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51)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51화(151/184)
151화 우승의 첫 계단(3)
분데스리가 최강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
하지만 이번에 그들을 지탱하던 아르엔 로번, 마크 훔멜츠 같은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서 공격만큼 견고했던 수비에 금이 가 있었다.
작년과 올해 유난히 프랑크푸르트에 고전을 했던 이유는 너무나 분명했다.
라인을 높이 올리고 풀백들까지 공격에 가담시키는 바이에른 뮌헨의 전술상 역습을 당할 때 풀백들의 뒷공간을 찌르면 아주 위협적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도 프랑크푸르트처럼 역습 시에 풀백 뒷공간을 노리자는 거지?
마르코 로제는 토마스 투헬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인지 한 전술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는 것보다는 맞춤 전술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 프랑크푸르트가 그 어떤 팀보다 바이에른 뮌헨을 잘 공략하고 있지. 내가 도르트문트 감독이었다면 그들의 전술을 가지고 나왔을 거야.
토마스 투헬이 해 준 이야기는 확 다가오는 게 있었다.
최준호의 조언에 마르코 로제는 잠시 고민했다.
프랑크푸르트의 주 포메이션은 4-3-3
그들은 윙어에 발이 매우 빠른 선수를 썼고, 선수비 후역습이라는 전술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마르코 로이스도 완전히 회복되어 교체 출전으로 두어 번 들어가서 폼을 끌어올린 상황이라 도르트문트는 이제 원래의 선수단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격적 성향이 강한 풀백들의 뒷공간이 넓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전술을 고대로 쓰자는 제안은 처음 받은 마르코 로제.
“음. 괜찮은데? 우리 팀의 역습 능력도 꽤 좋잖아.”
마르코 로이스, 엘링 홀란드, 토마스 시아카 모두 발이 빠른 선수들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도 최상위권.
여기에 최근 놀라울 정도로 폼이 좋아진 율리안 브란트 역시 발이 매우 빠른 선수였다.
최준호의 발이 빨라진 것도 덤이었고.
도르트문트의 선수들 대부분이 발이 빨라지니 기동력이 상당히 좋아졌고, 강력한 전방 압박을 기본으로 하는 게겐 프레싱의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었다.
그들이 리그에서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이유였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포백 모두 속도가 빨라.”
전체적인 라인을 올리는 공격적 성향이 강한 팀들은 발이 빠른 수비수를 아주 좋아하는데, 바이에른의 포백은 모두 발이 빠를 뿐만 아니라 풀백과 센터백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포지션 선수들이었다.
그렇기에 역습 시에 상대 수비 조직력을 흔들지 못하면 골을 페널티 에어리어 까지 접근하기가 힘들었고, 접근한다고 하더라도 스위퍼 형 골키퍼인 마누엘 노이어와 승부를 펼쳐야만 했다.
마르코 로제의 옆에 서 있던 최준호는 히죽 웃으면서 전술 판의 말들을 재배치하였다.
“이런 식으로 공격을 들어가게 되면 알라바와 보아텡은 사이드로 빠질 수밖에 없고, 가운데에 공간이 커지게 되죠. 이 상황에서 슈팅력이 좋은 율리안이나 제가 컷백으로 패스받는다면 아주 좋은 기회가 날 겁니다.”
마르코 로제는 잠시 턱을 괴고 최준호를 슬며시 보았다.
‘이 녀석 진짜 19살 맞아?’
저 나이에 그라운드에서 공을 잘 찰 수는 있다.
하지만 전술을 생각해 내는 수준은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를 못 따라온다.
그건 상당한 시간이 걸려 경험하고 배워야 하는 영역이니까.
프랑크푸르트의 전술을 그대로 가지고 오되, 마지막은 도르트문트에 꿰맞춘 듯하였는데 마르코 로제가 봐도 굉장히 좋은 역습법이었다.
