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83)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83화(183/184)
183화 황금 축구공의 주인(3)
“오랜만이야.”
“오랜만이네!”
하필이면 두 선수가 동시에 도착을 했고, 붉은 융단을 앞에 두고 두 선수가 눈을 마주쳤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같은 팀에서 독일 최고의 듀오로 호흡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라이벌 관계가 되었다.
전 시즌 EPL, FA 컵, 리그 컵 트로피를 모두 들어올린 트래블의 맨시티!
그곳에 이적한 엘링 홀란드는 맨시티 팬들로부터 가장 화려한 환대를 받았다.
한편, FIFA 재정관련 룰을 어겨 징계를 받아 선수 영입에 문제가 생긴 첼시는 주축 선수들의 은퇴와 맞물려 끝없이 추락하다가 겨우 위기를 막았다.
이 위기와 맞물려 리빌딩이 격렬하게 진행이 되었고, 사상 최고의 이적료 신기록을 세운 최준호는 향후 5년간 첼시의 주축이자 구원자가 될 거라며 환대를 받았다.
어찌 되었던 이 두 선수가 모든 대회에서 우승을 놓고 다퉈야 하는 건 이제 기정사실이었다.
“레아 씨는?”
“출산 일이 다가와서 쉬고 있어.”
“이 좋은 날에 아쉽네.”
“셀린 씨는? 같이 안 왔어?”
“영국에 오면서 헤어졌어. 그러고보니 너 혼자만 결혼했네? 즐겁냐?”
“그럼. 즐겁고 매우 안정적이지.”
“사람이 상당히 고급지게 바뀌었네?”
엘링이 최준호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검은 머리카락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퍼머.
자신감 넘치는 눈빛과 격렬한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매가 한데 어우러져 샤틀레 극장을 둘러싼 뭇 여성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최준호.
“너 역시 몸이 뭔가 달라졌다?”
머리띠를 하던 도르트문트 시절과는 다르게 꽁지 머리를 하고 이전 시즌보다는 좀 더 강렬한 인상을 가진 엘링 홀란드는 상당히 벌크업이 되어 있었다.
“EPL에서 살아남으려면 피지컬에 집중을 하라고 누군가 조언을 해서.”
“나였나?”
“하하하. 거긴 어때?”
“아직은 뭔가 뒤죽박죽이긴 한데, 열정만큼은 이미 챔피언이야.”
최준호의 말에 엘링인 짙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래서 우리 상대가 되겠어? 내 다음 목표는 연속으로 빅이어를 품에 안는 거야.”
“나 역시 마찬가지야. 그리고 우리가 좀 더 유리할 걸?”
“왜?”
“내가 있으니까.”
“하하하!”
엘링은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을 몇 번이고 보았다.
화려한 스포라이트를 받은 최준호와 달리 엘링은 그 경기에서 그저 그런 선수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준호가 얼음찜질 하자고 꼬실 때 깨달았다.
이미 정상에 도달해 있는 선수가 그 누구보다도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걸.
그 노력에 운이 따라서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엘링은 휴가 기간에 한 눈 팔지 않고 몸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 좋아하던 게임도 끊을 정도로.
앞으로는 그 어떤 센터백 앞에서도 지워지지 않기 위해서!
“확실히 만만치는 않겠네. 초이가 있는 팀은.”
“겸손 떨지마. 여전히 도전자는 나니까.”
“넌 참 재주가 각별해. 스스로를 낮추는 재주가 말이야. 하지만, 난 속지 않아. 그래서 내가 도전자라는 걸 잘 알지. 개막 경기에서 우쭐하지마. 반드시 꺾어줄테니까.”
“웃기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악수를 한 손에서는 으그러질 듯한 소리가 슬며시 흘렀고, 두 선수간의 승부욕 때문에 눈빛에서 불똥이 튀는 걸 놓칠 기자들과 카메라가 아니었다.
그 때였다.
“왜들 이러시나? 왕의 앞을 막고 말이야.”
누군가 두 선수의 등판에 손을 대었고, 최준호와 엘링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푸른색 나비넥타이를 한 킬리안 음바페였다.
“쩌리들은 저리가.”
“풉!”
“큭.”
두 사람을 옆으로 밀치고 걸어가던 킬리안 음바페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두 사람을 가리켰다.
“다른 건 몰라도 주급은 내가 너희들보다 많이 받을 거다.”
