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55)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55화(155/184)
155화 도전자의 위엄(3)
우승 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은 안토니오 콩테는 한동안 최준호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동양에서 저런 선수가 나오다니.’
그의 우수성은 언론을 통해서 수많은 전문가를 통해서 들었지만, 오늘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 이상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스를 실패하지 않았어. 이게 말이 되는 수준인가?’
부상 복귀 이후 최준호의 패스 성공률은 거진 95%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에게서 공을 뺏을 수 없다는 건 일종의 재앙 같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팀 내 미드필더 중에서 수비가 가장 좋고 활동량도 가장 뛰어나며 싸움닭처럼 절대 포기하지 않는 비달을 붙여놓았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복잡한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마르코 로이스에게 패스할 때는 정말 오줌이라도 지릴 뻔했다.
‘갖고 싶군.’
중앙에 저런 선수를 박아 놓으면 무슨 전술을 펼치든 다 통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경기 포기할 수는 없지. 상대의 약점이 뻔하게 보이는데.”
안토니오 콩테는 도르트문트의 중원이 너무나 강력하다는 걸 깨닫고는 롱볼 작전으로 변경하였다.
4-1-2-1-2 다이아몬드 포메이션
이번에 영입한 에딘 제코를 투입해서 투톱을 형성하였다.
간판 스트라이커 로타로는 밑으로 내려서 섀도 스트라이커 롤을 맡겼고.
에딘 제코는 AS 로마에서 뛰던 제공권 장악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로 루카쿠와 투톱을 이루었는데, 그를 마크할 마뉴엘 아칸지는 제공권이 그리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커맨드형 수비 미드필더인 아모스는 로타로의 스피드와 민첩성을 따라올 수 있는 선수가 아니었고.
선제골을 먹은 지 10분 만에 인테르의 동점골이 터지고 말았다.
후방에서 날아온 롱 크로스가 에딘 제코에게 연결이 되었고, 에딘 제코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아모스를 따돌린 로타로에게 그 공을 연결하였다.
순식간에 로만 뷔르키 골키퍼와 1:1 상황을 맞이한 로타로는 가볍게 돌문의 골문을 흔들어 버렸다.
스코어 1:1
마르코 로이스의 골로 한동안 조용했던 쥬세페 스타디움에 팬들의 환호성이 가득해졌다.
챔피언스 16강 진출에 대한 희망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데.”
안토니오 콩테는 전술을 쉽사리 바꾸는 감독이 아니었다.
보통은 이기든 지든 한 전술로 꾸준히 밀고 나갔고, 그 때문에 리그 우승은 자주 했지만, 유럽 대회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순간적인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기에 마르코 로제나 르네 마리치도 조금은 방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추격 골을 넣었고, 이곳은 그들의 홈구장이었다.
옆에 서 있는 르네와 이야기도 나누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응원을 펼치는 그들.
“일단 저 두 거인부터 어떻게 할 필요가 있어.”
르네 마리치의 조언에 마르코 로제는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는 안토니오 콩테를 힐끗 보았다.
‘느낌이 안 좋은데.’
이 상황에서 수비진을 강화하려면 결국 토마스 시아카를 빼고 외메르 토프라크를 넣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마뉴엘 아칸지는 후방 빌드업의 핵심 선수로 반드시 있어야만 했고.
운이 나빠서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공격력 부족으로 추격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딘 제코와의 경합에서 얼굴이 사색이 될 정도로 버거워하는 마뉴엘 아칸지를 보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외메르 준비시켜.”
도르트문트의 벤치가 바빠지자 안토니오 콩테는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 나를 거만하다고 하지 마라. 하지만 나는 유럽 챔피언이고, 난 스스로를 ’스페셜 원’ 이라고 생각한다.
유럽 4대리그 우승, 트레블, 챔피언스 리그 2회 우승을 한 조제 무리뉴가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안토니오 콩테를 무자비하게 깠다.
