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4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41화(141/184)
141화 현실과 이상(2)
마르코 로제와 스탭들은 이동민이 가져온 영상을 분석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트럭과의 접촉은 분명 없었다.
몇 가지 그럴 듯한 추측을 할 수 있었지만, 선수 스스로가 부인을 하면 감독으로서는 그걸 믿어야 하는 상황이었고.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선수들은 자신의 부상보다 팀의 승리를 우선시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아무런 접촉도 없었는데, 그냥 뛰다가 부상을 당해 실려가는 선수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였다.
특히 마르코 로제가 경험한 선수들 중에서도 승부욕의 끝판왕 수준인 최준호라면 오늘 경기의 중요성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고, 존재할 수도 있는 자신의 부상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추측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경기 때문이었다.
최준호는 그라운드에서 뛰다가 기절한 적이 있었고, 은골로 캉테의 태클에 큰 부상을 입고도 뛰려고 엄청 쌩떼를 부렸다.
얼마 전에도 태클에 걸려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데도 결국 경기를 뛰어서 상황을 뒤집어 버렸고.
같이 뛰는 선수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불어 넣어주는 정말 놀라운 선수였지만, 그는 아마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를 잘 챙기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준호는 팀의 핵심 선수라는 것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감독이 존재하는 것이지.’
팀 닥터 엘리스가 날카로운 눈으로 최준호의 움직임을 체크하는 것을 보던 마르코 로제는 벤치에서 슬슬 몸을 일으켰다.
시즌 중에 주어지는 한 달의 휴가는 확실히 달콤하지만, 그 이후에 펼처지는 강행군은 선수들을 체력적 한계에 몰아넣고 있었다.
부상이 많이 나오는 시기였고, 선수 관리를 얼마나 철저히 하냐에 따라서 우승이 갈리는 시기였다.
다만 더블 스쿼드를 만들어도 될 만큼 강력한 바이에른 뮌헨에 비교한다면 도르트문트는 백업 선수들이 너무 아쉬었다.
토트넘의 선수들 움직임이 가벼운 것과 달리 도르트문트 선수들의 몸은 무거워보였다.
“라인 간격 좁히고 상대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허용하지 마!”
**
– 턱!
1차전에서 붙었을 때와는 다르게 몸이 무겁고 동작이 굼 떠보이는 최준호였다.
시소코는 자신의 피지컬로 최준호가 돌아서지 못하게 한 곳으로 몰아넣고는 가랑이 사이로 발을 넣어 공을 터치아웃 시켜버렸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은 건가?’
델리 알리가 침몰하는 배처럼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중용받기 시작한 올해 30살의 시소코.
어린 선수들은 한 때 번뜩임으로 반짝할 수는 있었다.
아주 고된 훈련으로 그 번뜩임을 실력으로 만들지 못하면 델리 알리처럼 나가 떨어지는 걸 많이 봐온 시소코였다.
‘초이. 너도 그럴까?’
무사 시소코는 187cm에 87kg의 피지컬에 한 때는 박홍민보다 더 빠른 발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부상의 여파와 노화로 그렇게 스피드가 나오지는 않지만, 발이 느린 최준호에게는 너무 버거울 정도로 빨랐다.
더군다나 몸싸움도 EPL의 수준급이었는데, 그가 공을 잘 다루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면 세계 최고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손꼽혔을 것이다.
하지만 무사 시소코의 생각과 달리 최준호는 닳고 닳은 베테랑이었다.
‘오른쪽 다리가 안 좋아.’
당장 교체되어 부상을 살필 수 있겠지만, 이 경기에서 이겨서 팀을 8강으로 보태고 싶은 승부욕이 그 유혹을 떨쳐버렸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지?’
피지컬에 의존하는 선수라면 이 상황에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겠지만, 최준호는 공을 아주 잘 다루는 선수였다.
‘일단 부하는 최대한 주지 말자. 무리한 돌파나 움직임을 하지 말자.’
시소코는 자신의 피지컬로 최준호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최존호의 의도였다.
그래서 시소코가 아주 강력한 압박을 함에도 불구하고 공을 뺏기거나 공격권을 돌려준 적이 없었다.
평소와는 다른 최준호의 움직임에 선수들도 금방 반응했고, 특히 함께 중원에서 뛰고 있는 델라이니가 적극적으로 최준호 옆에 붙어서 공을 받아 주었면서 위기를 함께 넘겼다.
‘오늘 초이의 움직임이 소극적이면 네가 좀 더 뛰어줘야겠다.’
마르코 로제의 지시가 있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우세한 토트넘이 4-3-3 전술로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었지만, 오늘 수비형 전술을 취한 도르트문트에게 위협적인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1차전과 마찬가지로 토트넘의 공격시에는 최준호가 에릭센을 맡았는데, 에릭센은 1차전 때와는 전혀 다른 압박 강도에 조금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녀석 뭔가 있다.’
