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4화(14/184)
14화 유소년 계약(1)
– 네 놈이 감히 내 말을 무시해? 니가 감히!
김우영은 아버지에게 날라온 메시지 하나에 세상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오늘 경기에서 몇 번의 좋은 기회를 놓친 데다가 전반전 교체를 당했던 김우영은 새로운 공격수가 들어오고 나서 역전하는 장면을 보며 엄청난 위기감까지 들었다.
한국에서는 축구 잘한다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칭찬을 받아 우쭐했는데, 여기 와보니 완전 쭈그러진 오징어 꼴이었다.
당장 축구 때려치우고,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였지만, 책상머리에 앉아서 펜 대 굴리는 것보다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게 훨씬 행복했다.
최준호는 김우영을 한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시키는대로 다 하겠다고?”
“그래.”
“그럼 일단 토마스에게 냄새난다고 한 거 사과하고, 같이 웃으면서 사진 한 장 찍어와.”
“…어?”
“시키는 데로 한다며? 지금 당장 가서 하고 와.”
김우영은 인상을 한참 찡그린 채로 최준호를 노려 보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알았어.”
이내 성큼성큼 나가는 김우영.
‘웃긴 놈이네?’
도무지 김우영이라는 케릭터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최준호였다.
– 띠딕. 띠딕.
15분이 지났다는 소리에 최준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얼음찜질탕에서 나왔다.
확실히 얼음찜질을 하고 나오니 다리 관절에서 느껴지던 미열이 확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은근히 느껴지는 근육통도 상당히 누그러져 있었다.
염증 반응은 확실히 줄어든 게 분명했다.
‘아 이래서 호날두가 어렸을 때부터 이걸 했구나. 서른 중반이 되어서도 피지컬이 크게 죽지 않는 이유가 있었네.’
그리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면서 4주간 그가 본 김우영을 떠올렸다.
15살에 185cm 81kg이라는 피지컬은 좀 압도적인긴 했다.
속도는 그다지.
민첩성도 그다지.
하지만 몸싸움과 힘은 높은 수준.
발기술도 별로.
하지만 얼음찜질 통에 쑥 들어오고, 자신과 비슷한 덩치의 선수를 위협하고 압박하는 걸 보니 대담성이나 투지는 대단해 보이긴 했다.
오늘 전반전에 보니 수비할 때 헤더로 위험 상황을 몇 번 넘기기도 했고.
몸이 서서히 달아오를 때가 되자 다시 문이 열렸다.
김우영이었다.
“사진 찍어왔어.”
최준호는 김우영의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져와 보았다.
억지 웃음을 짓는 김우영과는 달리 토마스는 진짜로 사과를 받았는지 해맑게 웃는 모습이었다.
오늘 동점골을 넣어서 하루 종일 해맑게 웃고 다녔긴 했지만.
“확실히 사과했지?”
“그래.”
축구라는 스포츠는 11명이 같이 뛰는 경기였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같이 뛰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정신이 필요했다.
존중, 이타심, 그리고 우정.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동료에게 욕설을 퍼붓는 놈은 축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을 했던 최준호는 김우영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 누그러트렸다.
“정말 나한테 축구를 배우고 싶다고?”
“농담 아니야. 진짜야. 내 인생이 걸린 일이라고.”
김우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최준호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일단 공격수는 하지마.”
“뭐?”
“넌 공격수가 될 자질이 없어.”
“말도 안되는 소리! 노력하면…!”
“세상에는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어.”
최준호는 그걸 절실하게 느꼈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다.
“너 축구한 지 얼마 안됐지?”
김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격수는 섬세한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해. 커다란 덩치의 수비수들 2~3명이 달라붙은 악조건 속에서도 원하는 코스에 원하는 강도로 공을 차야하니까. 피지컬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야. 축구 한 지 얼마 안된 녀석에겐 무리야.”
김우영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는걸 보고 최준호는 차갑게 말했다.
“시키는 데로 한다고 했지? 넌 오늘 전반에 최소 두 골은 넣었어야 해. 근데 그 좋은 기회를 모두 날려버렸어. 운이 없는 게 아니야. 실력이 없는 거야.”
“…제길!”
몇 번이고 제길을 외치던 김우영이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물었다.
“그럼 뭘 하라고?”
“수비수.”
“…뭣?”
최준호는 벙찐 김우영을 두고는 몸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는 옷을 갈아 입었다.
“수비수 할 생각 있으면, 내일 아침 6시에 요 앞 공원으로 나와.”
