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6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69화(169/184)
169화 마이스터 샬레(4)
모든 축구 선수가 경기 내내 실수를 하지 않으면 스코어는 항상 0-0으로 끝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모든 축구 경기에는 골이 터졌고, 그건 모든 축구 선수들이 실수를 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보통 치명적인 실수는 경험이 부족하고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리지 못하는 어린 선수들이 한다.
연속 득점으로 사기가 오른 쥬드 벨링엄이 무리한 돌파를 시도하다가 토마스 뮐러에게 공을 뺏겨 역습 상황에 처한 것이었다.
토마스 뮐러는 오버래핑을 시작한 그나브리에게 연결하였고, 그나브리는 공을 끌고 중앙으로(?) 들어오는 대참사를 벌였다.
“비어 있는 사이드로 왜 안가는데!”
빡친 한지 플릭의 고함은 덤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판단력 문제가 있는 그나브리가 월드클래스가 될 수 없는 이유였다.
덕분에 아모스가 달라붙어 시간을 끌 수 있었고, 그나브리는 어쩔 수 없이 토마스 뮐러에게 리턴 패스를 주었다.
토마스 밀러는 자신 앞에 수비수가 없자 그림같은 중거리 슈팅이 터트렸고.
도르트문트의 골키퍼 로만 뷔르키가 몸을 날려 간신히 선방을 했는데, 그 공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에게 연결이 되어 버렸다.
김우영이 바싹 붙어서 움직임을 방해하며 시간을 지연시켰지만, 레반도프스키의 개인기에 쓸려나가며 공간을 주고 말았고, 레반도프스키는 골키퍼가 잡을 수 없는 지역을 향해 정확한 슈팅을 시도했다.
오늘 바이에른 뮌헨에게는 가장 좋은 기회였지만, 잔디를 긁는 소리를 내며 미끄러진 누군가의 발에 맞아 골라인 아웃이 되어버렸다.
‘···네가 왜 거기에 있는데?’
레반도프스키는 정말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라운드에 누워 헐떡이는 선수를 노려보았다.
놀랍게도 골이 될 뻔한 공을 걷어낸 건 최전방 즈음에 위치에 있어야 할 최준호였다.
“잘했어!”
로만 뷔르키가 미친 듯이 달려오느라 숨을 고르고 있는 최준호를 벌떡 일으켜 안았다.
“정말 잘했어!”
쥬드 벨링엄이 최준호의 빈자리를 잘 메꾸고 있지만, 시즌 내내 실수를 하지 않은 최준호 만큼은 아니었다.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받은 그가 이렇게 최후방까지 내려와 골 세이브를 해주니 로만 뷔르키는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오늘은 절대 지지 않겠구나!’
결정적인 수비를 해준 최준호의 모습이 경기장의 전광판에 비춰지자,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소리를 크게 질러 야유를 보냈다.
2010년 초중반.
바이에른 뮌헨은 가장 많은 챔스 컵을 들어올린 팀이었다.
그들에게는 몇 가지 발작 버튼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레알 마드리드의 호날두였다.
상성 상 바이에른 뮌헨은 레알 마드리드에게 매우 강했었는데, 호날두가 영입된 후에는 챔스에서 그들과 붙으면 여지 없이 탈락하는 신세가 되었다.
특히 13-14시즌 챔스컵 16강에서 호날두가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한 뒤에 펼친 요상한 세레머니···지금은 호날두 카라멜이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나돌고 있지만···하여튼 호날두만 나오면 발작하는 버릇이 있었다.
양창명은 바이에른 뮌헨의 팬들이 발작하듯이 아유를 보내자, 그 때의 영상을 떠올렸다.
‘준호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의 또 다른 발작 버튼이 될 것 같네.’
양창명은 자신의 휴대폰에 온 메시지를 보며, 우수에 젖은 눈빛을 하였다.
– 최준호 선수가 도와주고 있는 아이가 있는데, 방금 전 눈을 감았습니다.
옆에 있는 민선아가 양창명의 메시지를 보고는 이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오늘 최준호의 활동량은 마치 억제기를 끊어버린 헐크 같았다.
아울러 그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엘링과 마르코 로이스까지 덩달아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바이에른 뮌헨을 숨도 못 쉬게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저렇게 뛰는 이유가···”
“의외로 낭만적인 부분이 있는 선수지?”
양창명의 물음에 민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운드에서 축구를 하는 것 보면 칼로 깊숙히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게 철두철미한 축구를 하는 선수였는데 이건 좀 새로운 모습이었다.
“···그가 해트트릭을 할 수 있을까요? 그 아이를 위해서.”
“보면 알겠지.”
가끔 이 바닥에서 탄생하는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영웅둘은···
**
전반전은 최준호의 2골과 헌신적인 슈팅 방어로 도르트문트가 2점 앞서는 형국이었다.
