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7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73화(173/184)
173화 그들의 이야기(3)
Ce sont les meilleures équipes(저들은 최고의 팀들이다.)
Es sind die allerbesten Mannschaften,(그들은 진정한 최고의 팀들)
The main event.(이것은 가장 중요한 이벤트)
Die Meister(그리고 챔피언들)
챔피언스 주제곡이 방안을 울렸고, 푸키가 몸을 일으켜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이불을 슬쩍 들어 올리자 최준호가 눈을 떴다.
“왈!”
옆에 누워 있어야 할 레아는 먼저 일어난 듯 자리에 없었다.
최준호는 손을 들어 푸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평소에는 알람을 끄겠지만, 오늘 최준호는 침대에 가만히 앉아서 노래를 끝까지 들었다.
축구 선수로서 챔피언스 리그의 결승전에 나간다는 건 정말 이루기 힘든 일 중 하나였다.
월드컵의 결승에 나가는 것만큼이나.
유럽 국가 선수권 대회도.
물론 최준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유럽에서 시작한 축구였고, 사실 아시아는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고는 있지만, 아시아의 선수들의 활약상이 도드라지면 도드라질수록 인기가 좋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거둔 후 축구 관람객이 야구 관람객을 뛰어넘었던 것을 봤을 때도.
“결승전이구나.”
최준호는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 창문을 보았다.
“누군가는 밥 먹듯이 챔피언스 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데 말이야. 첫 결승전에 별생각이 다 드네.”
시즌 합류 후 쉼 없이 달려왔고, 잠을 자고 일어나도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피로가 쌓였다.
오늘은 비행기를 타고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었고, 레아는 오늘 하루만큼은 아침 운동을 쉬고 푹 자라고 하였다.
시계를 보니 오전 9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늦잠 자는 것도 좋네.”
10시간이 넘게 잔 것 때문인지 뻐근함과는 다르게 머릿속은 아주 맑았다.
잠옷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내려가니 주방은 매우 분주한 분위기였다.
최현식과 레아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일어났니?”
“네. 근데 뭐가 이렇게 많아요?”
한국과 독일의 영양식은 다 차려진 듯싶었다.
“뭐긴? 무거운 트로피 들고 오려면 잘 먹고 가야지.”
레아가 흥얼거리며 눈짓으로 벽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필두로, 분데스리가 올해의 선수상, 분데스리가 올해의 도움 상 등등 여러 가지 트로피가 나열되어 있었다.
월드컵에서 받은 골든볼 트로피도.
“···트로피가 무겁긴 한데, 이건 너무 과한데?”
최현식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아라. 좀 있다고 마테우스랑 밀라도 올 거라서. 저녁에 또 먹을 거야.”
“밤 비행기지?”
“그래. 여기서 식사하고 같이 리스본으로 갈 거다.”
셋은 자리에 앉아서 식사했다.
“영국에 집은?”
“어제 동현이 형한테 연락이 왔어. 괜찮은 곳에 집을 구했대.”
첼시의 구장 스탬퍼드 브리지 근처에 있는 워터포드 길 43번가 있는 집이었다.
2층짜리 건물이었고 크기는 지금 사는 곳과 비슷했다.
물론 가격은 거의 5배나 더 비쌌고.
뒤뜰에 바베큐 파티를 열 수 있는 정원이 딸린 집을 구하였는데, 매물이 그리 많지 않아 오래 걸렸다고 했다.
첼시는 켄싱턴과 함께 런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고, 치안도 가장 좋은 곳이었다.
“아버지도 갈까?”
“아니! 아버지가 왜 와?”
최준호가 고개를 크게 휘젓자, 최현식이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한국으로 갈까 하는데.”
최현식은 8개월가량의 축구 지도자 과정도 끝마쳤고, 6부 리그의 아마추어팀에서 감독하며 준우승을 이끌었다.
유럽에서 선수로서 뛴 경험이 없어서 UEFA 지도자 자격증을 가질 수는 없었지만,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쓸 생각이었다.
