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74)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74화(174/184)
174화 누가 챔피언인가(1)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전은 포르투칼 리스본에 위치한 이스타디우 다 루스 스타디움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이 경기는 65번째 결승 전이며, 유러피언 컵에서 챔피언스 르기로 명칭을 변경한 후 28번째로 맞는 경기였다.
이스타디우 다 루스는 <빛의 경기장>이라는 뜻으로 포르투칼의 명문 벤피카의 구장이었고, 6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구장이었다.
벤피카의 서포터들은 이곳을
즉 성당이라고 부르며, 종교적 신앙과 축구를 마치 하나처럼 여겼다.
포르투칼에서 명품을 꼽으라면 식기류가 전부일 정도로 유명한 제품이 없었지만, 야망을 가진 한 포르투칼 재단사는 오늘을 기회로 삼을 생각을 하였다.
이곳은 스페인과는 달리 국제적 정서로 볼 때 조용한 동네였고, 거물급 관광객들을 그다지 볼 수 없는 곳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인해서 각국에서 수많은 인사들이 이곳으로 쏟아지는 이 때를 노리지 않는다면, 자신은 영원히 새장 속의 카나리아처럼 이곳에서 양복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복은 크게 보면 2가지로 나뉩니다. 겉옷과 바지요. 겉보기에는 2부분인 것 같은 이것은 4가지 천으로 만들어 집니다. 면, 비단, 모헤어, 양털이죠. 이 4가지 천을 38가지 조각으로 자릅니다. 그리고 228단계를 거치면 양복이 완성이 되지요.”
재단사는 놀라울 정도로 멋진 몸을 가진 동양인 청년의 몸의 치수를 재면서 말했다.
“좋은 양복은 누가 입을 옷인지 제대로 이해해야만 만들어 집니다. 모든 옷마다 사연이 있거든요. 한 신사가 들어왔는데, <오우, 난 옷 같은 거 신경 쓰지 않습니다. 몸에 맞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아시겠죠?”
포르투칼에서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는 재단사답지 않게 매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였고, 최준호는 뭔가 찔끔하듯 웃음을 지었다.
“절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소심하게 있고, 어떤 사람은 당당하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지요. 내 고객님은 어떤 분일까? 항상 수치를 재면서 생각합니다.”
최준호는 30대 중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멋진 콧수염을 가진 재단사를 특이한 눈빛으로 보았다.
하필이면 이곳에서 입을 양복을 빼놓고 왔고, 포르투 거리를 걸으면서 관광할 겸 이미 만들어진 기성복을 사려고 했다.
“누군가는 봄의 색조처럼 눈에 띄고자 하고, 혹은 분주한 인파 속에 묻히는 것을 좋아하고. 누군가는 현재에 안주하려고 하고 누군가는 야망을 가지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보지요. 양복에는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힘이 있습니다.”
적당히 맞는 기성복을 찾았는데, 재단사의 특이한 입담 때문에 맞춤복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물론 그런 것들을 고객님에게 묻지는 않습니다. 치수를 재다보면 어떤 양복이 가장 잘 어울릴 지 저절로 떠오르거든요.”
“그럼 전 어떤 맞춤복이 잘 어울릴까요?”
최준호가 묻자 재단사가 대답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젊음, 그리고 아주 멋진 몸매, 꼿꼿하지만 부드러운 자세,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룬 사람의 눈빛. 하지만 그는 이상하게도 굶주려 보입니다. 아직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다는 뜻이지요.”
“그런 것들이 정말 눈에 보이나요?”
“적어도 손님에게는 그런 것들이 보이는 군요. 도르트문트의 21번 초이 선수죠?”
최준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재단사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줄자를 최준호의 몸에서 떼었다.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저 축구를 하는 선수일 뿐인걸요. 오히려 당신의 입담에 혼이 나갈지경이었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알버트 프리모라고 합니다.”
“반갑군요.”
“사실 여기에 들어오시자마자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내게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지요.”
“기회라니요?”
“저는 포르투칼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인 학과를 나와서 영국에서 10년이 넘도록 양복을 만드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돌아와서 작은 양복점을 열었고 처음으로 유명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누구보다도 양복을 잘 만들 수 있는 자신과 실력이 있지만, 제 실력을 알릴만한 기회를 얻지를 못했으니까요.”
최준호는 그 의미를 금방 이해하였다.
“하지만 저는 양복보다는 운동복을 주로 입어요.”
