰하는 포체티노 감독이 아니었다면, 오늘 절대로 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국의 신성? 좇까라고 해.’
위에서 한 명이 삐걱대니 자신이 더 많이 뛰어야 하는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이틀에 한 번씩 경기를 치러야 하는 박싱 데이 때문에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는데, 오늘은 정말 힘이 들었다.
심장은 계속 심상치 않게 벌렁거렸고.
올해 26살인 그는 그저 많이 뛰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옆줄로 향했다.
“알리 오늘 최악인데, 빼야 하는 거 아냐?”
포체티노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였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아까운 녀석이야. 잘 좀 보살펴 줘.”
에릭센은 그 말에 가볍게 고개를 젓고는 다시 그라운드로 뛰어갔다.
점점 포체티노 감독이 미워지는 에릭센.
어찌 되었든 지금은 챔피언스 리그 경기였고, 지면 절대로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열세인 토트넘은 역습의 고삐를 잡지 못하고 도르트문트의 강력한 압박에 시달리다가 전반전을 끝냈다.
전반전은 3-2로 도르트문트가 한 점 앞선 상황.
양 팀의 라커룸이 바빠지는 건 당연하였다.
“도대체 왜 수비를 그렇게 하는 건데! 이게 지금 장난이야?”
대부분의 선수와 잘 지내는 박홍민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진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화를 내는 법이 거의 없었는데, 그가 소리를 지르자 델리 알리는 움찔하며 고개를 움츠렸다.
“이게 장난이냐고! 그따위로 뛸 거면 감독에게 이야기해서 교체해 달라고 해! 너 때문에 다들 힘들잖아! 그거 안 보여?”
어떻게 보면 도르트문트의 세 골이 모두 최준호의 발끝에서 나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기록상 어시스트 1개였지만.
그를 자유롭게 두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토트넘 선수들이 모두 확인하였다.
“젠장!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왜 나한테 난리야? 네가 한 번 막아봐. 제대로 막을 수 있는지!”
알리도 할 말이 있다는 듯 소리쳤다.
사실 최준호를 막는 건 너무 어려웠다.
그의 시선과 상체와 발이 다 따로 놀고 있었는데, 어디로 튈지 전혀 예상할 수가 없었다.
“그 자식은 외계인이라고! 그리고 난 공격수야! 수비수가 아니라고!”
– 꽝!
포체티노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시끄러웠던 라커룸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닥치고 다 앉아. 그리고 난 변명 따위 늘어놓는 선수를 아주 증오한다. 후반 전에 알리 빠지고 시소코 들어가. 에릭센은 알리 자리로 이동하고.”
그 말에 알리가 얼굴이 붉어진 상태로 벌떡 일어났다.
“왜 다 나만 미워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알리가 문을 박차고 나갔지만, 포체티노는 한 번 눈을 감았다고 뜨는 것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한 것 같군.’
그에 비해 도르트문트의 라커룸은 꽤 조용한 편이었다.
마르코 로제는 휴식을 취하는 선수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박홍민의 컨디션이 너무 좋아. 수비진이 전혀 막아내질 못하고 있어.’
경기력은 분명 도르트문트가 압도적으로 좋았지만, 스코어는 그렇지를 못했다.
그것도 골키퍼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동점이 됐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델리 알리의 컨디션이 그 정도라니···후반에 교체되겠지?
좋은 경기를 하고 있지만, 마르코 로제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토트넘은 생각보다 단단한 수비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역습은 굉장히 매서웠다.
체력적으로 우세하기는 해도 후방에서의 긴 연결 한 방에 박홍민에게 골을 내준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마르코 로제가 가볍게 탁자를 치자 선수들이 모두 시선을 돌렸다.
“후반에는 라인을 내린다. 휴식 시간에 체력을 좀 회복했다고 하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 꽤 많은 경기를 뛴 싸움닭들의 체력이 온전할 리가 없지. 후반에는 마르코 로이스와 산초가 간격을 벌려 사이드를 공략하면서 놈들을 더 많이 뛰게 한다. 지쳐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마르코가 전반에 수비형 미드필더로 뛴 악셀 비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악셀 전반전에 잘 뛰어주었다. 후반에 전술상으로 교체가 될 건데 괜찮겠지?”
“네.”
“마리오 괴체 준비하고. 초이는 악셀의 자리로 내려간다. 사이드로 방향 전환을 부탁하마.”
“네.”
최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김우영을 보았다.
전반전에 박홍민의 민첩한 헛다리 짚기에 발이 꼬여서 그의 슈팅을 막지 못해 실점을 당하기도 하였고.
풀백인 피슈체크와 협업 수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뚫려서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으니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최준호는 그런 김우영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인마. 형만 믿어.”
“…뭐엇? 형?”
사실 김우영이 나이가 한 살이 더 많았다.
김우영이 인상을 팍 쓰자, 최준호가 웃음을 지었다.
“넌 역시 그런 표정이 더 보기 좋아. 그리고 인제 그만 좀 봐주는 게 어때?”
“······”
“더 강하게 몸싸움하란 말이야. 열 받아서 주먹을 휘두르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그 형은 내 우상인데?”
“경기장에서 그런 게 어딨어? 이기는 팀과 지는 팀만 있을 뿐이지. 이건 전쟁이야. 그러니까 훨씬 더 강하게 보디체크해. 공이 없을 때도 계속 괴롭히란 말이야. 오늘 심판 성향도 휘슬을 잘 불지 않으니까.”
“······”
“형이 아니라 원수야. 알았지? 원수? 쓰러트려야 하는 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