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5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57화(157/184)
157화 겨울 휴가(1)
푸키는 최근 주인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것도 불만이었지만, 들어올 때는 언제나 자신부터 먼저 찾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함께 살기 시작한 동거녀를 찾았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몰래 침대에 올라가 이불속에서 주인의 체온을 느꼈는데, 이제는 그것도 쉽지가 않았다.
푸키는 꼭 껴안은 채 잠들어 있는 주인과 못마땅한 동거녀 사이에 서서 틈을 보았다.
하지만 둘은 전혀 떨어질 생각이 없었고, 푸키는 슬그머니 그들 사이로 몸을 집어넣었다.
“으흠. 뭐야?”
최준호는 푹신푹신한 털이 잡히자 이내 웃음을 지었다.
“이 녀석이 또 질투하네.”
푸키 덕분에 잠에서 깬 레아도 틈 사이로 파고드는 푸키를 인식했다.
“이럴 때는 꼭 장난꾸러기 같아.”
레아가 푸키를 꽉 끌어안자 푸키는 괴롭다며 낑낑대었다.
푸키가 앞발을 내밀며 살려달라는 표정을 지었고, 최준호가 레아에게 간지럼을 켜서 힘을 빼게 만들었다.
푸키가 금을 가르는 듯 둘 사이에서 몸을 쭉 펴고 누웠다.
인테르와의 경기 이후 분데스리가 2경기 포칼컵 1경기를 소화한 최준호는 1월부터 주어지는 겨울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레아 역시 대학 종강으로 졸업식만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대학 졸업 전에 갈 수 있는 여러 회사가 있었는데, 영국에 있는 HSBC를 선택하였다.
최준호가 이번 시즌 끝나면 EPL로 넘어가고 싶다고 하기에 영국에 있는 회사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회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녀는 축구 역시 포기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첼시 여성팀으로 이적 계약을 마무리 하였다.
파트타임 계약으로.
“일어나자.”
“그래.
결혼식은 독일과 한국에서 두 번 하기로 하였는데, 독일에서는 레스토랑을 하나 빌려서 식사를 하는 수준이었고, 한국에서는 호텔 결혼식장을 빌려서 제대로 할 계획이었다.
독일에는 한국처럼 결혼식장이 따로 없었다.
주로 마을에 있는 성당이나 작은 성에서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음식점을 하나 빌려 친한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축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들은 한국처럼 따로 부조도 하지 않았고, 결혼식에 돈을 주는 문화가 아니었기에 보통은 하객들이 가져온 선물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서 결혼식 분위기를 띄웠다.
젊은 부부가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일부 하객들은 자신이 가져온 선물들··· 가령 책 속에 돈을 끼워 넣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돈을 전하기도 했다.
메펜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
도르트문트의 선수들.
독일에서 뛰고 있는 한국 선배들.
여기에 레아 쪽의 사람들까지 다 초대하려니 그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레스토랑이 없어 마을의 작은 성을 하나 빌릴 예정이었다.
오늘은 그 성을 보러 가는 날이었고.
“너도 갈래?”
레아가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는 푸키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푸키는 커다란 눈을 뜨고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이 녀석 왜 이렇게 사람 차별을 해?”
“굉장히 똑똑한 녀석이라 그래.”
“그래?”
레아는 무슨 생각인 팔을 번쩍 벌려서 최준호를 안았다.
“왈왈!!”
그러자 질투심 가득한 눈빛으로 짖는 푸키.
“메롱.”
최준호는 혀를 낼름거리는 레아을 보며 푸키와 레아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씻을게.”
최준호가 화장실로 들어가자 레아는 개구쟁이 같은 표정으로 푸키와 눈싸움을 했다.
하지만 이내 재미가 없는지 TV를 틀었다.
“씻으러 간 집주인이 TV에 나오네?”
BMW의 독일 지역과 아시아 지역 광고 모델이 된 최준호였다.
최준호가 TV에 나오자 푸키도 레아 옆에서 상체를 들고 TV에 시선을 집중하였다.
말끔한 슈트를 입고 머리도 스타일링을 제대로 하고, 화장도 고급스럽게 하니 어지간한 연예인은 비교도 안 될 외모였다.
커다란 키에 완벽한 몸매는 뭐···.
“맨날 경기장에서 땀에 쩌든 모습만 보다가 저거 보니까 위화감 든다 그렇지?”
광고 회사의 치량을 타고 위험에 빠진 아이를 멋드러지게 구하는 장면은 좀 유치하긴 하지만 주인공이 워낙 존잘남이라 레아는 금세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연정환 선수보다 훨씬 잘 생겼네.’
그리고 광고 말미에 나오는 잘생긴 하얀색 갈기의 푸들 한 마리.
다름 아닌 푸키였다.
