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w the ground RAW novel - Chapter (2)
그라운드를 씹어 먹다-2화(2/184)
2화 과거로 돌아오다(2)
– 독일 유학?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텐데?
– 뭐 다른 수가 없을까? 박홍민이는 그렇게 가지 않았어?
– 박홍민이는 축협이 진행하는 이벤트에 뽑혀서 간 거고. 개인적으로 가는 길은 나도 잘 모르겠다.
스카우터로 일하는 동기에게 물었지만,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 그런데 왜 갑자기 독일 유학? 한국에서 제대로 못하면 유럽 가봤자 헛 일이야. 한국에서 제대로 하라고 해. 개나 소나 유학은 뭔….
이런 충고를 하는 선배도 있었다.
– 내가 지금 바빠서. 나중에 한 번 알아보고 전화를 줄게.
아마 연락을 하지는 않겠지만.
최현식은 다시 운전에 집중하였다.
돈이 없으면 운동을 하기 힘든 대한민국의 구조 상, 오히려 실력으로 평가받는 유럽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게 최현식의 생각이었다.
현식이는 준호가 어릴 때부터 축구를 가르쳐 주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축구부가 없었고, 중학교에 갈 때는 일부러 축구부가 있는 곳으로 진학을 하였다.
왼발잡이로 타고났지만, 왼발만큼 오른발을 잘 쓸 수가 있었고, 슈팅력도 또래 아이들에 비해서는 레벨이 다른 수준이었다.
다만 실전 경기 경험이 없어서 그 외의 요소들은 평가할 수 없었지만, 양발잡이와 슈팅력만 가지고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것보다는 녀석이 독일에서 축구하기를 원하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얼마 후 신호를 받고 잠시 차를 멈춘 사이에 최현식은 다시 연락할 만한 사람들을 찾았다.
하지만 이내 걸려오는 모르는 번호.
– 네. 여보세요.
– 안녕하세요. 준호 학생 담임 선생 입니다. 최현식 선생님이시죠?
담임 선생이라는 말에 최현식은 얼른 자세를 고쳤다.
– 아. 네. 맞습니다.
– 다름이 아니라 준호가 사흘 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다가, 오늘 나와서는 자퇴서를 주고 갔습니다.
– 네?
늘 조용하고 수동적인 녀석이 갑자기 이렇게 일을 벌리는 게 심상치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단 한 번도 학교에 지각이나 결석을 안한 녀석인데….
근데 자퇴서라니…?
– 아… 아버님께서는 모르시는 내용인가요? 학생의 의중도 의중이지만, 보호자의 의중도 중요해서요.
최현식은 자퇴라는 말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 네. 제가 화물차를 운행하다보니.. 며칠 집에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연락을 했으니 제가 한 번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 아. 네. 아버님.
전화를 끊은 최현식은 바로 최준호에게 연락을 취했다.
– 네. 아버지.
연락이 가자마자 대뜸 받는 최준호.
자퇴서를 냈다는 말을 바로 꺼내고 싶었지만 최현식은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 준호야.
– 네 아버지.
– 어디니?
– 집이요.
– …지금 뭐 하고 있냐?
– 독일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 어?
– 마침 12월달부터 도르트문트에서 유소년 캠프를 여는 것 같아요. 22명을 뽑는데, 8주 동안 교육이 이뤄져요. 뽑힌 이후에는 모든 경비를 다 지원하고요. 일단 거기서 잘 보이면 도르트문트 U-18 유소년 후보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요. 독일로 갈 수 있는 비행기 값만 있으면 될 것 같아요.
최현식은 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축구에서 종사하는 사람들마저 방법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도대체 그런 걸 어떻게 찾아낸 거지?
그보다 비행기 값만 있으면 된다는 게.
– 그런 기회라면 꽤 많이들 지원할 거 같은데?
– 뽑힐 자신이 있어요.
정말로 자신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 녀석 진짜 내 아들 맞아?’
또 다시 드는 생각.
하지만 한 편으로는 기쁘기도 했다.
워낙 수동적이고 조용하고 말이 별로 없는 아들이었으니까.
– 여행 경비만 있으면 자신 있다는 거지?
– 네. 아버지.
– 알았다. 그런데 학교는?
– 음. 몸이 너무 엉망이에요. 독일에 가기 전까지 운동을 체계적으로 하려고요.
그러니까 학교에 안 가겠다는 소리였다.
최현식은 슬쩍 말을 던졌다.
– 그래도 수업 일수는 채울꺼지?
– 아니요. 오늘 자퇴서 제출하고 왔어요.
– 뭐?
– 미안해요. 아버지 상의 없이 결정해서요. 하지만 올해 중학교 자퇴자까지만 군복무 의무가 사라져서요.
군 복무라니?
그 말에 최현식은 아들을 다그칠 수가 없었다.
한국 선수들이 유럽 시장에서 저평가 받는 이유가 군대 때문이었다.
한창 성장하거나 전성기 시절에 군대에 가야했으니까.
그 군대 때문에 이적이나 임대도 쉽지가 않기도 했고.
– 하지만 중학교 자퇴라면, 축구를 실패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지도 몰라.