KFA 자격증을 업그레이드할 기회였고, 혼자 남겨진 아내의 무덤도 돌볼 겸.
“그럼 이 집은?”
“네 집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야지.”
“그냥 여기에 있는 건 어때?”
최현식은 가볍게 고개를 젓자 레아가 말했다.
“토마스가 이 집을 좋아하던데?”
“응?”
“올 때마다 여기 자기 집 하고 싶다고 매번 그러잖아?”
“안돼.”
“왜?”
“맨날 반값에 달라고 하거든.”
“그건 곤란한데? 음, 그럼 세를 놓을까?”
“그건 괜찮네. 녀석이 내 돈을 아직 갚지 않았다는 것만 뺀다면.”
“받을 생각도 없으면서.”
주급으로 24,000유로 받는 토마스가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돈이긴 했다.
이자가 붙고 붙어서 이제 1,800유로가 된 그 돈을 가지고 실랑이하는 모습은 꼭 받을 생각이라기보다는 그걸 통해서 장난치며 노는 모습이었다.
물론 토마스가 자신이나 최준호의 생일에 사 온 선물들을 따지면 아주 적은 돈에 불과하기도 했고.
“그럼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
마르코 로제는 수석 코치 르네와 수석 전술 코치 이동민이 심사숙고해서 가져온 세부 전술 사항을 읽었다.
– 강팀에 강한 팀.
세간의 평가는 이러했지만, 감독의 눈으로 봤을 때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 팀에게 더 강한 팀이었다.
지네디 지단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는 공격 패턴이 아주 단순한 팀이었다.
득점력 좋은 공격수들이 페널티 에어리어에 몰려 있고, 공격에 능한 풀백들이 공을 몰고 와서 크로스를 올리거나 중앙에서 질 좋은 패스를 그들에게 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단순한 공격 패턴이지만, 컴플리트 공격수 유형인 벤제마가 중앙에서 완벽한 활약을 해주고, 가레스 베일과 에덴 아자르 같은 개인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벤제마의 공을 받아 골로 연결하는 확률이 매우 높았다.
물론, 이건 공격에 대한 부분이었고.
단순한 공격 패턴을 가진 레알 마드리드가 세계 최고의 클럽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유는 바로 중원 장악력 때문이었다.
토니 크로스, 모드리치, 카세미루, 마르셀루 등으로 구성된 중원은 패스 전개, 탈압박에 있어서 너무나 뛰어났고, 뛰어난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할 만한 미드필더들이 없다면 그날 게임은 하프 게임이 될 소지가 컸다.
다만 아예 라인을 완전히 내리고, 극강의 속도를 갖춘 공격수를 양 사이드에 배치해서 역습을 감행하는 팀에게는 항상 곤란함을 느꼈다.
벤제마를 제외한 공격수들은 수비를 거의 하지 않았고, 풀백들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역습 시에 수비 가담률이 매우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르트문트 역시 라인을 최대한 내리고 마르코 로이스, 엘링 홀란드, 토마스 시아카와 같은 발이 빠른 공격수로 역습을 강행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지만, 르네 마리치가 이끄는 전술팀은 전혀 다른 해법을 가져왔다.
“그들은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올 거라고 생각할 거야. 강팀을 상대로 늘 그래왔었으니까. 그리고 저쪽 감독의 성향을 봤을 때 전술적인 형태는 변화가 없을 거야.”
“강 대 강으로 부딪히자고?”
“내 생각인데, 우리는 이제 약팀이 아니야. 바이에른 뮌헨을 리그에서 두 번 연속 큰 점수 차로 꺾었고,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까지 올라왔어. 근 2년 동안 선수단의 변화가 없었기에 우리의 조직력은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해. 우리가 수세를 펼칠 이유가 없다고 봐. 그리고 이건 리의 의견인데···”
르네 마리치는 전술판을 가져와 설명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빌드업의 핵심은 토니 크로스야. 근데 중앙에서 강한 압박이 들어오면 토니가 밑으로 내려가고 카세미루가 위로 올라오는 경향이 있어.”
