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19)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19화(19/184)
19화 리턴 매치(3)
– 그걸 나보고 익히라고?
– 에버튼에서 교체 출전이라도 하려면 익히는 것이 좋아.
– 요청인지 아니면 명령인지?
– 네가 얼마나 절실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트리벨라.
일명 아웃프런트 킥.
그냥 슈팅이 아니었다.
아웃프런트 킥으로 공간 패스를 넣고, 스루패스를 넣게 되면 일단 달라붙은 수비수들은 그 공을 건들기 어렵고, 상대 예측보다 한 박자 빠르게 패스를 넣을 수 있게 된다.
날카로운 패스가 트리벨라로 들어간다면 상대 수비는 무너지기 쉬웠다.
피지컬에 밀려 골대 밖으로 밀려 나간 최준호가 상대 페널티 에어리어로 뛰어드는 윙어들에게 득점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팀이 원했던 것이다.
– 이게 뭐야? 궤적이 왜 반대로 가는 건데?
– 잔말 말고 헤더나 해.
–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어?
– 일단 기본기부터야.
김우영과 아침마다 운동을 하다 보니 서로 연습하던 것이 있었다.
지저분한 입담이랑 거친 성정과는 다르게 꽤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김우영이었다.
그는 수시로 고개를 돌려 오른쪽 니어포스트 쪽을 보고 있었다.
– 삑!
심판의 휘슬이 울렸다.
골대 왼쪽 구석을 바라보며 발을 디딘 최준호의 몸이 왼쪽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누가 봐도 오른발로 감아서 왼쪽 골대 구석으로 넣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골키퍼는 본능적으로 왼쪽으로 무게 중심이 살짝 쏠렸고, 캠프팀 선수들도 왼쪽을 향해 움직였다.
당연하지만 그들을 대인 마크하던 U-16 선수들도 왼쪽으로 움직였다.
단 한 선수만 빼고는.
최준호의 슈팅 자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무게 중심을 최대한 낮춘 상태에서 디딤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휘둘렀다.
– 턱..
그런 완벽한 자세와는 다르게 이질적인 소리가 나면서 공이 오른쪽으로 크게 휘어 날아갔다.
“어억!!”
골키퍼가 당황했는지 비명 같은 소리를 내며 몸을 틀었지만, 상대 수비수와의 몸싸움을 이겨내고 점프를 뛴 김우영의 머리에 맞아 총알같이 골대로 날아가는 공을 막을 수는 없었다.
– 철썩.
U-16 아이들 전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최준호를 보았고, 최준호는 가볍게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리곤 에버튼에 감독으로 부임했던 루카 모드리치를 떠올렸다.
그 감독 덕분에 에버튼에서의 경력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뭐, 이 순간은 고마워해야겠네.’
지금쯤 그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뛰고 있겠지?
“우아아아아!!!”
드디어 헤더로 첫 골을 뽑아낸 김우영이 미친놈처럼 웃통을 벗고 그라운드를 활보하며 달렸다.
정식 경기도 아닌 이런 시합에서 굳이 저렇게 골세레머니를 펼칠까 싶기도 했지만, 김우영은 한쪽으로 달려가서 멈춰서고는 고함을 질렀다.
“난 축구 할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 말은 절대 듣지 않겠어!”
그리곤 손에 든 유니폼을 두 손으로 펼쳐서 마치 국기를 흔드는 듯 크게 흔들었다.
‘저 새끼가….’
김명신의 인상이 더욱 찌그러졌다.
한 편, 최준호는 김우영이 내지르는 소리를 듣고는 대충 상황 파악을 할 수가 있었다.
2주 전부터 김우영이 무척 불안해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한 이유에 대해서.
**
“으하하! 드디어 김우영 선수가 골을 넣었어요! 완벽한 헤더 슛이 틀림없습니다!”
“네. 확실히 멋진 헤더 골이었어요.”
나영중은 정말 원했던 장면에 환호를 질렀고, 양창명 기자는 저 상황에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올린 최준호에게 완전히 빠져버리고 말았다.
‘트리벨라. 루카 모드리치를 상징하는 아웃프런트 킥’
그만큼이나 숙련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장면이 재현되었다.
‘우연일까?’
하지만 이상하게 저 장면이 우연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시스트를 한 후… 항상 쿨하게 돌아서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최준호를 보고 있자면.
‘노린 것이 분명해. 만약 그렇다면 최준호 선수에게는 이 경기 수준이 매우 낮다고 느낄 수 있어.’
“…김우영 선수가 수비수로서 자질이 확실히 있는 것 같지요?”
나영중이 다시 물었고, 양창명은 조금은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가 풀었다.
‘그러고 보니….’