여기에 율리안 브란트까지 끼워 넣은 이유는 마르코 로제 역시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은퇴할 때까지 녀석의 감독이 되고 싶은 건 욕심이겠지?’
최준호가 떠날 경우를 대비해서 구단에서 율리안 브란트를 영입하였고, 율리안 브란트는 최근 최준호와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폼이 아주 좋아지고 있었다.
특히 몸싸움 영역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특출나지기 시작했다.
최준호도 그 부분을 의식한 듯싶었다.
“괜찮네. 방향성 확실하고. 잘만 되면 바이에른 뮌헨 놈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겠어.”
르네 마리치 역시 살짝 감탄을 터트리고는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전술을 고안해낼 정도면 코치진으로 써야 하는 거 아니야?”
“죄송합니다. 선수 연봉이 더 세서요.”
“하하하하.”
사실은 최준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토마스 투헬이 알려준 걸 살짝 수정했을 뿐이었다.
“알았네. 지금처럼 좋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내 방을 두드려.”
“물론이죠. 감독님.”
어제 있었던 최준호와의 이야기를 떠올린 마르코 로제는 전술 실에 모인 선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약간의 전술 변화가 있다.”
**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 니코 코바치는 좀처럼 경기 준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바이에른 뮌헨의 회장 헤르베르터 하이너가 한지 플릭 감독과 비밀리에 회동했다는 첩보를 들은 뒤부터였다.
니코 코바치는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최근 프랑크푸르트와 5번을 붙어 5번 모두 패하면서 팀의 약점이 노출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계속 받아왔다.
– 자네는 그 약점을 고칠 생각이 없군.
프랑크푸르트뿐만이 아니긴 했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 첫 경기 토트넘을 만나 박홍민의 스피드에 왼쪽 라인이 줄곧 뚫리면서 결국 2-3으로 패배해버렸다.
물론 다음 조별 경기에서는 박홍민이 부상으로 빠져서 나오지 못했고, 바이에른 뮌헨은 자신의 축구를 하면서 3-0으로 깨버렸지만.
지금 잘 굴러가고 있는 전술을 굳이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는 니코 코바치였지만, 그 결과가 설마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도르트문트와의 마지막 경기는 저번 시즌이었다.
부상으로 최준호가 빠진 도르트문트와의 원정 경기.
끈질기게 우승을 향해 쫓아온 그들을 5-1로 발라버리며 리그 우승을 확정을 지었다.
하지만 니코 코바치는 이번 경기에서는 자신감이 없었다.
일단 최준호가 스피드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작년보다 폼이 훨씬 좋아졌기 때문에 예전처럼 송우영을 써서 그의 앞을 막는 건 힘들어 보였다.
더구나 플레이가 워낙 도깨비 같아서 한 선수로 대응하는 건 이제 불가능했고.
결국 순수하게 힘 대 힘으로 가야만 했다.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바이에른 뮌헨, 마누엘 아칸지를 제외하고는 20살 짜리 김우영과 아모스가 맡고 있는 도르트문트의 수비는 극강의 공격수를 상대한 경험이 적다는 점을 볼 때 득점을 많이 넣은 팀이 이길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 하는데.’
계약이 이제 3개월 남았는데, 구단에서 재계약 이야기가 없는 걸로 봐서는 자신을 연임시킬 생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결국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서 더 오래 살아남을지 아니면 상호 계약 해지로 갈지 결정될 것으로 보였다.
‘차라리 돈 받고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결국 높은 연봉을 받기 위해서는 감독 평판도 좋아야 했다.
무사하게 계약 만료까지 팀을 아름답게 이끌면 이끌수록 더 높은 우대를 받고, 토마스 투헬처럼 개판 치고 나가면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감독 연봉 서열로 세우면 거의 하위권에 있는 토마스 투헬.
능력에 비해서는 완전 푸대접에 가까운 이유.
“왜 갑자기 그 미친놈이 떠올랐지? 로제 때문인가?”
