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78)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78화(178/184)
178화 누가 챔피언인가(5)
“···너 별거 아닌데?”
잘 알아듣기도 힘든 스페인 발음으로 말하는 엘링 홀란드를 보며, 세르히오 라모스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전반전 끝나고 동료들의 도움을 흥분을 가라앉힌 라모스는 상대를 도발하는 기술은 거의 0점에 가깝다고 엘링을 평가했다.
“그렇게 해서 날 도발할 수 있겠어? 네가 할 수 있는 거나 해. 멍청한 애송아.”
사실, 최준호가 말하길 <너 별거 아니라던데?> 라는 말투로 해야 하는데, 엘링이 잘못 말한 것도 있었고.
최준호가 알려준 데로 도발하였지만, 오히려 조롱거리가 된 엘링의 얼굴이 오히려 붉어졌다.
아모스가 영리하게도 마지막 단어는 엘링이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뭐?”
“별 하찮은 돼지 같은 게 까불고 있어.”
오히려 자신을 도발한 엘링을 가지고 노는 아모스.
그리고 몇 분 안 되어 흥분한 엘링이 공격 중에 라모스를 강하게 밀치는 바람에 경고받고 말았다.
안 그래도 바란 때문에 제대로 된 슈팅도 못 때리는 상황에서 라모스 때문에 엘링이 흥분해서 볼 컨트롤의 세밀함을 놓치자 도르트문트의 공격은 점점 더 퀄리티가 떨어져 갔다.
한편, 최준호는 공과 상관없이 자신에게 바싹 붙어 있는 페데리코 발베르데를 노려보았다.
세계 최정상급 스피드와 민첩성을 갖춘 지능적인 선수가 이렇게 붙어 있으면 떨구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주변 동료 선수들이 공을 안 준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도르트문트라는 팀 자체가 최준호를 시작으로 빌드업이 되는 팀인데, 최준호가 빠져버리니 패스의 짜임새도 사라졌고, 마치 공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 간신히 무언가를 하는 듯한 형세가 되어 버렸다.
‘이 자식을 어떻게 떨궈야 하지?’
도르트문트는 자신이 없으면 잘 굴러가지 않는 팀이라면 레알 마드리드에서 페데리코 발베르데의 공격적 영향력은 약한 편이었다.
그 말은 발베르데가 없어도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 잘 굴러간다는 뜻이었다.
발베르데는 2020년 중반기부터는 단점이 없는···단연 세계에서 첫손가락에 꼽는 완벽한 육각형 미드필더로서 탈바꿈하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단점이 있어야 할 시기였다.
그러나 움직임을 보니 도무지 팀을 찾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지워지면 정말 곤란해.’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너 어릴 때 중국 애들한테 맞고 지냈냐?”
“뭔 수작이야?”
“그렇지? 얼마나 맞고 지냈을까?”
순간 이를 악문 채 주춤하는 발베르데.
사실 우루과이는 오래전부터 무역 대부분을 중국과 하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중국의 거대 자본이 우루과이에 많이 들어와 있었고, 많은 우루과이 사람들이 중국인 사장이 있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국제무대에서 인종 차별 세레머니를 할 정도였다면 이해가 가네.”
“뭐라는 거야? 이 원숭이 새끼가.”
발베르데의 부모도 중국인 밑에서 일한 돈으로 자신을 축구선수로 키웠다.
매정하게 돈만 따지고 노동력을 착취하는데 도가 튼 중국인 사장 때문에 부모가 매일 지친 모습으로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컸던 발베르데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고.
최준호의 현란한 말솜씨에 흥분한 발베르데가 공과 전혀 상관없이 손을 써서 밀쳐 버렸다.
물론 경기 중이라는 걸 바로 떠올렸기 때문에 마지막에 손에 힘을 완전히 뺏지만, 발베르데의 손이 닿자마자 최준호는 소리를 지르며 경기장에 쓰러져 버렸다.
옆에서 부심이 깃발을 들었고, 주심이 휘슬을 불며 경기를 중단시켰다.
이후 VAR 실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발베르데에게 다가와 노란 카드를 꺼냈다.
“난, 진짜 억울하다고!?
발베르데가 정말 억울한 표정으로 호소했지만, 최준호를 미는 행동 자체가 무마되는 건 아니었다.
거의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발베르데가 흥분해서 펄쩍펄쩍 뛰자 라모스가 다가와 강한 힘으로 그를 끌어안았다.
“이 자식아. 그만해. 도발에 넘어가지 말라고.”
어린 선수들이 간혹 겪는 일이었다.
여기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서 퇴장이라도 받는다면 경기가 완전히 엉망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눈앞의 빅이어를 놓치는 참사까지 벌어질 수가 있었다.
팀에서 가장 성격이 포악한 라모스가 으름장을 놓자, 발베르데는 별수 없이 행동을 멈추었다. 하지만 가슴 속 깊숙하게 자리 잡은 억울함과 몸이 여전히 떨리는 흥분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누군가는 매우 비겁한 행동이라고 힐난하겠지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은 선수로서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무대였다.
