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8)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8화(18/184)
18화 리턴 매치(2)
“플레이가 바뀌었군.”
디아스의 시선은 온통 최준호에게 향해 있었다.
1번의 실수로 첫 골 실점 후 5분 만에 세트피스 상황에서 수비가 걷어찬 공이 자기 선수의 등판을 맞고 튀어 골대로 들어가는 불운을 겪었다.
그 이후에 최준호의 볼 터치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골을 넣기 위해 무리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 툭.
최준호는 따라붙은 수비수의 가랑이 사이로 볼을 넣고는, 그의 진행 반대 방향으로 몸을 비틀었다.
피지컬이 아무리 뛰어나도 뒤로 민첩하게 뛰어드는 최준호를 방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물론 이전 경기에서 최준호가 이렇게 개인기로 치고나갈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한 애드윈이 바로 달라붙었다.
‘이번에 널 통과시키는 일은 없을 거야.’
최준호가 공을 툭툭 치며 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애드윈은 저번처럼 성급하게 달려들지 않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차분하게 모션을 취했다.
돌파도 슈팅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그의 표정에 실려 있었다.
그 순간 오른쪽으로 향하는 최준호의 눈동자.
순간 그의 상체도 오른쪽으로 휙 돌았고, 애드윈은 최준호의 오른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였다.
‘돌파 하려고? 어림…’
하지만 최준호의 다리는 왼쪽을 향해 달렸고, 돌파 당한 애드윈은 너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리다가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순식간에 2명을 제쳐 버린 최준호.
그는 페널티 에어리 밖에서 중거리 슈팅을 시도하려는 듯 공을 툭 차놓고, 대각선으로 왼발을 디딤발 하였고, 달라붙은 다른 수비수는 그의 슈팅을 막기 위해서 다리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거기서 깔끔하게 한 번 접은 최준호는 이번에는 왼발 슈팅을 하려고 모션을 잡았다.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던 센터백이 그 광경을 보고는 기겁하며 예상되어지는 슈팅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찰나에 최준호가 공을 때렸는데, 그 공은 슈팅처럼 보이지 않았다.
가볍게 발등으로 공을 찍어차는 토킥 패스.
최준호의 중거리 슈팅을 막으려던 수비가 놓친 9번에게 토킥이 연결이 되었고, 9번은 그 공을 상대 골대 오른쪽 구석에 차 넣으면서 골을 만들어 내었다.
‘…저런 플레이는…’
완벽한 팀 게임인 축구는 가끔 단 한 명의 선수로 인해서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선수를 <크랙> 이라고 부르곤 했다.
물론 유스들의 리그에서는 이런 크랙이 자주 등장하기에 놀랄 일은 아니었다.
‘투헬의 말처럼 숨기고 있었다고 밖에’
지금까지는 최준호가 경기장 내내 터치를 짧게 가져가며 빠른 패스를 하였다.
그런 경기 방식에 수비수가 익숙해질 때 허를 찌르는 움직임 하나로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었다고 하면….
지금은 아예 대놓고 상대를 희롱하고 있었다.
“여유롭네.”
“그치? 저 상황에서 프리가 된 공격수를 발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
“저 녀석 뭐지?”
오히려 신지가 강주호에게 물었다.
“음. 방금 플레이는 뭔가 위화감이 드는데? 저 7번은 왜 저런 짓을 한 거야?”
강주호는 최준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문을 열어 버린 U-16의 7번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속인 거 같은데?”
“속여?”
“그 동안 잘하던 7번이 저런 멍청한 짓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그 것 밖에 없을 것 같아. 가령 눈동자와 상체 움직임으로 페인팅을 건다거나?”
“그래?”
“그런 걸 쓰는 선수들이 있다고는 들어봤어.”
“넌 그런 타입 아니고?”
“난 의외로 정직한 타입이라고.”
“그래서 여전히 후보선수인가?”
“넌 안 그러냐 인마?”
“그 위화감이라는 게 혹시 경쟁심이 아닐까?”
강주호의 말에 신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안그래도 크리스티앙 풀리시치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운 상황이라 새로운 신성의 등장은 바라지 않긴 했다.
“야, U-16이야. 저런 선수들은 엄청나게 많다고. 성인 레벨이 되어서도 저런 퍼포먼스를 보여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경쟁심은 아닌 거 같다.”
“뭐, 그렇긴 하지. 천재라고 불리우던 유스들이 성인 리그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저 녀석 피지컬이 저기서 멈춘다면 K-리그가 딱 어울릴 지도 몰라.”
신지의 말에 강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운드에 있는 22명 중에 가장 작고 왜소했으니까.
“피지컬이 문제긴 하다.”
**
“미치겠네 정말!”
