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4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44화(144/184)
144화 왕의 복귀(2)
분데스리가 9라운드.
우니온 베를린 vs 도르트문트.
2부 리그에 승격하여 올라온 우니온 베를린은 이번 시즌 끝에 강등을 당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과는 다르게 4승 3무 1패로 리그 3위까지 올라왔다.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것을 제외하고는 굉장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고, 이번 시즌 돌풍 이변의 주인공이 되고 있었다.
우니온 베를린의 선수들 능력은 확실히 떨어졌지만, 선수 전원이 엄청난 활동량을 기반으로 전후반 끝까지 집중력 높은 수비를 보여주면서 한 점 차 승리를 거두거나 무승부를 거두고 있었다.
특히 매 경기당 평균 3.5점을 득점하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0-1로 패했다는 건 그들의 수비 조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이런 우니온 베를린의 활약은 도르트문트 전에서 마찬가지였다.
4-4-2 전술을 취하는 우니온 베를린의 촘촘한 수비력에 도르트문트는 전혀 골을 넣지 못하고 있었다.
우니온 베를린 역시 도르트문트의 수비에 역습이 막히면서 유효 슈팅 한 번 때리지 못하고 있었고.
누군가가 보기에는 굉장히 재미없는 축구였지만,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붉은 색 유니폼을 입은 우니온 팬들은 신이 나서 응원가를 부르고 있었다.
우니온 팬들의 희망은 분데스리가 잔류였고, 분데스리가에서 항상 2위 자리를 차지하는 도르트문트 상대로 이 정도로 버티는 건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후반 34분경.
엘링 홀란드는 라파엘 게헤이루의 놀라운 크로스를 헤더 슈팅으로 연결했고, 공을 상대 골대에 꽂아 넣었다.
드디어 선취점을 올리는가 싶었는데, 여지없이 올라가 있는 부심의 노란 깃발.
“···돌아버리겠네.”
우니온 선수들이 얼마나 호흡을 완벽하게 맞췄으면, 엘링 홀란드는 벌써 7번째 오프사이드 트랩에 걸려 있었다.
엘링 홀란드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에게 패스를 올려주는 선수들이 타이밍이 늦는다는 것이었다.
선수의 컨디션 문제가 아니라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이 공을 가진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해서 타이밍을 늦추는 게 문제였다.
“여기서 비겼다가는 구단주에게 불려갈거야.”
르네 마리치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우리는 실직자가 되겠지.”
아무리 감독이 뛰어나도 주전 선수 절반이 부상으로 빠진다면 제대로 된 경기를 펼칠 수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마지막 카드가 남았어.”
르네의 말에 마르코는 벤치 근처에서 몸을 뎁히고 있는 최준호를 보았다.
이제 그의 피지컬적인 성장은 멈춘 듯 했다.
185cm에 78kg.
예상대로 철저한 자기 관리 때문에 팀에 복귀 했을 때는 이미 몸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남은 것은 경기장에서 적응하고,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정도?
“아마도 저들은 모를 거야. 초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부상을 당하면 폼이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건 최준호에게는 적용이 되질 않았다.
신기하게도 수준급의 주력을 탑재하고 나타난 최준호였다.
“교체 진행해.”
“오케이.”
**
‘드디어 이 개미지옥에서 탈출하는구나.’
토마스 델라이니는 땀으로 완전히 젖은 채 빠르게 터치 아웃 라인으로 뛰어나왔다.
최준호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이 되었을 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많은 출전 기회가 찾아오자 그는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의 클라스를 보여주고 팀의 영웅이 되려고 했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마음먹은 대로 경기는 풀리지 않았고 팬들과 여러 전문가가 도르트문트 패배의 원흉으로 자신을 지적할 때마다 자신감이 뭉텅뭉텅 깎여나갔다.
그리고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 실수에 신경 쓰다 보니 그 어떤 창의적인 패스도 줄 수가 없었고, 그건 팀의 공격력을 무디게 만드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우니온 베를린은 그런 것을 떠나서 수비력만큼은 만점을 줘도 될 만한 경기력이었다.
뭔가를 하고자 하면 더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 같은 팀.
“고생했어요.”
얼마 전에 19번째 생일을 보낸 선수에게 토마스 델라이니는 뭔가 든든함이 느껴졌다.
그가 나가면 경기가 어떻게든 바뀔 수 있다라는 기대감 같은 것도 찾아왔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월드클래스의 후광일 수도 있겠지만.
“부탁한다.”
최준호가 이 팀에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토마스 델라이니였다.
우니온 베를린의 팬들은 최준호가 나오자 야유보다는 박수를 쳐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휘파람까지 부는 사람들.
‘어, 이상하네?’
최준호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상대 팀의 팬들이 앉아 있는 스타디움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에게도 꽤 신선한 상황이었다.
‘기분 묘하네.’
축구를 떠나서 최준호가 했던 영웅적인 행동은 꽤 오랫동안 독일 사람들에게 회자가 되었다.
