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77)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77화(177/184)
177화 누가 챔피언인가(4)
세르히오 라모스.
21세기··· 아니 역대 선수들을 전부 다 합쳐 놔도 경기 중 가장 많은 퇴장을 당한 선수.
<진격의 라장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적극적이고 파이팅 넘치는 성격 답게 불 같은 면이 있었다.
특히 그 날 경기가 안 풀리거나 대패의 조짐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여지 없이 더러운 성격의 몽니가 드러나는 선수.
문제는 자신의 성격을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장풍을 날리던가 걷어차는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는 것이었다.
“···이 새끼가?”
전반 종료 직전 마지막 도르트문트의 공격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르트문트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 생각이 없는지 미드필더진과 공격진 사이의 스위칭을 통해서 공간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견고한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는데, 공을 받은 최준호가 세르히로 라모스를 상대로 사포를 시전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준비 동작도 없이 나온 사포였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 예측을 못해 순간적으로 제껴진 라모스.
카세미루가 바로 개입해서 태클로 최준호를 날려버리지 않았다면, 최준호는 분명 공을 몰고 페널티 에어리어로 진입했을 것이고, 아주 위험한 상황이 펼쳐졌을 것이다.
발 뒷굼치로 공을 띄워 수비를 제치는 이 기술은 수비수들에겐 <농락>이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건 세르히오 라모스도 마찬가지였다.
잘 익은 고구마처럼 빨갛게 라모스의 두 볼이 달아올랐다.
그리고 눈을 부라리면서 쓰러져 있는 최준호에게 라모스가 다가가자 위험을 감지한 루카 모드리치가 얼른 달려들어 안았다.
“참아. 참아.”
“저 미친 새끼가···.”
다른 선수들까지 달려와서야 이 소란이 잠잠해졌는데, 카세미루의 태클에 걸려 땅바닥을 뒹굴던 최준호는 의료진의 간단한 처치를 받고는 조금 아쉬운 눈빛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걸 참네?’
이제는 서른 살이 넘은 베테랑.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호날두가 이적하면서 주장 완장을 찬 세르히오 라모스.
그는 머리 뚜껑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더,
일단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거고, 페널티 에어리어 앞에서의 프리킥이었다.
티보 쿠르투아는 원래 말 없는 선수였기에, 라모스가 바쁘게 선수들에게 수비 위치를 지정해주었다.
그런 라모스를 보면서 최준호는 공을 프리킥 위치에 가볍게 놓았다.
원래는 라모스를 도발할 생각으로 쓴 기술이었는데, 카세미루가 발작적으로 몸을 디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운 좋게 파울을 얻어내었다.
골대와 상당히 가까운 위치였지만, 직접 슈팅을 때리기에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곳이었다.
수비벽도 최준호의 왼발과 오른발 모두를 경계하는 듯 양쪽으로 포개져 세워졌다.
김우영의 머리를 노릴만도 하지만 그의 옆에는 라모스가 붙어 있었다.
라모스의 순간적인 위치 선정 능력이나 높은 점프력에 기반한 헤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에 김우영을 쓰는 것은 확률적으로 낮았다.
엘링 홀란드 옆에는 라파엘 바란이 붙어 있었고.
티보 쿠르투아의 공중 장악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그는 언제든지 튀어나와 공을 펀칭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직접 슈팅은 니어 포스트가 좋아보이긴 하네.’
그건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선수들도 다 아는 것이었고, 티보 쿠르트아의 포지션도 골대 오른쪽으로 살짝 치우쳐져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아는 방향으로 찬다는 것 역시 골로 연결될 확률이 낮아지는 법이었다.
‘될까?’
최준호는 슬며서 파포스트를 흘겨 보았다.
절묘하게 세워놓은 벽을 넘겨야 하며 아주 강하게 감아차야 했다.
모두 다 확률이 낮긴 했지만, 최준호는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가장 확률이 높은 쪽으로.
최준호가 프리킥을 찰 때는 항상 공과 일직선 상에 있었기 때문에 골키퍼들은 이 선수가 어디로 찰 지 예측을 할 수가 없었다.
임팩트 순간에 다리를 활처럼 벌리며 각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수비수들도 끝까지 봐야만 했다.
최준호가 양 손을 들어올리자 도르트문트 선수들 눈빛이 반짝거렸다.
‘쇄도!’
– 삐익!
주심의 휘슬이 울렸고, 최준호가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역시나 공과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최준호.
그리고 임팩트 되는 순간 최준호의 몸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왼발 인사이드로 공을 강하게 감아찼다.
– 뻥!
최준호의 왼쪽에 서 있던 수비수들이 황급하게 점프를 뛰었지만, 공은 왼쪽 끝에 있던 수비수를 거의 스치듯 지나갔고, 티보 쿠르투아는 순간적으로 공의 위치를 놓치고 말았다.