아무런 변수 없이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이 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눈치챈 최준호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결국 경기 종료라고 받아들여졌다.
패배한 채.
“사포에 당한 멍청이가 누굴 위로하나?”
발베르데를 진정시키던 라모스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리고는 동료의 손을 잡고 일어난 최준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라모스가 달려들어 최준호를 밀어 쓰러트렸고, 두 선수단이 거의 충돌할 기세였다.
더 심한 행동을 하려는 행동을 오히려 발베르데가 허리를 끌어당기며 제지하였다.
주심은 현명하게 그사이에 끼어들어 최준호를 향해 노란 카드를 먼저 꺼냈다.
그리고는 최준호를 밀친 라모스에게도 노란 카드를 꺼냈다.
“이건 축구야. 페어 게임! 페어 게임! 이제부터는 안 봐주고 카드 꺼낼 거야.”
“이거 놔!”
화난 라모스가 여전히 흥분해서 고함을 질러댔지만, 발베르데에게 끌려 뒤로 사라졌고, 최준호는 차분한 표정으로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페어 게임 같은 소리 하네. 축구는 전쟁이야. 살아남은 자만 웃는 전쟁이라고.’
그리고.
이 상황이 부랴부랴 종료되긴 했지만, 변수가 되긴 하였다.
**
역전 골까지 넣고 경기를 압도하는 후반 상황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던 지단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발베르데의 움직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수비는 상당히 과격해졌고, 그 넓었던 시야의 폭이 줄어든 게 확연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시야가 좁아지다 보니 방향 전환 패스는 전혀 나오질 않았고, 자꾸 전진 패스만 하려고 했다.
흥분해서 얼굴이 달궈진 발베르데와 라모스와는 달리 마치 냉랭한 얼음 인형처럼 여전히 똑같은 플레이와 움직임을 하는 최준호를 번갈아 보던 지단이 고개를 저었다.
‘21번. 저 녀석은 도무지 어리다는 느낌이 없어.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이거 느낌이 안 좋아.’
터치라인 부근에서 선수들에게 계속 흥분을 가라앉히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특히 라모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지단의 얼굴이 굳어질 무렵, 옆에서 마르코 로제와 같이 있던 르네 마리치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가끔 보면 저 녀석은 마치 야전 사령관 같은 느낌이야.”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흐름이 완전히 넘어가나 싶었는데, 아까 사건으로 그라운드에는 마치 난기류가 형성된 듯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야전 사령관?”
“우리도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변화를 만들려고 애를 쓰잖아. 스스로 판단해서 말이야.”
마르코 로제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레알 마드리드의 지공 상황에서 발베르데의 전진 패스가 최준호의 발에 걸리고 말았다.
최준호의 움직임을 계속 보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 패스길을 최준호가 이미 읽고 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공을 빼앗긴 발베르데가 달려들었고, 최준호는 빠르게 전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딜!”
빠르게 패스할 것이라고 여긴 발베르데가 성급하게 발을 넣었다.
후반전 초반에 보여주었던 그 냉철함은 발베르데에게서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
‘흥분하면 그렇게 당하는 거야.’
오히려 공을 왼쪽으로 툭 차 놓고서는 발베르데가 들이민 어깨를 강하게 들어 올리듯 밀어버린 최준호.
스피드와 민첩성은 발베르데가 압도적으로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김우영과 개인 훈련을 하면서 익힌 몸싸움은 최준호가 월등했다.
몸의 중심이 크게 흔들린 발베르데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이다가 그라운드에 엎어지는 사이.
최준호는 탄력을 붙여 공을 드리블 치기 시작했다.
거의 반코트 게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후반 전에 도르트문트를 가둬놓고 후둘겨 패던 레알 마드리드였던 지라, 선수들의 포지션이 전부 센터 서클 위에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역습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엘링과 마르코 로이스가 거리를 양측으로 거리를 벌리며 뛰면서 센터백을 모조리 끌고 갔고, 최준호가 센터 서클을 넘어서는 상황에서 수비수와 공격수가 3명씩이었다.
풀백인 다니 카르바할이 신중하게 최준호의 전진을 저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쥬드 벨링엄이 빠른 속도로 골문을 향해 쇄도하였다.
– 툭.
카르바할의 뒷공간으로 최준호의 긴 스루패스가 들어갔고, 쥬드가 스피드를 살린 채 그 공을 향해 쫓아갔다.
“젠장!”
카르바할이 욕지거리하며 쥬드를 따라 달렸는데, 스피드가 제법 빠른지라 곧바로 쥬드의 뒤를 추격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수장 티보 쿠르투아가 말없이 튀어나와서 쥬드의 슈팅을 방해하려고 하는 사이.
쥬드는 거인 같은 쿠르투아를 보고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자신에게 공을 준 최준호가 페널티 에어리어로 쇄도하는 것이 아니라 게걸음 치듯 옆으로 향하고 있는 것.
훈련 중에 자주 보이던 그 모션이었다.
‘골키퍼가 튀어나왔어. 나보는 확률이 더 높아!’