시키는 데로 안하면 그만인 거다.
다음 날 아침.
전혀 기대도 안했는데.
그 김우영이 아침에 운동복을 입고 기다리고 있었다.
**
“…이것 참 큰일이네.”
나영중 감독은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비상 회의를 시작했다.
평소에 김우영이 받던 훈련 세션에 변화가 생겨서 설마설마 했는데, 수비수 훈련 세션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압도적인 피지컬로 유스들을 깔아뭉게며 시원시원하게 골을 넣던 김우영이 독일에서도 성공적인 공격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할 팬들이 얼마나 실망할 지 안 봐도 뻔했다.
혹시 캠프 지도자들의 압박이 있었는 지 수소문했지만,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김우영이 스스로 수비수 훈련을 택했다고 하였다.
‘도대체 왜?’
월드컵 한 때를 제외하고 한국은 축구 불모지다.
평균 K-리그 관중은 7천명 수준이었다.
이중에서 표를 끊고 경기를 보는 유료 관중은 평균 3,500명 수준.
독일 3부 리그보다도 못한 관중 수준이었다.
이렇게 인기가 없다보니, 축구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골을 넣는 공격수를 기억하지, 수비수를 기억하지 않는다.
당연하지만, 시청율을 뽑기 위해서는 무조건 골을 넣는 공격수여야만 했다.
“이거 망할 거 같은데요?”
“차라리, 최준호 특집을 하는 건 어떨까요?”
최준호 특집이라는 말에 다른 스태프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그게 좋겠다고 했지만, 나영중은 오히려 인상만 굳혔다.
‘이게 지금 누구 돈으로 하는 건지 알 리가 없잖아?’
우영이를 전국구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 그의 할어버지인 김상식 회장이 투자한 돈이었다.
그걸 김우영이 아닌 다른 사람의 특집으로 만들었다간 나영중은 바로 모가지가 날라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최준호가 도르트문트 U-16과 벌인 경기에서 보여준 퍼포먼스는 그가 왜 경기 MVP로 뽑혔는지 누구도 의심할 수 없는 최고였다.
“맞아요. 양창명 기자도 최준호 선수의 재능을 엄청나게 높게 평가하지 않았습니까? 저대로 큰 다면 한국 축구를 끌어갈 차세대 주자가 될 것이라고요? 차라리 최준호 특집을 합시다.”
나영중은 두통을 느끼며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휴대폰을 슬쩍 들었다.
알 수 없는 전화였고, 이 버거운 회의장을 빠져나가게 해 줄 구세주였다.
“잠시 쉬었다가 10분 후에 다시 시작하지.”
나영중은 그렇게 말하고는 회의장을 빠져나가 휴대폰을 들었다.
– 네, 나영중 감독입니다.
– 나, 김명신이요.
김명신?
아! 김우영 아버지?
– 아, 네!
– 지금 내 허락도 없이 우영이놈 특집을 찍고 있다고?
– 그건, 김상식 회장님께서.
– 변명 집어치우고 당장 그만둬.
나영중은 잠시 휴대폰을 귀에서 떼었다.
‘김회장 자식들 중에 가장 또라이라고 하던데, 괜한 말이 아니네?’
– 그건 역시 김상식 회장님께.
– 안 그래도 지금 당장 아버지에게 갈거야. 그러니까, TV에 우영이 놈이 축구하는 게 한 장면이라도 나온다면, 내가 사업체를 물려받으면 당신부터 자를 줄 알아!
…뚝.
‘이럴 때가 가장 곤란하단 말이야….’
나영중은 담배를 두 개피 가만히 피다가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김명신이 성질 더러운 또라이긴 하지만, 그룹의 회장은 김상식이었다.
그렇다고 김상식이 나중에 자신을 보호해줄 리도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감독님?”
아까 진행되었던 회의가 바로 이어졌다.
“투 트랙으로 가지. 김우영 특집이랑 최준호 특집.”
일이 두배가 되어버리자 다들 왕방울만한 눈초리 나영중을 쳐다봤지만, 나영중은 무심한 눈초리로 불만이 가득한 직원의 눈빛을 애써 무시했다.
‘나도 너희들도 살아야 하니까. 부자 전쟁이 끝나면 결론이 나겠지.’
**
그렇게 한 주가 더 지나갔을 무렵.
금요일 훈련이 끝나고 최준호는 미하일 코치의 호출을 받았다.
“거기에 앉아.”