니코 코바치는 자신의 책상에 걸터앉아서 고민에 빠졌다.
4-1-3-2, 혹은 4-4-2, 4-2-3-1, 4-3-3, 5-3-2. 3-5-2 와 같은 전술을 유연하게 사용해서 대응하는 마르코 로제가 이번에는 어떤 전술로 분데스리가 최강의 팀을 상대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
“선배 무슨 생각 해요?”
양창명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응···?”
그는 옆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즐기는 민선아를 보고는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잠시 헷갈렸다.
‘어쩌다가 내가 결혼까지 하게 된 거지?’
분명히 올해 여름까지는 경쟁 언론사의 경쟁자로서 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썸을 타며 그녀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10월에 결혼하고 말았다.
처음 그녀에게 푹 빠졌을 때까지 포함하면 거의 12년.
12년이 걸려 결국 그녀와 함께 살게 된 것이다.
40대의 양창명과 30대 중반의 민선아···
결혼하니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있었는데, 좋은 점이 더 많긴 했다.
일단 생활이 규칙적으로 변했고, 눈을 뜨면 밥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고, 컴컴한 방에서 혼자 멍하니 천장을 보다 잠을 자는 일이 사라졌으니까.
물론 양발 뒤집지 말라고, 빨래는 구분 지어서 분류하라고 잔소리하는 사람이 늘어서 귀가 많이 피곤해지긴 했다.
여전히 그녀는 경쟁 언론사에서 일하고 있었고, 양창명 역시 결혼한 것 이외에는 변한 것이 없었다.
둘 다 분데스리가에서 활약 중인 최준호를 집중적으로 취재하는 주재원 기자들이었다.
“아냐.”
“선배는 오늘 경기 어떻게 봐요?”
그녀는 여전히 선배라고 불렀다.
그리고 축구 이야기에 양창명의 눈빛이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알 수 없음이랄까?”
“전력으로는 바이에른 뮌헨이 앞서지 않아요?”
“선수 퀄리티만 따지면 수비진에서 바이에른 뮌헨이 압도하지. 하지만 공격진의 퀄리티는 거의 비슷하다고 봐야 하고, 미드필더 퀄리티는 도르트문트가 아주 우세하다고 봐야겠지.”
“최준호 선수 때문에?”
“최준호 선수도 그렇지만, 그와 함께 뛰는 율리안 브란트의 포텐이 터졌거든.”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 경기 이후 율리안 브란트는 수비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인 선수가 되었다.
최준호와 비슷한 피지컬을 지닌 그는 마치 최준호처럼 몸싸움하기 시작했는데, 두 선수가 중앙에서 상대 미드필더들을 강력하게 압박하여 압살해버리니 상대 팀의 처지로서는 공을 전진시키기 버거울 지경이었다.
실력이 떨어지는 미드필더들을 보유한 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중앙에 숫자를 더 포진시켜야 했고, 그건 공격진의 숫자가 적어지거나 수비진의 숫자가 적어짐을 의미했다.
더 많은 골을 먹거나, 골을 넣지 못하거나.
결국 최근에 4경기에서 도르트문트는 평균 3.14점의 득점, 평균 0.46골의 실점을 기록하였는데 통계가 도르트문트의 중앙을 설명해 주는 단서였다.
민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제 도르트문트도 세대교체가 거의 다 되었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익숙했던 악셀 비첼, 단악셀 자가두, 압둘 디아두, 토마스 델라이니 같은 선수들은 후반에 교체로 나오는 정도였고, 도르트문트의 선발 선수 스쿼드 나이는 23.1세로 분데스리가에서 가장 젊었다.
“내년에는 또 어떻게 될지 몰라.”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구단과 연관이 되어 있는 기자나 일간지에서 연일 최준호의 영입설을 퍼트리고 있었다.
최준호의 에이전트 김동현과 친분을 맺고 있는 양창명은 최근 그의 휴대폰이 꺼져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이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만큼 비행기를 타는 시간이 길어졌다는 뜻이었으니까.