최현식도 공부가 그렇게 싫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했었다.
– 일단 저에게는 축구 뿐이에요. 그건 과거에도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워낙 확신에 찬 음성이라 최현식은 아들을 설득할 가능성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사람답게 살려면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하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왔다.
최현식은 그 유혹을 이겨내고 준호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퇴로가 없는 상황이 더 나을 지도.’
– 그래! 우리 준호가 그렇게까지 준비하고 있으니 나도 군말 없이 도와주마!
–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니다. 하지만 자퇴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꼭 알려줘야 한다.
– 네. 아버지.
– 점심 꼭 챙겨먹고.
**
전화를 끊은 최준호는 한숨을 가볍게 쉬었다.
평소에 고등학교는 무조건 졸업해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철학이었다.
만약 자퇴를 의논했다면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 먹고 질렀다.
그리고 중퇴를 해야하는 이유를 적절하게 곁들였다.
“운이 좋네. 군복무 의무가 없다는 건.”
에버튼과의 계약 6개월을 남기고 지도자 과정을 선택하면서 느낀 건데, 돈이 있으면 공부는 언제든지 할 수가 있었다.
다시 컴퓨터에 앉아서 도르트문트 유소년 캠프 지원서를 띄운 최준호.
그는 아주 익숙한 타법으로 독일어를 쓰기 시작했다.
1860 뮌헨 합류 했을 때 그는 매일 2시간씩 전문 독일어 강사에게 수업을 받아야 했다.
6개월 쯤 되자 클럽에서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독일어를 사용할 수 있었고, 3년 쯤 되자 독일어가 모국어처럼 익숙해졌다.
에버튼에 있을 때도 독일 출신 녀석들과 스스럼 없이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순식간에 지원서를 작성한 최준호는 온라인으로 제출하고는 몸을 일으켜 거울을 보았다.
키 172cm에 54kg 정도의 호리호리한 몸매.
한국에서나 이 피지컬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거지 해외에 나가면 정말 볼품 없는 피지컬이었다.
183cm에 75kg 정도가 EPL의 평균 신장이었으니까.
하지만 피지컬은 타고나는 것이라 인위적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에버튼 말년에 그 피지컬 싸움을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근육을 키웠는데, 오히려 민첩성과 가속력 그리고 체력까지 떨어졌었다.
‘과연 내 피지컬에 스트라이커가 맞는 옷일까?’
상대 팀에서 피지컬이 가장 좋은 센터백을 상대로 해야하는 스트라이커.
K-리그에서는 이 정도 피지컬로 충분히 씹어먹을 수 있겠지만, 유럽은 전혀 달랐다.
형편없는 몸을 가만히 쳐다보던 최준호는 문득 오래전에 한 코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초이. 자넨 포지션 변경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그 피지컬로 유럽에서 버티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이야.
– 어떤 포지션?
– 미드필더가 좋을 거 같아. 중거리 슈팅력은 월드클래스 급이고, 활동량도 많은데다가 지구력도 뛰어나. 시야도 괜찮고 양발로 볼을 다루는 솜씨도 좋고….
하지만 스트라이커를 하던 선수가 중미나 미드필더를 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윙어를 하던 선수가 윙백으로 전환되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축구라는 스포츠는 골을 넣는 스포츠였다.
골을 넣는 선수에게 모든 스포라이트가 가는 스포츠였다.
– 미드필더를 하느니 차라리 은퇴를 할거야.
“…참 멍청한 대답이었네.”
에버튼에서는 피지컬 깡패들에게 밀려서 원치 않게 후방으로 밀려나와 윙어들에게 공을 패스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으로 쇄도하는 경우에도 항상 피지컬 깡패들이 한 발자국 앞섰다.
16살의 유럽인 중에는 190cm가 넘는 괴물도 많았고 180cm 이상은 수두룩 할테고.
최준호는 자신의 상태를 차분하게 살폈다.
‘미드필더라… 확실히 피지컬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포지션이긴 하지.’
유럽 대부분의 축구 클럽들은 활동량이 많고, 스피드가 빠르며, 이타적인 축구를 하는 선수들을 좋아했다.
최준호는 기본적으로 발이 빨랐다.
다만 지금의 최준호의 몸은 체력이 좋질 않았다.
총에 맞아 죽기 전까지 평생 축구만 했던 터라, 전술 이해력, 집중력, 판단력, 예측력, 시야와 같은 정신적인 능력은 EPL 수준급이었다.
최준호는 중얼거리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남은 4개월 동안 내가 해야하는 건 정해져 있네. 체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아버지가 화물차를 운행하는 관계로 식사는 대부분 레토르트 식품이었다.
“…밥을 제대로 해서 먹는 것이네.”
**
“…고기?”
맛으로 먹는 고기가 아니었다.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것이니까.
“수입산으로요. 맛은 상관이 없어요. 가장 싼 걸로요. 저게 좋겠어요.”
마트에 장을 보러 온 최현식은 카트에 들어 있는 것들을 보고는 고기를 집으러 가는 최준호의 뒤를 쳐다보았다.
둘 다 요리에 솜씨도 없고, 먹는 것에 크게 관심이 없다보니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레토르토 식품을 집어왔다.