알버트는 굉장히 성공한 젊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거들먹거림이나 그 특유의 오만함을 최준호에게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건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 뜻으로 보였고.
“한 가지 제안을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저는 양복에 미친 사람이지만, 축구에 미친 사람이기도 하죠. 유럽 남자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저와 같죠. 저는 태어날 때부터 벤피카의 팬입니다. 여전히 주말에 조기축구를 즐기죠. 그런 제 눈에 최준호 선수는 분명 이른 시간 내에 세계에서 가장 반짝이는 별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준호가 담담하게 대답하자, 알버트는 그가 굉장히 자존심이 강한 사내라고 생각했다.
“만약 이번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 우승을 차지한다면, 적은 경기에 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발롱도르 후보가 될 겁니다. 그 자리에 가실 때 제가 만든 양복을 입고 가 주신다면, 모든 비용은 무료로 해드리겠습니다.”
최준호는 그의 제안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정말 완전 무결한 정사각형의 세상이었다.
먼지 하나 없는 깔끔함은 기본이었고, 팽팽한 빨랫줄에 걸려 있는 천 조각들에는 보푸래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양복에 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작업장 환경을 이 정도로 관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제가 너무 큰 이득을 보는 것 같은데요?”
“꼭 그렇진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발롱도르 수상식 때 당신의 얼굴을 보지만, 일부 극소수의 사람들은 당신이 무슨 옷을 입었는 지 더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저는 그 정도로 충분합니다.”
“확실히 그렇게 들으니 이제는 제가 손해를 보는 것 같군요.”
최준호는 품에서 지갑을 꺼내 명함을 꺼냈다.
마이클 조던처럼 사업적인 감각도 살짝 생긴 최준호 역시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만든 양복을 착용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숨어 있는 야망가라는 건 분명했다.
“아마도 우리는 적당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2020년 5월 20일.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3시간 남겨두고, 프랑스 풋볼 지에서 감독들과 몇몇 선수들에게 기자 인터뷰를 요청하였다.
이번 경기의 결과에 따라서 발롱도르 후보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프랑스 풋볼지에서는 발롱도르 수상 후보 10위로 예상되는 최준호, 엘링 홀란드, 벤제마, 루카 모드리치를 인터뷰 대상으로 삼았다.
당연하지만 챔스 리그에서 3번의 빅이어를 들어올린 지네디 지단의 4번째 도전은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 내 인생에 있어서 이번 경기는 가장 중요한 경기이다. 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나는 역사상 그 누구도 하지 못할 대기록을 세울 테니까! 챔스를 4번 우승한 감독! 우리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고, 선수들은 자신감에 차 있다. 이것은 내가 가장 고려하는 부분이다. 베일의 경기력은 점점 나아지고 있고, 새 영입생 에덴 아자르는 팀 적응에 훌륭하게 임하고 있다. 우리는 손쉽게 4번째 우승을 할 것이다.
마르코 로제 감독 역시 자신감을 과시했다.
– 아쉽게도 도르트문트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1번 우승을 했었다. 그 기록이 없었다면 나 역시 지단 감독처럼 내 커리어에 대해 자랑을 늘어놨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밥 먹듯이 트로피를 가져가는 세계 최고의 팀이고, 우리가 도전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준비되었고, 훈련되어졌으며 조직화 되었다. 도르트문트의 젊은 호랑이들은 늙은 호랑이를 무리에서 내쫓을 준비가 되었고, 오늘 당신들은 우리의 진짜 힘을 보게 될 것이다.
카림 벤제마는 인터뷰에서 엘링을 견제하였다.
– 그는 아주 뛰어난 스트라이커다. 하지만, 아직 내 앞에서는 아직 애송이다. 가서 엄마 젖을 좀 더 먹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모드리치는 조금 더 유화하게 표현을 했지만 벤제마와 별 다를 게 없었다.
– 초이는 차세대를 대표할 놀라운 선수다. 하지만 지금은 현세대일 뿐이다.
먼저 그들이 인터뷰 하는 걸 듣고 있던 엘링 홀란드는 이렇게 말했다.
– 난 으름장을 놓거나 쓸데 없는 말을 하는 걸 싫어한다. 다만 오늘 경기장에서 그들에게 요가를 전파할 것이다. 적어도 3번!
언젠가부터 기자들 사이에서 명언 제조기가 된 최준호였고, 기자들이 최준호의 마지막 인터뷰에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 오늘 경기 어떤 각오로 임하는가?