“내년에는 도르트문트에서 최준호를 놓아주겠죠?”
“가장 비싸게 팔 수 있는 시기니까. 폼도 지금 거의 최정점에 도달한 듯하고.”
“그래요? 제 눈에는 점점 좋아지는 걸로 보이는데?”
민선아도 오랫동안 축구를 보며 분석한 기자였다.
물론 양창명처럼 수치로 설명하지는 못해도 여성으로 가진 어떤 육감 같은 것이 있었다.
최준호는 2년 전만 해도 스피드가 좋거나 몸싸움 잘하는 선수가 들러붙으면 경기장에서 지워지던 선수였다.
그리고 작년에는 빠른 선수가 죽어라 덤비면 잡아놓을 수는 있지만, 경기장에서의 영향력은 유지하고 있었고.
올해는···.
누가 최준호를 막을 수 있을지 머릿속에 잘 떠오르지 않았다.
20살도 안 된 선수에게서 리오넬 메시의 경기에서 느꼈던 충격을 가끔 느끼는 민선아.
“이젠 내 말만 곧이곧대로 믿지 않네?”
“하하하. 내 경력도 10년이 넘는다고요. 그래서 밤마다 영국에 집을 알아보는 중이에요?”
양창명에겐 어떤 감이 있었다.
일단 김동현과 통화할 때 그가 주로 영국에 있다는 점.
그리고 최준호가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는 젬병이라는 점.
재계약을 맺을 때 바이에른 뮌헨 이적 조항 금지로 인해서 독일에는 갈 팀이 없다는 점.
그러면 딱 하나.
영국만 남게 되었다.
일단 그중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제외했다.
그곳에는 다비드 실바, 티아구, 케빈 데 브루이너, 페르난지뉴 같은 패스 마스터들이 즐비했기에 그들이 선수를 영입한다면 스트라이커 포지션이라고 생각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리버풀은 이번 시즌 선수 영입에 너무 많은 돈을 써서 재정적으로 어려울 것 같았고.
토트넘의 회장 레비는 짠돌이로 유명했기에 비싼 돈을 지출할 리는 없었고.
결국 리빌딩 중인 아스널이나 첼시가 가장 유력했는데, 이들은 모두 런던을 기반으로 하는 팀이었다.
“응?”
“런던인 거죠?”
“설마 내 노트북 뒤진 거야?”
“뭐 야한 건 없던데요?”
“······”
결혼해서 나쁜 점 중 하나.
아내가 컴퓨터를 뒤진다는 것.
“기사 쓰지 마라.”
민선아가 눈을 크게 뜨며 씩 웃었다.
“왜?”
특히 경쟁 언론사의 기자를 아내로 둔다면 더욱더.
**
경기장으로 나온 엘링의 시야는 지그날 이두나 파크에서 가장 시끄러운, 입석 좌석으로만 이루어진 쥐트리뷔제로 향했다.
거기에는 도르트문트 팬 중에서도 가장 미친 팬들이 있는 곳으로 엄청난 카드 섹션과 경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응원가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의 눈에 띈 카드 섹션에는
도르트문트의 거의 모든 팬이 팀의 핵심 선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최준호를 뽑았고, 엘링은 그게 마음에 들지를 않았다.
‘오늘 누가 이 게임의 주인공인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그리고 엘링과 같이 시선을 쥐트리뷔제로 돌린 최준호는 가볍게 웃으며 경기에 임했다.
‘저 열렬한 팬에게 우승 트로피를 선물하고 간다!’
사실은 우승 트로피를 원하는 건 최준호였다.
오스트리아 리그에서 우승 트로피와 컵 트로피를 따긴 했지만, 그곳은 변방의 리그였고.
메이저 리그에서 트로피를 쥐어본 역사는 회귀 전에도 지금에서도 없기에 더욱 간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