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5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53화(153/184)
153화 도전자의 위엄(1)
– 하지만 자네가 좀 더 집중해야 할 것이 있어 바로 기술의 완성이지. 타협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완성은 오직 마음가짐과 노력의 완벽성에 달려 있어. 그리고 그 완벽성은 미쳤다는 말로 함축할 수 있지. 내가 볼 때 자네는 축구를 꽤 잘하는 거지 축구에 완전히 미친 게 아니야. 미치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없는 거야.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을 울리는 말로
때로는 쓴 말로 묘하게 승부욕을 자극하는 토마스 투헬.
가끔 최준호도 그가 어떤 인간인지 짐작을 하다가도 모를 판이었다.
‘이 인간이 나까지 미친놈으로 만들 생각인가?’
미친 건 토마스 투헬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보였다.
– 첼시의 구단 대리인 마리나 그라노브스키이아는 PSG와 상호 계약 해지를 한 토마스 투헬을 새 감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그가 보여준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해 선수단과 팬들이 심하게 반발하였지만, 마리나는 투헬이 위기에 빠진 첼시를 영광의 길로 인도할 것이라며 계약서에 최종 서명을 하였습니다. 연봉 550만(83억원) 파운드에 2년 계약에 서명한 토마스 투헬은···.
‘첼시로 갔네.’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 중국에서 발생한 새로운 바이러스는 전염성은 강하지만 치사율이 낮은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중국 정부에서 빠른 조치를 하여 세계에 퍼질 우려는 없다고···.
‘이건 예상 못했네?’
최준호가 겪었던 세상은 코로나 때문에 엉망이 되었는데, 과거로 회귀했다고 역사가 바뀌나?
“뭔 뉴스를 보냐? 영화나 보자.”
김우영이 채널을 돌렸고, 꽤 유명한 영화가 흘러나왔다.
“멀티 버스라니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세상에 평행 우주가 어딨냐?”
영화 스트레인져를 함께 보고 있던 김우영이 중얼거렸다.
‘멀티 버스? 평행 우주 같은 건가?’
뭐,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축구만 할 수 있으면 최준호에게는 모두 오케이였으니까.
오히려 코로나가 없는 게 더 좋았다.
사람들은 코로나 사태를 단순한 전염병 팬데믹으로 보지만, 2030년에 내려진 평가는 인류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는 것이었으니까.
그 때문에 꽤 많은 축구 클럽도 사라져버렸고.
엉망인 세상에서 축구가 웬말이겠지만, 그렇게 엉망이었기 때문에 관중한테 총을 맞은 거였고.
“있으면 네가 어쩔 건데?”
“내가 공부를 많이 해봐서 아는데 다 헛소리야. 헛소리.”
김우영은 수재 소리 듣던 녀석이었고, 최준호는 그런 쪽은 젬병이었다.
‘근데 헛소리인 건 나도 모르겠다.’
**
2019.12.10에 열리는 챔피언스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가 열리는 날.
1위 바르셀로나 3승 1무 1패. 승점 10점. 골득실 차 +11
2위 도르트문트 3승 2패. 승점 9점. 골득실 차 +2
3위 인테르 2승 1무 2패 승점 7점. 골득실 차 +3
4위 슬라비아 프라하 1승 4패(골득실) 승점 3점. 골득실 차 -8
바르셀로나는 슬라비아 프라하와 붙고, 도르트문트는 인테르와 맞붙을 예정이었다.
슬라비아 프라하는 확실하게 떨어진 상황이었고, 그들과 붙는 바르셀로나의 승리는 거의 확정적이었다.
동기 부여가 사라진 프라하에겐 바르셀로나와 격돌할 이유가 없기에.
반대로 도르트문트와 인테르는 이번 경기 결과에 따라서 16강 진출이 달려 있었다.
안토니오 콩테 감독 밑에서 루카쿠 영입 이후 시즌 초반 극강의 폼을 보여주며 세리아 A에서 1위를 굳건하게 지켰던 인테르는 마치 징크스처럼 겨울이 오자 어김없이 휘청거리며 4위까지 떨어진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5번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에게 1-0으로 깨지면서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에도 빨간불이 켜지고 말았다.
그에 비해 도르트문트는 초반 최악의 폼을 보여주다가 겨울에 들어서자 본격적으로 분데스리가에서 1위 경쟁을 하였고,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2연패 후 3연승을 하며 폼을 끌어올렸다.
인테르는 무조건 이겨야 했고, 도르트문트는 비겨도 16강 진출인 상황.
다만 이 경기가 이탈리아 원정이었기 때문에 도르트문트도 긴장을 풀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저 녀석 뭐 하는 거야?”
내일 있을 경기를 대비해서 일찍 이탈리아로 넘어와 간단하게 전술 훈련을 끝낸 마르코 로제는 혼자 경기장에 남아서 공을 다루는 최준호를 보았다.
“요새 저러고 있더라고.”