다만 도르트문트의 선수들이 모두 자신을 향해 쇄도하려는 움직임을 보고는 크로스가 넘어올 거라고 지레짐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골대 밖으로 벗어날 듯 날아가던 공이 강한 힘에 의해 안쪽으로 휘어졌고, 티보의 시야에 공이 들어왔을 때는 움직일 수 있는 타이밍이 아니었다.
공은 빠르게 파포스트를 스치며 골문에 그대로 쳐박혀 버렸다.
‘됐어!!!!’
최준호가 두 주먹을 하늘을 향해 번쩍 들어올렸다.
“우아아아아!!!”
도르트문트 선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신이 난 표정으로 최준호를 향해 달려들었고, 도르트문트 팬들도 함께 고함을 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긴장을 하던 마르코 로제도 펄쩍펄쩍 뛰며 동점골에 너무나 기뻐했다.
2-2
“···진짜···”
조르지뉴는 머릿속으로 공의 궤적을 여러번 그려보곤 벌어진 입으로 단어를 하나 더 내뱉었다.
“괴물이군.”
“괜히 프리킥의 마술사라는 별명을 가진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오면 프리킥은 다 저 녀석이 차겠네.”
“프리킥을 골로 연결시킬 확률이 가장 높은 녀석이니까.”
“···저 녀석은 도대체 못하는 게 뭐야?”
조르지뉴의 말에 티아구 실바가 대답했다.
“클래스에 맞지 않게 조금 느리다는 거?”
**
전반전이 2-2 동점으로 끝난 직후.
레알 마드리드의 라커룸.
아크로바틱한 최준호의 바이시클 킥에 한 골을 먹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프리킥 골은 지네디 지단에게는 꽤 위험한 신호로 다가왔다.
전술팀에서 올라온 팀 분석 보고서에는 도르트문트라는 팀은 선수 하나가 전체 전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고, 지단도 그 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을 하였다.
그래서 최준호가 공격으로 올라오면 카세미루에게 언제든지 백업을 들어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의 개인기나 몸을 쓰는 능력을 볼 때 루카가 혼자서는 마크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파울을 얻어서 저런 슈팅을 때린다면 이 경기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베르데.”
98년생으로 올해 22세.
우루과이의 차세대 유망주로 지네디 지단은 그가 나이든 루카 모드리치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183cm 78kg에 최대 속도 38km/h에 달하는 뛰어난 준족.
오랫동안 레알 마드리드에서 성장한 발베르데는 슈퍼 스타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토니 크로스의 패싱 능력가 킥력, 루카 모드리치의 창의성과 개인기를 모두 이어받은 데다가 피지컬 적으로도 뛰어난 완벽에 가까운 만능 미드필더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여기에 수비에서도 대단한 재능을 보여주고 있었고, 뛰어난 오프더볼 움직임은 차후에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 기반이었다.
그의 이름이 불린 순간 루카 모드리치는 쓴 웃음을 지었다.
전반전에 최준호에게 완전히 지워져서 아무런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감독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체라는 건 스스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네.”
“준비해. 그리고 루카 수고했다.”
루카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자 지단은 발베르데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반전에 상대팀 21번을 그라운드에서 지워버려라. 그게 너의 주 임무다.”
“알겠습니다.”
“누가 진짜 최고의 재능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켜줘.”
“네.”
여기에 더불어 경기 중에 전술 변화를 거의 주지 않던 지단은 이번에 전술 변화까지 과감하게 주었다.
“후반전 전술은 4-2-3-1로 간다. 토니가 올라가서 공격을 이끌고, 카세미루와 발베르데가 3선으로 내려와 상대 공격을 분쇄하고 최종 수비수를 보호해줘.”
**
레알 마드리드의 라커룸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무렵.
전반전이 절반 지났을 무렵부터는 동점이라는 점수가 믿기지 않을 만큼 레알 마드리드에게 확실히 밀렸다.
후반에 뭔가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마르코 로제에겐 쓸 수 있는 카드가 그리 많지 않았다.
레알 마드리드처럼 더블 스쿼드를 만들 만큼의 선수도 없었고, 어리고 경험이 없지만 투지 넘치는 선수들을 믿고 가야만 했다.
“세계 최강팀을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후반전에는 실수를 줄이고, 1:1 상황에서 의욕적으로 태클에 들어가지 말 것.”
이 정도가 감독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마르코 로제가 선수들의 분위기를 한 번 띄워주고 나가자, 최준호는 몸을 일으켜 엘링의 옆에 앉았다.
“오늘 경기 어떻게 생각해?”
“어려워. 바이에른 뮌헨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센터백들은 차원이 다른 선수들 같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수가 둘이나 포진해 있고, 호흡도 굉장히 좋으니까.”
“질 것 같은데.”
왠만하면 진다는 이야기를 안하는 엘링이 안색을 굳히며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 지려고?”
“아니. 무슨 수라도 있어?”
“변수가 좀 필요해.”
“변수?”
“응. 그리고 네 역할이 좀 있어야 하는데···.”
최준호가 똥 마려운 표정을 하며 뒷 이야기를 흘리자 엘링이 궁금한 눈빛을 하였다.
