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36)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36화(136/184)
136화 코리안 더비(3)
김우영은 후반전 나가기 위해서 몸을 일으키다가 알람 메시지에 휴대폰을 열었다.
“······”
그동안 단 한 번의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던 아버지의 메시지였다.
– 고작 그 정도 하려고 더 좋은 길을 버린 것이냐?
그 정도라고···?
김우영은 이를 악물고 휴대폰을 꽉 쥐었다.
“무슨 일이야?”
옆에 있던 최준호가 물었고, 김우영은 표정을 굳힌 채 고개를 젓기만 했다.
아버지에게 받은 운동신경 덕분에 늦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지만, 피나는 노력으로 많은 선수들이 원하는 분데스리가에 1군으로 뛰고 있었다.
아무 지원도 없이 막막한 2년 6개월을 버텼다.
근데···
‘고작?’
김우영은 부서질 듯이 비명을 지르는 휴대폰 액정의 소리라도 들은 듯 손에서 힘을 뺐다.
입술을 악물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좀 전보다 좀 더 강렬하게 변했다.
“···가자.”
최준호는 악력으로만 자신을 벌떡 일으키고는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가는 김우영의 등 뒤를 보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뭐지?’
최준호는 눈을 돌려 금이 잔뜩 가 있는 김우영의 휴대폰을 보았다.
녀석을 저렇게 흥분시키게 할 만한 메시지를 보낼 사람이 있다면 누굴까?
어렴풋이 한 사람의 윤곽이 떠올랐다.
유독 이 사람이 TV에 나오기만 하면 격정적으로 화를 내며 꺼버리곤 했으니까.
누군가의 충고를 듣고 바로 고치거나 태도를 바꾸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현자에 가깝다.
세월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혹은 깨달은 경험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훨씬 고집이 세지는 법이었다.
자신의 말이 통할지 안 통할지 알 수는 없었지만···
지금의 우영이 상태라면 굳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미워하지만, 결국 네가 축구를 하는 이유는 아버지 때문인 거구나.’
**
대표팀에서는 그렇게 장난치며 떠들고 놀며 훈련을 받았지만, 박홍민과 최준호는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토트넘 선수들은 전체적으로 표정이 굳어 있었고, 박홍민은 훨씬 더 표정이 굳어 있었다.
“너 박홍민이랑 친한 거 아니었어?”
최준호의 추종자 대열에 합류한 부주장 우카시 피슈체크는 바싹 붙어서 독일어로 조용히 물었다.
“네 아주 친해요.”
“근데, 서로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잡아먹을 듯하냐?”
“저희는 지금 축구라는 이름의 전쟁을 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경기에 특별히 조심해야 하는 선수라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어요. 별명 알잖아요?”
별명이라는 말에 우카시는 인상을 찡그렸다.
양봉업자.
노란색 유니폼을 입은 도르트문트만 만나면 미친듯한 활약을 펼치는 선수.
그게 함부르크에서 뛸 당시에 당한 인종차별 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었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다.
“양봉 당하지 않으려면 후반에도 항상 조심해야 해요.”
토트넘의 팀 분위기가 엉망으로 보이긴 하지만, 박홍민은 정말 독이 묻은 송곳 같은 선수였다.
찔리면 그야말로 치명상.
“그렇지.”
당장 박홍민을 막아야 하는 우카시로서는 다시 침을 꾹 삼키고 긴장을 하였다.
한 점은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는 공격력을 가졌으니까.
후반은 토트넘의 선공으로 시작되었고, 최준호는 에릭센에게 달라붙었다.
에릭센을 괴롭히면 토트넘의 공격력은 마치 마법을 부린 것처럼 약해졌다.
그와 함께 창의성을 발휘해줄 델리 알리가 폼이 좋지 않아 빠졌으니 이제 모든 공은 에릭센에게 향할 게 분명했다.
“쫓아오지 좀 마.”
“왜 그래요? 아직 사랑을 나눌 시간이 45분이나 남았는데.”
“징그러운 자식.”
최준호의 트래쉬토크는 꽤 귀여운 편이었다.
대놓고 도발을 하지는 않지만, 힘 빠지게 만드는 재주를 부리곤 했다.
에릭센은 어떻게든 최준호를 등지고 공을 지키려고 했지만, 최준호의 압박은 마치 거대한 돌덩이가 굴러와서 미는 느낌이었다.
최준호가 에릭센을 한 방향으로 몰아가자, 에릭센의 탈압박 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동료들이 주변의 선수들에게 달라붙었다.
‘공격만 잘할 거지, 수비는 왜 이렇게 좋아?’
그렇다고 에릭센이 순식간에 최준호를 따돌릴 만큼 민첩하거나 스피드가 빠른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에릭센에겐 쥐약 같은 존재였다.
“형, 요새 심장이 막 두근거리지 않아요?”
심장이라는 소리에 에릭센은 순간 움찔하였고, 최준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을 가랑이 사이로 찔러 넣어 에릭센이 소유하고 있는 공을 앞으로 차냈다.
‘아차!’
