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7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72화(172/184)
172화 그들의 이야기(2)
주독 대사관의 지원과 일처리 절차에 따라 승현이의 장례식이 마무리되었다.
함께 독일로 넘어온 승현이의 부모는 독일에 있는 한인회의 도움으로 일자리를 얻어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그들은 한국에 가는 대신 독일에 남기로 했다.
“···넌 누구니?”
“난 상현이에요. 승현이 형.”
“왜 난 몰랐지?”
최준호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난 한국에 있었어요. 할아버지랑 할머니랑. 승현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12살이라고는 했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어른스러운 면을 가진 아이였다.
병 때문에 성장을 못 해서 10살이지만 7살 수준의 몸을 가지고 있던 승현이와는 다르게 170cm가 넘어가는 키에 운동이라도 했는지 몸이 매우 탄탄해 보였다.
“승현이는 아저씨를 좋아하지만, 난 아저씨가 싫어요.”
“···왜?”
“아저씨 때문에 나만 혼자 한국에 있었어요.”
“······”
“그리고 더 싫어졌어요. 결국 동생을 고치지 못했잖아요.”
물론 최준호는 의료비를 후원했지, 승현이에게 진료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가 아니긴 했지만, 자신을 눈앞에 두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아이들은 어떤 면에서는 건강해 보이기도 했다.
“그 부분에서는 미안하다.”
“아니에요.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알아요. 아저씨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요.”
독일의 장례 문화는 우리처럼 삼일장이니 오일장이니 하는 것들이 없다.
상갓집도 없고, 종합 병원이나 장례식장에서 치르지도 않는다.
또한 문상객에게 음식도 제공되지 않는다.
상조 회사나 장례지도사도 없고.
지인이라고 해도 상갓집에서 밤을 새울 일도 없고, 문상객들에게 육개장을 날라 드릴 필요도 없지만, 카드에 한 자 한 자 새겨넣는 부담은 필요하다.
승현이의 장례식은 수목장으로 진행되었고, 언론에 나온 이야기 때문인지 축구계에서 대단히 많은 인사가 작은 공동묘지 앞에 엄청나게 진을 쳤다.
“승현이에게 축구를 알려준 내 잘못이에요.”
“···축구 하니?”
“네. 아주 잘해요.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
“나 이제 고작 20살이야. 아저씨 아니야. 형이야.”
“그런 걸로 따지지 말아요. 하여튼 내가 아저씨 나이만큼 되었을 때는 아저씨보다 축구를 더 잘할 거에요.”
“왜?”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흐르는지 모를 최준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에게서 소중한 동생을 빼앗아 갔으니까요.”
“난 뺏은 적이 없는데?”
“아저씨는 이해 못 할 수 있어요.”
“그럼 나한테 화를 내면 되지 않아?”
“싫어요. 나는 고작 그런 이유로 화를 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예요.”
“음. 형처럼 되기는 쉽지 않을 건데?”
“아저씨도 혼자 축구 하다가 그렇게 됐잖아요?”
최준호는 그 말에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 형은 3살 때부터 축구 했는데, 넌?”
“난 5살 때부터.”
“그럼 안 되겠네. 형한테는.”
“······”
최준호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이의 근육들을 곁눈질로 훑어보았다.
발목이 가는 걸 보니 스피드가 매우 뛰어날 것으로 보였고, 종아리 근육과 허벅지 근육이 탄탄하게 올라온 걸 보니 꽤 오랫동안 축구를 한 건 분명해 보였다.
“형보다 2년 늦게 시작했으니까. 형보다 더 잘하려면 아주 뛰어난 코치님 밑에서 훈련을 열심히 받아야 할걸?”
“그건 안 돼요. 우리 부모님은 그럴 돈이 없어요.”
돈이 없다는 이야기에 최준호는 자신도 모르게 어릴 적의 일들이 떠올랐다.
부모가 어려움을 겪을수록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부모의 보호자가 되려고 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준호도 현식의 밑에서 크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고.
“그럼 돈이 없다고 혼자 할 거야?”
“부모님을 힘들게 할 수는 없어요.”
“형이 좋은 선생님을 알고 있는데, 거기서 축구 배워볼래?”
“···안 돼요.”
“왜?”
“난 형을 싫어하니까요.”
어느 순간엔가 아저씨에서 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의도적인지 반사적인지는 몰라도, 그런 단어 하나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을 최준호는 바로 깨달았다.
“한 번 만나보고 결정하는 건 어때?”
“네?”
“그 코치님들이 여기에 와 있거든.”
“······”
아주 당황한 표정을 한 상현이.
최준호는 본격적인 장례식에 들어가기 전에 마테우스 부부를 불렀다.