쥬드는 쿠르투아가 무섭게 집중하는 것을 보고는 감각적으로 힐킥으로 공을 뒤로 흘려버렸다.
“안 돼!”
쫓아오던 카르바할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렸고, 이후에 뒤에서 무시무시한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 뻥!
꽤 먼 거리에서의 중거리 슈팅이었다.
하지만 골대에서 멀리 나온 티보 쿠르투아가 아무리 뛰어난 선방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강렬한 슈팅을 막기에는 확실히 무리수였다.
– 철렁!
최준호의 슈팅에 작렬한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이 강하게 흔들렸다.
쿠르투아가 짜증이 난 표정으로 양손으로 머리를 잡고는 골문을 보았고, 경기장에는 도르트문트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3-3
후반 31분경에 나온 동점 골.
더군다나 최준호는 해트트릭이었다.
골라인을 따라 달리면서 손을 번쩍 올려 손가락 세 개를 올리는 최준호.
최준호는 자신을 향해 달려와 축하를 해주는 선수들에게 외쳤다.
“VAMOS!(바모스! 가자!)”
**
– ㅅㅅ
– 으앗!
– 와!
-ㅁㅊ
– 흑.
– 그럴 줄 알았어.
– 아 씨발 존나 재밌네. 이게 진정한 결승전이지!
– ㄹㅇ이 이렇게 쫓기다니.
– 와 미친! 누가 이길 것 같냐?
– 발싸게 잘하던데, 갑자기 왜 저럼?
– 씨발 챔스 결승에서 칸코쿠 선수가 해트트릭하는게 말이 됨?
– 일본인 ㄲㅈ.
– 좇드가 다 만든 장면.
– 이 새끼들은 한국인 맞아? 씨발 저건 최준호가 다 만든 거잖아.
– 도르트문트가 우승이라고? 말도 안됨. 곧 레알이 골 넣을 거야.
– 이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 레알 놈들 ㅈㄴ 흥분했네. 닥치고 패배를 즐겨.
– 씨발 경기 안 끝났는데 자꾸 누가 졌다고 하냐?
– ㅈㄴ 통쾌하네. 발싸게 눈 찢고 세레머니 하는 거 떠올리니까.
– 저 망할 한국놈만 조지면 레알이 우승한다고! 왜 놓치는 건데!
– 레알 놈들 도 넘지 마라.
···
거의 모든 한국 축구 커뮤니티는 난리가 났다.
레알 팬들과 비 레알 팬들 사이의 댓글로.
한국 이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이라고 정평이 난 독일인···
하지만 거의 정신을 잃고 춤을 추듯 몸을 흔드는 레아와 마테우스, 밀라를 보며 최현식은 아들을 보며 가볍게 손뼉을 칠 수밖에 없었다.
– 초이! 초이! 초이! 초이!
챔피언스 리그.
그 결승전.
이 엄청난 경기에서··· 그것도 포르투칼에 있는 경기장에서··· 아들의 이름을 저렇게 열렬하게 연호하는 것을 들으니 눈물이 흘렀기 때문이었다.
한편 기자단 부스에서 관람하던 양창명은 점점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애를 썼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한국 선수가 해트트릭을 한다고?
축구 역사에 있어서 UEFA 챔스 리그 결승전에서 해트트릭한 선수는 딱 2명뿐이었는데, 1960년대 페렌치 푸스카스와 1969년 피에리노 프라티밖에 없었다.
지금 용호상박의 쫓고 쫓기는 경기 분위기 때문에 그렇지, 최준호는 방금 엄청난 기록을 세운 셈이었다.
‘한 골만···더 넣으면···’
기록 경신.
사실 양창명은 오늘 이렇게 치열한 경기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봤을 때, 레알 마드리드가 아주 우세한 전력을 가지고 있었고, 큰 경기에 대한 경험도 도르트문트가 압도적으로 적기도 했고.
일단 이런 큰 경기에서 어린 선수들이 당황해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정말 이러다가 도르트문트가 우승하는 거 아닐까요?”
민선아가 눈가를 비비며 물었고, 양창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축구를 흐름의 스포츠라고 하잖아. 아무리 강한 팀도 90분 내내 상대를 억죄지 못해. 아무리 약한 팀이라고 해도 골을 넣을 기회가 있고.”
“만약 도르트문트가 우승하면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하네요.”
“···그래? 난 이미 생각해둔 게 있는데.”
“뭐에요?”
“내가 왜 알려줘야 하지?”
“잠깐만. 남편이 그러기야?”
“지금은 우린 경쟁사 기자라고. 알아서 써.”
“와, 진짜 치사하다.”
민선아가 구시렁거리는 소리는 양창명의 귓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한 골만 더 넣자. 최준호 선수. 그러면 발롱도르도 어렵지 않아.’
이미 윤지성 선수가 맨유 시절 챔피언스 리그 컵을 들어 올렸기 때문에, 챔피언스 리그 우승의 충격은 덜 하겠지만, 아시아 선수가 발롱도르를 타는 것만큼 충격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양창명은 그때가 오면 자신이 쓸 기사 제목도 이미 생각해두었다.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