에릭센이 재빨리 루즈볼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려고 했지만, 자신 앞으로 팔을 집어 놓은 최준호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이 망할 놈의 팔 쓰는 솜씨는···’
거의 수준급의 브라질리안에 가까웠다.
공격과 수비 숫자가 비슷한 상황이라 최준호가 공을 먼저 차지하면 위험한 킬패스가 나올 것이 분명했기에 에릭센은 악을 쓰며 최준호의 유니폼을 잡아당길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질척거려요?”
“못가!”
“좀 놔요.”
– 삑!
결국 유니폼이 늘어지도록 양손으로 잡아 당긴 에릭센은 주심에게 경고를 받았다.
최준호는 카드를 드는 시늉을 하며 노란 카드가 아니냐고 말했지만, 오늘 주심은 카드를 많이 꺼내는 성향이 아니었다.
골대에서 30미터 쯤 거리에서 얻은 프리킥 찬스.
월드컵에서 최준호에게 호되게 당한 역사가 있는 토트넘의 골키퍼 위고 요리스는 발작적으로 선수들에게 소리쳤다.
“시야 가리지 마! 두 발자국 왼쪽으로 움직여!”
굉장히 먼 거리지만 최준호는 언제든지 오금을 저리하게 하는 슈팅을 때릴 수 있는 괴물이었다.
김우영도 세트 피스를 위해서 안까지 들어와 있었고, 그의 옆에는 토트넘에서 가장 피지컬이 좋은 산체스가 붙어 있었다.
산체스가 계속 옆에 붙어서 아무도 모르게 김우영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치자, 김우영이 산체스를 노려보며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죽고 싶냐?”
박홍민과 제법 친하게 지내는 산체스는 그 말의 뜻을 바로 알아듣고는 인상을 꽉 썼다.
토트넘에서 넘버원으로 더러운 인상을 가진 산체스.
하지만 더 더러운 인상으로 김우영이 째려보자 산체스는 이내 눈을 허공에 돌려야만 했다.
– 삑!
주심의 휘슬소리와 함께 최준호의 프리킥이 예리하게 골키퍼와 수비수 사이 공간으로 들어왔다.
뒤에 물러서 있다고 최준호가 공을 차는 순간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들었고, 공은 강력한 바디체크에도 불구하고 몸을 미끄러뜨려 슬라이딩 한 산초의 발에 맞았다.
골문으로 그대로 꽂힐 것처럼 날아갔지만, 위고 요리스가 뻗은 손에 맞고 튕겨 나가 버렸다.
“아이씨···”
산초는 오늘 자신의 결정적 슈팅을 2번이나 선방한 위고 요리스를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문제는 그 공이 박홍민에게 연결되었다는 것이었다.
공을 드리블하며 가속하기 시작하는 박홍민.
우카시 피슈체크와 하키미, 마리오 괴체가 후방에 있었고, 전방에 토트넘의 공격수는 아무도 없는 상황.
그래서 도르트문트의 세 선수들은 박홍민이 잠시 공을 접어서 달려가는 해리케인이나 윙백에게 공을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박홍민은 더 빠르게 가속하며 순식간에 마리오 괴체와 피슈체크를 돌파해버렸다.
“미친!”
하키미가 달라붙어서 태클을 하였지만 공을 멀리 차 놓고 점프를 해버린 박홍민.
순식간에 세 명이 돌파당했고, 스피드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도르트문트의 골키퍼 로만 뷔르키는 갑갑한 표정을 지었다.
‘나 혼자 어쩌라는 거야?’
하지만 뒤에서 정말 무섭게 달려오는 선수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김우영이었다.
그를 보고 용기를 얻은 로만 뷔르키는 재빨리 튀어나가서 박홍민의 슈팅 각도를 줄이려고 했다.
해리 케인과 함께 최전방 공격수으로 출전한 박홍민은 전반에 강력한 압박을 당하는 팀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후방까지 내려왔고 그 바람에 체력적으로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엄청난 스프린트를 하며 달려왔기에 거친 호흡으로 인해 트래핑이 살짝 길어졌다.
그것이 빌미가 돼서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나온 로만 뷔르키를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차분하게.’
하지만 박홍민은 공을 한 번 접어서 로만 뷔르키의 중심을 흔들고는 반대로 한 번 더 쳐서 로만 뷔르키를 바보로 만든 다음 골대를 향해 강력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안돼!”
어느샌가 골대 앞까지 달려온 김우영이 악을 쓰며 몸을 미끄러트렸다.
골대로 들어가는 공을 걷어내기 위해 발을 허우적거렸고, 박홍민의 슈팅이 김우영의 발에 걸렸지만 공은 운이 없게도 골대 상단의 바를 맞고 다시 골문으로 향해 버렸다.
– 철렁!
6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토트넘 훗스퍼 스타디움.
그 자리를 꽉 채우고 있는 모든 토트넘 팬들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라운드가 무너질 정도로 그들은 열렬하게 <박>을 외치며 좋아하였고, 박홍민은 늘 그렇듯 <찰칵> 세레머니로 보답하였다.