“이 녀석이야?”
“네. 승현이 형이라는데 축구를 한대요.”
“몸을 한 번 좀 볼까?”
하지만 독일어를 못하는 상현이가 아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마테우스를 보자, 옆에 있던 밀라가 나섰다.
“난 밀라야.”
언제 한국어를 배웠는지 떠듬떠듬 한국어를 하는 밀라.
“난, 상현이요.”
“나는 축구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어.”
“···진짜요?”
“그럼. 여긴 내 남편 마테우스인데, 독일에서 유명했던 골키퍼였어.”
“난 골키퍼 안 해요!”
“응. 하지만 좋은 선수가 될지 안 될지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야.”
“···그래요?”
“한 번 살펴볼 수 있을까?”
워낙 인상이 좋고, 푸근한 말솜씨 때문인지 상현이가 금세 마음을 열었다.
마테우스가 상현이의 몸을 살피고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피지컬은 초이 너보다는 더 좋을 거 같아.”
“키워보실래요?”
메펜 구단의 실소유주는 이제 최준호가 되었다.
마테우스는 구단 회장이 되어 실제로 운영하고 있었고, 레아가 결혼한 후 혼자 집에 있던 밀라 역시 이 구단에서 선수들을 관리하는 일을 시작하였고.
“얼마나 성실하게 따라올지는 잘 모르겠군.”
“그건 걱정하지 말아요.”
최준호가 마테우스와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던 상현이는 최준호가 무릎을 자신과 시야를 같이 하자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형보다 축구 잘하고 싶은 이유가 형이 싫어서야?”
“응.”
“그럼 우리 내기할까?”
“내기?”
“10년 후쯤에 다시 만나는 거야. 같은 리그에서 서로 다른 팀으로. 그리고 거기서 누가 더 승현이를 아껴주었는지 결판을 내는 거지.”
“흥! 내가 반드시 이길걸?”
“형 발자국이라도 쫓아와 봐라.”
“아니야. 10년 후에는 형을 뛰어넘을 거야.”
“기세 좋네?”
“꼭!”
“그럼 저분들 밑에서 축구할 거야?”
“···응.”
최준호는 상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상현이가 뒤로 물러섰다.
“난 형이 싫다니까!”
**
편안하게 잠든 승현이의 모습.
그 위로 뚜껑이 덮이기 전에 최준호는 자신이 가져온 축구공을 승현이의 품에 놓아주었다.
분데스리가 우승을 놓고 경쟁했던 바이에른 뮌헨과 도르트문트의 모든 선수와 감독의 사인이 들어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공이었다.
‘다음에 태어나면 아프지 말고.’
과거로 돌아온 경험을 한 최준호에게는 이제 윤회라든지 환생 같은 것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물론 그걸 누군가에게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승현이의 죽음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혹시 기억을 가지고 태어난다면 언제든지 찾아와라.’
**
CJH 투자 운용회사의 박성실 대표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아주 훌륭한 사업 동료였다.
불과 2년도 안 돼서 CJH 투자 운용회사의 자산은 3천억이 넘어섰으니까.
축구화 회사 키카의 성장 때문이었다.
직원 100여 명 규모의 중소 회사에서 이제는 직원 1,000명 규모!
여기에 해외 진출까지 시작한 마당에 그들의 가치는 날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축구 관련 용품들을 생산하는 중소 회사들을 통째로 사들여 하나로 합쳐서 JH 스포츠라는 새로운 회사를 열었다.
이 회사는 최준호라는 이름을 브랜드화 시켰고, 고품질의 적정한 가격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폭풍 성장 중이었다.
“···불치병에 걸린 어린아이들을 위한 공익 재단이요?”
박성실은 좀 더 많은 돈을 투자해 폭풍 성장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승현군 때문이구나.’
아주 짧은 기간이지만, 최준호가 세운 명성과 브랜드의 힘은 무엇을 하든 간에 엄청난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수준이었고, 이런 투자는 브랜드의 힘을 더 강화해줄 것이니까.
“하지만 한 해 수입의 20% 수준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두 세금 처리가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굳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 박성실이었다.
어떤 도둑놈의 손아귀에 들어갈지 모르는 세금을 내는 대신 직접 아이들을 돕는 건 아주 괜찮은 일이었다.
“그 정도로 충분할까요?”
“앞으로 예상되는 수입을 계산할 때는 엄청난 수준이 될 겁니다. 스포츠 스타 중에서는 단연 최고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여튼 충분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철저하게 감시할 겁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남겨둔 상태라 장례식 이후에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박성실.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영화 제작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영화요?”
“승현 군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다루고 싶다고 합니다.