그의 부상이 한 어린아이를 구하면서 얻은 것이라는 기사까지 뜨면서 독일 축구팬치고 최준호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북귀 축하한다! 오늘은 적당히만 해!”
한 용감한 팬이 지른 고함소리를 들은 최준호는 그제야 이 이상한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를 했다.
‘고마워. 하지만 적당히 할 생각은 없는데?’
최준호는 자신의 자리로 뛰어가면서 천천히 하늘을 보았다.
누군가는 한 번 사는 인생에서도 최준호보다 앞서갔다.
‘꽤 많았지. 셀 수 없을 정도로.’
최준호는 항상 그들의 등을 보며 달렸다.
두 번째 삶을 부여 받은 상황에서 누군가의 등을 보고 가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번 생은 결코 누군가의 등을 보며 달리고 싶지 않았다.
가장 앞서서 달리는 선구자가 되고 싶었다.
‘이제부터는 부상이 내 발목을 잡지 않도록 해야겠어.’
한 편, 최준호가 그라운드에 등장하자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은 긴장을 역력히 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교체 명단에 있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부담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선수지만, 단점도 확실한 선수.’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은 이미 이 상황을 위해서 많은 연습을 한 상황이었다.
최준호가 경기에 나오자 우니온 베를린의 감독 우르스 피셔 역시 교체를 단행하였다.
우수한 피지컬에 수비력이 좋으며 주력이 빠른 야니크 하버러를 투입했다.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지?”
“네. 감독님. 비디오 분석을 충분히 했습니다.”
“발이 느리니까 역습 상황에서 패스를 제대로 줄 수 없도록 방해를 하면 돼.”
“네.”
야니크 하버러는 교체되어 들어오자마자 최준호를 찾았다.
그의 엄청난 활약은 비디오로만 봤지 부딪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야니크 하버러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넌 나에게 분석 당했다.”
가까이 붙자마자 꺼낸 말에 최준호는 피식 웃었다.
“···그래?”
경기가 시작되고, 도르트문트는 수비 라인을 꽤 높이 끌어올렸다.
우니온 베를린은 후반 막판 들어서도 간격이 매우 좁은 두 줄 수비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단한 집중력에 대단한 체력이었다.
선수들 사이의 공간이 너무 좁아서 공을 제대로 투입하기도 어려웠지만, 최준호는 부상을 당한 적이 없다는 듯 원터치로 예리하게 방향을 돌려놓는 패스로 우니온의 수비를 흔들려고 했다.
“집중해. 맡은 지역과 선수에만 집중해!”
우니온 베를린의 주장이자 커맨더형 센터백인 크리스토퍼 트리멜이 흔들리려고 하는 선수들을 빠르게 휘어잡았다.
‘역시.’
지역방어와 개인방어를 동시에 펼치고 있는 우니온 베를린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달라붙은 야니크는 이 수비법에 적응할 만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공을 받을 때마다 열심히 달려들었는데, 그럴 때마다 그의 뒤에 공간이 생겼으니까.
“뚫리는 게 무섭지 않나 봐요?”
자신이 뚫려도 뒤에서 백업해줄 선수가 있었고, 그 사이에 빠른 발로 백업을 하면 그만이었다.
최준호의 발 밑에서 시작되는 킬패스만 막으면 이번 경기 목표한 대로 1점의 승점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야니크가 자신감을 보이며 이를 드러내자 최준호는 비릿하게 웃었다.
‘하긴, 모르겠지.’
– 툭.
이번에도 원 터치로 방향 전환 패스를 하는가 싶었는데, 야니크의 예측에서 벗어난 볼 터치였다.
자신의 왼쪽으로 공이 흘러갔고, 최준호가 빠르게 어깨를 집어넣었다.
‘큭!’
예상대로 굉장한 몸싸움 능력이었다.
분명 자신의 능력으로는 최준호를 잡는 게 무리였다.
하지만 믿을 만한 동료가 눈치 빠르게 달려들었고, 야니크는 그의 뒤로 이동해서 백업을 할 준비를 하였는데···.
– 툭!
백업을 온 동료마저 최준호의 몸놀림을 놓쳐버리고 그를 통과시켜 버렸다.
정말 놀라운 개인기였다.
“엇!”
야니크는 몸을 돌려 최준호를 따라잡기 위해서 뛰었지만, 도무지 그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뭐지?’
공을 몰고 가는 선수를 못 쫓아간다고?
‘···빨라졌다고?’
최준호의 순간적인 개인기에 유니온 베를린의 수비 조직력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예상되지 않은 상황에 근처에 있던 풀백이 최준호에게 달려들었고.
그 움직임은 오늘 경기를 뛰고 있는지 존재조차 없었던 토마스 시아카에게 넓은 공간을 허용하고 말았다.
앞뒤로 쌈을 싸먹히기 전에 최준호는 오른쪽을 향해 강하게 공을 밀어 찼다.
– 촤르륵.
잔디를 휘갈기며 땅을 훑고 가는 공은 골라인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놀라운 속도로 뛰어온 토마스 시아카의 발밑에 들어왔다.