“뭔데?”
“세르히오 라모스를 경기장 밖으로 내보내야겠어.
“응?”
“근데 난 그 녀석이랑 붙어 있을 시간이 별로 없어서.”
“나보고 하라고?”
“역시 안되겠네.”
엘링은 생긴 것과는 다르게 순둥이에 가까웠다.
우직한데다가 약은 수는 잘 쓸 줄을 몰랐다.
순수하게 실력으로 이기려고 했고, 그래서 피지컬도 좋고 수비력도 좋은 수준 높은 수비수가 붙으면 골 터치하는 것도 힘들어 했다.
물론 시간과 경험이 해결을 해주긴 하겠지만.
경험이 그를 자신처럼 능구렁이로 만들겠지만.
“···뭔데?”
“트래쉬 토크.”
“라모스한테?”
“실력이 안될 때는 다른 방법도 써야 해.”
엘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싫은데?”
엘링이 강하게 고개를 젓자, 최준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
“···발베르데?”
레알 마드리드의 이른 선수 교체는 마르코 로제를 살짝 긴장시켰다.
지단은 경기 중에 포메이션을 바꾸지 않기로 유명한 감독 중 하나였는데, 매우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중앙 장악력을 높이려는 것 같은데. 모드리치는 피지컬에 밀려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저 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어.”
“저 친구 빠르지 않아?”
“매우 빠르지. 특히 공을 달고 뛰는 속도는 킬리안 음바페에 육박해. 초이가 막을 수 있을 지 모르겠군.”
“일단 우리도 전술 수정에 들어가야겠군.”
“물론.”
마르코 로제와 르네 마리치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심의 휘슬 소리에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레알 마드리드는 여전히 라인을 좀 더 깊숙히 내린채 수비지향적인 운용을 하였고, 도르트문트는 라인을 바싹 올려서 전방위 압박을 취하는 형세였다.
전반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수비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 모드리치가 빠지고 수비가 굉장히 좋은 발베르데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드리치를 그렇게 괴롭혔다며?”
발베르데가 맨마킹 형식으로 최준호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등지거나 어깨 싸움으로 간신히 위치 선정에 있어서는 우위에 있었지만, 발베르데가 워낙 빠르다보니 공을 드리블 치며 달리는 것이 매우 힘들어졌다.
‘역시. 세상은 넓고 괴물은 많아.’
모드리치를 몸싸움을 밀어 제끼며 탈압박을 하던 전반전과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덕분인지 날카로웠던 도르트문트의 공격 템포가 같이 느려졌다.
도르트문트의 공세의 수위가 낮아지자,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은 귀신같이 상황을 읽고는 라인을 끌어올리며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반 7분 경.
최준호의 패스를 받은 엘링 홀란드는 라모스의 움직임 때문에 뛰어들어가는 최준호에게 패스를 주지 못하고 공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바싹 붙어 있던 바란이 발을 넣어 엘링의 공을 쳐냈고, 그 공을 오른쪽 풀백 멘디가 잡아내서 카세미루에게 연결했다.
최준호와 같이 골문으로 뛰던 발베르데가 공격을 위해 빠르게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고, 최준호 역시 빠르게 그를 뒤따라가는데, 달리면 달릴수록 두 선수의 거리가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카세미루는 수비수의 압박을 풀고는 공을 받으러 뛰어오는 토니 크로스에게 연결했다.
토니는 공을 잡자마자 최준호와 거리를 벌리며 뛰어가는 발베르데에게 공을 주었고.
정말 순식간에 수비수가 4명 공격수가 5명인 상황.
발이 빠른 쥬드 벨링엄이 급하게 발베르데를 향해 달렸지만, 쫓아갈 수가 없었다.
‘뭐냐 이 녀석?’
수비 대열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아모스가 발베르데의 질주를 저지하려고 달려들었지만, 방향 전환 드리블에 대처를 못하고 제쳐져 버렸다.
앞에 있는 벤제마를 막아야 하는 김우영이 달려드는 발베르데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뛰쳐 나갔지만, 그와 동시에 벤제마에게 스루패스가 들어갔다.
‘아, 다들 왜 이래?’
로만 뷔르키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자세를 낮추고 슈팅 각도를 줄이려고 했지만, 벤제마의 슈팅을 막아내진 못했다.
– 철렁!
“젠장!”
손에 하얀 붕대를 감은 벤제마가 골라인을 따라 달리며 세레머니를 하였고,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은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대며 기쁨을 누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죽어라 뛰어서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까지 온 최준호는 턱 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 욕지거리를 했다.
뒤늦게 수비를 하기 위해서 달리던 엘링 홀란드도 최준호 옆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안색을 굳혔다.
“진짜 강팀이네.”
“이제 눈치 챘냐? 이 팀의 진가는 늘 후반전에 시작하거든.”
“마치 겪어본 것처럼 이야기하네.”
“실력만 가지고는 상대하기 힘들어.”
“젠장.”
숨을 어느 정도 고른 엘링이 세레머니를 하는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을 보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