“후방에서 안전하게 빌드업을 하겠다는 거군.”
“그리고 이 부분이 우리가 공략해야 하는 포인트지. 토니는 패스와 공격에 능한 선수지 수비에 능한 선수가 아니거든.”
“그 이야기는 중앙에서 미드필더들을 압박해서 공을 가져오면 바로 역습의 기회가 생긴다는 뜻인가?”
“그렇지. 우리에겐 수비력 좋은 미드필더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라인을 내리고 역습을 나올 거라고 예상하는 녀석들에게 한 방 먹일 수도 있고.”
“미드필더 쪽에 힘을 주자는 뜻인가?”
“응. 5-4-1 전술. 아주 수비적인 포메이션이고, 상대도 그렇게 오판할 거야. 그리고 초이는 언제든지 훌륭한 스트라이커로 변신할 수가 있지.”
“바이에른 뮌헨 전에서 보여준 모습을 또 보여준다면···”
“그 녀석의 재현성은 아주 대단해. 단순하게 그날만 운이 좋아서 한 건 아닐 거야.”
마르코 로제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5-4-1은 일단 자신도 생각한 전술이었다.
다소 수비적으로.
그리고 공격적인 5-4-1 역시 선수들이 언제든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기도 했다.
“두 형태를 공존시킨다면 상대에게 혼란을 가중할 수 있겠군.”
“빙고.”
둘은 전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는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초이랑 엘링이 떠나도 다음 시즌에는 큰 전력 누출은 없어야 하는데.”
“쥬드 벨링엄이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고, 내년에 1군에 합류할 무코코 녀석은 키 작은 엘링이라고 부를 정도로 놀라운 골 결정력을 보이고 있어. 발재간에서는 엘링보다 앞선다는 평가야. 녀석들이 두 녀석의 빈 자리를 메꿔줄 거야. 챔피언스 리그에서 여전히 우릴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고.”
“그 녀석들이 없는 팀으로 챔스를 또 다시 제패한다면, 그거야말로 우리의 실력이 되겠군.”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도 자네를 떠나 다른 팀을 맡을지 몰라.”
“성공은 이별로 이어지는 공식인가?”
“그럴지도. 이 셀링 클럽에서는.”
**
“···스페인어?”
짧은 여행 시간이지만 비행기 안에서 잠들었던 김우영은 눈을 떴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보니 최준호의 손에 들린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스페인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어.”
“그건 왜? 나중에 그쪽으로 가려고?”
“생각해보니까, 스페인어로 샬라샬라하는 것들에게 트래쉬 토크를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서.”
“크크크. 참 너답다. 난 아직도 믿겨 지지가 않는다. 세상에 내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나가다니! 그것도 선발로.”
“넌 이미 도르트문트의 핵심 센터백이야. 네 제공권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선수가 존재하지 않아. 그런데 너 정도면 여기저기서 이적 제의가 들어왔을 텐데?”
“난 도르트문트가 좋아. 대우를 잘해주면 오랫동안 여기 있으려고.”
“재계약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구나?”
김우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번이 우리가 같이 뛰는 마지막 경기인가?”
“아마도?”
“아주 쬐끔 찡한데.”
“그러면 나중에 혹시 날 마크할 때 좀 봐주고.”
“···널 봐주라고? 미치지 않고서는 그럴 수가 없지. 다리 몽둥이를 분질러서 경기장 밖으로 보내보려야지.”
“다리는 왜 분질러?”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혼자서 널 막는 건 도무지 상상이 안 가거든.”
최준호도 김우영의 몸싸움이나 헤딩 경합에서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같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줄 알았고, 스피드도 조금 더 빨랐기에 그를 제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피해 다녀야겠네.”
“그게 좋을 거야.”