토마스의 시야에는 우니온 베를린의 수비수가 아무도 없었다.
완벽하게 열린 상황.
엘링 홀란드와 막시밀리안 필리프가 골대로 쇄도했고, 당황한 우니온 베를린 선수들이 우르르 골대로 들어왔다.
그런 토마스 시아카의 눈에 완전히 상반된 움직임을 하는 최준호가 들어왔다.
골대롤 뛰어가는 척하다가 몸을 돌려 페널티 에어리어 밖으로 벗어나는 최준호.
최준호를 마크하는 야니크조차 아직 적응 못 한 듯 골대로 뛰어들다가 ‘아차!’ 싶었는지 걸음을 멈추고 최준호를 찾았다.
– 뻥!
토마스 시아카의 크로스는 골대가 아니라 페널티 에어리어 밖에 서 있는 최준호에게 향했다.
아주 강한 땅볼 크로스.
‘···이야, 이제는 제법인데?’
최준호는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슬쩍 보고는 시선을 골대로 돌렸다.
놀란 우니온 선수들이 몸을 돌려 뛰어나오려고 했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상대 골대를 무섭게 스캔 한 최준호는 굴러온 공을 그대로 슈팅으로 가져갔다.
– 뻥!
오른쪽 발등에 맞아 레이저처럼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빠른 공은 골키퍼가 서 있던 반대편 골대 구석으로 향했고, 골키퍼가 몸을 날렸지만 건들 수가 없었다.
– 철렁!
골대 그물을 강하게 휘감고 회전하는 공.
후반 44분에 터진 극장골.
거미 지옥같은 우니온 베를린의 수비에 진력이 나 있던 도르트문트의 모든 선수들 얼굴에 기쁨이 서렸다.
“우와와와!!”
골대로 뛰어들었던 엘링 홀란드와 막시밀리안 필리프가 손을 번쩍 들고 괴성을 지르며 최준호에게 향했고, 도르트문트의 벤치는 모두가 벌떡 일어나 부둥켜안았다.
최준호는 짦은 순간 자신의 오른발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래 이거지!’
9명의 선수들에게 격렬하게 포옹을 당하는 최준호는 그야말로 왕의 귀환이었다.
**
<왔노라! 보았느냐? 이겼도다!>
새벽의축구도사 채널을 운용하는 양창명은 오늘 라이브 방송의 제목을 저렇게 정하였다.
“드디어 왕이 귀환했습니다. 최준호 선수는 후반 36분경에 출전해서 놀랍게도 8분 만에 결승골을 터트렸습니다. 비록 MOM은 오늘 극강의 수비력을 보여준 우니운 베를린의 주장 크리스토퍼 트리멜이 가져갔지만, 도르트문트는 정말 귀중한 승점 3점을 가져왔습니다.”
– 잠 안 자고 끝까지 본 내가 승자닷!
– 최준호가 나올 때 뭔가 터질 것 같았음!
– 준호야 사랑해! 인성 최강! 실력 최강! 사업도 최강! 최고의 남푠감!
– 중거리 슈팅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 하루 종일 속이 안 좋았는데 슈팅 보고 얹힌 게 내려갔다! 만세!
– 왕의 귀환? 잘 어울리네. 확실히 엄청난 임팩트였음.
– 근데 최준호 뭔가 빨라진 거 같지 않음?
···
양창명은 굉장히 흥분한 얼굴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준호의 오늘 플레이가 매우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피지컬이 좋고 빠른 선수가 수비로 붙으면 개인기를 펼치는데 굉장히 소극적이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달랐다.
“우니온 베를린처럼 라인을 완전히 뒤로 내리고 엄청난 활동량과 조직적인 수비를 하는 팀을 상대로 패스 게임을 하게 되면 골을 넣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뛰어난 개인기로 상대 수비 조직을 흔들 선수가 필요한데, 오늘 최준호 선수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준호 선수의 발이 매우 빨라졌습니다.”
전술판을 보여주면서 오늘 경기를 설명하던 양창명이 후반 교체로 들어온 19번 야니크 하버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 선수는 발밑이 좋지 않고, 빌드업 과정에서 거의 관여하는 선수가 아니라 주전으로 쓰이지 않지만 훌륭한 피지컬과 스피드를 갖춘 꽤 괜찮은 수비수입니다. 그런데 드리블을 하는 최준호 선수를 이 선수가 따라잡지를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상황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 부상 기간이 뭘 먹은 거야? 영약이라도 먹었나?
– 원래 부상 당하면 폼 떨어지는데. 이건 완전 반대네?
– 꽤 드라마틱하게 빨라진 거 같은데, 이런 경우가 있나요?
– 그간 약점이라고 생각되었던 부분이 보완이 되었다는 소리죠?
– 최준호가 구해준 아이의 수호신이 감명이라도 받은 듯.
– 빨라졌다니? 그럼 누가 최준호를 막아?
수 많은 댓글들이 올라왔고, 양창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좀 더 경기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점점 축구 선수로서 완전체가 되어 간다고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