1차전에는 최준호가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정말 어떻게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최준호는 적당히 떨어져서 자신의 드리블이나 패스를 컷트하려고 했다.
“혹시 아직 화장실에 못 간거야?”
“에이, 2번이나 갔다왔어요.”
“배탈이 난 거구나?”
“저런 들켰나요?”
에릭센의 움직임이 빠른 건 아니었지만, 공을 다루는 기술이 매우 좋아서 상대를 속여 탈압박을 즐겨하였는데, 이번에는 최준호의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달렸다.
그 순간 최준호의 나쁜 손이 자신의 팔을 낚아챘다.
‘역시 오른쪽 다리인가?’
유독 오른쪽으로 치고 달릴 때는 따라오질 못하고 있었다.
“인마 놔라. 이건 럭비가 아니야!”
“못 가!”
축구 선수가 악력은 왜 이리 쎈지.
결국 심판의 휘슬이 불리고 나서야 최준호는 얼른 손을 빠르게 떼었다.
주심이 구두 경고도 주지 않고 게임을 진행하려고 하자, 에릭센은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주심에게 항의했다.
“주심,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주심은 깔끔하게 무시했고, 그의 옆을 지나가는 최준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주심은 휘슬 부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식의 파울로 에릭센이 프리킥을 몇 번이나 찼지만, 도르트문트의 제공권을 책임지고 있는 김우영이 모조리 밖으로 튕겨내버렸다.
또 윙백이 아니라 센터백으로 나온 이슈라프 하키미가 박홍민을 거의 완벽하게 틀어막으면서 토트넘은 영양가 없는 공격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오늘 굉장히 소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중원에서 절대 공을 뺏기지 않고 패스를 연결해주는 최준호 때문에 토트넘의 예리한 역습 능력도 반감되고 있었고.
**
그렇게 전반전 36분이 흘렀을 때였다.
“그러고보니 우리는 상당히 공평해졌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훨씬 유리하지.”
최준호는 그 한 마디에 에릭센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차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단 말이지?’
“저번에 경기 끝나고 병원에 가봤어요?”
이번에는 오히려 최준호가 바싹 붙었고, 에릭센이 등을 지는 상황이었다.
1차전에서는 심장 이야기에 움찔하여 공을 뺏겼던 것을 떠올린 에릭센은 학습 능력이 매우 뛰어난 영리한 선수였다.
“개소리 마라.”
“농담 아닌데, 오늘 경기 끝나면 병원가서 심장 검사 받아요.”
에릭센은 그 말에 공을 툭툭치다가 최준호의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최준호는 애초부터 에릭센이 자신의 약점을 파고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비하고 있었다.
“내 심장은 무쇠처럼 튼튼해.”
“그러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요?”
“개소리.”
에릭센은 영리하게 팔을 흔들어 최준호가 붙잡지 못하게 하였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뺏기고 말았다.
– 툭.
마치 그곳으로 치고 갈 것을 알았다는 것처럼, 최준호가 몸을 틀어 왼발을 먼저 넣었고, 공이 그 발에 맞아 거꾸로 튕겨나갔다.
공을 뺏긴 에릭센이 급하게 스피드를 줄여서 최준호에게 달라붙으려고 했지만, 최준호는 공을 드리블 칠 생각이 아예 없었다.
도르트문트가 윙백인 하키미를 센터백으로 전환해서 박홍민을 막아 세웠지만, 토트넘의 수비는 산체스와 탕강가이었는데 그 둘 다 토마스 시아카의 주력을 잡을 만큼 빠르지 않았다.
– 뻥!
공을 잡자마자 전방을 향해 왼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최준호!
이미 오랫동안 최준호와 패턴 연습을 한 토마스 시아카는 최준호가 공을 뺏자마자 산체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리그와 포칼컵에서 많은 시간을 뛰며 그라운드에 익숙해진 토마스 시아카는 마치 폭발하듯 가속을 시작했고, 최준호가 올린 크로스는 토마스 앞에 뚝 떨어졌다.
발기술이 부족한 토마스조차 쉽게 퍼스트 터치 할 수 있을 정도의 택배 크로스!
‘아, 행복해!’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는 산체스와 탕강가 역시 특유의 가속력으로 토마스 시아카에게 달라붙었지만, 토마스 시아카의 발이 얼마나 빠른지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저 괴물은 또 뭐야?’
‘아···!’
산체스와 탕강가가 맥이 풀린 듯 스피드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위고 요리스는 인상을 잔뜩 썼다.
엘링 홀란드가 빠졌을 때만 해도 이 경기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예기치 못한 변수였다.
다만.
– 툭!
토마스 시아카의 터치가 수준 미달이라는 점.