최준호에게 워낙 집중하던 상황이라 김우영에 대해서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 난 축구 할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 말은 절대 듣지 않겠어!
김우영의 고함에 나영중과 양창명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향하였다.
나영중에게 김우영의 사정을 대충 들은 양창명은 관중석에서 양복을 입은 채 거만하게 앉아 있는 덩치 큰 사내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우영 선수의 커다란 몸집은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 같군요.”
“아마 그럴 겁니다.”
“그 몸을 어떻게 써야 효율적인지 잘 파악하고 있는 것 같고, 투지도 굉장합니다. 위치 선정과 헤더도 괜찮군요. 다시 보니 수비 자원으로서는 정말 괜찮군요.”
양창명의 칭찬에 나영중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갔다.
‘거 보십시요. 회장님. 자질이 있다니까요.’
한 편,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관찰할 수 없었던 신지는 방금 프리킥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왜 다들 오른쪽을 비운 거야?”
그건 강주호도 알 수가 없었다.
“글쎄.”
“저 친구가 공만 잡기만 하면 상대 선수들은 혼돈에 휩싸이는 거 같아.”
“아까 그렇긴 했었지?”
“어디서 마술사라도 데리고 온 건지 모르겠네.”
“뭐? 마술사?”
강주호가 큭큭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얼마 후 골을 넣은 김우영이 고함을 지르자, 신지가 물었다.
“한국말 같은데? 뭐라고 한 거야?”
강주호는 잠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가만히 경기를 보니 1번 선수의 가능성을 살짝 볼 수 있었다.
정규 리그 우승을 한 U-16 공격진을 상대로 절대로 기죽지 않는 파이팅을 하고 있었고, 공중 경합이나 몸싸움에서는 밀리는 법이 없었다.
‘하긴 한국에서 축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긴 하지.’
강주호도 집안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를 선택했다.
그 결과 비록 후보 선수이긴 하지만 도르트문트 1군 스쿼드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다.
현재는 공부하고 명문대학 가서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받고 있었다.
“신경 쓸 거 없어. 전반전이 끝났으니 이만 일어나자.”
“그럴까?”
신지도 지겨운지 하품을 길게 하며 몸을 일으켰다.
“먼저 가 있어. 잠시 통화 좀 하나 하고 갈게.”
신지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출입구로 사라지자, 강주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 박정수 감독님! 저 강주호입니다.
– 어 주호냐? 잘 지내고 있어?
– 네. 뭐 그렇죠.
강주호는 이번에 한국 U-17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선임된 박정수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로 전화했냐?
– 선수 하나를 좀 소개해 주려고요.
– 선수? 도르트문트에 한국 유소년 선수는 없는 것 같은데?
– 아마 잘 모르실 거예요. 올해 15살, 이름은 최준호. 한 경기 지켜보았는데, 굉장한 선수가 될 자질이 있어요.
– 그래?
– 스카우트 좀 보내서 확인해보세요. 보통 실력이 아니에요.
– 그러냐?
강주호의 눈은 김우영에게도 향했다.
– 그리고 수비수 자질이 괜찮은 어린 선수가 있네요. 피지컬이 아주 훌륭한 게 잘만 훈련받으면 좋은 선수가 될 것 같아요.
– 누군데?
– 김우영이라고. 슛돌이 프로젝트에서 스타가 된 녀석이요.
– 아!! 걘 공격수 아니었나?
– 모르겠네요. 여기서는 수비수로 뛰고 있네요.
– 그래. 기회가 나면 그쪽으로 사람을 파견해 보지.
– 내년에 U-17 월드컵이 있는데, 승호도 승우도 없잖아요. 최준호는 그 녀석들을 메울 만큼 대단한 자질을 가진 녀석이니까, 꼭 관찰하세요.
박정수 감독과 연락을 끝낸 강주호는 벗은 유니폼을 입는 김우영을 보다가 몸을 돌렸다.
‘결국 의지가 강한 놈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거야.’
**
“저 녀석 아웃프런트 킥을 저렇게 잘 찼었나?”
“오전에는 팀 전술 훈련, 5vs5 미니 게임, 오후에는 피지컬과 수비 훈련 세션 뿐인데, 아웃 프런트로 킥을 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어. 캠프 일정 후에는 무얼 하는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안 하던 것을 저렇게 완벽하게 할 리는 없겠지?”
“가능성이 거의 없지. 이미 마스터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겠어.”
후반전 시작 이후 최준호가 본격적으로 개인기와 빠른 리턴패스 그리고 트리벨라를 적절히 섞어서 구사하기 시작했다.
“애드윈 혼자서는 막기 힘들어 보여.”
