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80)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80화(180/184)
180화 누가 챔피언인가(7)
여전히 재능이 많은 선수가 부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10시간 노력해서 얻는 것을 누군가는 5분 노력하고 얻고, 누군가는 평생 가지고 싶어서 발버둥 쳐도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있고.
취미로 하는 것이라면, 웃어넘길 수 있겠지만, 경쟁하고 그 대가를 받아 살아야 하는 선수의 처지에서는 웃어넘길 수가 없는 일이다.
슈팅을 때리기도 전에 후반전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최준호가 뛰는 이유는 간단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미련한 행동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최준호는 이렇게 살아왔다.
느리면 더 많이 뛰고, 뒤처지면 더 많이 뛰고, 다들 포기할 때 포기하지 않고.
회귀 전 느린 발, 부족한 신체조건을 그렇게 극복해왔다.
하지만 죽어라 하고 노력해도 최준호는 EPL에서 3 옵션 정도 되는 공격수였을 뿐이고.
운이 좋게도 과거로 되돌아가는 이상한 일을 겪었지만, 쟁쟁한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그런 재능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은 몸뚱어리.
다행스럽게 어릴 때부터 정신 차리고 먹는 것에 신경을 쓰면서 피지컬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발 빠른 선수 앞에서는 약점을 보였다.
최준호에게 그걸 극복할 방법은 더 많이 뛰고 포기하지 않는 것뿐이라는 건 여전했다.
‘토마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간혹 축구 경기를 보면 프로 선수가 텅 빈 골대 앞에서 슈팅에 실패하거나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오거나, 전력을 다한 상대 수비에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
토마스는 자신의 슈팅에 모든 것이 걸려 있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의 뒤에는 정말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는 레알 마드리드의 두 선수가 있었다.
공 없이 질주하는 토마스는 여기서 가장 빠르겠지만, 드리블하는 토마스의 속도는 그렇지 않았다.
더군다나 토마스는 축구를 아주 늦게 시작한 관계로 슈팅 능력이 약했다.
자신도 인식하고 있을 테니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페널티 에어리어로 들어왔을 때 슈팅을 때릴 게 분명했다.
그사이에 따라 잡힐 가능성도 충분했고.
그런 예측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카세미루와 충돌한 뒤에도 벌떡 일어나 뛸 수밖에 없었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는 귓가에 천둥처럼 들렸고, 다리에는 몇십 킬로그램짜리 모래주머니를 붙여 놓은 듯 무거웠고, 비 오듯이 흐르는 땀에 시야도 먹먹하고 아까 충돌한 여파로 허벅지에 타박상까지 느껴졌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휘슬이 불리기 전까지 승리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뛰는 것.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는 것.
그것들이 최준호의 다리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헉헉헉··· 뒤지겠네.’
<여기서 멈추면 모든 것이 편해질 거야> 라는 아드레날린이 머릿속에서 난동을 피웠지만, 점점 따라잡히는 토마스를 보니 그럴 수가 없었다.
토마스는 사실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갑자기 나와서 이런 엄청난 기회를 가졌다는 게.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골을 넣지 못하면 팬들과 스태프들과 동료들에게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을지···.
더군다나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리고 있지만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따라잡혔다.
‘어떻게 하지?’
비어 있는 먼 골대를 향해 슈팅을 때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까지 가려다가는 달려온 상대 팀 선수들에게 쌈을 싸 먹힐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하지!’
그냥 차고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길까?
아니야 그러지 말자.
“잡았다!”
라리가에서 가장 빠른 선수인 비니시우스가 끝까지 쫓아가 다리를 집어넣을 무렵.
토마스는 공을 잡고 속도를 확 떨구었다.
토마스가 갑자기 속도를 떨구자 비니시우스가 헛발질하며 나동그라졌다.
하지만 그 뒤에서 바로 달려오던 발베르데가 토마스의 앞을 막아서 버렸다.
“막았다!”
사실 토마스는 어렴풋이 최준호가 하던 말을 떠올랐다.
– 난 경기 이길 때까지 뛰는 걸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야. 그게 지금의 날 만들었어.
‘혹시 날 백업하기 위해 뛰어오고 있을까?’
살짝 고개를 돌린 토마스 뒤에는 열나게 뛰어오는 쿠르투아와 그 뒤에서 쫓아오는 최준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최준호를 보자 토마스는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데, 네가 해결해줘야겠어! 난 못하겠어!’
그리고는 최준호가 뛰어오는 방향을 향해 백패스를 했다.
“아아아아···.”