오늘 최준호를 제대로 놓치고 있는 알라바를 빼는 게 맞지만, 주전 센터백들이 부상으로 나올 수 없는 형국에 선택할 수 있는 카드가 한지 플릭에게는 없었다.
‘그때 이겼어야 했어.’
이전 리그 경기인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막판에 교체 선수 플로리안 비르츠에게 치명적인 골을 먹으며 2-2로 비기지만 않았어도 이 경기를 이렇게 마음 졸이며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골득실에서 도르트문트보다 10골이 앞선 바이에른 뮌헨의 우승이 거의 확정이 되었을테니까.
중요한 경기에 상대팀 선수 하나가 미쳐 날뛰는 건 너무나 큰 불행이었고.
“저 21번 녀석 뛴 거리는?”
하지만 한지 플릭 감독도 노리는 수가 있었다.
“전반전에 8.7km를 뛰었습니다.”
“미친 놈이군.”
욕이 절로 나오는 한지 플릭.
45분 동안 8.7km를 뛰었다는 건 단 한 번도 걷지 않고 계속 뛰었다는 소리였다.
8.7이라는 숫자는 킬리안 음바페가 보통 90분동안 뛰는 거리기도 했고.
“그게 아킬레스 건이겠어.”
바이에른 뮌헨은 이번 경기가 시즌의 끝이지만 도르트문트는 더 중요한 챔스 결승전을 남겨두고 있었다.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는 감독의 업무이고.
또 저렇게 무리하게 뛰다가 부상이라도 도진다면 도르트문트에게는 정말 최악의 상황일테니.
그는 구상했던 교체 카드의 사용을 좀 더 무리기로 했다.
한지 플릭은 동점이나 역전이라는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한 골 정도의 만회와 수비에 전력을 다해서 골을 먹지 말라는 지시만 내렸다.
마르코 로제 역시 같은 이유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저 녀석의 활약으로 전반전에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많이 뛰었어.’
경기당 11km~12km 정도 뛰면 반드시 교체 카드를 쓰는 마르코 로제는 남아 있는 경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 골만 더 넣으면 좋겠는데.’
그럼 너무나 편안하게 최준호를 교체로 빼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쥬드. 흥분을 가라앉히고 경기장을 넓게 봐. 눈 앞에서 도전하는 선수에게 이기지 않아도 경기를 이기는 방법은 많아.”
“충고 고마워. 초이. 후반전에는 흥분을 가라앉힐게.”
락커룸으로 드러가려던 마르코 로제는 조용한 락커룸에서 나직히 들리는 최준호와 쥬드의 목소리를 듣고는 발걸음을 돌렸다.
모두가 완벽한 활약을 해주는 상황.
쥬드 벨링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나와 버렸다.
그리고 모두가 집중하는 저 분위기를 마크로 로제는 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 마르코 로제에게 르네 마리치가 다가왔다.
“방금 온 소식이야.”
르네는 라커룸 문을 슬며시 보다가 휴대폰을 마르코 로제에게 건넸다.
거기에 있는 몇 줄의 문장을 읽은 마르코 로제는 르네 마리치처럼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한지 플릭 감독이 이번 경기 끝나면, 우리 선수 전원에게 약물 재검사를 하도록 피파측에 요청했다더군.”
“멍청한 짓이네. 하지만 이 문자는 그게 약물이 아니라는 뜻이고.”
“참···괜찮은 녀석이야.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잊으면 안돼. 저 녀석을 그라운드에 두면 아마 심장이 멎을 때까지 뛸거야.”
“냉철해 보이는 녀석이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네.”
“대단한 거지. 저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실수를 하지 않아. 오히려 더 완벽해지고 있으니까. 후반전에는 수비적인 전술에 대해서 고민을 할 필요가 있을 거야.”
“물론 그 정도는 생각하고 있다고. 친구. 근데 다음 시즌에 어디가지 않을거지?”
“아직은 불러주는 곳이 없어서.”
“다행이네.”
“하하하!”
**
라커룸에서 쥬드에게 몇 마디 충고를 해주는 것 이외에는 온전히 숨을 고르고, 체력을 보충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 최준호.
고열량 음료를 먹고 눈을 감고 가만히 등을 기댄 채 무릎 위에 손을 얹고 가만히 앉아 있는 최준호의 모습을 보는 엘링은 그가 아주 고고한 어떤 존재처럼 보였다.
요가를 하며 늘 꿈꾸던 모습을 최준호가 하고 있었다.
‘대단하네.’
꼭 그 모습만이 아니었다.
최준호가 골문 앞에서 저런 활약을 벌일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엘링도 처음 깨달았다.
항상 자신에게 놀라운 어시스트를 하는 그런 선수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 득점 타이틀을 경쟁할 수 있는 선수라는 걸.