애드윈은 고개를 푹 떨궜다.
진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이런 비참함은 처음이었다.
‘내가 과연 21번을 막을 수 있을까?’
4주 내내 이번 경기를 위해서 21번의 플레이를 보고 분석하고, 대응책을 찾았는데 모든 것이 한 번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야, 잘 좀 해. 저런 꼬맹이 자꾸 놓치면 곤란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누구나 열심히 해. 잘 하라고.”
“열심히….”
어찌보면 애드윈이 완벽하게 최준호를 놓치면서 이 사달이 난 것이니까.
변명하는 애드윈의 말꼬리는 점점 소리가 줄어들었다.
“늬들 모르는구나?”
닐스를 공미 자리로 몰아내고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찬 무코코가 아이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도르트문트와 계약을 맺자마자 U-19에서도 주전 스트라이커를 차지한 무코코였다.
피부색은 어두컴컴하지만, 독일 국적을 가진 독일인이었고, 실력은 그라운드에 있는 모두가 인정하는 선수였다.
“뭘?”
“저 21번도 U-19라는 걸?”
그 말에 모여 있는 아이들의 눈이 모두 커졌다.
“못 막는 게 당연한거야. 쟤는 U-19 너희들은 U-16.”
“그런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유소년 캠프 끝나고 U-19로 합류할 예정이야. 확실한 정보니까 의심하지마. 그러니까 너희들. 깔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해 진심으로 상대하란 말이야.”
무코코의 말에 애드윈은 가슴이 꽉 막힌 뭉치가 뻥 뚫린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캠프 아이들이게 당한 게 아니야. 저 나이에 U-19 계약을 맺은 실력 좋은 녀석에게 당한 거지.’
이기는 게 아니야, 막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무코코의 그런 말이 통했는지 최준호는 애드윈의 수비에 큰 압박감을 느꼈다.
애드윈이 굉장히 위험하고 무식한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 퍽!
완전히 따돌렸다고 생각하는 순간 팔뚝으로 가슴을 가격당하면서 최준호는 그라운드에 그대로 쓰러졌다.
“파울!”
심판을 보던 코치는 주저없이 노란 카드를 꺼내들었고, 애드윈은 무심한 표정으로 최준호를 노려보다가 몸을 돌려 현장에서 조금 벗어났다.
그 순간.
– 퍽!
그 순간 그의 옆을 스쳐가던 김우영의 팔꿈치에 애드윈이 얻어맞아 코를 잡고 땅을 굴렀다.
김우영은 그의 옆을 스치면서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한 번만 더 역겨운 짓 하면 죽여버린다.”
모두의 시선이 그라운드에 쓰러져 있는 최준호에게 향해 있어서, 애드윈이 그라운드에 쓰러졌다는 건 한참 후에 목격이 되었다.
다행스럽게 최준호도 벌떡 일어났고, 애드윈의 코도 별 문제가 없었다.
분위기가 과열되자 심판이 선수들을 모두 불렀다.
그리곤 김우영에게 노란 카드를 꺼내었다.
“앞으로 과격한 행동을 여지없이 카드가 나갈거다. 너희 모두. 상대 선수를 존중하고, 동업자 정신을 갖추고,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플레이를 해라.”
**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양측은 리그 결승을 놓고 다투는 더비 경기처럼 치열하고 격렬했고 지저분했다.
이미 애드윈과 김우영 덕분에 흥분한 선수들이었다.
유스 경기가 감정적으로 흐르게 되면 경기 결과는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다만 이 상황에서도 최준호는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스인 거지.’
흥분이 경기력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 지 경험이 짧은 저 아이들이 알 리는 없었다.
그리고 토마스 역시 흥분하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명확했으니까.
‘계약! 오직 계약!’
김우영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즐겼다.
상대가 과격하게 나가면 되갚아주려고 노력을 했다.
상대 선수와 신경질을 벌이는 순간 만큼은 관중석에 앉아 있을 아버지가 뇌리에서 지워졌으니까.
하지만, 그러함에도 무코코의 순간적인 돌파 능력은 너무나 무시무시했다.
캠프 팀의 진영에서 토마스에게 향하는 횡패스를 스틸한 무코코는 조금도 주저없이 공을 치고 나갔고, 당황한 토마스가 그 뒤를 쫓았고, 반대쪽에 있던 김우영도 사력을 다해 뛰어서 수비망을 좁혔다.
‘…빠른데?’
무코코는 자신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은 토마스의 숨결을 느끼고는 180도 턴을 하며 속도를 확 줄였다.
그 한 번의 턴에 토마스는 무코코를 앞 서 버렸고, 많은 공간을 내주고 말았다.
– 뻥!