23살의 킬리안 음바페, 21살의 엘링 홀란드, 20살의 최준호.
메시와 호날두 이후의 축구계를 책임질 신성들이 하나의 레드 벨벳에서 서 있는 장면은 쉽게 담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뭐라는 거야? 저 또라이는?”
최준호의 말에 엘링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감. 난감한 닌자거북이네.”
**
“호날두는 안 왔네.”
“이 인간은 지가 상타는 시상식이 아니면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아.”
발롱도르 수상식에 처음 참여해보는 엘링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가 옆에 앉아 있는 최준호에게 물었다.
“상을 타지 않는다는 걸 어떻게 알지?”
“글쎄. 나도 시상식에는 처음이잖아.”
“···그렇지.”
“···둘 다 역시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나 보네. 풋볼지에서 내게 수상 소감을 준비해달라고 하더군. 하하핫!!!!”
그 옆에 앉아 있는 킬리안 음바페가 말을 이었다.
“······?”
엘링과 최준호가 말 없이 바라보자 음바페는 좀 더 의기양양해졌다.
“훗. 왜 발롱도르 수상하는 선수들이 멋진 인터뷰를 하겠어? 이미 통보를 받고 준비를 해서 그런 거야.
“그래서 네가 발롱도르라고?”
엘링 홀란드의 물음에 음바페가 씩 웃었다.
“당연하지. 이 몸이 발롱도르야. 넌 수상 소감 준비하라는 이야기 못 들었지?”
엘링은 불편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려 최준호를 보았다.
“이 자식 하는 말 정말이야?”
최준호는 의기양양한 모습을 하는 킬리안 음바페와 당황한 엘링을 보며 한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장실은 다녀왔냐?”
“······?”
“······?”
오랜 역사를 지닌 시상식이었고, 굉장히 따분한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불편한 양복을 입은 채 오랫동안 앉아 있어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역사를 소개하는 시간은 참 괴로운 시간이었다.
관계자들의 축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상식에 접어들었다.
일단 시상식이 시작되기 전에 발롱도르 30인 후보가 한 명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30위 첼시의 주장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에서 시작하여 5위에 카림 벤제마의 모습이 보이자 한 구석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4위에 엘링 홀란드가 호명이 되자 최준호는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축하해.”
“놀리는 건 아니지?”
이 자리에 있는 선수들 중에 유일하게 호명이 되지 않는 선수는 최준호와 리오넬 메시, 킬리안 음바페였기 때문이었다.
“이건 실력으로 뽑는 게 아니야. 인기 투표지.”
“골을 넣는 실력 만큼은 여전히 네가 세계 최고야.”
칭찬에 엘링은 겨우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최준호가 삼킨 뒷 말을 들었더라면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 음바페 정도의 외모만 가지고 있었어도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엘링 홀란드의 화면이 넘어간 후에 다음에 나타난 건 파리 생제르맹의 킬리안 음바페였다.
“···아! 아냐! 이럴 수 없어. 난 수상 소감을 준비했단 말이야!”
얼마 전에 열린 UEFA 네이션스 리그에서 벨기에를 꺾고 프랑스를 우승 시킨 음바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순위였다.
음바페가 3위가 되자 사람들의 시선은 한 곳에서 묵묵히 앉아 있는 리오넬 메시에게 향했다.
6월에 열린 2020 코파 아메리카 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을 시키고 최우수 선수까지 차지한 리오넬 메시가 거의 확실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극장에 한 가운데 위치한 화면이 꺼지고, 사회 진행자가 나왔다.
“자, 그럼 19/20시즌 영예의 발롱도르 수상식을 하겠습니다. 이번 발롱도르 수상식에는 프랑스의 레전드 미드필더이자, 전 레알마드리드 감독이며 여전히 프랑스 풋볼지의 레전드 미드필더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미스터 지단입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자, 여전히 훤칠한 외모와 빛나는 머리를 가진 지네디 지단이 어둠 속에서 걸어나왔다.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무대와 선수들을 한번 쓱 본 지네디 지단이 마이크를 잡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지네디 지단입니다. 이처럼 영광스러운 자리에 초대되어 무척 기쁩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패배 후.
지네디 지단은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충격의 패배라던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전성기의 선수들을 데리고 호령을 하며 3연속 챔피언스 리그 우승도 차지했지만, 늙은 레알 마드리드는 이제 리빌딩 작업에 들어가야 했고, 그건 지단이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지는 사이에 프랑스 풋볼지에서 시상식에 참여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지단은 그 요청에 응했다.