자신조차 노이어가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보면 긴장을 타는데, 그런 노이어의 발 밑으로 공을 빼낼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걸까?
더군다나 그 짧은 상황에서 2대1 패스가 아니라 노이어에게 역동작을 유발시킨 그 기발한 킥은 자신은 꿈도 못 꾸는 기술이었다.
‘EPL에서 저 녀석과 이제 싸워야 한다는 거지?’
어떤 면에서는 초월적인 존재로 보였지만, 엘링 역시 승부욕이 강하며 세상의 관심의 즐기고 있는 월드클래스 선수였다.
걱정보다는 묘하고 야릇한 감정이 생겼다.
뭔가 엄청난 존재를 두고 도전할 때 생기는 그런 감정들.
‘나도 계속 발전하지 않으면 안되겠어.’
상념을 끝낸 엘링 홀란드는 시계를 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반대편에서 여전히 눈을 감고 쉬고 있는 최준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초이.”
“응?”
“시간 됐어.”
“고마워.”
“그리고.”
“응?”
“많은 것을 혼자 지고 가려고 하지마. 우승은 나도 바라는 것이니까.”
최준호는 오늘 처음으로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아직은···”
엘링은 최준호에게 손을 건네며 말했다.
“우린 같은 팀이니까.”
**
– 툭, 툭.
몇 방울씩 쏟아지던 빗방울이 이제는 꽤 소나기가 되었다.
5월의 뮌헨은 강수량이 가장 많은 시기였고, 30일 중에 10일은 비가 쏟아지는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
알리안츠 아레나는 관중석은 비에 젖지 않게 설계가 되었지만, 그라운드는 그러지 못했다.
금새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버린 선수들이 양 진형에 나열되어 있었고, 우승에 목마른 바이에른 뮌헨 선수들은 쏟아지는 빗방울에도 만족스러운 표정이 아니었다.
‘이기자.’
‘어떻게든 이기자.’
‘우리는 바이에른 뮌헨이다. 꿀벌들 따위에게 패배할 수 없어.’
한쪽은 스타 선수들만 보유한 독일 최고의 군단.
한쪽은 매년 유망주를 갈아 끼우는 셀링 클럽.
통계 상 바이에른 뮌헨이 10번 리그 우승 컵을 들어올릴 때 도르트문트는 1번 들어올릴까 말까 했다.
저번 시즌에 최준호가 장기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승 컵을 도르트문트가 들어올렸을거라는 예측을 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는데, 이번 시즌은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바이에른 선수들의 뇌리에 가득했다.
그런 마음이 하나가 되서인지 전반전과 다르게 바이에른 뮌헨이 시작부터 도르트문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전술의 변화가 없지만 기세가 달라졌으니까.
빗물 때문에 선수들은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공을 제대로 차지 못하기도 하고, 머리에 빗맞아 엉뚱한 곳에 튕기기도 하고, 눈에 물이 들어가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기도 하고.
비가 내리는 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이 다 벌어지고 있었고, 두 팀 선수들 모두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응원을 해야하는 바이에른 팬들이나 돌문 팬들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치열한 경기에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결국 후반 11분 경.
레반도프스키가 놀라운 오프더볼 움직임으로 김우영을 따돌렸고, 그 틈에 토마스 뮐러의 스루패스가 들어갔다.
레반도프스키는 다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강력한 슈팅으로 도르트문트의 골문을 열어버렸다.
2-1
한 골만 더 넣어서 동점을 만들면 바이에른의 우승이었고, 이에 기세가 바짝 오른 바이에른 팬들의 응원소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가 오는 경기장을 울렸다.
후반 23분 경.
“초이는?”
“12.7km를 뛰었어.”
“토마스 시아카에게 몸 풀라고 해.”
“위험하지 않을까?”
마르코 로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고, 르네 마리치는 벤치로 들어가 토마스 시아카에게 몸을 풀라고 지시를 내렸다.
터치라인 아웃으로 도르트문트의 스로인이 되는 시점.
최준호는 벤치 앞에서 몸을 달구고 있는 토마스 시아카를 보고는 자신의 교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 13km 이상을 뛰면 선수 보호와 다음 경기 준비 차원에서 교체를 할 것이다.
최준호는 잠시 허리에 손을 얹고 하늘을 보았다.
‘아직인데. 한 골이 남았는데.’
해트트릭을 한 선수는 그 날의 공을 가져갈 수 있었다.
그건 최준호가 승현이에게 주고 싶은 마지막 선물이었다.
‘마지막 기회일까?’
한숨을 크게 쉬고 완전히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긴 최준호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그런 최준호의 눈에 유독 한 공간에서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물론 스타디움에서 킨 조명이 비친 빗물이긴 하지만.
아마 스로인은 엘링에게 연결이 될 테고, 그 다음은···.
“엘링.”
최준호가 크게 외치며 그 공간을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