3분 짜장, 3분 카레, 각종 라면, 전자렌지에 데우면 먹을 수 있는 여러 국류.
반찬은 마트에서 사왔다.
하지만, 지금 카트에 있는 것들은 죄다 요리 재료 뿐이었다.
– 요리하겠다고?
– 남는 게 시간인데요. 인터넷에서 레시피 보면 다 만들 수 있어요.
없어서 못 먹는 통닭과 피자는 아예 사지도 못하게 했다.
– 그런 거 살 돈으로 고기 사주세요.
진짜로 거대한 고깃덩이를 가져온 최준호.
가격은 고작 1만 5천원이었다.
“그렇게 고기가 쌌니?”
“돼지고기에요. 삼겹살이랑 족발, 보쌈용 같은 일부 특수한 부위가 비싸지 나머지 고기는 정말 싸거든요.”
“맛이 없는 거 아니야?”
“단백질 섭취하는데 맛은 크게 상관이 없죠.”
“흐음.”
최현식은 며칠 사이에 너무나 커버린 느낌을 주는 최준호에게 슬며시 물었다.
“아들아.”
“네.”
“너 내 아들 맞지?”
“음. DNA 검사 해볼까요?”
그 말에 최현식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아니다. 누가 봐도 날 닮았으니까 내 아들이 맞지.”
“아버지.”
“응.”
“중학교 자퇴 허락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물 운송을 마치고 집에 오는 날 최현식은 그래도 중학교 졸업은 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중학교 자퇴를 하면 초졸이었으니까.
하지만 초가을의 시원한 날씨에 쉰 내가 날 정도로 엄청나게 땀을 흘리며 고강도의 운동을 하는 준호를 1시간 지켜보고는 마음을 확 바꿨다.
최준호는 복잡한 최현식의 표정을 보고는 말을 이었다.
“저 꼭 세계적인 축구 선수가 될 거에요. 오늘 일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그렇냐?”
“그럼요.”
최현식은 너무나 어른스러워진 준호를 보며 웃음을 지었다.
“좋네. 아버지가 또 도와줄 거 있냐?”
“안전 운전 하시고, 사고 당하지 않게 조심하시는 거면 충분해요.”
“당연하지.”
밤새 운전을 해도 준호만 생각하면 잠이 저절로 깼다.
자신마저 사라지면 준호는 정말로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거.”
준호는 초코파이 한 통을 가져왔다.
“그건 카트에 있는 거와는 좀 결이 다른데?”
“응. 이건 돌아가신 엄마가 좋아하던 거라면서요.”
“……”
“곧 기일이잖아요? 세일 할 때 싸게 사둬야죠.”
최준호는 이내 흥얼거리며 카트를 밀고 갔고, 최현식은 잠시 우두커니 최준호를 보았다.
사느라 정신이 없어 자신도 잊어먹을 것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짜식…’
**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어.”
“박홍민 때문이겠지.”
“어쩌다 나오는 특출난 선수들 때문에 이렇게 무의미한 아시아 소년 캠프를 열다니.”
“또 알아 그 어쩌다 나오는 특출난 선수가 여기에 올지?”
“확률이 0에 가깝지. 그런 특출난 선수들은 이미 스카우터들이 다 파악하고 있을테니.”
“그렇긴 하다 하지만 뭐 윗대가리 생각이 있겠지 뭐. 우리는 우리 할 일이나 하자고.”
도르트문트의 스태프로 일하는 케빈과 필립은 꽤 산적해 있는 지원서를 펼쳤다.
22명을 뽑는데, 무려 317명이 지원을 했다.
“흐음. 케빈 노트북 좀 이리 갖다줘.”
케빈은 필립의 말에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뭔데?”
“영상이 있네?”
“영상까지? 어이쿠. 귀찮게.”
케빈이 노트북을 필립의 책상 위에 가져다놓았다.
“어떤 녀석이야?”
“한국 국적의 최준호 라는 친구인데. 특기에 양발이라고 써놨어.”
“양발?”
양발을 모두 잘 쓰는 선수들은 꽤 희귀했다.
그래서 양발이라고 하면 아무리 폼이 엉망이고 기본이 없어도 스카우트들이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둘은 지원자가 보낸 영상을 가만히 보았다.
지겨운 표정으로 서류처리를 하던 그들의 눈이 이내 동그랗게 변했다.
“얘, 몇 살이야?
“15살.”
“15살짜리가 이런 슈팅을 때려? 그것도 양발로? 슈팅 자세도 아주 좋은데? 전문적으로 배운 느낌이야.”
“그것 뿐만이 아니야 슈팅을 때리기 전에 공을 터치하는 거 잘 봐봐.”
“와우 엄청 간결하고 민첩하네?”
“내가 말했잖아. 특출난 녀석들이 올 지 모른다고.”
“확률이 0라고 했잖아?”
“가깝다고 했지 0이라곤 안했다. 대단한데 이 녀석?”
“나도 동의.”
“피지컬이 너무 평범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일단 후보군으로 놔야겠지?”
케빈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갑자기 이 캠프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어.”