BMW라는 로고가 새겨진 콩알만한 밥그릇 앞에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밑에는 이런 문구가 나왔다.
‘Mehr Leistung Weniger Verbrauch(더 적은 소비로 더 많은 힘을!)’
그러자 푸키가 의기양양한 포즈로 레아를 보며 가볍게 짖다가, 한 발을 들어 TV를 가리켰다.
“왈왈!”
“너 잘난 거 보라고? 싫은데?”
레아가 TV를 끄자, 푸키가 레아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왈왈!”
**
최준호와 레아가 행복한 휴가를 보내고 있을 무렵.
영국의 프리미어 리그는 매 시즌마다 겪는 박싱데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이틀 혹은 사흘 간격으로 거의 2주간 4~5경기를 소화해내야 하는 이 빡센 일정 속에서도 첼시의 토마스 투헬은 선수들을 쉬도록 두지 않았다.
“왜 이걸?”
그들은 양손에 테니스공을 꾹 움켜쥔 채로 연습 게임을 해야만 했다.
이 연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첼시의 슈퍼 유망주 테미 에이브러함이 반발심에 테니스공을 일부러 떨군 이후로 토마스 투헬에게 인정사정 없이 갈굼을 당하고 심지어 출장 명단에서도 제외되는 것을 보고는 선수들은 거의 공포에 질려서 테니스 공을 꾹 쥐고 연습 경기에 임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 효과는 꽤 좋았다.
첼시가 최근 패배를 자주 하는 이유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많은 반칙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주지도 않아야 할 페널티 킥을 주었고, 이것 때문에 잘하던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토마스 투헬이 그들의 손에 테니스 공을 쥐어준 건 경기 중에 아예 손을 쓰지 못하게 만드려고 하였는데, 그 훈련 성과가 점점 나타나고 있었다.
부임한 이후 2개월 만에 10위 언저리에서 왔다갔다 하던 팀을 5위까지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반칙에 의한 실점이 확 줄면서 경기 결과가 완전히 달라졌다.
– 겨우 5위 해놓고 쉬게 해달라고?
주장 세자르 아스필리쿠에타가 박싱데이 때문에 주전 선수들이 갈려 나간다고 경기 끝나고 하루 정도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토마스 투헬은 단번에 잘라버렸다.
이로 인해 또 선수단과 충돌하는 토마스 투헬.
하지만 그가 온 뒤로 팀 성적이 너무나 좋아졌기 때문에, 구단 스태프들도··· 심지어 팬들도 토마스 투헬을 지지하였다.
그리고 뉴캐슬과의 FA컵 16강 경기에서 로테이션 활용 대신 지친 주전들을 죄다 내보냈다가 1-2로 패배하여 탈락하자 선수들은 그 다음날 단체 행동을 하고 말았다.
아무도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
사실 토마스 투헬이 축구에 병적으로 구는 것은 단순히 그의 성격 때문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기자 앞에서는 아주 신사답게 굴 수 있었고, 여러 가지 강연에 초대되었을 때도 나이스하게 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선수 시절 워낙 병신 취급을 당했던 토마스 투헬은 선수로서는 모르겠지만, 코치로서는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 받쳤다.
그 당시 토마스 투헬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던 이가 다름 아닌 그의 아내 시시였다.
하지만 축구에 집중하면 할수록 토마스는 가정에 대하여 소홀히 하였고, 이에 지친 시시가 이혼 의사를 밝힌 후로 토마스 투헬은 스트레스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운동장에 1군 선수들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토마스 투헬은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2군 선수들 스카우트 보고서 올려줘. 1군을 전부 물갈이해야겠어.”
토마스 투헬이 어떤 인간이지 잘 아는 스태프들은 바로 선수단에게 연락을 돌렸고,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걸 느낀 선수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토마스 투헬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그리고 이때 끝까지 토마스 투헬에게 반기를 든 EPL 특급 공격수 에덴 아자르는 곧바로 이적 명단에 올라갔다.
구단과 팬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에덴 아자르는 겨울 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선택해 버렸다.
팀의 특급 유망주 태미 에이브러함도 구단에서의 생활이 행복하지 않다라고 공개적으로 SNS에서 올리면서 토마스 투헬의 저격을 받았다.
– 하기 싫다고? 그럼 꺼져.
태미 에이브라함 역시 이적 명단에 올라가면서 첼시의 팬들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 이제 첼시의 공격은 누가 맡지?
라며.
**
선수들은 휴가를 만끽하고 있지만, 분데스리가 구단은 1월의 이적 시장 때문에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도르트문트는 여전히 조용한 이적 시장을 보내고 있었다.
일단 최준호와 엘링 홀란드에게 들어가는 돈이 너무 천문학적이었고, 최근 구단이 엄청난 상승세를 받으면서 이적을 하고 싶어하는 선수들도 없었다.