토마스의 백패스에 도르트문트 팬들은 모두 머리를 감아쥐고 아쉬운 탄성을 내질렀고, 레알의 팬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티보 쿠르투아의 생각은 달랐다.
‘저 자식 슈팅력이 장난이 아닌데. 설마?’
그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외치는 티보!
“젠장! 다 골문으로 들어가서 막아!!!”
발베르데는 그 말을 듣고는 허겁지겁 몸을 돌렸고, 토마스는 아주 미안한 마음에 발베르데를 쫓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망할 녀석.’
최준호는 자신에게 빠르게 튕겨 오는 공을 보면서 주변을 한 번 쓱 훑었다.
전광판의 시간은 이미 추가 시간을 넘어간 상황.
주심은 뛰면서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발베르데는 골문을 다시 달리고 있었고, 토마스가 그 뒤를 다시 쫓기 시작했다.
뒤늦게 비니시우스도 벌떡 일어나 토마스를 쫓아 골문을 향해 달렸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준호는 시선을 골문에 고정하고는 무서운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곤 굴러오는 공의 회전 방향과 속도 그리고 디뎌야 할 그라운드의 상태, 그리고 바람의 세기를 한 번에 머릿속에 넣은 최준호는 왼발을 디디고, 있는 힘껏 오른발 발등으로 축구공을 충격했다.
– 뻥!
센터서클 앞에서의 슈팅.
거의 50m 거리에서의 슈팅이었다.
총알같이 튕겨 올라간 공은 20미터쯤 지나자 속도가 완만하게 느려지면서 골문을 향해 활강하기 시작했다.
“안돼!”
끝까지 쫓아간 발베르데가 공이 떨어지는 궤적을 향해 몸을 날렸다.
레알 마드리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구단.
월드클래스 선수가 후보로 있는 곳.
어릴 적부터 월드클래스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 발베르데는 전설적인 미드필더 지네디 지단으로부터 세계 최고 재능은 자신이라는 말을 늘 들으며 컸다.
‘마지막은 내가 웃으며 끝나야 한단 말이야!’
그런 발베르데의 바램 때문인지 결국 머리에 공을 맞히었지만···.
아쉽게도 발베르데와 공은 함께 골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 철렁!
발베르데가 골문을 흔든 공을 잡아 재빨리 밖으로 던졌지만, 주심의 휘슬이 냉정하게 울렸다.
– 삑!
센터서클을 찍은 주심.
그리고 주심은 휘슬을 입에 한 번 더 물었다.
– 삑···삑···삐익!
순간 경기장에 준비되어 있던 폭죽이 순서대로 터져 나왔고, 도르트문트 팬들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정신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벤치에 모두 서 있던 도르트문트 스태프들은 모조리 튀어나와서 그라운드 위를 달리기 시작했고, 도르트문트 선수들은 슈팅 이후에 너무 지친 나머지 무릎을 꿇고 지켜보던 최준호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모든 도박사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도르트문트가 5-4로 레알 마드리드를 꺾어버렸다.
최준호는 고개를 돌려 전광판을 보았다.
BVB borunesia Dortmund Win!
The Champion!
“······”
최준호의 눈가가 금방 붉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레아의 눈에서도 물기가 흘러나왔다.
최현식도 그러했고, 마테우스도 밀라도···
마치 인간 승리의 끝장을 본 것 같은 느낌에 양창명도 민선아도 소매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 우리는 이제 최준호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쓴 댓글처럼.
스타디움의 모든 사람의 시선과 모든 카메라가 몸을 일으켜 두 팔을 번쩍 든 최준호에게 향했다.
레알의 팬들도 스타디움을 떠나지 않고, 아쉬움과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최준호를 보며 이런 생각으로 열렬하게 손뼉을 쳤다.
– 언젠가 레알이 초이를 품을 거야!
얼마 후 정신을 추스른 도르트문트 팬들의 목소리는 이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빛나라 나의 별 보루시아>라는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1909년에 한 별이 생겨났어! 그리고 그 별을 보자마자
그 별은 도르트문트에서 온 별임을 알았지
보루시아라고 하는 그 별은 노랑-검정으로 빛나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별이고 제일 큰 천국에서 온 별이야.
이제 하늘을 올려다봐서 모두가 아는 저 별을 봐
난 그 별의 빛을 느끼고, 나에게 말할 거야 저 별도 너의 일부분이라고
빛나라 나의 별 보루시아 빛을 내어 나에게 길을 알려줘
네가 어느 길로 나를 이끌든 간에 나는 너와 함께 있을게.
**
마르코 로제는 한참 동안 최준호를 안고 있었다.
그동안 그를 지도하면서 단 한 번도 눈물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인 듯싶었다.