“야, 아직 우리 같은 편이거든?”
“후후. 근데 양 기자님 유튜브 봤냐?”
“응.”
“너 발롱도르 탈 수 있다며?”
“그게 쉬운 일이냐?”
아쉽게도 FD_Idl 아이디가 탄로 나는 바람에 자화자찬을 할 수 있는 재미를 놓친 최준호였다.
“아시아 국적 선수가 타려면 몇 배는 훌륭한 업적을 남겨야 해.”
“그래도 난 네가 발롱도르를 탔으면 좋겠다.”
“왜?”
김우영에게 축구를 하는 것은 등불 하나 없는 새까만 공간에서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등불이 최준호였고, 김우영은 최준호가 앞서서 밝힌 그 등불을 보고 쫓는 중이었다.
그렇게 도르트문트의 1군 선수가 되고, 이제는 핵심 수비수가 되었고.
그가 발롱도르를 탄다면 김우영도 그것을 쫓아갈 수 있었으니까.
“아시아 국적인 나에게도 기회가 생기잖아?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이니까.”
“수비수가 발롱도르라···”
역사를 볼 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우영의 판단력이나, 위치 선정 능력, 예측력 등이 경험을 통해서 상승한다면 그는 버질 반다이크나 쿨리발리 같은 선수가 될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왜? 어렵냐?”
“세상에 어려운 게 어딨냐? 도전해봐라. 물론 내가 뛸 때는 아예 생각도 하지 말고.”
“건방진 자식.”
“흐흐흐.”
“지금 은퇴시켜 버릴까?”
“저리 가. 이 징그러운 자식아!”
여러모로 김우영은 최준호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이 김상식 회장의 손자라는 말만 들어도 어려워하는 인간들 뿐인 세상에 이렇게 장난질 칠 수 있는 한국 국적의 녀석은 최준호가 유일했으니까.
**
“헤이. 듀드.”
“오랜만이야.”
브라질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티아구 실바와 조르지뉴는 리스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창 휴가 중인 이들은 유럽 최대의 축구 이벤트인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보기 위해 포르투갈로 날아왔다.
챔피언스 리그를 즐기러 왔다기보다는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할 이적생 최준호의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토마스 투헬은 휴가 직전에 내년 목표는 리그 우승과, 챔피언스 리그 우승, FA 컵 우승 및 리그컵 경기 우승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짖는 상황이라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조르지뉴였다.
올해 간신히 4위를 수성했고,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 진출하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팬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 그렇게 잘해?”
은골로 캉테와 더불어 첼시 중원의 핵심 자원인 조르지뉴는 최준호와 직접 맞붙은 티아구 실바에게 물었다.
“잘하냐고?”
티아구 실바는 포르투갈의 명물 중 하나인 포트와인을 살짝 음미하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녀석과 아군이 되었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라. 저 녀석이 있는 팀은 여간해서 이기기 어려우니까. 이제 20살이지? 어려서 경험도 없을 녀석이··· 마치 나처럼 팀의 모든 자원들을 다 끌어다 쓰는데 도가 텄으니까. 개인적인 실력이야 수많은 영상으로 떠도는 수많은 하이라이트가 존재하니 설명할 필요도 없을 거고.”
티아구 실바는 눈빛을 반짝이는 조르지뉴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수비라인에서는 자신이, 미드필더 진영에서는 조르지뉴가 그리고 공격진에서는 최준호가 중심이 되어 팀을 꾸리게 될 것은 명확했다.
“···근데, 술은 더 안 마셔?”
티아구 실바가 더 이상 포도주를 입 안으로 흘리지 않자, 조르지뉴가 물었다.
“갑자기 좀 더 오래 뛰고 싶어졌어. 한 40살까지?”
“왜?”
“내가 지금 받은 트로피보다 더 많은 트로피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장난이지?”
“아니. 진심인데.”
티아구 실바는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옆의 화단에 버렸다.
“내 진짜 전성기는 이제부터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