– 콩테는 나의 적수가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는 관음증이 있는 변태다. 그는 내 실적을 엿보며 마치 자신의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그는 변화가 없고, 옛날 것만 고집하는 멍청이지 감히 나와 같은 반열에 오를 인물은 아니다.
안토니오 콩테는 조제 무리뉴의 발언을 떠올리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변화가 없는 인간이라고? 오늘 그 발언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제대로 보여주지.’
세계적인 감독 싸움에 도르트문트가 낀 것은 좀 이상한 일이었지만, 안토니오 콩테는 나름의 비수를 가슴속에 숨기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
“나 잘못한 거야?”
전반전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체되는 토마스 시아카가 울적한 표정으로 최준호를 지나치며 말했다.
“아냐. 잘했어. 고생했어.”
최준호로부터 잘했다는 말을 들은 토마스가 이내 표정을 밝게 고쳤다.
“알았어.”
경기중에는 최준호가 헛소리를 절대 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토마스가 가볍게 뛰어나갔다.
‘좀 뭔가 꼬인 거 같은데.’
최준호는 토마스 시아카와 터치하고 나오는 외메르 토프라크를 보았다.
축구라는 것이 딱 그랬다.
분데스리가에서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수비력을 보여주지만, 인테르를 만나서 너무 흔들리고 있었다.
이런 걸 보통 상성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지금이 딱 그 경우였다.
인테르의 센터백들이 뿌리는 크로스는 퀄리티가 굉장히 좋았고, 돌문의 수비수들은 인테르의 공격수를 제대로 마크를 못 하고 있었다.
마르코 로제는 제공권이 좋은 센터백인 외메르 토프라크를 넣으면서 3-5-2 전술로 바꾸었다.
문제는 오늘 나온 풀백들이 다소 수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인테르에게 점수를 주지 않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런데 3-5-2 전술에서 공격이 제대로 풀리려면 풀백들이 공격적으로 나와야 하는데, 지금 구성으로는 그게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우려대로 도르트문트의 공격은 뭔가 어긋난 것처럼 삐걱거렸다.
최준호가 공격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해도 수비수가 2배나 많으면 힘을 못 쓰는 건 마찬가지였고.
마르코 로제나 르네 마리치 역시 그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미 한 장의 교체 카드를 쓴 마당에 아직도 잘 뛸 수 있는 풀백을 교체하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후반 12분이 지나갈 동안 도르트문트는 이렇다 할 공격을 전개하지 못했고, 인테르도 제공권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오지 못하며 경기가 지지부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외메르 토프라크가 순간적으로 에딘 제코를 놓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에진 제코가 키와 덩치가 큰 타깃형 스트라이커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은 양발로 모두 강력한 슈팅을 때릴 수 있고, 순간적으로 라인 브레이킹하는 능력이 타고난 선수였다.
여기에 타고난 위치 선정 능력은 세계 정상급이었고.
마치 헤딩할 것처럼 외메르 토프라크를 등지다가, 공이 날아오는 높이를 보고는 점프를 뛰려는 외메르를 돌아 뛰어버린 에딘 제코.
돌아 뛰는 상황에서 에딘 제코와 신체를 접촉한 외메르의 중심이 흔들렸고, 그는 헤더로 공을 걷어내지 못했다.
에딘 제코가 떨어진 공을 트래핑 하고는 슈팅을 쏘았는데 백업 들어온 마뉴엘 아칸지의 태클과 로만 뷔르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운이 좋게 도르트문트의 골문을 열어버렸다.
안토니오 콩테가 마치 가지고 싶었던 선물을 받은 어린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며 미친 듯이 좋아했고, 쥬세페 스타디움의 모든 인테르 팬들이 몸을 일으켜 소리를 질러댔다.
외메르 토프라크는 이 골이 자신 때문에 터졌다고 생각했고 그라운드에 파묻은 얼굴을 들기가 힘들었다.
“일어나요.”