르네 마리치가 대답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여전히 밝고 활기차고 승부욕이 넘치지. 마르세유 턴을 연습하고 있어.”
“마르세유 턴? 왜 갑자기?”
“모르겠어. 딱히 설명은 안 하지만, 2주 전부터 저러고 있어.”
유소년 리그나 수준 낮은 수비수들이 즐비한 리그에서는 통하겠지만, 분데스리가에서 저런 기술을 제대로 쓰려면 지네디 지단 수준은 되어야 했다.
만약 저런 스킬을 쓰다가 공을 뺏기기라도 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감독도 신뢰를 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2주 전?”
“응. 마르세유 턴만. 훈련 시간이 좀 더 늘었고.”
“훈련 시간이 더 늘어?”
도르트문트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를 기반으로 하는 게겐프레싱 전술을 쓰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엄청난 활동량과 조직력을 기반으로 하므로 다른 구단에 비해서 훈련 일정이 빡빡하고 강도가 높은 편이었다.
여기에 새벽과 오후에도 어울리는 패거리들과 따로 훈련하는데, 개인 훈련 시간을 더 늘였다라?
“하루 종일 축구만 하는 꼴인데? 몸을 혹사시키는 수준은 아닐까?”
“밀라 바우어라고 예전 뒤스부르크에서 수석 스포츠과학자를 오랫동안 지낸 전문가가 녀석의 사정을 봐주고 있어.”
“밀라 바우어?”
“저 녀석 여자 친구의 어머니기도 하지.”
“흐음. 엄청난 아군을 얻었군.”
“그래서 따로 터치를 하지는 않아. 우리 쪽보다 더 우수한 사람이니까.”
마르코 로제는 잠시 서서 최준호가 공을 다루는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동작이 점점 깔끔해지고 있어.”
“그래?”
“턴 동작, 공을 다룰 때 공과 닿는 접촉면, 그리고 마르세유 턴을 펼치기 전에 있던 사전 준비 동작도 점점 사라지고 있고.”
“꽤 오랫동안 지켜보았나 보네?”
“당연하지. 우리가 발굴한··· 세계를 놀라게 할 괴물 중 한 녀석이니까.”
르네 마리치는 말을 끝내고 턱을 괴며 최준호를 보았다.
“난 초이가 계란을 깨고 나와서 빠르게 성장하는 병아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계란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야. 마치 자신을 옭아맨 무언가를 깨려는 모습 같아서 말이지.”
여러모로 비정상적인 선수임에는 분명했다.
저 나이에 저 정도로 성공한 대부분의 선수들은 축구보다는 다른 것에 눈을 돌렸다.
여자를 만나고, 사회적 관계를 늘려나가고, TV에도 출연하고, 풍요로워진 통장을 기반으로 다양한 취미를 늘려가거나.
그런데 저 녀석은 성공하면 할수록 오히려 축구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것 같았다.
“축구에 미친 놈이긴 하지. 그냥 둬도 알아서 성장할 녀석. 그래서 덜 귀찮은 녀석.”
“덜 귀찮은 건 아니잖아? 자네 전술이 거의 저 녀석에 맞춰져 있으니까. 더 귀찮은 거지?”
“어차피 이번 시즌 끝나면 우리를 떠날 녀석이야.”
“확실한 거야?”
“내가 저 녀석이라도 그런 선택을 하겠지. 더 올라갈 하늘이 없으니까.”
마르코 로제의 묘한 자신감에 르네 마리치가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이번 시즌 도르트문트의 경기력은 역대급이긴 했다.
만년 2인자인 도르트문트가 바이에른 뮌헨을 그렇게 부숴버릴 거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건 마르코 로제도 르네 마리치도 예상 못 한 스코어였다.
두 명.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
그들이 바이에른 뮌헨과의 경기에서 보여주었던 폼을 계속해서 유지해준다면 분데스리가 우승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엘링은?”
“그 게으른 녀석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방에 처박혀서 게임 하는 시간을 줄이고 따로 개인코칭을 받고 있어.”
“아주 올바른 변화야.”
“근데, 엘링도 이번 시즌이 끝나면 떠날 수 있지 않아? 맨시티 쪽에서 에이전트와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더군.”
“여기서 우승하면 그 녀석에게도 시시해지겠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승부욕과 야망이 엄청난 녀석이니까.”
“그렇다면 다음 시즌 우린 지옥문이 열리겠군.”
마르코 로제는 구단 친화적인 감독이었다.
최준호와 엘링이 구단에 남겠다면 열렬하게 환호하겠지만, 구단이 그들을 방출하겠다면 굳이 잡을 생각이 없었다.
도르트문트에는 예상외로 포텐이 높은 젊은 선수들이 많았으니까.
김우영, 아모스, 토마스 시아카 그리고 내년에 합류할 유수파 무코코까지.
“꼭 그렇진 않아. 매년 새로운 재능들이 나타나는 법이니까. 저 녀석 방해하지 말고 이만 들어가자.”