그리곤 몸을 더 비틀며 터닝 슛을 때렸는데, 슈팅이 어찌나 센지 레이저처럼 골대로 향해 날아갔다.
골키퍼가 그 공의 궤적을 읽고 몸을 날렸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 퍽!
뛰어들던 김우영이 엄청난 점프를 뛰며 얼굴로 날아오는 공을 막아버렸다.
심지어 그 충격에 밀려 골대 윗 봉에 뒷통수를 부딪히기까지 했다.
제대로 때린 슈팅이 들어가지 않자 무코코 인상을 굳히며 루즈 볼을 잡으려고 속도를 내었지만, 토마스가 몸을 날려 다이빙 헤더로 공을 터치라인 아웃시켰다.
“나이스!”
공격 작업을 하다가 패스를 빼앗겨 뒤늦게 백업에 들어간 최준호가 토마스를 일으켜 세운 뒤 그라운드 쓰러져 있는 김우영에게 다가갔다.
“괜찮냐?”
“골만 안먹으면 괜찮아.”
“너 코피 나는데?”
소매로 코를 쓱쓱 문지른 김우영.
“아버지에게 쳐 맞을 때마다 흐르던 코피라 아무렇지도 않아.”
최준호는 김우영에게 손을 내밀었고, 김우영도 최준호의 손을 잡고는 벌떡 일어났다.
“잘했다.”
최준호의 말에 김우영의 표정이 살짝 폈다.
“기분은 좋네. 너도 좀 잘해봐 새꺄. 경기 이기게.”
**
“꼴사납게.”
팔짱을 낀 채 혀를 차는 김명신.
그의 눈길은 경기장 여기저기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로 향했다.
‘내 아들놈의 꼴 사나운 모습이 카메라에 담겨서는 곤란한데.’
그는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시계를 보았다.
‘언제 끝나는 거야?’
한 편.
나영중 감독은 김우영이 몸을 사리지 않고 수비를 하는 모습에 살짝 감격하였다.
“양 기자, 김우영 선수가 바뀐 거 같지 않아요?”
“맞아요.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파이팅을 보여주네요. 공격보다는 오히려 수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군요.”
“수비수로서 잘하는 거 맞죠?”
“아까, 실수 한 번을 제외하면 수준급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U-16 아이들과의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고 있고, 방금 그 슈팅을 막은 걸 보면 예측력도 좋은 것 같네요. 더군다나 무코코에 비해서 스피드가 느리긴 하지만, 센터백 치고는 제법 빠른 스피드입니다.”
“그래도 역시 축구는 골이겠죠?”
“그럼요.”
“세트피스 상황에서 한 골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는데.”
나영중의 생각에 김우영이 한 골이라도 넣어준다면 그의 특집에 화룡정점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최준호 선수의 플레이가 바뀐 거 같지 않아요?”
“맞아요. 이전에 보여주던 간결한 터치가 없네요. 대신 상대 진영에서 정말 위협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네요.”
“저 플레이가 저 선수의 본 모습일까요?”
지금 최준호의 움직임은 카메라에 담기 너무 좋았다.
1:1 상황에서 상대 선수를 돌파하는 모습이 시원시원했기 때문이었다.
“처음 U-16이 가지고 나온 수비 전술은 1:1 마크였어요 최준호 선수가 뿌리는 패스를 받지 못하도록 주변 선수에게 강한 압박을 하였죠. 그러자 최준호 선수가 패스 대신 1:1 돌파를 시작했어요. 그 결과 골도 얻었지만, 최준호 선수를 저 7번 선수가 혼자 막을 수 없으니 여러 선수가 달라붙으면서 수비가 무너졌어요. 저걸 알고 플레이 스타일을 바꿨다면…”
최준호가 민첩한 방향전환 드리블로 애드윈을 순식간에 제쳤고, 애드윈은 있는 힘껏 자신을 지나쳐버린 최준호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말았다.
그 광경을 보던 양창명이 다시 입을 열었다.
“…천재네요. 저건 퇴장감이군요.”
“카드가 나오겠죠?”
하지만 그들의 예상대로 카드는 나오지 않았다.
누가봐도 여기서 U-16 팀에서 한 명이라도 퇴장을 당하면 경기가 급격하게 기울 것이 분명했고, 그건 평가를 하는 스태프들이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드윈을 불러 심판이 경고를 주는 사이.
골대로부터 27m 떨어진 다소 먼 거리의 프리킥 지점.
전반전 1분을 남겨놓고 동점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상황이었다.
최준호는 거기에 서서 골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직접 슈팅? 아니면 크로스?’
의외로 많은 수가 벽을 세우고 있었다.
최준호의 슈팅력이 위협적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
그의 눈이 골대 근처에서 움직이는 동료 선수에게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