익숙한 소리에 외메르가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한 눈에도 빡친 표정의 최준호였다.
“으음.”
“저 선수가 어디 보통 선수예요? 한때는 세계를 호령했던 스트라이커였는데.”
최준호가 손을 내밀었고, 외메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근데요. 또 그렇게 당하면 죽여버릴 거에요.”
최준호의 눈이 도끼 눈깔처럼 변했다.
그가 지는 걸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는 것은 선수단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이 어린 선수에게 그런 말을 듣는다면 자존심이 크게 상하겠지만, 최준호는 선수단 모두가 인정하는 팀 내 최고의 핵심 선수였고, 외메르 토프라크도 그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안.”
“저 망할 새끼를 조져버려요. 다시는 날 뛰지 못하게.”
최준호가 팬 앞에서 마치 근육 자랑이라도 하는 듯 모양새를 취하는 에딘 제코를 가리키자, 외메로 토프라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깊게 쉬었다.
‘정신 차리자.’
당연하지만, 도르트문트의 벤치가 또다시 바빠졌다.
역전된 상황에서 이제는 도르트문트가 점수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마르코 로제는 바로 공격력이 좋은 풀백들인 이슈라프 하키미와 라파엘 게헤이루를 투입하였다.
이로써 도르트문트는 교체 카드를 모두 사용한 상황.
안토니오 콘테는 마치 그 상황을 예견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도르트문트의 약점은 초이와 엘링 두 선수지.’
얼핏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하지만 두 선수가 도르트문트의 재정을 굉장히 많이 잡아먹고 있었다는 것.
더군다나 특별한 후원사가 없는 도르트문트로서는 재정적 이유로 선수단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선수를 영입하기 힘들다는 점이 약점이었다.
저렇게 화려한 공격수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비에 있어서는 약점이 확실한 팀이었다.
에딘 제코나 루카쿠와 같이 피지컬이 좋고 제공권이 뛰어난 스트라이커를 보유한 팀에게는.
안토니오 콩테는 이번 경기를 승리로 이끌고, 조제 무리뉴를 향해 어떤 인터뷰를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며 벤치에 지시를 내렸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상대의 공격에서 점수를 지켜내는 일만 하면 되었으니까.
또 제법 자신이 있었다.
도르트문트는 수비를 보강하느라 공격수를 빼는 멍청한 짓을 했으니까.
교체 카드가 없는 그들에게는 별다른 카드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콩테의 시선이 루카쿠에게 향했다.
좋은 선수였지만, 수비에는 별 공헌도가 없는 선수였다.
“루카쿠 빼고. 디에고 고딘을 넣어. 5-4-1 전술로, 라인은 최대한 내려. 에딘 제코에게도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라고 전해.”
**
마르코 로제는 그제야 에딘 제코를 상대하기 위해 투입한 외메르 토프라크가 쓸모가 없어졌다는 걸 깨달았다.
‘···흠.’
마르코 로제가 말은 못 하고 씁쓸한 표정을 짓자, 르네 마리치가 대신 입을 열어주었다.
“명장이 괜히 명장이 아니네.”
에딘 제코의 제공권과 로타로의 스피드가 무섭긴 했지만, 동점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수비에 많은 숫자를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콩테도 모르는 게 있긴 하지.”
르네의 말이 끝나자 마르코 로제가 터치 라인에 가깝게 붙었다.
사실 최준호가 이번 시즌 끝나고 떠날 것을 염두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꾀하는 중이었다.
“마뉴엘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라가고, 센터백은 킴과 외메르 둘이서 유지해. 아모스는 최준호의 자리로 올라고, 최준호는 엘링과 포지션을 맞추라고 해.”
5-3-2 포메이션은 곧바로 4-1-2-3 전술로 바뀌었다.
상대가 스리백이라면, 도르트문트는 스리톱이었다.
왼쪽에 마르코 로이스, 중앙에 최준호, 오른쪽에 엘링 홀란드.