“아웃프런트를 쓰기 직전에도 힘들었어. 반칙으로 끊는 수준이야. 두 명이 달라붙어도 저 패스 길은 막질 못하네.”
“무코코가 있는 U-16이 우세할 줄 알았는데, 이거 예상외인데?”
“토마스와 저 1번이 철통같이 수비하고 있어.”
“특히 1번… 투지가 여기까지 느껴질 정도야.”
“생각보다 좋은 선수인데?”
하지만 아시아인이 중앙수비수를 하는 것은 여전히 믿음이 가질 않는 일이었다.
풀백이나 윙백이면 모르겠지만.
“팀에 제대로 된 플레이 메이커가 하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력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경기군.”
“하지만 U-16의 저력을 무시하지 말라고. 저기엔 무코코만 있는 게 아니니까.”
디아스의 말처럼 U-16의 포메이션이 바뀌었다.
4-2-3-1에서 4-4-2의 형태로.
캠프 팀에서 제 역할을 하는 선수는 최준호, 토마스, 김우영 정도였으니까.
그들이 있는 중앙으로는 아예 공을 돌리지 않고, 사이드 오버래핑이 주가 되었다.
캠프 팀의 풀백들이 U-16의 윙어들에게 1:1에서 계속 뚫리면서 위험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리고.
왼쪽에서 올라온 크로스가 중앙으로 쇄도한 무코코와 닐스, 그들의 마크맨인 토마스와 김우영을 넘어가 반대편에서 쇄도하는 윙어에게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이렉트 발리 슈팅!
캠프팀 골키퍼는 예상 못 한 한 박자 빠른 슈팅에 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철썩.
U-16 아이들은 골 세레머니 없이 다시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갔고, 캠프 아이들은 최준호에게 자연스럽게 모였다.
“이거 어떻게 막지?”
1:1 에서 뚫리면 사실 답이 없긴 했다.
애드윈이 최준호에게 매번 뚫리면서 U-16의 중원이 무너져 버렸듯이.
이럴 때 유일한 대안은 미드필더들이 풀백을 지원해 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미드필더들이 빠진 공간을 공격수들이 내려와 수비를 해줘야 하고.
“한 점 지고 있는데, 우리가 내려가면 공격을 할 수가 없잖아?”
최준호의 설명에 공격을 맡은 아이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뒤로 내려앉는다면, 역습을 해야 하는데 지금 공격수들의 스피드로는 역습은 거의 불가능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떠오르질 않았다.
‘유능한 감독이라면 수를 내겠지? 이래서 축구를 감독 놀음이라고 하는구나.’
“선 수비 후에 역습으로 가자.”
**
“라이언! 풀백 맡아!”
최준호는 빠르게 사이드로 달리는 풀백을 가리킨 후에 공을 잡고 드리블을 치는 상대 윙어에게 달라붙었다.
뱅거는 공을 툭툭 치며 자신의 앞에서 엉거주춤한 자세로 수비하는 최준호를 보았다.
그가 공격 면에서는 레벨이 다른 수준이라면 수비에서는 별로 보여준 것이 없었다.
‘날 막을 수 있겠어?’
183cm에 67kg.
그리고 빠른 가속력과 스피드를 가진 뱅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최준호의 허점을 찾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오른쪽 빈틈.
오른발잡이인 그에게는 더없이 훌륭한 공간.
– 툭!
왼쪽으로 가는 척 하다가 오른쪽으로 치는 방향 드리블.
하지만 뱅거는 알 수가 없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 수준의 선수들과 경합했던 최준호라는 걸.
최준호의 수비력이 공격보다는 확실히 레벨이 낮았지만, 상대가 어디로 움직일지 알 수만 있다면 제 역할을 한다는 걸.
그리고…
최준호는 먼저 함정을 팠다.
뱅거가 오른쪽으로 향하도록.
– 거리 조절, 스텝, 무게 중심… 그리고 타이밍.
뱅거가 공을 툭 차는 순간 땅에 붙을 것처럼 무게 중심을 낮춘 최준호.
그는 그간 수비 세션에서 훈련받은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잔발로 민첩하게 방향을 바꾸고는 자신의 오른쪽으로 흘러오는 공을 타이밍에 맞춰서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최준호의 발에 맞은 공은 다리를 크게 벌리며 가속하려는 뱅거의 가랑이 사이로 굴러갔다.
“앗!”
그리곤 순간적인 움직임으로 뱅거를 완전히 제치고는 최준호는 앞이 뻥 뚫려 있는 공간을 향해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윙어와 윙백 모두 최준호의 뒤에 있는 상황이라 무인지경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역습 상황.
‘계약… 오직 계약!!!’
그리고 토마스가 정말 놀라운 속도로 그라운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