토마스의 터치가 길어져 루즈볼을 위고 요리스와 경합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베테랑이자 세계 최고의 선방력을 가진 골키퍼 답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힘껏 뛰었고, 토마스 시아카 역시 어떻게든 먼저 공을 터치하려고 악을 썼다.
– 뻥!
토마스 시아카의 발에 공이 먼저 걸렸지만, 몸을 횡으로 던진 위고 요리스의 다리에 맞은 공이 멀리 튕겨나갔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예측력을 가진 최준호가 공이 떨어지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을 터치하기 전 최준호는 시선을 돌려 저 멀리에 있는 골대를 보았다.
거리는 거의 35미터.
그러니까 센터 서클에 가까운 지역.
사방으로 토트넘의 선수들이 죽일 듯한 표정으로 달려들고 있었지만, 공을 터치하기 전에는 도달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위고 요리스는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서 몸을 던졌고, 골문 앞은 완전히 비어 있는 상황.
‘개꿀!’
다소 불편한 오른 다리로 땅을 디딛고는 떨어지는 공을 왼발로 강하게 때렸다.
– 뻥!
잔디를 뉘이며 대포알처럼 공이 날아갔고!
벌떡 몸을 일으킨 위고 요리스가 골문을 향해 돌진하였다.
“안돼!”
슈팅이 느리기라도 한다면 어떻게든 달려들어 튕겨내기라도 할텐데···.
이건!
위고 요리스가 몸을 던졌지만, 공은 꽤 큰 간격의 차이로 그의 손에서 벗어나 토트넘의 골문을 강하게 흔들어 버렸다.
– 철렁!
토트넘에게 거의 압도 당하다시피 점유율을 내준 도르트문트 때문에 경기보는 내내 긴장하던 팬들은 이 원더골에 모든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환호성을 내질렀고, 주심의 휘슬소리가 묻힐 정도로 엄청난 소음을 양산해 내었다.
최준호는 그 엄청난 환호성을 느끼며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번쩍 들어올렸다.
골이 들어가는 순간 마르코 로제는 어떤 전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쳤군. 저 상황에서 중거리 슛팅을 때릴 생각을 하다니.’
자신을 붙잡고 엄청나게 좋아하는 르네 마리치를 보던 마르코 로제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그라운드 위에서 정말 놀라운 존재감을 보이는 최준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왜 도르트문트에 자신이 필요한지.
이 경기의 승리를 위해서 왜 자신이 꼭 출전해야했는지.
마치 자신에게 시위를 하는 것 같았다.
“교체할까?”
최준호의 오른쪽 다리에 부상이 있다는 것은 이미 파악이 되었다.
햄스트링 올라오면 뛰는 것 자체가 힘들 것이고, 팀 닥터인 엘리스에 따르면 근파열 정도로 예측을 하였다.
르네 마리치의 물음에 마르코 로제는 잠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토트넘이 EPL에서 우승권이 있는 이유는 후반에 골을 몰아 넣기 때문이었다.
전반에는 골을 먹다가도 마치 오뚜기처럼 후반에 역전을 시켰는데, 지금 경기 상황을 보니 최준호가 빠졌다가는 잡아먹힐 기세였다.
‘고민스럽군.’
그가 고민을 하는 계속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최준호가 놀라울 정도로 영리한 움직임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편한 다리에 최소한의 부하만 걸면서 탈압박을 하거나 공을 패스하고, 이렇게 기회를 창출하거나 골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최준호의 선제 골로 8강 진출에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였지만, 잠시도 숨을 돌릴 수 없는 상황.
문득 마르코 로제는 세레머니를 끝낸 최준호와 시선이 마주쳤다.
‘바꿔줄까?’
말은 안했지만 마르코 로제의 의중을 알기라도 하는 듯 최준호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이 상태로도 어떻게든 뛸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마르코 로제가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자, 르네 마리치가 말했다.
“프로 리그는 아주 무서운 리그야. 약점을 드러냈다면 살아남기 힘들어. 알잖아? 승부욕이 선수들에게 어떤 선택을 하게 하는 지?”
그 말에 마르코 로제는 눈을 잠시 감았다.
감독으로서 승리에 대해 욕심을 부리고 싶었다.
여기서 토트넘을 물리치고 8강에 올라가서 대진운이 좋다면 약팀을 만날 수 있고.
그러면 4강.
거기서 행운의 여신의 힘을 빌려 이길 수 있다면 결승.
명성이 높은 수많은 감독들이 평생 한 번 들어올리기 힘들다는 그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 트로피!
짧은 순간에 엄청나게 많은 것을 떠올린 마르코 로제가 눈을 떴다.
다소 정동된 표정.
‘현실과 이상이라…’
그는 입술을 한 번 꾹 물고는 입을 열었다.
“···마리우스 볼프한테 몸 풀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