“얼마 전까지 함께 팀에서 일해왔던 친구들도 보이고, 중요한 경기에서 제 가슴에 절망이라는 단어를 새긴 친구도 보이는 군요···.”
약간의 사설이 끝난 후에 지네디 지단은 봉투 한 장을 들었다.
그리고는 봉투를 펼치지 않고 마지막 남은 두 후보자인 리오넬 메시와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리오넬 메시. 그리고 초이.”
지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두 친구 모두 이 상을 전달하고 싶지 않군요.”
그 말에 극장 안에는 웃음이 터졌다.
라 리가에서는 리오넬 메시가 지단을 괴롭혔고, 챔스 리그에서는 최준호가 그에게 상처를 입혔으니까.
“···하지만 그 만큼 멋진 선수들이었습니다. 충분히 존경할 만한 선수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저를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기에 존경심으로 발롱도르의 이름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지네디 지단은 과감하게 봉투를 꺼내어 접혀진 종이를 펼쳤다.
“19/20 시즌 발롱도르 수상자는···”
누구의 이름이 불릴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극장 내의 모든 사람들.
“한 표 차이군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야유 섞인 탄성 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지네디 지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시 종이를 보았다.
“아마 이 수상자는 저에게 감사해야 할 겁니다.”
한 표 차이에 지네디 지단에게 감사를 해야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으로 시선이 분산되었다.
그 순간이었을까.
최준호와 시선이 마주친 리오넬 메시가 웃음을 지었다.
“이 친구는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정말 놀라운 플레이로 모든 축구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특별한 피해자였습니다. 아마도 그 경기가 아니었다면, 리오넬 메시가 발롱도르를 수상했을 겁니다. 19/20 시즌 발롱도르는 미스터 초이 입니다.”
발롱도르라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고, 프랑스 풋볼 지로부터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경쟁자들에게 수상 소감을 모두 준비시킨다는 이야기를 토마스 투헬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번 시즌은 부상으로 풀 경기를 치루지도 못했고, 공격 스탯을 봐도 다른 경쟁자들에게 크게 밀렸으니까.
하지만 첼시를 기반으로 열심히 해서 10개의 발롱도르를 차지할 생각이었는데···!
“···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수많은 전설적인 선수들의 환호를 받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더욱이 정말로 발롱도르가 되었다는 것은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지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최준호는 멍하니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당연하다는 듯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지마, 말이 안된다는 듯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어이, 정신 차려.”
엘링이 몇 번 등판을 두드려주자 최준호의 눈동자에 초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내가 진짜 발롱도르야?”
“다들 널 보고 있잖아.
최준호가 엉거주춤 일어나자 식장의 사람들은 다들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올해도 여지없이 최고의 활약을 한 리오넬 메시를 밀어내고 발롱도르를 수상한다는 것은 굉장한 파격이었다.
더욱이 유럽인도 아닌 아시아인이 발롱도르를 수상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처음이었고.
“말도 안돼··· 말도 안돼··· 말도 안돼···.”
가장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음바페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최준호는 단상 앞으로 향했다.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지단의 축하를 받은 최준호는 작지만 무게가 제법 나가는 황금 축구공 트로피를 건네 받았다.
“그날 경기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
지단은 최준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와 동시대에 뛰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자네는 이미 내 전성기를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도 충격과 감동을 축구계에 선사하게.”
지네디 지단을 목표로 설정하였던 것이 불과 5년 전이었다.
그런데 당사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다니···.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최준호의 자신감에 찬 대답에 지네디 지단이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생애에서 가장 행복할 때일거야.”
“아 그건 좀 곤란합니다.”
“왜?”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라면 앞으로는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없으니까요.”
“막을 방법이라도 있나?”
“계속 발롱도르를 타는 수밖에요.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죠.”
최준호의 대답에 지단이 화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군. 앞으로 기대하겠네.”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최준호는 준비된 단상에 앉았다.
품에 꼭 안았던 트로피를 옆에 두었다.
그리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문득 양창명 기자와 눈이 마주쳤고, 최준호는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 였나?’
유치하지만 맘에 드는 제목이었다.
준비한 멘트를 그제야 떠올린 최준호는 눈을 한 번 감았다고 떴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