“일주일 안에 촬영을 끝낼 수 있다면 생각해보겠다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관련된 모든 수익은 승현이의 부모님에게 전해주시고요.”
“그건···.”
“저는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이제 다시 팀으로 이동해야겠군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타협하지 않겠다는 최준호의 의지가 곁들여 있었고, 박성실은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만 했다.
최준호가 팀 연습을 위해서 도르트문트로 떠난 사이 박성실은 승현이의 부모와 만나서 이 이야기를 했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 마음 써준 것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런 은혜를 또 받을 수는 없어요. 차라리 그 수익은 최준호 선수가 만든다는 그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야, 영웅 나셨나, 영웅 나셨어.”
카림 벤제마는 삐딱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왜 무슨 일인데?”
챔피언스 리그에서 붙는 레알 마드리드와 도르트문트.
두 팀의 핵심 선수인 카림 벤제마와 최준호를 어떤 기자가 비교해 놓은 기사 때문이었다.
벤제마가 기분이 상한 것은 축구 실력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축구 외적인 평판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었다.
발부에나 섹스 비디오 유출 사건을 포함해서 프랑스 대표팀에서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닌 자신은 거의 악당으로 묘사가 되어 있었고, 죽을 뻔한 아이를 구하고,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오랫동안 후원하는 최준호는 영웅으로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쓴 이가 레알 마드리드를 밀어주는 언론사의 스페인 기자라는 게 더 베알이 꼴렸다.
“무시해.”
프랑스 대표팀에서는 엄청난 문제아였지만, 레알 마드리드에서 벤제마는 아주 좋은 선수 중의 하나였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레드카드를 받은 적이 없었고, 팬 서비스도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잘하였다.
루카 모드리치는 벤제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가 없네. 자기가 잘나면 얼마나 잘난 거야?”
카림 벤제마는 알제리계 혈통으로 프랑스 내에서도 꽤 인종차별을 당했다.
특히 프랑스 대표팀에서 그 누구와도 친하지 않은 것은 이런 것이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였다.
“맞아. 자기가 잘나면 얼마나 잘났다고.”
은근슬쩍 엉덩이를 디미는 주니어 비니시우스.
2018년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한 주니어 비니시우스는 벤제마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유망주였다.
스피드와 드리블 능력이 매우 뛰어나지만, 위치 선정 문제와 결정력에 장애가 있어서 지네디 지단 감독의 중용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벤제마는 게으른 에덴 아자르 대신 항상 그를 선발 출전시켜야 한다고 구단에 말하고 다녔다.
“잘난 놈이 맞아.”
토니 크로스가 땀에 젖은 운동복을 갈아입으며 대답했다.
“뮐러랑 노이어의 말에 따르면 역대급으로 상대하기 힘든 놈이라고 하거든.”
“…뮐러?”
벤제마는 뮐러라는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여장하고 1분 동안 춤추는 영상을 올린 그 또라이?”
토마스 뮐러의 여장 춤 동영상은 그야말로 세간의 화제 덩어리였다.
“너희들은 내기하지 말아라.”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들 시선이 한쪽으로 모두 향했고, 라커룸은 순간적으로 고요해졌다.
감독 지네디 지단이었다.
훤칠한 키에 무시무시한 눈빛을 하는 지단은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비록 전술적으로는 세밀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미드필더였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감독직을 맡자마자 3연속 챔피언스컵을 올린 명장이기도 했다.
“그만큼 어려운 상대다.”
카림 벤제마, 가레스 베일, 에덴 아자르, 토미 크로스, 루카 모드리치, 마르셀루, 페를랑 메디, 에데르 밀리탕, 세르히오 라모스, 라파엘 바란, 티보 쿠르투아···
선수들의 면면만 놓고 보면 그 어떤 팀도 레알 마드리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팀이었다.
리오넬 메시의 바르셀로나가 없었다면 일단 라 리가에서는 상대할 만한 팀이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지단이 내기하지 말라고 할 정도라면 다음 경기의 승부는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 녀석은 나의 마르세유 턴을 더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고, 루카의 트리벨라를 더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토니 크로스보다 패스 성공률이 높고, 벤제마보다 연계 능력이 뛰어나다. 라모스처럼 수비할 수 있고, 호날두보다 뛰어난 골 결정력을 가지고 있지. 그를 묶지 않고는 승부를 예측할 수 없어.”
지네딘 지단은 누군가를 그렇게 극찬하는 감독이 아니었지만, 이런 수식어를 달 정도라면 최준호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강팀에 강한 팀이다. 그것이 우리를 수식하는 유일한 문장이다. 마지막 경기를 위해서 다음 훈련에도 최선을 다해 임하도록!”
“네!”
지네디 지단의 라커룸 장악력은 그 어떤 감독도 따라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