– 나는 항상 승리를 갈구한다. 그렇기에 불가능한 상황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이기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고, 오늘 우리를 상대해야 하는 팀은 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 몇몇은 경기 출전 시간도 적고 골이나 어시스트 같은 1차 스탯도 적은 당신이 발롱도르를 타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생각하나?
– 그건 루카 모드리치에게 다시 물어봐라.
45분 정도 소요된 공개된 인터뷰 때문인지 이스타디우 다 루스 스타디움은 열기로 상당히 뜨거워져 있었다.
동쪽과 서쪽으로 갈려 있는 레알마드리드와 도르트문트의 찐팬들.
그 나머지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세계 각국의 축구팬들.
The Big Ears Cup.
공식 명칭은 쿠프 데 클뤼브 샹피옹 에우로페앙.
유럽의 축구 구단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에는 그야말로 꿈의 트로피였다.
이 리그에서 3회 연속 우승하거나 5번 우승을 하면 진품 빅이어가 수여가 되는데, 이를 받은 팀은 레알 마드리드, 아약스, 바이에른 뮌헨, AC 밀란, 리버풀 FC 뿐이었다.
양쪽으로 갈라져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진영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낸 트로피.
최준호는 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그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과거에는 꿈도 못 꿨던 트로피였고, 그것을 직접 보는 심정은 그야말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서 한 번만 더 승리를 거둔다면 저 꿈의 트로피를 가져올 수 있었다.
사실 도르트문트에서 챔스 결승전에 나갈 것이라고는 최준호 스스로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만큼 변수도 많았고, 행운도 따라야했으니까.
빅이어에 시선이 한참 고정되어 있던 최준호의 시선은 이내 관중석으로 향했다.
VIP 관람석에 모여 앉아 있는 아버지와 레아 그리고 마테우스와 밀라가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손을 흔드는 그들.
최준호도 가볍게 손을 흔들고는 고개를 돌려 다시 빅이어를 보았다.
“···오늘 넌 내거다. 내가 반드시 가져간다.”
**
경기장으로 향하는 통로 안.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과 노란색과 검은색이 조합된 유니폼을 입은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봐.”
최준호는 소리가 난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은 루카 모드리치였다.
“그 트리벨라는 누구에게 배운거야?”
생각해보니 과거에 감독으로 부임한 루카 모드리치가 자신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일부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루카 모드리치를 모틀딱이라고 부르는데, 레알 마드리드의 유망주들이 루카 모드리치를 매우 어려워하기 때문이었다.
잔소리도 많고 훈련을 할 때는 강압적인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건 감독으로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더군다나 모드리치 때문에 에버턴에서 출전을 거의 못했다는 것을 상기한 최준호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에게.”
“난 그런 걸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
“물론. 그건 나만 아는 비밀이니까.”
“무슨 소리지?”
“오늘 당신에게 갚아줘야 할 빚도 있고. 부상당하지 않게 조심해야 할거야. 아주 거칠게 대할거거든.”
“웃기는 녀석이군. 그런 하찮은 도발을 한 걸 후회하게 될거야.”
루카 모드리치는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을 가진 전설적인 베테랑이었다.
도발 따위로 그를 흔들 수는 없었다.
“도발이 아니야. 순수하게 실력으로 당신을 이겨낼거니까.”
“한 번 해봐. 말처럼 쉽게 되나.”
어느 새 두 사람 간의 묘한 긴장감이 흘렀고, 옆에서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있던 어린 포르투칼 유망주들은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난 당신이 왜 EPL을 떠나서 라리가로 갔는지 알아. 그리고 오늘 당신은 나에게서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될거야.’
피지컬은 기술과 정신력을 담는 그릇이었다.
동일한 기술과 정신력이라면 더 좋은 피지컬을 가진 선수가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운동 선수들에게 피지컬이 중요한 이유기도 했고.
최준호는 겁을 잔뜩 먹은 표정을 한 채 손을 꾹 잡고 있는 어린 소년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름이 뭐야?”
“에···에르난데스요.”
“제일 좋아하는 선수는?”
“리···리오넬 메시요.”
“아, 진짜?”
최준호는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그걸 지켜보던 주변의 선수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엉뚱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네.’
루카 모드리치는 이내 웃음을 멈추고는 마음을 무겁게 가져갔다.
‘오늘 중원에서 승부가 갈린다. 이 녀석은 가장 조심해야 할 녀석이야.’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가 몸은 너무나 탄탄해 보였다.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