“네.”
미하일 코치의 책상 위에는 온갖 서류가 잔뜩 널려 있었다.
“이 서류들이 뭔지 알아?”
당연하지만 최준호가 알 수는 없었다.
“모르겠어요.”
“너에 관련된 분석 자료다.”
최준호는 눈을 크게 떴지만, 능구렁이처럼 속으로는 ‘아싸’를 연달아 외쳤다.
자신에 대한 서류가 이렇게 많다는 건 그 만큼 구단이 공을 들였다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따로 불렀다는 것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
“초이?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렇게 불리지?”
“네.”
“좋아. 초이. 사실 이번 이벤트 캠프에서 우리 구단이 기대하는 건 별로 없었어. 나름의 시스템을 갖추고 그 방식에 의해서 선수들을 뽑거든.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선수를 그 시스템에 의해 뽑지는 않아. 놀라운 재능이 발견되면 특별한 방식으로 뽑기도 하지.”
최준호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저를 도르트문트 유소년 팀에 뽑아주신다는 거죠?”
미하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근접했다고 할 수 있지. 몇 가지 절차가 끝나면.”
그 말에 최준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는 미하일과 눈을 마주쳤다.
“일단 가장 중요한 질문을 좀 해야겠다.”
“네!”
“도르트문트에서 정말 뛰고 싶니?”
“네!”
“오랫동안?”
‘그럴리가 없잖아?’
독일 클럽은 급여가 짜기로 아주 유명했다.
물론 바이에른 뮌헨 같은 스타 군단 클럽은 좀 다르긴 하지만.
많은 유망주들이 분데스리가를 거쳐가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경기 숫자가 적어서 무리한 일정 때문에 부상을 당할 확률이 적다는 것.
두번째는 챔스컵과 유로컵을 EPL이나 세리아A , 라 리가보다는 손쉽게 경험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한국인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리그를 바로 갈 수 없지만 독일 리그는 바로 갈 수 있다는 점.
“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머저리 짓은 절대 하지 않는 최준호였다.
“혹시 도르트문트의 영구 결번이 몇 개 있는 지 알고 있니?”
정말 도르트문트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선수라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지만, 최준호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1개. 12번이요.”
“그래? 그 번호는 어떤 선수에 대한 번호일까?”
근 20년 동안 도르트문트에서 12번을 달고 뛴 선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12번째 선수인 팬들을 위해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어요.”
최준호의 대답에 미하일은 큰 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로 알고 있다면, 도르트문트에 대한 관심이 크다는 거겠지?’
“도르트문트를 거쳐간 선수 중에서 가장 닮고 싶은 선수가 있니?”
“마르코 로이스요.”
최준호는 바로 답변했고, 미하일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마르코 로이스는 순간 가속도와 스피드를 기반으로 상대를 돌파하는 축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명 최준호와는 결이 완전히 다른 선수였다.
“왜?”
“도르트문트에서 가장 의리 있는 선수니까요.”
그 말에 미하일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진짜인지? 영리한 건지?’
마르코 로이스는 유스 시절 도르트문트에서 방출되었다가 두 개의 구단을 거친 이후 다시 고향인 도르트문트로 돌아왔다.
보통 선수들은 자신을 방출시킨 구단에게 악감정을 가지기 마련이었는데, 마르코 로이스의 이런 행보 덕에 도르트문트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하하하. 좋아. 그럼 정말 닮고 싶은 선수는 누구야?
“지네디 지단이요.”
미하일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공을 잘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를 목표로 하지. 사실 캠프가 끝나고 나서 정식으로 오퍼를 넣을 계획이었는데, 네가 바로 필요하다는 사람이 있어서 다음 주 쯤에 정식 오퍼가 들어갈거야.”
‘내가 바로 필요하다고?’
최준호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미하일은 서류를 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은 보호자나 대리인이 있어야 하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
“알겠습니다. 그런데요.”
미하일이 최준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누가 절 필요로 하는 거에요?”
“그건 계약이 끝나면 알게 될거다. 우리 선수도 아닌데 내부 사정을 알려줄 수 없으니까. 아, 참. 그 계약 말이다.”
“네….”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겐트와 하게 될거야.”
…유겐트?
최준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U-19인데요?”
“맞아. 초이. 정식 도르트문트 유소년 클럽이지. 때에 따라서는 1군 대회에 차출되기도 하고.”
U-19 라고?
정말?
이렇게 빨리?
‘어, 이건 생각 이상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