“막을 수 있었는데···”
김우영이 주먹을 꾹 쥐고 애꿎은 잔디밭을 계속 두들겼다.
“그만해. 그러다가 손 다친다.”
김우영만큼이나 죽을 힘을 달려왔지만, 골이 들어가는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던 최준호는 숨을 헐떡이면서 김우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녀석 이렇게 빨랐어?’
평소와는 다른 모습에 최준호도 적잖이 놀라긴 했다.
저 덩치에 저렇게 뛸 수 있는 건 꽤 굉장한 일이었으니까.
“골 넣을 시간은 충분히 많아. 이기면 그만이야.”
최준호의 말에 김우영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김우영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관중석을 보았다.
‘분명 여기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야. 분명해.’
오늘 경기만큼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
동점골을 넣은 후 포체티노 감독은 수비라인을 훨씬 더 밑으로 내리고 선수 교체를 통해서 수비를 보강하였다.
아예 노골적으로 해리 케인의 연계와 박홍민의 스피드를 살린 역습을 주공격법으로 들고 나왔고, 도르트문트는 뒤로 물러선 채 단단하게 자물쇠를 채운 토트넘의 수비 조직력을 상대로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푸스카스 상을 받을 만한 박홍민의 단독 드리블 돌파 때문에 수비수들이 겁을 먹고 쉽사리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하는 수가 너무 적었다.
“올라가!”
마르코 로제가 터치 아웃에서 계속 소리를 쳤지만, 사람의 본능이라는 것은 쉽사리 제어가 되지 않는 법이었다.
‘젠장 어떻게 올라가? 저런 스피드는 절대 못 따라간다고.’
그뿐만 아니라 델리 알리 대신 나온 시소코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최준호를 괴롭혔다.
에릭센과 델리 알리라는 존재 때문에 입지가 확 줄어들은 시소코는 오늘 찾아온 기회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에릭센은 모르겠지만, 알리 놈은 제끼자고.’
두 선수와 비교해서 수비가 좋은 시소코는 마치 마지막 경기를 뛰는 것마냥 최준호를 괴롭혔다.
최준호는 분명 후방에서 양 사이드로 좋은 패스들을 찔러주고 있지만, 오늘 산초와 마르코 로이스의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가 않았다.
터치가 길어서 상대하는 윙백들에게 계속 공을 뺏겼고.
풀백들이 공격적으로 올라와서 수비수들을 하나씩 유인해 공간을 만들면 좋겠지만, 그런 움직임도 보이지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토트넘의 강력한 한 방 역습에 패배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을 읽고 있던 르네 마리치가 마르코 로제에게 다가갔다.
“오늘 윙어들 폼이 별로야. 알고 있지?”
“물론. 풀백들은 겁에 질렸고.
“이대로는 토트넘의 수비를 뚫기 어려워. 엘링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고보니 후반전에 엘링 홀란드는 그림자도 보이질 않았다.
“문제는 싸움닭들이 지역 수비를 하고 있다는 거야. 스루패스를 찔러줄 틈조차 없어.”
“창의성의 문제인데, 윙크스에게 잡아 먹힌 괴체보다는 초이가 나을 것 같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한 점 승부라면 스리백으로 전환해서 수비를 두텁게 한 다음, 초이를 프리롤로 풀어주는 건 어떨까?”
마르코 로제는 답답해하는 최준호의 표정을 보았다.
하고 싶은 말도 많겠지만, 항상 묵묵하게 자신의 전술을 따라주는 정말 좋은 선수였다.
물론 도가 넘도록 승부에 집착하는 최준호라면 얼마 있지 않아 자신의 전술을 무시한 움직임을 가져갈 수도 있었다.
“좋아. 그게 좋겠군.”
결국 열심히 뛰어준 산초가 교체가 되었다.
마리오 괴체는 산초의 자리로 올라갔고, 최준호는 공격형 미들의 자리이나 프리롤이 부여가 되었다.
산초의 교체로 들어온 아브두 디알루는 아칸지 김우영과 함께 스리백을 형성하였다.
“감독님이 그러는데, 하고 싶은 대로 하래.”
디알루에게 마르코 로제의 전언을 들은 최준호는 바로 답답한 표정을 풀었다.
‘역시 좋은 감독이야. 내 마음도 잘 살펴주고.’
사실 최준호는 경기를 계속 뛰면서 토트넘의 구멍을 하나 찾았다.
토트넘의 오른쪽 윙백으로 뛰고 있는 오리에가 후반전 들어서 패스보다는 개인기에 집착한다는 점이었다.
자신감이 붙어서일까?
아무튼.
이길 수만 있다면 뭐든 이용하면 그만이었다.
최준호는 함께 중원을 책임질 토마스 델라이니에게 다가갔다.
“토마스 내가 왼쪽에서 뛸게. 오른쪽 괜찮아?”
“난 오른쪽이 왼쪽보다 좋아.”
“내가 사이드로 치우치면 백업 좀 해줘.”
도르트문트 중원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최준호였다.
그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차버릴 토마스 델라이니가 아니었다.
“물론! 염려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