재정이 부족하니 지금 있는 선수들로 어떻게든 이번 시즌 잘 꾸려나가길 원하는 구단의 뜻에 따라서 마르코 로제 역시 선수 영입을 원하지 않았다.
‘셀링 클럽들이 좋은 점이 있지.’
유망주가 너무 많아서 맘에 드는 녀석들을 키우면 그만이라는 점.
더군다나 지금은 딱히 어딘가를 보강해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르옌 로번을 비롯하여 베테랑 선수들이 은퇴하거나 자유 계약으로 풀려나면서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그들은 훌륭한 재정적 여유를 가지고 있었지만, FFA 룰에 따르기 위해서는 겨울 이적 시장에는 숨을 죽이고 있어야만 했다.
– 도르트문트의 초이! 첼시로 이적하나?
마르코 로제는 신문을 펼치면서 해당 기사를 읽었다.
– 얼마 전 바트부르크 성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최준호. 그의 배우자인 미스 독일이자, 독일의 차세대 여성 국가 대표팀의 골키퍼 레아 바우어가 다음 시즌 첼시 여성팀과 파트 타임 계약을 맺은 것을 본 지에 확인하였다. 그녀가 독일 팀이 아닌 영국 팀을 선택했다는 것은 아주 의미심장한 일이다. 특히 런던을 연고지로 하는 첼시로 이적했다는 것은···.
“흠.”
마르코 로제는 레아 바우어를 떠올렸다.
기자들은 성대한 결혼식이라고 하지만, 여러 선수들의 결혼식에 다녀온 마르코 로제에겐 ‘조촐한’ 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떠오를 정도로 간단한 결혼식이었다.
독일의 대부분 중산층 커플들이 하는 그런 결혼식 정도.
하지만 그녀가 첼시 여성팀과 계약했다는 건 조금 예상외였다.
“뭐, 런던에는 첼시만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 그 첼시의 감독이 토마스 투헬이라는 건 정말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마르코 로제는 휴대폰을 들어서 토마스 투헬의 연락처를 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감독실의 커튼을 살짝 걷으니 누군가가 훈련장에서 공을 다루는 것이 보였다.
결혼식 후에 스페인의 이비자 섬으로 신혼여행을 갔을 텐데, 오자마자 바로 훈련에 매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세계적인 수준의 축구 선수였고,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을 했으며, 그가 운영하는 기업이 따로 존재했고, 광고주들은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그와 계약을 맺기를 원했다.
‘부족한 게 없는 녀석인데, 뭐가 저 녀석을 저렇게 몰아붙이는 걸까?’
유럽 선수들에게는 전혀 볼 수 없는 면모였고, 가끔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가 평범하지 않은 이유기도 했다.
– 무슨 일인가?
창밖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통화 버튼을 눌렀는지 퉁명스러운 토마스 투헬의 목소리가 휴대폰에서 튀어나왔다.
– 잘 지냈어?
– 물론 잘 못 지내고 있지.
– 저번의 패배가 쓰라린 모양이야?
마르코 로제는 자신의 팀이었던 잘츠부르크가 토마스 투헬의 도르트문트를 저격했다는 점을 떠올리는 발언을 하였다.
– 용건이 그거 뿐이면 이만 끊지.
– 초이.
– ······
– 내가 당신의 스타일을 잘 아는데, 최근 초이의 행동이 조금 바뀐 거 같아서. 당신 짓인가?
– 그 녀석의 감독은 내가 아니라 자네일텐데?
–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 놓친 선수들이 꽤 되지 않아?
휴대폰으로 ‘풋’ 하는 소리가 들렸다.
– 난 욕심이 많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 욕심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뭐든 하는 사람이지. 난 사기꾼 놈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많은 것을 원하는 인간이 아니야.
– 그냥 침 바르고 있다고 말하면 될 것을 뭘 그리 돌려 말해?
– 문제 있나?
– 아니. 고마워서.
– 어이가 없군.
– 우리가 이번에 파리생제르맹을 꺾으면 당신 팀과 또 붙을 수 있다는 거 알고 있지?
– ······
– 과연 어떻게 될까?
마르코 로제의 말이 끝나자 토마스 투헬은 대답 없이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참···재밌는 우연이란 말이야.”
덤으로 그 통화가 끝난 후 태미 에이브라함이 이름이 이적 명단에서 사라져 버렸다.
**
– 초이!
엘링 홀란드의 연락을 받은 최준호.
– 왜?
– 피파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봐.
– 무슨 일 있어?
– 킬리안 음바페 패거리들이랑 온라인 대결을 펼칠 예정인데, 아무래도 네 도움이 필요해.
– 킬리아 음바페? 걔도 게임 해?
– 이기고 싶지 않아?
엘링 홀란드의 유혹에 최준호는 견디지 못하고 덥석 물었다.
–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