아니 그럴 만도 했다.
무려 챔피언스 리그 우승이니까.
그것도 이 한 경기에서 무려 5골을 터트리며 위기의 도르트문트를 구원해주었으니까.
아마도 이 경기는 축구라는 경기 종목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회자 될 것 같았다.
최준호라는 이름과 함께.
정말로 모든 게 극적이었으니까.
도르트문트는 96~97시즌에 첫 우승을 했으니, 23년 만에 두 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한 셈이었다.
분데스리가 리그 우승과 챔스 우승.
더블.
“고만 좀 우시죠. 뭐가 많이 축축한데요?”
최준호의 말에 마르코 로제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조금만 더 막아줘.”
“네.”
“근데 진짜 가는 거냐?”
“그러겠죠?”
“1년만 더 연장하자.”
“···헛소리 말고, 선수들 다 기다리고 있어요.”
마르코 로제는 그 말에 충혈된 눈을 여러 번 껌벅거리며 눈물을 털어냈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라면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꿈의 트로피.
빅 이어가 전달되었고, 마르코 로제는 그 트로피를 잠시 품에 안았다.
이 우승으로 마르코 로제도 이제 명장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사실 최준호가 아니었으면, 이 경기에서 필패했겠지만.
마르코 로제는 트로피를 품에 안고 몸을 돌려 단상에 서 있는 선수를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불만이나 불평 없이 주장 완장을 차고 뒤치다꺼리해준 마르코 로이스.
부상 여파로 계속 출전하지 못했지만, 훈련장에서 어린 선수를 적극적으로 지도하던 부주장 마리오 괴체.
원년 멤버로 여전히 팀에 헌신하는 부주장 우카시 피슈체크.
그 외에 새로 영입된 선수들 때문에 출전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줄었지만, 자신의 지도에 묵묵히 따라온 선수들.
늘 투덜대지만, 최선을 다해 골문을 지켜준 로만 뷔르키.
도르트문트에서 큰 어린 선수들이지만, 이제 핵심이 된 김우영, 아모스, 토마스···
도르트문트의 득점을 책임졌던 엘링 홀란드···
그리고···
이제는 리오넬 메시와 맞먹을 정도의 전설이 되어버린 고작 20살의 어린 선수 최준호.
마르코 로제가 입을 열었다.
“누가 챔피언인가!”
선수들이 하나같이 입을 맞추었다.
“우리가! 챔피언입니다!”
마르코 로제가 들고 있던 빅 이어는 마르코 로이스에게 전달이 되었지만, 마르코 로이스는 최준호를 불렀다.
“오늘 이 빅 이어를 들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선수는 오직 너뿐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줘서 진짜 고맙다.”
사실 마르코 로이스는 도르트문트에 있으면서 빅 이어를 든다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마지막까지도 이겼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최준호의 포기하지 않은 움직임 때문에 결국 극적으로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다들 동의하지?”
모든 선수가 라고 외쳤고, 최준호는 마르코 로이스에게서 빅 이어를 받았다.
“사양하지 않을게요.”
단상 중앙에서 빅 이어를 품에 안은 최준호.
상당히 오랜 시간 트로피를 바라보던 그는 이내 빅 이어를 양손에 들고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우리가!!!”
최준호의 외침에 도르트문트의 모든 선수와 스태프들이 함께 외쳤다.
“챔피언이다!”
**
그리고 패배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지네디 지단의 인터뷰가 세계 모든 축구인에게 회자가 되었다.
– 오늘 경기에 대한 소감은?
– 아쉽다. 분명 우리가 유리했고, 이길 수 있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을 위로해주었다.
– 패배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 라리가에서 우리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팀이 있다. 구단 가치와 선수들의 위상을 따져도 우리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팀에는 리오넬 메시라는 괴물이 살고 있고, 그 괴물 때문에 종종 중요한 순간에 무너지곤 했었다. 그리고 오늘 그와 비슷한 혹은 더 뛰어난 괴물이 이 경기장에 있었고, 우리의 패배 요인은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경기 끝나고 많은 레알 커뮤니티에서는 그 괴물을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 어린 동양인 선수라는 선입견 때문에 감독 사이에 많이 저평가된 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렇게 오판하였고. 하지만 아마도 오늘을 기점으로 초이는 모든 감독이 함께하고 싶은 선수가 되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 최준호 선수에 대해 다시 평가한다면?
– 아마도. 지금 같은 폼으로 그의 커리어가 끝나는 시점에는 GOAT(The Greatest of all time.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선수)가 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 마지막 질문을 하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발롱도르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심금을 가장 많이 울리는 선수가 발롱도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