율리안 브란트가 공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맡게 되고, 마뉴엘 아칸지와 아모스가 중간에서 수비를 보호하고 공수 연결을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너무나 빠른 대응에 인터뷰 때 조제 무리뉴에게 어떤 발언을 할까 고민 중이었던 안토니오 콩테의 눈알을 커지게 했다.
‘제법인데?’
여태껏 도르트문트가 선보인 적이 없는 전술이었는데, 그런 것 치고는 굉장히 유기적으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라인을 한껏 내린 인테르 선수들은 최준호까지 최전방에서 공격에 합류하자 당황한 눈치였다.
특히 이번 시즌에 합류한 디에고 고딘은 예상치 못하게 최준호를 마크하게 되었고 살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있을 때 그와 이미 격돌한 적이 있었고, 두 번 다 패배를 한 경험 때문인지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아직 팀 전술에 익숙지도 않은 마당인지라 그의 몸에 힘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몸이 좀 뻣뻣하네?’
사실 디에고 고딘은 젊은 시절 선수들이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하나였다.
비인기 클럽에 있는 선수라 일반적인 축구 팬들은 잘 모르지만.
그는 발밑도 좋고, 제공권도 뛰어나며 패스 능력도 좋은 그야말로 약점이 없는 센터백이었다.
다만 이제 나이가 34살에 진입하였고, 운동 능력이 많이 떨어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방출되어 이리 왔지만, 여전히 대인 방어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최준호 역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싸울 당시에 비교해서 능력치가 모두 올라갔기 때문에 디에고 고딘의 강력한 압박을 견뎌내고 패스를 뿌릴 수가 있었다.
‘이 자식한테 중거리 슈팅은 절대 주지 말아야 해.’
최준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은 중거리 슈팅뿐인 디에고 고딘이었다.
인테르가 아예 빗장문을 걸어 잠그는 듯한 강력한 수비를 하는 바람에 도르트문트는 공격의 갈피를 잡지를 못했다.
정말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공을 잡은 선수에게 순식간에 2~3명의 선수가 달려드니 제대로 된 패스를 주기도 힘들었고.
인테르 역시 수비에 치중하다 보니 죄다 에딘 제코를 향해서 롱볼을 올렸는데, 에딘 제코보다 발이 빠른 김우영이 확실하게 커버를 치면서 시간만 주구장창 흘렀다.
그렇게 후반 39분대를 지날 무렵이었다.
안토니오 콩테는 굳은 표정으로 선수들을 바라보는 마르코 로제를 보았다.
‘토마스 투헬 밑에서 제대로 배우긴 했는데. 아쉽게도 도르트문트에는 이런 수비 조직력을 깰만한 크랙이 없다는 거야.’
이렇게 좁은 구역에서는 패스 게임보다는 리오넬 메시처럼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두세 선수를 따돌려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트리는 게 필요해 보였는데, 안토니오 콩테의 생각에 도르트문트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없었다.
‘패배는 한 번으로 족해.’
도르트문트 홈 경기에서 0-2로 패배한 것을 되갚아 줄 기회였다.
그들을 누르고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올라갈 것이고 조제 무리뉴가 맡은 토트넘 홋스퍼와 붙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증오심을 담아서 두들겨 패버릴 생각이었다.
‘이 경기는 내가 가져···응?’
안토니오 콩테의 눈이 다시 한번 커다랗게 떠졌다.
**
최준호는 전광판 시계를 보았다.
후반 40분대로 치닫는 상황.
이런 공격법으로는 인테르의 수비를 뚫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 최준호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이기자. 이기자. 이기자. 씨발 이기자.’
그리고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공을 잡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디에고 고딘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옆에서 아르투르 비달까지 달려드는 상황.
– 툭.
최준호는 아무런 준비 동작 없이 공을 발바닥으로 긁으며 회전하였고, 태클을 들어오던 디에고 고딘과 거칠게 부딪히려는 아루투르 비달 사이에서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