“오케이.”
**
– 축구의 목표가 지네디 지단이었다고 했던가?
마르세유 턴을 연습하기 시작한 건 토마스 투헬로부터 그런 메시지를 받은 후부터였다.
워낙 격렬한 경기에 바쁜 일정을 지내다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기술을 계속 연습하다 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턴을 하는 동작이 제대로만 들어가도 만족스러웠다.
턴을 더 빨리하는 데 집중하였고.
왜냐하면 상대가 예측해버리면 반드시 막히는 스킬이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여러 선수가 시뮬레이션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들을 상대할 때는 어떻게 해야 이 기술을 통하게 할지 연습하다 보니···
흘러가는 시간도 잊어버리고 몰두해버렸다.
“···어라라?”
흐르는 땀이 눈에 들어갔고, 잠시 눈을 깜빡하자 대낮같이 밝았던 주변 풍광이 어둠에 뒤덮여 있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잠시 정신이 나가 있었나 보네.”
최준호는 가져온 후드 점퍼를 몸에 두르고는 몸을 돌려 호텔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테르의 홈구장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가 눈에 들어왔다.
1926년에 지어진 아주 낡은 구장이었는데, 밤에 보니 꽤 운치 있어 보였다.
‘인테르라.’
홈에서 상대한 인테르는 꽤 강함 팀이었다.
홈이 아니었다면 패배를 했을지 모를 정도로.
그들은 단단한 수비를 바탕으로 압박하는 축구였는데, 득점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 특유의 빗장 수비에 선수들은 매우 끈질겼고 거칠었다.
이제는 그들을 그들의 홈에서 상대해야 했다.
바르셀로나가 메시의 공격력에 의존하였기 때문에 그쪽을 틀어막아 승리했다면 인테르에는 뚜렷한 슈퍼스타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는 축구를 하였고, 그게 공략하는 처지에서는 골치 아픈 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고, 공격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었다.
그렇기에 마르코 로제는 역습 전술을 선택했다.
역습 전개에 있어서 최준호의 존재는 도르트문트에게 절대적이었고.
경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다 보면 분명 자신에게 엄청난 견제가 들어올 게 뻔했다.
동료들이 커버를 잘해 준다면 별일 없이 넘기겠지만, 만약의 경우 자신의 힘으로 탈압박을 해야 할 경우가 많아질 수도 있었다.
‘연습한 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최준호는 주세페 경기장을 보다가 오른손으로 권총 모양을 그렸다.
‘이번에는 결승전까지 간다!’
“빵야!”
그리곤 마치 서부 영화의 주인공처럼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몸을 빙그르 돌렸다.
**
– 파리 생제르맹 FC의 킬리안 음바페! 세계 최강팀 레알 마드리드를 폭격합니다!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합니다.
– 킬라은 음바페 4번째 골입니다. 오늘 레알 마드리드는 이 선수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 접전이라고 생각했던 경기에서 파리가 레알 마드리드를 5-1로 꺾어버렸습니다.
– 그리고 킬리안 음바페는 엘링 홀란드를 제치고 9골로 챔피언스 리그 득점 1위가 되었습니다. 과연 챔피언스 리그 끝에 득점왕은 누가 될 것일까요?
“왜 신경 쓰이냐?”
최준호의 말에 엘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녀석 달리는 거 보면 인간 같지가 않아.”
토마스 시아카가 음바페보다 빠르긴 했지만, 공을 잡고 드리블을 치는 것은 음바페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교했다.
거기에 놀라울 정도의 침착성과 발기술 거기에 슈팅력까지.
공을 드리블 치는 음바페보다 공 없이 뛰는 수비수가 뒤처지는 건 참 경이로운 장면이었다.
“엉뚱한 녀석 신경 쓰지 마. 일단 오늘 경기부터 잡고 가야지.”
엘링은 내 말에 쾌활하게 웃었다.
“물론이지. 나중에 저 녀석과 끝장을 보려면 말이야.”
엘링이 몸을 일으켜 문을 향해 걸었고, 최준호도 몸을 일으켜 엘링의 뒤를 따랐다.
비록 과거에 비해 피지컬이 상당히 좋아지고, 주력도 좋아졌지만 엘링이나 킬리안 음바페의 타고난 것들을 쫓아갈 수는 없었다.
그 간격을 메꿀 수 있는 것은 정신적 능력과 기술적 능력뿐이었고, 이 괴물들의 정신적 능력은 너무나 빠르게 수준이 올라가고 있었다.
‘결국 내가 가져야 할 것은 이 둘을 뛰어넘는 기술.’
토마스 투헬이 말하려는 의미도 이제는 충분히 이해가 갈 것 같았다.
어쩌면 엘링은 자신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킬리안 음바페를 보며 저렇게 흥분하는 건 최준호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으니까.
‘난 아직 도전자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 수 있으니 꽤 성공한 회귀라고도 할 수가 있었다.
‘너희들의 위에 올라설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